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사냥의 역사
늑대의 소문은 파다하게 퍼졌다.
나 이외에도 목격자는 수두룩하여, 공식적인 신고 건수만 백여 건에 달했다. 처음에는 군중 통제를 위해 늑대의 존재를 부인하던 경찰청도 정오가 되기 전에 결국 인정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분명했던 것은 피해자의 존재였다. 늦은 밤, 홀로 걷던 다섯 명의 여인이 납치되었고, 신체 일부가 핏자국과 함께 남아 있었다.
그 야수의 목적이 사냥임은 분명했다.
"늑대인간에 이어, 이번에는 늑대라."
목격자로 수사받고 돌아오는 길, 전에 봤던 왕립구 경찰서장은 문 옆에서 날 보며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그의 관할구도 아니었을뿐더러, 달리 용무가 있어 보이진 않았기에, 분명히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못 본 새에 털을 더 기르셨나, 선생?"
"공연한 시비는 관두게. 나는 선량한 시민 자격으로 수사에 협조하러 왔을 뿐이니."
그러자 서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선생께서 선량하다면, 원즈워스 형무소 절반은 모범수고, 나머지 절반은 무고 수용이요."
그가 정말 날 의심하는지, 아니면 그저 시비 거는 것인지 몰라도, 나는 더 실랑이할 생각이 없었다.
"잠깐."
지나치는 나를 다시 멈춰 세운 서장은 눈짓으로만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을 돌아보자, 코트 차림의 형사가 모자를 눌러쓰며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괜한 참견이야."
"언제 어디서든 보는 눈이 둘보다는 많다는 걸 명심하게."
내 대답에도 개의치 않고, 서장은 상투적인 협박문을 늘어놓고 자리를 떴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심 불안감을 키웠다.
지금껏 여러 수사관과 반목했던 적이 있는 나지만, 왕립구 경찰서장 정도의 거물이 날 주목하는 건 성가신 정도 이상이었다.
나는 무심결에 옷깃을 쥐며, 골목 너머의 형사에게 향했다.
"기다리게 했군. 내게 용건이 있나?"
"접니다."
형사는 모자를 젖혔다. 그리고 가리고 있던 얼굴을 내게 보였다. 그 목소리는 낯익었지만, 내 기억보다 한 옥타브 더 낮았다. 상처 입은 짐승이 내는 듯한 가래 낀 음성이었다.
"그간 격조했습니다."
"윌슨 형사!"
나는 놀라면서 외쳤다. 고작 몇 달 못 봤을 뿐인데, 그는 내 기억보다 더 처참한 꼴을 하고 있었다.
"그 상처는 뭔가?"
윌슨의 목에는 핏물인지, 혹은 짓눌린 고름인지 모를 역한 자국이 남은 붕대가 몇 바퀴나 둘려 있었다. 멀리서는 몰랐던 소독약 냄새가 진동했다.
"이거 말입니까? 공훈입니다."
그는 태연히 답했다.
"상황이 안 좋습니다."
"보면 알겠어."
"제가 아니라 런던이 위험합니다."
나는 윌슨의 젊은 얼굴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노병과 같은 파멸적인 헌신이 깃들어 있었다. 혹은 부나방이거나.
"자리를 옮기지."
내 말에 윌슨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나란히 걸으면서, 대낮부터 뜻하지 않게 팽팽한 긴장 상태에 놓였다.
"방금 그 사람."
윌슨이 말했다.
"귀찮은 사람에게 찍히셨군요."
"아는 자인가?"
"경찰청은 지금 두 파벌로 갈라서 있습니다. 하나는 왕실과 보편사무국의 방침에 순종하는 가로등파이고, 다른 하나는 독립 수사권을 주장하는 등불파입니다."
내가 묻기도 전에, 그는 안다는 듯이 설명했다.
"어느 정치인 말에서 따온 표현입니다. '수사권 없는 경찰은 가로등보다도 범죄 억제력이 낮다. 필요한 건 묵은 그림자를 벗겨낼 등불이지, 멍청히 서 있는 가로등이 아니다.'"
어떤 취지로 붙은 이름인지는 대략 짐작이 되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이언 영. 실질 등불파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가뜩이나 외압에 굽히지 않는 강경한 성격이 지지 세력을 만나며 더욱 성가셔졌습니다."
나는 그의 표현에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지점을 지나자, 윌슨은 품에서 궐련을 꺼내 입에 물었다. 성냥불을 붙이자, 전에 피던 것보다 독한 악취가 풍겨서 속이 메스꺼워졌다.
"아편인가?"
"비슷합니다."
그리고 그는 변명처럼 덧붙였다.
"정신이 맑아지고, 피로가 덜 듭니다. 진통 효과도 있고요."
이번에는 권하지도 않았다
"바쁜 한 해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안 계신 동안에도 적발한 비행기가 한 무더기입니다. 하지만 실은 그것도 우리 수사국의 최고 안건은 아니었습니다."
윌슨은 더 말하지 않고, 허공에 대고 몇 번이나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실례했습니다."
"아니, 괜찮아. 계속 말하게."
"실은 작년부터 런던 내 주적은 따로 있었습니다. 인간 모습을 한 짐승들이요."
그러고 그는 자기 목을 가리켰다.
"이것도 놈들에게 당한 겁니다. 매 순간 영악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오합지졸 짐승떼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무리 사냥 같은 걸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용한 형사 인력 전부를 투입해도 하나 잡기도 벅차죠. 런던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인명 사고의 9할은 저들의 사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 역시 그들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핏물에 젖은 화이트채플의 색깔은 아직도 생생했다.
붉음을 떠올리면, 그 이후의 화재도 자연히 떠올랐다. 불타는 연구소, 창문 너머 밤의 세계로 달아난 지킬 박사의 껍데기를 쓴 짐승....
달밤에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내 안의 인간성이 꿈틀거렸다. 나는 아직도 내 존재가 그 짐승, 실그윈 숲의 야수와 연결되어 있음을 체감하곤 했다.
"경찰은 이런 문제에 완전히 무력합니다. 그리고 형사 인원 대부분은 야밤에 벌어지는 사건 대응과 그 후사에 전력을 쏟고 있죠. 언론에 새지 않도록,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현상 유지만 해도 한계입니다."
나는 거기까지 듣고, 그가 어떤 이유로 찾아왔는지 알아챘다.
"늑대를 사냥할 셈이군."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떠오른 의문점을, 완곡한 거절처럼 들리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애쓰며 물었다.
"이야기는 알겠다만, 어째서 내게?"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리실지 모릅니다만."
"나쁜 의도가 없다는 건 아니까 말하게."
윌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부탁할 상대가 없습니다."
나는 살짝 기분이 상했다.
"경찰은, 아니, 되었네."
앞서 말했듯이, 수사국은 경찰청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깊은 악연을 품은 두 기관을 아는 나로선 이번 건에도 상당한 정치적 갈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질문은 필연이었다.
"그렇지만 육군은?"
의무를 피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들릴까 두렵지만, 나는 정말로 의문이었다.
예로부터 도시를 침범한 야수를 처단하는 건, 소수의 민간 사냥꾼과 잘 조율된 군대의 몫이었다. 그러나 내 질문에 윌슨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망할 놈들은, 육군은 대화재 참사 이후 겁먹은 얼치기 집단으로 바뀌었습니다. 왕가와 국토의 수호 의무 따위로 핑계 대는 데, 달변으로는 군인인지, 정치가인지 모르겠더군요."
그의 난폭한 어휘, 그러니까, 욕설을 내뱉는 모습에 나는 내심 놀랐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수사국의 속사정을 알고 협력할 수 있으면서, 또 토벌에 도움이 될 만큼 숙련된 사수는 나밖에 없었다는 뜻이군."
"정확합니다."
윌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피해가 커지기 전에, 오늘 밤이라도 당장."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르면서도 잿빛이었다. 참 기묘한 세상이다!
한때 브리튼 제도는 늑대의 땅이었다.
광활한 숲은 인간에게 외경의 대상이었고, 또는 죽음이었다. 인간과 늑대의 관계가 투쟁으로 바뀐 것은 고작 천 년 조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장군이 군마를 이끌고, 창으로 무장한 군대가 늑대 무리와 격전한 기록은 중세 말엽까지 계속되었고,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수렵으로 기록되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이 땅에는 늑대가 없지만, 늑대 신화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가령 어젯밤처럼 말이다.
진짜 늑대가 있을까, 그렇다면 그동안 어떻게 모습을 숨기고, 또 이제 와서 무슨 미련으로 인간이 사는 런던에 침입해서 사냥하는가.
"페터의 개가 정말 있는 줄은 몰랐군."
나는 윌슨이 끌고 나타난 사냥개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윌슨은 수사국 형사에 대한 모욕적인 농담을 듣고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늑대가 정말 존재한다면, 아직 도시 안에 있을 겁니다. 런던은 짐승이 빠져나가기엔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고, 낮 동안에는 사람이 많아서 이동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윌슨과 나는 런던 시가지 구조가 그려진 지도를 보며, 전날 밤의 늑대 목격 정보와, 가능한 이동 경로를 예상했다.
"이쪽은 형사들이 지키고 있으니, 우리가 굳이 수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의 말대로 밤의 골목에는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형사가 출동해 있었다. 비록 늑대 사냥이 아니라, 런던 뒷골목의 야수들이 길거리로 쏟아지지 못하도록 경계를 선 것이지만 말이다.
덕분에 우리의 수사 경로는 꽤 직선형을 띄었다.
"계획은 단순합니다. 늑대를 유인할 날고기를 곳곳에 배치해뒀습니다. 지난다면 어떤 식으로건 흔적을 남길 테니, 그걸 기반으로 추적하면 됩니다. 2인조로 총 3팀이 바깥에서부터 좁히는 형태로 들어갈 테니, 몰아가다가 교차점에서 일망타진하게 됩니다."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고작 세 팀으로 그 복잡한 런던 골목의 포위망을 만드는 것부터, 동선의 교점을 여럿 만든 것까지, 수사국은 이런 류 작전에 이골이 난 듯했다
"그렇게 잘 될까?"
나는 물었다.
"무언가 불안한 점이라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사냥에 있어서는 수사국이 나보다 노련했고, 계획은 군인의 눈으로 보아도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늑대를 모른다.
기록이라면 여러 번 보았지만,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사냥꾼조차 늑대를 상대한 경험은 없었다. 옛 시대에서 튀어나온 최후의 늑대가 이토록 단순한 몰이에 당해줄까.
그조차도 막연한 불안감에 불과했기에, 나는 더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정해진 과업이 있다면, 의문을 품기보다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내 천성이었다.
불안감은 곧 사라지고, 결연한 의지만 남았다.
계획은 시작되었다.
흔적은 예상보다 더 빨리 발견되었다. 남겨진 살코기에는 짐승의 대변이 얹어져 있었다.
"큰 짐승의 것이야."
나는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큰 짐승이 무엇인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먹지 않았군요."
"꼭 사람을 놀리는 듯하군."
독은 타지 않았으니, 냄새 따위로 알아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제 의지로 사람의 속셈을 비웃었다.
"여기 늑대가 있어."
의심은 사라졌다. 윌슨이 말한 런던 뒷골목의 야수라면, 사람의 육체를 한 탓에 이런 배설물을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긴장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끌고 가는 사냥개는 무언가 느낀 것인지 시종일관 낮게 으르렁거렸다.
다음 표식은 세 번째 미끼를 지나고 나타났다. 핏자국이었다.
"놈이 다쳤을까요?"
"어쩌면 희생자의 것일지도 모르지."
의문은 바로 풀렸다.
다음 골목을 지나고, 우리는 사람의 오른팔이 바닥에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잘 보니 여성처럼 근육량이 적고, 털이 얇았다.
"보통 짐승은 사냥감을 들고 다니지는 않아. 묻어두거나, 걸어두거나, 어느 지점에서 식사하려 하지."
돌아다니며 식사하는 것은 늑대의 풍습인가, 아니면 개체의 교활한 지혜인가? 물어도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늑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첫 번째 교차점 분기를 지났다.
긴장한 발소리만 들릴 뿐, 어디서도 총성이나 고함이 들리지 않았기에, 우리는 예정대로 교차점을 통과했다. 두 번째 교차점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라면 마지막에 만나게 되겠군요."
나는 윌슨의 불안감을 십분 이해했다. 흔적이 어느 순간부터 나타나지 않아서, 벽을 타고 넘어가기라도 한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망상마저 들었다.
잠깐, 늑대는 벽을 넘을 수 있나?
"늑대는 무리 동물이야. 그게 가장 큰 특징이지."
나는 말했다.
"혼자라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사냥하지도 않았을 테고, 무리라면 새끼가 있을 테니 기상천외한 경로로는 가지 못할 테지."
그 정도 추측이 한계였다. 입 밖으로 말하고 보니 꽤 그럴싸하게 느껴져서 불안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 교차점, 모두가 모이는 마지막 교차점 직전의 것에서 일은 터졌다.
"정면."
나는 작은 소리로 중얼였다.
그것은 회색 털과 푸른 눈을 가진 신비한 짐승이었다. 두 눈과 다리는 여지없이 골목 너머 우리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듯한 형국이었다.
"쏠까요?"
윌슨은 지체 없이 물었다. 판단이 빨랐다. 예상은 빗나가서, 늑대 주변에는 다른 개체는 없었고, 오직 한 마리만이 우리와 대치하고 있었다.
"기다려."
나는 재빨리 상황을 분석했다.
몰이는 실패했다. 늑대는 교활하게도 우리의 꿍꿍이를 눈치챈 것처럼 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덤비지도 않았다.
시간을 끈다면, 마지막 교차점에서 만난 두 팀이 우리가 없는 걸 보고, 곧장 이쪽 경로로 다가와서 늑대의 배후를 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중간한 전력으로 교전하여, 늑대가 탈출할 여지를 주는 것보다는 대치하며 대기하는 편이 좋았다.
"합류를 기다리되, 덤비면 바로 쏘게."
많은 내용을 생략했지만, 윌슨도 이미 내 지시를 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노련한 베테랑이었다.
적막은 찾아오지 않았다. 사냥개는 묶인 채로 세차게 짖어댔다.
조금 뒤, 지속되는 긴장 끝에, 심지어는 졸음마저 몰려오는 그런 순간이었다. 늑대가 움직였다.
────탕!
나는 바로 쐈다. 늑대는 총을 아는 것처럼 움직였지만, 어깻죽지를 맞으며 비명 질렀다.
────탕!
두 번째 발포는 윌슨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늑대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였다. 나는 몸을 돌렸다.
윌슨을 덮친 사람의 눈과 마주쳤다. 아니, 사람 모습을 한 야수였다. 윌슨은 뒤로 쓰러졌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사냥개가 덤벼들었지만, 뒤이어 나타난 두 번째 야수에게 공격 당했다. 그리고 곧 세 번째가 나타나고, 네 번째가 나타났다.
나는 상황을 바로 이해했다.
늑대를 몰고 있는 와중에, 우리도 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눈치챘을까, 의문은 오래 남지도 않았다.
날코기의 냄새다. 그게 저들을 불러온 것이다.
늑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저것들에 대해서는 확답할 수 있었다. 저들은 벽을 탈 수 있다.
나는 바로 재장전해서 쐈다. 다리를 당해서, 총알이 바닥에 박혔다.
"악!"
쓰러지면서, 한 마리의 야수, 인간과 짐승이 반쯤 섞인 듯한 그것이 내 몸을 올라탔다. 내 가슴이 강하게 짓눌렸다.
"윽!"
무게에 눌려, 흉골이 으스러지는 듯이 아팠다. 나는 총을 던지고, 두 손으로 올라탄 야수의 목을 졸랐다. 악력이라면 자신 있었다.
서서히 그것의 무게가 약해지고, 상반신을 반쯤 들어 올렸을 때쯤이었다. 나는 야수의 어깨너머로, 어떤 얼굴을 발견했다. 그리고 경악한 나머지, 무심코 손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야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곧장 나는 다시 뒤로 쓰러졌고, 이번에는 다시 밀어내지 못했다. 야수는 사람보다는 짐승 같은 얼굴로 내 목에 입을 들이밀었다.
윌슨의 목에 난 상처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죽음을 예감했다.
─────탕!
천둥 같은 총성이 울렸다. 한때 인간이었던, 지금도 인간과 퍽 닮은 머리가 터지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쓰러지는 야수의 몸 너머로 탁한 포연이 흐르는 엽총 총구가 드러났다.
윈체스터 모델 1887. 그 역사적인 디자인의 산탄총의 방아쇠가 꺾이며, 아직 뜨거운 탄피가 튕겨 나왔다.
─────탕!
두 번째 탄환은 나를 경악시킨 얼굴을 뚫었다.
예전에 지킬 박사라 불렸던 자의 얼굴이었다. 멀리서도 안면 살점에서 나는 타는 냄새가 날 정도로 지져졌다. 피는 흐르지 않았다.
야수들은 정연한 군대처럼 후퇴했다. 사업가, 숙녀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네 발로 기어서 달아나는 모습은 몽환적이면서도 역겨웠다.
고통과 혼란에 의식이 흐릿한 와중에도, 나는 홀린 것처럼 지킬 박사의 안면을 응시했다. 아니, 이제는 실그윈의 야수라 불러야 하는 그것의 안면이 기이하게 짓눌렸다.
그리고는 주물처럼 점차 원래 모습을 되찾아갔다. 재조립되는 얼굴에서는 눈알 두 개가 둥둥 떠다녔다. 나는 그것과 계속 마주 보았다. 하지만 야수의 눈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세 번째 탄환이 발포되기 전에 달아났다. 마지막으로 날 지나친 것은 피 흘리는 회색 늑대였다.
그 기괴한 풍경 속에서도 오직 그만이 유일하게 자연스럽게 보였다. 네 발로 뛰는 늑대, 그게 어떻게 부자연스럽겠는가....
나는 상반신을 일으키며, 주변을 보았다.
윌슨은 의식이 없지만, 죽을 만큼 다친 것 같진 않았다. 사냥개, 이미 늦었다. 가까이서 사람들 발소리가 들린다.
살았다는 실감과 함께, 온 세상이 내게 몰려들었다. 안도감. 차가운 겨울 공기. 온기가 흐르는 피 냄새. 역겨운 화약내. 밤바람, 고요...
"오랜만에 얼굴 봤는데, 제 앞가림 못하는 건 여전하구나."
...그리고 혐오. 나는 피가래가 들끓는 목청으로 짖었다.
"배즐, 이 개자식...."
"형님에게 그따위로 입을 놀리나?"
그 모든 끝에는 과거 그 자체가 나타났다.
배즐 허버트, 나의 맏형. 우리는 짐승처럼 서로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