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사일 밤의 손님
밤은 본디 흑색이 아닌 청색이다.
먼 북쪽 하늘과 도시 지평이 맞닿은 경계에는 옥색 물결이 출렁거렸는데, 이것이 밤은 청색이라는 증거가 아니고서 무엇이겠는가.
완연한 겨울바람이 뺨과 귓바퀴를 날카롭게 헤집고 지났다. 코트의 얄팍한 옷깃은 추위를 막기 턱없이 무력했다. 나는 걸음을 서둘러, 어느 온기가 고인 문 앞에 멈춰 두드렸다.
"누구신가?"
"나야."
"누구요?"
"허버트."
안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문 너머에서 철컥철컥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타났다.
현관 앞에 선 브라운은 귀신이라도 본 듯이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물었다.
"세상, 세상에, 정말 자네군. 그간 어디 있다 왔나?"
"말하자면 길어."
"수염은 또 왜 그렇고."
나는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내 수염이 왜?"
"이제 보니 면도칼만 아니라, 거울도 없는 곳에서 살다 왔나 보구만."
그 말을 듣고, 나는 멋쩍게 수염 끝을 손가락으로 비볐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지금까지 자네가 소문처럼 런던을 떠난 줄 알았는데."
신발에 묻은 눈과 진흙을 털어내던 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소문? 무슨 소문?"
"어, 그게... 신경 쓰지 마, 그냥 소문이니까."
고개를 드니, 브라운의 동공이 맹렬히 흔들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별로 좋은 소문은 아닌 게 분명했다.
"화 안 낼 테니까 말해봐."
"그냥 소문이야."
"그러니까 더 중요하지. 나도 모르는 내 소문으로 쑥덕거리는 꼴은 못 봐줘."
"진짜로, 진짜 나쁘게 듣지 마. 그냥 그런 소문이 있었던 거니까."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자네가 여자하고 야반도주했다는 소문이 돌았어."
브라운이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아주 참지 못할 것은 없는 소문이었다. 그보다 전에도 비슷한 소문이 몇 번이나 돌았지 않았나.
"고작 그게 단가? 아니, 그리고 왜?"
"그게, 이런 소문이 돌았어. 몇 사람이 봤다는 거야."
"뭘?"
"자네가 요즘 어떤 젊은 여자하고 놀아나고 있다고. 그것도 머리가 아주 빨간 여자 말이야."
그는 머리 색깔이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듯이 강조해 말했다.
"그녀하고 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나는 단언했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왜 그 일로 도망가야 하나?"
"그게, 말이지. 다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해서?"
"그, 뭐, 여럿 있잖아. 꽃뱀한테 물렸다든지."
"꽃뱀!"
"혼전에 아이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이!"
"사실은 붉은 머리 남자라는 얘기도...."
소문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끔찍했다!
나는 허리를 꼿꼿이 폈다.
"화 안 내는 거 맞지?"
"...그런 약속을 했지."
결국, 어디로도 가지 못한 분은 얼굴로 올라와서 입김으로 빠져나갔다. 뺨과 귀가 증기기관처럼 뜨거웠다.
"전부 헛소문이야. 내 일 때문에 잠깐 다녀왔던 거지. 워낙 급박했던 탓에 자네에게 말하지 못했을 뿐이고, 그건 미안하네."
나는 숨을 내뱉으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러면 어디서 결혼하고 온 건 아니지?"
"당연하지!"
그럼에도 끝까지 맹한 소리를 하는 그에게 결국 나는 소리쳤다. 브라운은 깜짝 놀라며 말을 쏟아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방은 전처럼 그대로 뒀으니까, 올라가서 푹 쉬어!"
자기 할 말을 다한 그는 잽싸게 꽁무니를 뺐다. 잽싼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신발을 마저 털고 안으로 들어갔다.
온기가 흘러나오는 주방에는 브라운 여사가 앉아 있었다.
"따뜻한 차 한 잔 마실 수 있을까?"
"세 밀린 거 아시죠?"
그녀는 어제오늘 보던 것처럼 담담히 독촉했다.
"내일 찾아오겠네."
그렇게 약속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젖은 코트를 벗어서 줄에 걸었다.
"손님이 여럿 왔어요."
자리에 앉자, 여사가 잔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손님, 누구?"
"늘 똑같죠."
그녀는 어조 한 번 바꾸지 않고 지긋지긋한 심정을 드러냈다.
짧은 불평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겪는 고생이 그렇게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될 게 아닌 걸 알았다.
본의 아니게 런던 내 신비주의의 대표자 중 하나가 된 탓에, 내 주변에는 언제나 수상한 인파가 모여들었다. 호기심 많은 시민과 기자부터, 마법사를 자칭하는 수상한 신사, 악령이 들었다고 주장하는 광인, 사업을 제안하는 사기꾼, 집시 점쟁이 등등 말이다.
절박하건, 난폭하건, 그런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을 심약한 브라운 씨나, 목소리 작은 여급이 쫓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결국에 손님맞이는 전부 여사가 도맡았다.
내가 할 말이 없어서 입 다물자, 여사는 내 맞은 편에 앉았다.
드문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처음이었다. 알고 지낸 지 꽤 되었는데, 나는 둘이서만 마주 앉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놀랐다.
"허버트 씨, 나는 평생 집안일로만 바쁘게 지내서 남편 말마따나 당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지는 몰라요. 하지만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해도, 허버트 씨가 예수님보다 똑똑할 거라곤 생각 안 해요."
여사는 그녀치고는 길고 정중한 서두를 떼었다.
나는 무작정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가 배운 성경에는 사람 보는 눈에는 귀천이 없다고 했어요. 허버트 씨는 친구를 좀 골라 사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녀의 조심스러운 충고에,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녀에게 내가 평소 얼마나 신세 지고 있는지 알았던 탓이다.
하지만 내게 달린 건 입이 아니라 주둥이인 탓에, 나는 기어코 한 마디하고 말았다.
"하지만 하나 일러두자면, 그치들이 내 친구들은 아니야."
"평소 행실에 따라 사람이 모이는 법이죠."
괜히 말을 꺼냈다가 더욱 민망한 상황이 되었다.
내가 입 다물고 찻잔만 홀짝거리자, 그녀는 기다리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신 컵은 거기 둬요." 하고 투박하게 말하고는, 앞치마로 손을 닦으며 부엌을 나갔다.
한동안 나는 거기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복도 쪽에서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니, 여급이 쭈뼛거리며 나타났다.
"저기요."
"아, 너구나."
"실은 여사님이 모르는 손님이 몇몇 더 있었어요."
부엌에 들어오는 여급에게 나는 손짓으로 맞은 편 자리를 권했다. 그러자 그녀는 필사적으로 도리질 치더니 기어코 내 앞에 섰다.
"설명이 필요하겠구나."
"한밤이 되면 여사님은 주인 어르신과 함께 2층에 있는 방에서 주무세요. 저는 일주일 중 여섯 날을 여기서 자고 지내는데, 제 방은 1층에 있고요. 그래서 드물지만 늦은 밤에 오는 손님은 저만 알고 마중을 하게 된답니다."
여급은 조리 있게 또박또박 말했다.
"그런데?"
"그렇지만 이런 손님은 거의 없었어요. 그러잖아요, 누가 늦은 밤에 찾아오겠어요. 그런데 어르신이 안 계시던 한 달, 두 달 동안 무려 네 번이나 다른 손님들이 늦은 밤에 찾아왔답니다."
그녀는 말을 망설였다.
"왜 그러지? 계속하렴."
"이건 제 생각인데, 그냥 제 생각인데요. 어르신이 알아두시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그 손님들은... 아주 이상했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마땅히 자신의 위화감을 묘사할 단어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심각하지 않게 듣던 나도 그녀가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불안한 확신에 자세를 고쳤다.
"누구였지? 들려주게."
그러자 여급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라지고 첫 주가 지나기 전이었다.
한밤 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현관에 나가보니, 붉은 곱슬머리를 한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고 한다. 평범한 여성이라고 안심했던 여급은 곧 상대가 평범한 이웃이 아님을 알았다.
여인은 군인처럼 경직된 말투를 사용했으며, 아이에 불과한 여급에게도 아주 조심스럽게, 긴장한 사람처럼 말했다는 것이다. 그 말투가 꽤 특이하게 보였는지, 여급은 몇 번이나 닮지 않은 흉내를 내었다.
그녀는 내가 있는지 묻고, 다음에는 어디로 갔는지 물었다. 둘 다 모른다고 대답하자, 언제라도 내가 돌아오면 이렇게 전하도록 했다.
"아버지와 열병에 관해 할 말이 있다고요."
거기까지 듣고, 나는 그녀가 누군지 대번에 알았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이브 피츠헨리는 부친의 죽음을 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열병, 그 단어를 얼마 전에 들은 적 있었다. 최근 런던에서 유행병처럼 돈다고 아서가 말했던 뇌가 녹는다는 열병 말이다.
뇌가 녹는 병, 기억을 잃는 증상.
우연히 나열한 것치고는 절묘하게 들렸다. 나는 날이 밝으면 바로 그녀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물었다.
"그리고 다른 손님은?"
"그다음 손님은 비가 오는 밤에 찾아왔답니다."
번개가 내리치는 밤이었다.
천둥과 폭우에 겁먹어 잠을 지새우던 여급은 새벽녘 다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상에서 빛이 전부 사라진 것처럼 어두웠기에, 복도에 나가는 것조차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고 했다.
간신히 현관 근처로 다가가니, 번갯불이 칠 때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실내에 길게 드리웠다. 여급은 촛불을 밝히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리고. 여급은 이렇게 몇 번이나 말을 더듬었다.
거기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두려운 형상이 있었다고 했다. 우비를 쓴 남자였는데, 그는 비정상적으로 빼빼 말랐으며, 뺨은 앙상하고 두 눈은 양서류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손목은 너무나도 얄팍해서 어떻게 팔과 손이 붙어 있는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 끔찍한 모습에 벌벌 떨고 있었더니, 남자가 먼저 건조한 목소리로 내 행적을 물었다. 그녀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속내 이 무시무시한 남자가 자신을 잡아가지 않길 빌었다고 길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남자는 지긋한 시선으로 여급의 몸을 훑어봤다고 한다. 먹이를 앞에 둔 뱀처럼 말이다! 다행히 그는 긴 혓바닥과 날카로운 송곳니로 여급을 삼켜버리는 대신 쪽지 하나를 건네고 돌아섰다.
그 뒤, 여급은 자신의 실수를 설명했다. 그녀는 모든 대화를 마치고, 문을 닫고, 촛불을 들고 잠자리로 돌아가서, 담요로 몸을 덮고, 그대로 모든 걸 잊고 잠들었어야 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보고 말았어요."
"무엇을?"
"처음에도 말했지만, 그림자는 두 개였어요. 그런데 밖에는 남자 하나뿐이 없었죠. 그게 이상해서 저는 남자가 돌아가고도, 문을 살짝 열어서 엿봤어요. 아니나 다를까 남자에게는 일행이 있었답니다. 멀리서 보아 케이프를 입은 여자였어요. 그리고, 그런데, 아, 세상에, 하느님, 맙소사. 저는 보고 말았답니다! 보닛 아래로 비친 얼굴을요, 번개가 칠 때 보인 그녀의 얼굴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여급은 벌벌 떨며 외쳤다. 창백하게 질린 모습이 심각해서, 나는 급하게 그녀를 달랬다.
"잘못 봤겠지. 밖에 어두웠으니까 착각할 만도 해."
"제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그건 정말 사람이 아니었어요, 맹세해요!
서투르게 꺼낸 위로문에 여급은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도무지 아이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몰랐다.
"알겠네, 알겠어. 믿겠네."
"하느님께 맹세하고요?"
"그래, 그러고말고...."
"제대로 맹세하지 않으면 안 돼요!"
"알겠어, 맹세할게. 하느님께 맹세하고 자네 말을 믿겠네. 이러면 됐지?"
그러고도 나는 의심에 찬 눈초리에 시달렸다. 예전에는 이보다 얌전한 줄 알았는데.
"아참, 그리고."
그녀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전했던 쪽지는 이거예요. 저는, 죄송해요, 보고 말았어요. 하지만 악령이 쓰인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어떤 기호였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니까 보지 않은 것과 같아요. 정말로요. 너무 무서워서 몇 번이나 버릴까도 했지만, 어르신 물건이니 간직하고 있었답니다."
작은 손이 건네는 종이를 받고,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제가 버렸어야 했나요?"
나는 불안한 여급의 목소리에, 내가 아주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으리란 걸 깨닫고 애써 입가를 경련했다.
"아니, 중요한 물건이야. 전해줘서 고맙구나. 그래서 다음 손님은 누구였지?"
"그게요, 여성 분이셨어요."
다음 손님은, 처음으로 설명을 듣고도 내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정말로 낯설기도 했고, 여급의 설명이 유독 장황했던 탓도 있었다.
"같은 여성이지만 처음 왔던 빨간 머리 여성분과는 전혀 달랐어요. 그다지 젊지 않았거든요. 연배는 어르신과 비슷한 것 같았어요. 하지만 사실 젊은 사람일지도 몰라요. 제가 늘 보는 사람들이랑은 아주 달랐어요. 옷을 두껍게 입지도 않았고, 칙칙한 색깔로 입지도 않았거든요. 그리고 정말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답니다. 훌륭한 분들이 말하는 식도 아니고, 신부님처럼 말하지도 않았고, 물론 저처럼 말하지도 않았어요."
그녀의 흥분한 어조의 설명에는 확실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모종의 동경만은 숨기지 못했기에, 나는 간신히 손님이 아주 세련된 여인이었을 거라 짐작했다.
어쩌면 다른 지방 출신, 혹은 외국인일 수도 있었다.
"누군지 모르시나요?"
"그래, 이번만은 감도 안 오는군그래."
그러자 여급은 눈에 띄게 실망한 눈치였다.
"왜 그러니?"
"저는요, 이건 비밀인데요. 사실 어르신이 빨간 머리 여성분보다는, 이 손님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거라. 그래서 마지막은 누구였지?"
"아, 그래요, 마지막은 신사분이셨어요."
"신사?"
"콧수염이 아주 멋진 신사였어요."
이번에도 막상 떠오르는 인물은 없었다.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날 찾아올만한 이는 당장 생각나지 않았다. 이유는 더러 있었는데, 내 주변에는 유독 건실하지 못한 이들이 많은 탓이 컸다.
그러니까 겉모습이라도 허우대 멀쩡한 신사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몇몇 인사를 떠올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분은 제게 늦은 밤 찾아온 걸 정중히 사과했어요. 그리고 해외에서 온 탓에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고 설명까지 해주셨고요. 제가 한낱 여급에 불과한 걸 아시고도요."
여급은 동경에 찬 눈으로 말했다.
"그거 훌륭한 인물이구나."
"그렇죠? 그리고 그분은 여기 어르신이 사는지 확인했어요. 제가 그렇다고 하자, 곧바로 만날 수 있는지 물었어요. 저는 지금은 안 계신다고 했죠. 그러자 만약 돌아온다면 자신의 귀국을 전해달라고 하셨죠."
그리고 여급은 말했다.
"배즐이 돌아왔다고."
방 내부는 마지막으로 봤던 때와 같았다.
침대에는 한 달 넘게 방치된 옷가지가 구겨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옆으로 밀어내며 걸터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여독이 뒤늦게 몰려와서 눈꺼풀을 무겁게 짓눌렀다.
나는 품에서 두 종이를 각각 꺼내어 심란하게 바라봤다. 왼손에 들린 것은 마구스에게서 받은 신문이었고, 다른 손에는 여급에게 전달받은 쪽지가 있었다.
에드워드.
런던을 불태우고, 수많은 인물을 비극에 몰아넣은 또 하나의 사도, 마법사.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았던 회귀자.
역사 속에 암약하던 그가 양지로 올라왔다. 그렇게 해서 그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종이, 프랑켄슈타인이 전하고 간 물건은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단 한 곳에서밖에 쓰이지 않는 특수한 양식의 인쇄지였다.
여급은 알지 못했지만, 거기 적힌 기호는 로마 숫자였고, 또 이렇게 적혀 있었다.
「Ⅵ」
새벽은 멀고, 밤은 어둡다.
인류의 존망이 위태로웠지만, 내 머릿속은 다른 일로 가득해서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앉은 채로 서서히 잠들어갔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이름은 에드워드도, 오라클도 아니었다. 나는 졸며 생각했다.
배즐. 배즐 허버트. 개자식. 그놈이 이제서 무슨 염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