§129. 보편사무국
"이 문제로 가장 열성이었던 학자는, 아마 당신도 잘 아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로버트 보일이요."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지금은 지하에 있지만, 당시에는 상공에 접해 있었다. 그리고 그때도 이것과 아주 비슷한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대학."
"아시는군요."
"내 학식이 그렇게 떨어지진 않아."
놀라던 브레이버리는 내 대답을 듣고는 멋쩍어했다.
"저는 잘 몰랐습니다. 알아보면서 처음 알게 되었죠. 그러면 보이지 않는 대학이 왕립 학회의 전신이라는 것도 아시겠군요."
설마 이 시기에, 그의 입에서 그런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기에 내심 놀랐으나,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고작 시시한 역사 상식이나 논하자고 꺼낸 화제일 리는 만무했다.
"아무튼, 아니, 여하튼."
무슨 차이가 있는지, 그는 내 눈치를 한 번 살피더니, 굳이 같은 표현을 반복했다.
"세간에는 이 모임이 자연 철학에 관한 담론이 오간 정도로만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학자들 사이에선 기계론 사조가 신앙처럼 번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종교에서 벗어난 과학은 만물을 공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 거란 그런 믿음 말입니다. 하지만 그 희망적인 관측은 곧바로 제동이 걸리고 맙니다. 도무지 기존 상식으론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연속해서 나타나기 시작한 겁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겪었던 인류 한계 속도 같은 것 말입니다."
그는 몇 가지 예시를 더 떠올리려는 듯이 생각하다가, 결국은 기억나지 않았는지 어색하게 말을 멈칫거렸다.
"어쨌, 거나, 그 모든 이상 현상 총체를 관측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가시不可視 현상, 그리고 이를 연구하기 위해 모였기에 보이지 않는 대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회합은 정례적으로 유지되며 왕립 학회로 발전했고요."
나는 브레이버리의 설명과, 과거 들었던 칼라스 학장 대리의 말을 교차해서 검증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였으나, 두 사람의 설명은 크게 어긋나는 점이 없었다.
"그리고 보일의 사후에도 그의 불가시학不可視學 연구는 계보를 이어 나갔습니다. 큰 갈래로는 특히 두 학자에게 각각 계승되었다고 합니다."
작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이 낯선 과거의 얘기는 다소 뜬금없게만 느껴졌다. 현대에 벌어지는 사건들이 200년도 전에 있던 어떤 모임의 여파라든지 하는 괴담 같은 설명들 말이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도무지 연관성 없게만 느껴졌던 흐름이 서서히 경향성을 띄기 시작했다. 이런 것을 부르는 이름은 따로 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그 아이작 뉴턴 경이었습니다. 영국이 낳은 최고의 지성이요."
이른바 역사 말이다.
뉴턴, 턱없이 먼 과거의 인물처럼 느껴졌던 그 망령의 숨결은 사라지긴커녕, 여전히 온기를 품은 채 영국 전역을 맴돌고 있었다.
"세 학자는 영국과 북아메리카 영국령 각지에서 벌어지는 불가시 현상을 과학으로 재단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 걸쳐 방대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특히나 주식에 소질이 있던 뉴턴은 재산을 불려서 수행기관이 될 재단을 설립했고, 그것이 보편사무국의 전신으로 추정됩니다."
"추정됩니다?"
"사실 그에 관해서는 잘 모릅니다. 애초에 저 같은 요원은 열람할 수 없는 자료이기도 하고요. 이 부분은 이따 설명하겠습니다."
막힘없이 설명하던 브레이버리의 목소리가 갑자기 줄어들었다.
"여하튼, 사무국은 그때부터 있었던 겁니다. 물론 지금 같은 이름도 아니었고, 지금 같은 규모도 아니었지만요."
나는 그가 한 가지 설명을 빠트린 것을 바로 지적했다.
"그 전에, 자네는 방금 보일에게 제자가 둘 있다고 했지. 하나는 뉴턴이라면, 다른 하나가 누구지? 맥락상 굉장히 중요한 인물처럼 들리는데."
"모릅니다."
브레이버리는 즉답했다.
"모른다면?"
"방금도 말했지만, 지금 말한 것도 전부 흩어진 정보를 취합한 거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건 억측이지만, 어쩌면 사무국에는 없는 정보일지도 모르고요. 어쨌거나 당시 불가시학에 관한 연구 자료는 모두 왕립 학회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의 자신감 없는 설명은 아무렇지 않게 중요한 대목을 관통했다.
보편사무국과 왕립 학회, 그러니까 정부 내 단체들이 서로 결합하고 있지 않다는 것 말이다. 사실 조짐 자체는 여럿 있었지만, 그의 설명은 그걸 확신으로 바꿔놓기 충분했다.
적어도 영국 사회 전체, 그리고 왕실이 일개 집단에 휘둘리고 있지는 않다는 걸 알아서 안도하는 한편, 복잡해지는 상황에 관자놀이가 아려왔다.
"비록 왕립 학회의 성격은 변질했지만, 우리 보편사무국의 업무는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당신이 모를 리는 없겠지만, 이런 불가시 현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조차 위험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상들을 은폐하거나 제거하며 영국 시민을 보호합니다. 물론 이 작업에는 방대하고 포괄적인 실무 능력이 필요하고, 그런 업무 총괄을 수행하는데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보편사무국이라는 이름이 명명되었습니다."
"저번 전차 사건 때처럼 말이군."
"사실 그 정도 규모는 기존 업무 중에서도 규격 외였지만요."
별로 우스운 말도 아니었는데, 우리는 마주 본 채로 맥락 없이 웃었다. 같은 고난을 겪고 살아남은 생존자끼리 나눌 수 있는 모종의 정서였다.
잠시 후, 달아올랐던 공기가 다시 차게 식을 무렵, 브레이버리는 말했다.
"사실 이런 정보는 말단인 저에게까지 내려오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말했지."
"저번 전차 사건 이후, 조금씩 몰래 알아봤습니다."
나는 그가 설마 그 정도 깜냥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해서 깜짝 놀랐다.
"자네가?"
"당신이 보기에도 뜻밖입니까?"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러네. 전에도 한번 말했던 것 같지만, 자네는 별로 모험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브레이버리는 멋쩍게 웃었다.
"그런데 저번 사건을 몸소 겪고 나니, 저는 제 일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표면적인 설명만 듣고, 시키는 일만 수행할 뿐이었지, 제 스스로 알고 생각해서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걸 채우듯이 조금씩 뒤지고, 그걸 1년 반 정도 하니까 이 정도나마 알게 된 겁니다."
그 말을 하는 브레이버리의 동공 속에 불길한 소용돌이가 일었다.
"그리고, 대가, 대가를 치뤘습니다. 마구잡이로 정보를 들춰내다 보니, 원래는 알아서는 안 되는, 안전하지 않은 지식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많이요."
그는 불현듯 나를 보며 물었다.
"혹시 알고 있습니까? 보편사무국은 세계 곳곳에 지부를 갖고 있고, 심지어 런던 안에도 그 수가 넷이나 됩니다. 그리고 이유 없이 직원을 계속 전근시키죠. 저는 처음에 이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곧 알았죠. 목적은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그게 뭔지 압니까?"
브레이버리는 답할 틈도 주지 않고 계속 말했다.
"사람이 없어져도 모르게 하려고요."
그는 말했다.
"이미 여러 번 말했지만, 사무국이 다루는 비밀은 아는 것만으로 위험한 지식들입니다. 그것들로부터 대중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정작 가장 보호되지 않는 건 바로 우리였습니다. 보편사무국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 사람을 부품처럼 갈아 끼웁니다. 한계까지 마모되어서 더는 쓸 수 없게 된 폐기물, 하지만 사회에 풀어놓기에는 위험한 지식을 너무 많이 가진 사람들."
브레이버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나는 그의 시선을 눈으로 좇았다.
"폐기물이 버려지는 곳이 바로 여깁니다."
「왕립 베스렘 정신병원」
벽면에는 그런 문구가 적힌 명패가 걸려 있었다.
"아까는 제가 채용된 게 우연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저만 모를 뿐, 저는 사무국이 제시한 모종의 조건에 부합했겠죠. 군인을 지망했던 만큼 체력과 기본적인 지식은 갖췄으나, 그저 의문 없이 시키는 일만 수행하는 수동적인 인재라고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날 기차에서 망가졌어야 하는 그런 부품으로 말입니다."
브레이버리는 다리를 모으고, 다시 얼굴을 처박았다.
"여기 오게 된 동료는 사실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얼굴만 몇 번 봤고, 이름도 외우지 못했습니다. 구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대단한 이타심을 가졌거나 해서 한 게 아닙니다."
그는 말했다.
"그저 뭐라도 해내고 싶었습니다. 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서, 누군가를 구해내고 싶다고요. 마치...."
그렇게 말하며 내 쪽을 바라보더니, 이내 말을 멈췄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겁니다. 저는 누굴 구하기는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했죠. 이제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람이 있다고요.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이요. 저는 후자입니다. 너무 늦게 알고 말았죠."
침묵이 이어지고, 나는 느지막이 이렇게 말했다.
"자네 어머니가 내게 이렇게 일렀지. 자네가 무슨 쓸데없는 참견을 하면서 점점 미쳐갔다고."
"그래 보입니까?"
나는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간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살찐 턱에 비해 뺨은 홀쭉했으며, 눈두덩은 앙상하게 들어가서 두개골 형태가 드러나 보였다.
눈 밑에 피부에는 색소가 침착했고, 피로에 절은 탓인지 살점 부스러기 같은 것이 눈곱처럼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씻지 않은 몸에서는 구린내가 났으며, 머리카락은 지푸라기가 튀어나온 허수아비처럼 산발했다. 또, 정서가 불안한지 한 시도 손발을 가만두지 못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 자네는 정상이야. 타인을 도우려는 선의를 가진 이가 미쳤다고 할 수는 없지."
"뭐든지 하실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위로는 잘 못하시네요."
그리 말하며 브레이버리는 옅게 웃었다.
"괜찮은 표현을 찾거든 시인에게나 가게."
내가 욱해서 외치자, 그는 낮게 웃다가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하지만 끝입니다. 이미 여기 갇혔고, 닫힌 철문을 열 방법은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나가면 바로 들킬 겁니다."
나는 그 말에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네."
"무슨 뜻입니까?"
"뇌수술동 복도에 들어갔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밀폐된 지하 공간이라면 공기 흐름도 거의 없어야 하는데, 내가 느낀 바로는 안쪽에서 바람이 부는 듯했네. 그 비린내 말이야, 거기서 불어오고 있었단 말이지. 혹시 제일 안쪽을 확인해본 적이 있나?"
브레이버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확인해볼 가치는 있겠군. 만약 어디로도 이어져 있지 않다고 해도, 적어도 하수도는 있을 테니까. 어디로든 나갈 길을 찾기만 하면 돼."
분명 기뻐할 줄 알았는데, 그는 가만히 멈춰서는 불안해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뇌수술동 안쪽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어째서지?"
"제가 갇혀 있던 지난 한 주간, 의사들이 또 다른 환자를 세 번에 걸쳐서 데려온 적이 있습니다. 저와는 다르게 정말로 위쪽 병실에서 내려온 환자였습니다. 당시에 저는 너무 겁먹어서 숨어서 어떻게 되나 지켜봤습니다."
그는 말했다.
"의사들은 환자를 복도에 방치하고 그대로 떠났습니다. 그 환자는 아무 지시도 받지 않았는데, 혼자서 뭔가 이끌리는 것처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고요. 그리고 모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고, 말 그대로 증발한 것처럼요. 세 명 다 같았습니다."
나는 문득 떠오른 점을 물었다.
"자네는 사무국의 비밀 자료를 엿봤다고 했지. 그중에 병원에 관한 내용은 없었나?"
"병원은 제가 아까 말한 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뇌수술동, 여태껏 발견한 자료 중에 뇌수술동을 설명한 기록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저 짧은 문장 하나요."
브레이버리는 말했다.
"뇌수술동은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