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30화 (130/232)

§130. 달리 여지가 없었기에

달리 여지가 없었기에, 우리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면서 나는 홀로 직전의 대회를 떠올리며 숙고했다. 딱히 브레이버리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말한 내용이 모두 참이라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상황이 지나치게 혼란스러워서 뭔가를 오판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뭐든지 거듭 의심하는 습관이야말로 장수의 비결이었다.

"무슨 생각 하십니까?"

"아니, 조금 이상해서."

"뭐가요?"

내가 상념에 잠겨 대답을 깜빡 잊자, 그는 차마 더 묻지 못했다.

각 복도에는 좌측으로 난 병실 문이 둘 있었는데, 첫 복도에서 두 번째 병실이 내가 시체 숨소리를 들었던 그곳이었다. 나는 그곳을 지나치며 문득 떠오른 말을 여과 없이 내뱉었다.

"그러고 보면, 자네가 여기서 날 덮쳤지."

"죄송합니다."

브레이버리는 쩔쩔대며 사과했다.

"아니, 그건 괜찮아. 자네에게 당할 정도였으니까, 나도 꽤 얼이 나가 있었던 거겠지. 그런 의미에서 그건 딱 좋을 정도 경각심을 심어주었네. 문제는 이거지."

나는 계속 걸으며 지나가듯 말했다.

"자네가 내게 뭘 숨기고 있는지 말이야."

"네?"

이윽고 두 사람의 걸음이 멈췄다. 그가 멈추고, 내가 조금 늦게 멈춰서 돌아봤다.

"내 추측을 말해보자면, 뇌수술동에는 우리 말고 제 삼자가 있다. 그렇지 않나?"

"뭔가를 봤습니까?"

브레이버리는 아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람 말은 제대로 듣는 게 좋아."

"아, 그래요, 추측. 하지만...."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기억력이 그러면 어떻게 해. 날 덮칠 때 뭐라고 했지?"

그는 자신이 했던 말을 회고하며 침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침묵 속에서 나는 그가 스스로 기억해내길 끈기있게 기다렸으나, 결국에는 관두고 먼저 말했다.

"날 보고 조용히 하라고 했지 않나. 우리 둘뿐이라면 필요 없는 경고지."

"그것, 뿐입니까?"

"게다가 이런 말도 했더랬지. 다른 환자들이 뇌수술동에 들어오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대로 사라졌다고. 이것도 추측이지만, 이런 지하 시설은 폐쇄적인 편이지. 그저 안쪽으로 향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졌다고 표현하는 건, 문외한이 듣기에도 퍽 이상해. 차라리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면 모를까."

우리는 복도 끝에 도착했다. 모퉁이는 우측으로 꺾여 있었다.

"숨기려는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브레이버리가 아연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저 말할 시기를 놓쳤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목소리에 놀란 것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눈알이 정서 불안하게 좌우로 데굴데굴 굴렀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왕립 베스렘 정신병원은 격리 시설입니다. 특히 뇌수술동은 개중에서도 특별하고요. 제가 전부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저기요."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복도의 첫 칸, 비어 있는 줄 알았던 좌측 병실의 쇠창살 너머에, 어느 틈엔가 다가온 여인이 바짝 달라붙어서 우릴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거기 서 있었는지도.

이상한 점은 달리 없었지만, 상황 때문인지 좀처럼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놀라서 대답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내가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뭔가 말하려 하자, 브레이버리가 내 팔을 세게 쥐며 만류했다.

"못 들은 척하세요. 얼굴 보이지 말고요."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돌리고 걸었다.

"저기요, 당신."

여인은 우리 옆모습, 그리고 뒷모습을 보며 계속 말을 걸었다.

"들리잖아. 야, 무시하지 마. 문 열어. 열라고. 야, 죽어. 죽으라고."

음성이 점차 멀어지자 여인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악을 쓰는 듯한 욕설로 바뀌었다. 그때마다 우리 걸음은 빨라져서, 여인이 볼 수 없는 곳까지 떨어졌다.

그러자 그녀의 목소리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저거 사람이 아닙니다."

브레이버리가 말했다.

"제가 여기 갇힌 지 9일이 되었다고 했죠? 그때부터 저 여자, 저기 서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뭘 먹거나, 마신 기색도 없고요."

그는 겁먹은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처음에는 말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가 영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몇 가지 단어를 가르치면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제가 가르치지도 않은 단어로, 의미가 통하는 문장을 말하기 시작하더니, 저 말을 시작한 겁니다."

브레이버리는 낮게 속삭였다.

"문을 열라고."

"그건...."

"실수였던 겁니다. 애초에 가르쳐서는 안 되는 존재에게 우리 말을 익히게 한 겁니다. 그걸 불현듯 깨닫고는 상대하지 않으니, 저런 식으로 제가 지날 때마다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제가 여기서 뭘 그렇게 두려워했는지, 또 무엇으로부터 당신을 구하려 했는지요."

───뚜벅 뚜벅.

복도에 두 사람의 허한 발걸음 소리가 울린다.

"뇌수술동은 이름과 달리 치료를 위한 시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병원에서, 세상이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을 격리하기 위한 시설이죠.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응?"

"왜 자꾸 절 그렇게 봅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설명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모든 상황에서 어렴풋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의 말이 전부 사실일까? 이 시설이 고작 감금을 위해 존재한다기엔, 너무나도 많은 비밀과 암시가 감춰져 있다.

"이번에는 더 숨기는 게 없겠지?"

"숨긴 것도 아니고, 이제는 정말 없습니다."

그는 군기가 바짝 들어간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이 시설 끝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로 사람들은 사라졌고요."

"미치겠군. 이 끝에 출구가 있기를 바랄 수밖에."

───뚜벅 뚜벅.

우리는 새하얀 복도를 계속 걸었다.

그런 한편, 나는 홀로 기이한 감각과 계속 맞서 싸워야 했다. 그것은 뇌수술동에 들어오고 난 후부터 계속해 느껴지는 것으로, 좀처럼 빠르게 걷고 싶지 않음에도 어쩐지 걸음이 계속 앞으로 이끌리는 것이었다.

누군가 내 몸을 잡아당겨, 안으로 계속 안으로 이끄는 듯했다. 나만 이런 감각을 느끼는 것인지 물으려고 브레이버리를 돌아보니, 그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조금만 겁을 줘도 그대로 주저앉을 모양새였다.

나는 결국 말하지 않았다. 여기는 그를 두고 가기엔 너무 위험하게 보였다.

우리는 두 번째 모퉁이에 도착했다.

모든 복도의 형태는 같았다. 스물 걸음 남짓한 복도에 좌측으로 난 두 병실, 그리고 끝에서 우측으로 꺾이는 갈림길. 병실은 모두 닫힌 철문으로 막혀 있고, 밖에서 안을 보기 힘든 구조의 비좁은 쇠창살 창문이 눈높이에 하나 나 있었다.

벽면에서 흐르는 지하 특유의 싸늘함에 오한이 들고, 정신을 거슬리게 하는 밀폐 공간의 백색 소음이 웅웅거렸다.

그리고 악취!

뭔가 썩어가는 듯한 고약한 냄새가 앞쪽에서 스멀스멀 풍겨오며, 절대 가까워지지 않았다. 불쾌하기는 했지만,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게 내가 관찰하며, 세 번째 모퉁이에 도착했을 때, 그 소리는 들렸다.

"아, 데카르트."

나는 발을 멈췄다. 브레이버리가 놀란 얼굴로 날 바라봤다.

"방금 자네가 말했나?"

"아니요."

그도 그것을 들었는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발상은 옳았으나, 시대를 넘지 못한 천재여. 아, 그렇다, 그대의 식견은 옳았다. 영혼은 뇌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그것은 불온한 웅성거림이었다. 한 사람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갈라졌고, 그렇다고 여러 사람의 아우성이라 생각하기에는 또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모퉁이에 몸을 기대고, 준비한 권총을 한 손에 들었다.

"뭐 하시려고요!"

브레이버리가 작은 소리로 외쳤다.

"위험합니다!"

"내가 몇 번 쏴봐서 아는데, 총에는 장사 없는 법이야."

나는 몸을 90도 돌리며, 모퉁이를 빠르게 넘었다.

거기서 보게 된 것은 시체였다.

벽면에는 두 구의 시체가 살짝 떨어져서 뉘였고, 시외의 농장에서 맡을 법한 퇴비 냄새가 풍겼다.

"우웩."

날 뒤따른 브레이버리가 헛구역질했다. 나 역시 욕지기가 올라올 뻔했으나, 간신히 억누르고 시체 곁으로 다가갔다.

"조심해요."

"뭘?"

나는 대꾸했다.

"여기서는 시체만큼 안전한 주민도 없을 텐데."

"하지만, 하지만, 무슨 나쁜 병이 옮을 수도 있고요...."

그의 말을 무시하며,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시체의 신원은 알 수 없었다. 부패가 심한 탓이 아니라, 그 의복 때문이었다. 두 구의 시체 모두 중세 수도사처럼 온몸을 로브로 가리고, 얼굴에는 전면을 덮은 철제 가면이 쓰여 있었다.

시대 착오적인 복장도 그렇지만, 가면의 형태는 마치 중세의 고문 기구처럼 이형의 것이었다.

응당 있어야 할 눈구멍이나, 호흡을 원활히 할 숨구멍이 전혀 뚫려 있지 않았다. 게다가 잘 보면 귓바퀴 쪽에는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서 귓속까지 집어넣게 되어 있었다.

이걸 쓴다면 보고 듣는 것은 물론, 자칫하면 호흡조차 힘들 만한 그런 물건이었다. 가면보다는 고문 기구에 가까웠다.

나는 그걸 벗겨보려 했으나, 진득하게 달라붙는 감촉에 말았다. 안면의 썩은 살점이 가면에 송두리째 달라붙어 있었다. 다른 한쪽은 시험해 볼 필요도 없었다.

이만큼 특징적이지만, 그들의 정체는 알기 어려웠다.

어째서 이런 걸 쓰고, 혹은 누구에게 씌워지고 이런 곳에서 죽은 것일까. 나는 지팡이 끝을 이용해서 살짝 로브를 들췄다. 그러자 옷 사이로 육안으로 보일 만큼 삭은 공기가 흘러넘쳤다.

"우웩."

비위가 약한 브레이버리가 다시 구토했다. 나는 한 팔로 얼굴을 가리고 계속 안감을 뒤졌다. 시체는 이미 생물보다는 토양에 가까워서, 그 표면에 균인지 식물인지 모를 녹색 이끼가 피어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예상했던 대로, 이런 로브에는 있곤 하는 안주머니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깔끔하게 접힌 종이 한 장이 있었다.

누리끼리하게 빛 바랜 것이었으나, 종이가 낡은 탓이라기보다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래 보였다. 나는 그걸 조심스럽게 펼쳐서 읽었다.

안에는 두 서명이 되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나도 잘 아는 것이었다.

"이건 내 서명이야."

"네?"

브레이버리가 느릿하게 다가와, 어깨너머로 종이를 엿보았다.

"아니, 헷갈리게 해서 미안하네. 정확히는 올드코트 학장의 서명이지."

지난 1년간, 그의 대역을 맡으면서 이제는 내 서명보다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형체였다. 물론 나는 이런 곳에 서명한 기억이 없으니, 이것은 나 이전의 학장 대리, 혹은....

"올드코트에는 학장 대리가 세 명 있다고 압니다. 각 칼리지마다 한 명씩, 학장의 수족처럼 모든 업무를 대신한다고요. 이게 당신의 작품이 아니라면, 다른 두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요."

"잘 아는군? 대학은 나름의 비밀주의를 잘 엄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자 브레이버리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필사적이니까요. 일단은 국가 기관이니 준법한다고 하지만, 모든 절차가 합법적이지는 않습니다. 현대식으로 중세 수도원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 우리도 중세식으로 했을 뿐입니다... 몇몇 졸업생에게 협력을 구했죠."

나는 그 말에 숨은 뜻을 이해하고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 같은 말단에게 따져봐야 별수 없는 일이니, 그저 속으로만 한숨을 흘리고 말았다.

"그중에 성 헨리 8세 칼리지... 대외적으로 입학생이 많은 당신의 칼리지는, 아주 폐쇄적입니다."

"모순적으로 들리는데."

"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 칼리지가 외부 단체와 협업한 기록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이걸 모른다면, 다른 두 칼리지 중 하나가 관여했다고 봐야겠죠."

그가 내놓은 추측은 꽤 그럴싸했다.

"아마도 제임스 타운 칼리지일 거야. 여기저기서 태양 무늬를 봤지. 그게 바로 그들 칼리지의 상징물이라네."

문서의 내용은 실로 단순한 것이었다.

'건축 허가서. 신축. 장소, 왕립 베스렘 정신병원.'

그리고 두 명의 서명이었다.

줄곧 느껴왔던 의문점이 더욱 뚜렷해졌다. 이것이 고작 격리 시설이라면, 병원은 어째서 그들의 후원자인 보편사무국이 적대하는 대학에게서 건축 허가를 받아야 했을까.

그들과 사무국의 차이점은 무엇이지. 지금으로선 아는 바가 너무 적었다.

"우선, 계속 가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시도했다. 한 번을 휘청거리자, 그제야 브레이버리가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앉고 일어나기가 힘들어서."

변명하듯이 읊조렸지만 별 대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달리 여지가 없었기에, 우리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인상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좌측으로 난 병실들은 비어 있었고, 치우지 않은 변소에서는 구린내가 풍겼다. 그뿐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없었다.

"이상하지 않나요?"

브레이버리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말인가?"

나는 말했다.

"길이요. 우리가 여기 들어오고, 지금 모퉁이를 세 번 돌았죠?"

"그랬지."

"복도 길이는 모두 같았고요. 위에서 본다면 정사각형 모양일 테죠."

"그게 왜 그러나?"

"입구 쪽에 길은 정면으로 하나만 있었지 않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점점 떨려왔다.

"그런데 왜 또 다른 모퉁이가 있습니까?"

우리는 복도 끝에 도착했다.

살펴본 모퉁이 너머에는 별다를 것 없는 똑같은 복도가 놓여 있었다. 새하얀 복도와 밝은 조명, 그리고 좌측으로 난 병실 두 개와, 스무 걸음 남짓한 복도. 그리고 그 끝의 모퉁이.

"뭔가 이상해요. 같은 곳을 도는 것조차 아니잖아요. 이런 길은 없었단 말입니다. 또 뭔가, 뭔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는 발작하듯이 외쳤다.

"확실히 수상하군."

"수상하다는 말로 끝낼 게 아니잖습니까!"

"잠깐, 조용히 해보게."

나는 손으로 벽을 짚고, 눈을 감은 채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천천히 앉으며, 이렇게 물었다.

"혹시 아까부터 몸이 앞으로 끌려간다는 느낌 받지 않았나?"

그러자 브레이버리는 내려다 보며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당신은 또 뭔가 알고 있군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지팡이를 정면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세워 앞으로 살짝 굴리자, 그것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질질 끌리는 것처럼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브레이버리는 어찌나 놀랐는지, 그 모습을 보며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나는 그가 또 다른 호들갑을 떨기 전에, 굴러가는 지팡이를 붙잡으며 말했다.

"역시나. 아까부터 몸의 중심축이 안 잡히는 게 이상하다 싶었지."

"방금 뭡니까? 저것도 무슨 마법입니까?"

그 단어에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뭔가 말실수 했습니까?"

"아니, 그냥 개인적인 문제야. 그 단어... 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거든."

"마법이요?"

"그래, 그거. 어쨌거나, 실망스럽겠지만 이건 어떤 불가사의도 아니야. 잡아주겠나?"

그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다, 내가 손을 내밀자 그제야 부축해 일으켰다.

"실망은커녕 희소식인데요. 그래서 어떻게 된 겁니까?"

"이 복도는 내리막이야. 그것도 각진 지팡이가 구를 정도로 균일하게 경사져 있지."

브레이버리는 실눈을 뜬 채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말했다.

"제 눈에는 똑바르게 보이는데요."

"이미 자네 감각으로 파악할 수준이 아니야. 모든 문과 창문, 심지어는 천장마저 여기서는 복도와 같은 각도로 기울어져 있네. 그러니까 이렇게나 비탈져 있는데도, 멋대로 평평하다고 착각하고 마는 거야."

"착각이요? 누가요?"

"뇌."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규모는 비할 바가 못 되었지만, 바로 런던의 지하에도 이것 같이 경사지고 기다란 길이 하나 있었으니 말이다. 웨스트 노우드 공동묘지 지하 카타콤에서 발견해낸 론디니움으로 내려가는 그 길 말이다.

단순한 우연일까? 그렇다면 좋겠는데.

"복도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불가사의한 현상이 아니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보이지 않는 계단을 한 층 내려온 것과 마찬가지인 거야."

하지만 또 다른 의구심이 피어났다.

여기는 시설 입구에서 빈말로라도 그리 멀리 오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브레이버리는 마주치는 모든 일에 처음 보는 사람처럼 민감하게 반응했다.

숨기는 것이 없다고는 했지만, 그건 거짓말인 게 분명했다.

나는 그걸 바로 추궁하지 않았다. 아까 대답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같을 테니까. 오히려 내가 의심을 품고 있다는 걸 알리지 않는 게 좋다는 판단이 섰다.

"가지."

우리는 그렇게 안으로 향했다.

그때 한 병실의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의 것이다. 당장에라도 꺼질 듯이 희미한 목소리는 이렇게 물었다.

"아폴로, 그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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