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38화 (138/232)

§138. 배즐 허버트

거친 웅성거림. 고함.

"늑대 사냥이라며!"

"저희도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그래도 이런 위험한 일이면 미리 설명했어야지!"

복도의 그림자가 침대까지 드리웠다. 허리를 꼿꼿이 편 채 훈계하는 화난 그림자와, 그때마다 조금씩 작아지는 게 우스운 왜소한 그림자 둘이었다.

"근데, 그거는 뭐였나?"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이미 전부 본 마당에 내가 좀 모른 척한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

목소리는 수상쩍게 낮아지며, 어느샌가 은근한 회유로 바뀌었다. 쩔쩔대는 형사의 목소리와, 끈적한 남성의 목소리가 몇 번 교차하더니, 결국에는 파투났는지 갑자기 노성이 튀어나왔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상대하는 형사는 경험이 적은지, 이제는 땅을 파고들 것처럼 수그렸다. 마지막에 그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소중한 동생까지 다쳤네."

그리고 선심 쓰듯이 이렇게 매듭지었다.

"보상금은 얼마나 줄 텐가?"

배즐 허버트는 사기꾼이다.

배즐은 방 안에 들어오더니, 내가 누운 병상 옆 의자에 앉으며 투덜거렸다.

"이게 다 무슨 소란인지."

"네가 왜 여깄지?"

어딜 다쳤는지, 어쩌면 뼈에 금이라도 갔는지, 상반신을 일으키는 데에도 식은땀이 흐를 만큼 아팠다. 하지만 나는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애써 몸을 일으켰다.

그런 날 빤히 보더니, 배즐은 품에서 가죽 케이스를 살짝 내보이며, 시가 한 개비를 뽑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사자 조각이 된 은제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깊은 들숨을 내뱉자, 매캐한 단 냄새가 실내에 자욱했다.

"말버릇하곤."

그의 직업을 고려하면, 긴 침묵 끝에 내놓은 대답은 직무 방조나 다름없었다.

"무슨 착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네가 있는 것도 몰랐다. 알았다면 나도 안 왔을 거야. 너 같은 코흘리개가 딴에는 컸다고...."

"경찰에게도 사기를 쳤나 보지?"

배즐은 다리를 꼬며, 전보다도 더 깊게 시가를 빨았다.

"내가 저들에게 애원한 게 아니라, 저들이 내게 부탁한 거지."

"잔뼈 굵은 런던 형사들이 고작 네 도움이 필요했다고?"

"그 잔뼈 중에 늑대 사냥 경험은 아무도 없어 보이더만."

나는 그를 비웃었다.

"어쩌다 한 번 진짜 늑대라도 잡아봤나?"

그러자 배즐의 콧잔등에 주름이 떠올랐다.

<위대한 탐험가 배즐, 인도에서 상아가 자란 호랑이를 사냥하다!>

배즐은 일 년 중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내고, 어느 해는 영국 땅을 밟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그의 행적은 런던 시민 중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모험심에 굶주린 대중은 배즐의 업적에 대한 기사나, 해마다 한 권씩 나오는 그의 모험기를 모으며 꿈을 부풀리곤 했다. 심지어는 마리조차 그에 대한 기사를 몇 종류 스크랩했을 정도였다.

그가 선보이는 전리품은 다양했다.

긴 이빨이 상아처럼 자란 인도의 호랑이, 중앙아시아에서 불의 신이라고 추앙받는다는 발 달린 뱀의 허물, 고치에서 우화하며 날개가 돋아나던 흔적이 있는 원숭이... 그리고 모든 전리품에는 저만의 모험담이 있었다.

허나 그렇게 많은 모험을 했다는 것치고, 그가 본국에 보낸 전리품은 극히 드물었다. 그에 대한 핑계는 여럿이었다.

어떤 때는 분노한 원주민의 공격에서 도망치느라, 혹은 항해 중 기상 이변으로 바다 밑에 가라앉았거나, 해적에게 빼앗기기도 했으며, 혹은 자비롭게 지역 사회에 기부할 때도 있었고, 비밀스러운 의뢰주에게 보내는 등 하나같이 모험에 매력을 더해주는 것들이었다.

놀랍게도 시민 중에 그의 모험을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눈에 띄는 장신과 훤칠한 외모, 의심 많은 대중 앞에서 수차례 보여준 빼어난 웅변술, 영락했다고는 하나 전통 있는 허버트 남작위, 그를 옹호하고 나서는 명사들과의 인맥, 거기에 오락 작가쯤은 되는 글솜씨와 그걸 포장하는 사이비 생물학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 위조 솜씨가 아주 좋았다.

아서와 재회하고 아주 잠깐은 혹시 배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신비와 오랫동안 사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검증 차 처음으로 그의 책을 샀다. 그리고 그날 밤, 의자에 앉고는 30분 만에 생각을 바꿨다. 그의 책에는 온갖 허황되고 인종차별적인 망상으로 가득했다. 어쩌면 방문기라는 사진도 돈을 주고 찍게 시키고, 본인은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나라고 도덕적이진 않다.

그가 어떤 사기를 치고 다니건, 내가 그를 비난할 자격은 없고, 별로 신경쓸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오직 하나,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남작위를 사기에 쓰고 다닌다는 것만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게 다 무슨 난린지."

나는 짧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배즐은 심란한 기색이었다.

"이거 하나 묻자. 내가 살인을 한 거냐? 그런 것 같진 않은데."

"내가 뭔가 안다고 하지."

나는 말했다.

"그걸 너한테 말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지."

그는 입꼬리를 이상하게 올렸다. 나쁜 기분을 숨기고 억지로 미소 짓는 그런 표정이었다.

"네가 나한테 사사로운 감정을 품는 거야 어제오늘이 아니지만."

"잘못이 없으시다?"

"자잘못을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야."

우리는 서로 경쟁하듯 언성을 높였다.

"저런 괴물들이 런던 뒷골목을 돌아다니는 꼴을 보고만 있자는 거냐?"

나는 그의 돌발적인 선언에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진상을 깨달은 그가 도망칠 거라 생각했기에, 반사적으로 내뱉은 질문은 꽤 멍청한 것이었다.

"더 해보겠다고?"

"당연하지."

배즐은 가슴을 펴며 말했다.

"귀족으로서 국가를 수호하는 건 의무 아니냐."

거짓말, 나는 생각했다.

배즐 허버트는 기형아였다.

물론 그가 우리 집안 중 누구도 닮지 않아서, 단정하신 아버지와 달리 시원시원한 풍모를, 날카로운 어머니의 눈매와 달리 호인상을 주는 큰 눈을 가졌다는 의미로도 그랬지만, 정말로 기형아이기도 했다.

육손으로 태어난 배즐은 산모가 그 자리에서 이빨로 손가락을 끊어서 다섯을 맞췄다고 했다. 잘라낸 손가락은 한동안 집에 있었는데, 언젠가 쥐가 물어갔는지 없어지고 말았다.

어쨌건 그의 출생이 피 묻은 것이란 건 사실이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우리 삼 형제 이전에 이름 모를 누이가 1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인지, 부모님은 유독 그에게 모질지 못했다. 나와 둘째 형님이 그랬다면 크게 혼날 일도 감싸고 넘어가곤 했다.

그리고 배즐은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제 권력을 효율적으로 행사했다. 멀리서 본다면, 누가 보아도 그가 우리 가족을 착취한다고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기형아보다는 기생충, 아니, 기생 식물이었다. 겨우살이처럼 아름답지만, 본질은 추악하다.

"내가 아는 것을 말하자면."

나는 말했다.

"저것의 본질은 껍데기가 아니라 그 안에 있지. 사람의 몸을 차지한, 야수, 그래, 야수라고 부르지."

"동충하초처럼."

예상치 못한 비유에,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절묘한 타이밍이었지만, 딱히 뭔가 눈치채고 한 말은 아닌 듯했다.

"그래, 동충하초처럼."

"그렇다면 내가 쏜 사람 몸은 시체 같은 거군. 법적으로 꼬투리 잡히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는 질색했다.

그 반응을 보며, 나는 그가 살인이나, 혹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물론 그에게 참전 경력은 없었다.

"그러면 그건 뭐였지?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어떤 놈은 머리를 맞춰도 멀쩡히 움직이던데."

"머리가 급소인지 아닌지는 모르니 굳이 말하지 않겠지만."

나는 과거 지킬의 연구소에서 보고 들었던 모든 기록을 회상했다.

"그건 다른 개체들의 모체라고 할 만하지. 그런 만큼 특이하고. 내가 알기론, 완전히 해체해도 죽지 않고, 심지어는 불에 타도 멀쩡했다는 것뿐이야. 그렇게 빨리 회복할 줄은 몰랐지만."

"쉽게 말하면 죽지 않는다는 거군."

배즐이 말했다. 나는 문득 얼마나 난해한 적을 상대하고 있는 건지 자각했다. 형사들이 1년이 넘도록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무튼 지금은 옛 감정은 잊고 협력하자."

그는 말했다.

"내 소원은 화목한 가정이었어."

배즐은 대뜸 말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건지... 너는 내 인생의 오점이다."

그 뒤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에 피가 올라서 무작정 덤벼든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내가 그의 멱살을 잡았는지, 아니면 주먹질을 했는지, 어쩌면 둘 다 했을지도.

그래도 세 가지는 확실했다.

내가 누굴 때렸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누구에게 맞았다는 것이고, 그리고 냉정을 되찾고 보았을 때, 배즐이 이미 떠나고 없었다는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소리가 났는지 뒤늦게 들어온 형사 한 명이 당황하며 손수건을 내밀었다. 나는 무심코 받고는 뭘 하라는 건지 몰라서 그를 바라봤다.

형사는 맨손으로 얼굴을 닦는 흉내를 냈다. 나는 그제야 내 얼굴에서 피가 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누구의 말을 빌리자면, 공훈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케임브리지에 돌아온 나는 둘째 형님의 전보를 받았다. 어머니가 쓰러졌다고.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급히 다시 런던에 귀향했다.

집에 돌아오고 문을 여니,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의자를 창문 앞에 두고 어머니가 앉아 계셨다. 아직 검은 상복을 벗지도 않으셔서, 햇빛이 워낙 밝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게 나지막이 이렇게 속삭이셨다.

"네 맏형이 집을 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을 보고 돌아온 둘째 형님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제 형님께서 돌아와서 장례 부조금을 들고 나갔다. 어머니께서는 그 충격으로 쓰러지셨고, 의사 말로는 쉬다 보면 회복하신다는구나."

태연한 그 대답에, 내 분노는 갈 곳을 잃어서 둘째 형님에게 따지고 들었다.

"형님께선 화도 안 납니까?"

그러자 둘째 형님이 돌려준 대답은 도무지 잊히질 않았다.

"나까지 화를 낸다면, 누가 집안일을 하란 말이냐."

어머니가 실어증을 얻은 건 이 무렵의 일이었다. 집 나간 배즐의 소식은 금방 들려왔다. 부유하고 젊은 귀족 탐험가로 외국에 나가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돈의 출처는 명백했다.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늑대 사냥에서 입은 부상이 낫는 데는 일주일이 걸렸다.

그리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내 나이쯤 되면 근육만 다쳐도 쉽게 낫지 않는다는 프랑켄슈타인의 쓸 데 없는 참견을 들었다. 그는 내가 얼마나 정정한지 모른다.

"주인님, 또 창문을 닫아두셨군요!"

"날이 추워."

"그러면 안 돼요! 프랑켄슈타인 박사님도 낮 동안은 열어두라고 하셨잖아요. 맑은 공기가 사람을 건강하게 만든다고요."

"직접 진찰한 것도 아니잖나."

마리는 내 말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커튼을 열었다.

"눈부셔."

"고작 햇빛이거든요. 매일 같이 어두컴컴한 방에만 계시니까 그렇죠. 제가 없으면 그렇게 하실 줄 알았어요."

그녀는 이때다 싶은지 잔소리를 마구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기어코 창문까지 열어서 겨울바람이 통하게 했다. 기껏 방 온도를 올려놨는데, 반나절 간의 노력이 전부 수포가 되었다.

"난 환자라고!"

"언제는 멀쩡하시다면서요."

"그랬는데, 자네 하고 있으면 더 아픈 거 같아."

나는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며 볼멘소리했다.

그러자 마리는 갑자기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이건?"

"윌슨 형사님이 와서 전하고 갔어요."

"그가 이 저택까지 왔다고?"

나는 벌떡 일어나서 종이를 받았다.

"나보다 더 다쳤을 텐데."

"그래 보이더라고요. 저는 창밖으로만 봤지만, 붕대를 어찌나 많이 감으셨는지, 옷 위로도 삐져나와 보이지 뭐예요."

그 말에, 나는 뜬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자네 눈이 그렇게 좋았나?"

마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종이에 적힌 글을 읽었다.

윌슨 특유의 딱딱한 말투가 느껴지는 짧은 쪽지였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쪽지에 따르면, 수사국이 늑대의 위치를 파악했으며, 조만간 다시 몰이 사냥할 예정이라고 했다. 거기다가 이번엔 토벌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대규모 야수 진압 작전을 병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협력을 구한다는 청탁이 간단하게 덧붙여져 있었다.

일자를 보니 유예는 얼마 남지 않았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었다. 윌슨도 알 테고, 수사국장 페터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도 바보는 아니었고, 그 때문에 지난 1년간 경계를 늘리는 식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이렇게 급박하게 작전을 강행하는 이유는 뻔했다.

늑대의 목격자가 늘어나면서, 지금까지 수사국에서 은폐한 인명 사고 다발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어서는 작전의 효용 이전에 수사국 존폐가 문제가 되었다.

거기서 수사국은, 윌리엄 페터는 어쩔 수 없이 실적을 보여야 했다. 이는 정치적인 작전이었고, 많은 형사와 시민이 죽고 다칠 게 뻔했다.

궁지에 몰린 짐승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게다가 그 짐승은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 괴물이었다.

나는 어떤 직감을 느꼈다. 실그윈 숲의 야수, 날뛰기 시작한 그것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멈출 수도 없을 것이다. 그는 곧장 내게 와서, 빼앗긴 일부를 되찾으려고 할 것이다.

하이드를 통해 그것과 이어진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직감이었다. 이번에 그것을 제지하지 못한다면 런던뿐만 아니라 내 목숨도 내줘야만 했다.

"왜 그러세요?"

내가 침대에 박혀서 끙끙 소리를 내자, 마리가 갑자기 물었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도 분주히 생각했다. 그녀는 아마 내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상도 못할 거였다.

무엇이건 단서가 필요했다.

지킬 박사는 분명 뭔가 알았다. 그는 어떤 확신을 품고, 셰리 패트릭을 런던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손수 실그윈 숲의 야수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정말 그 이름을 지은 게 그일까?

하지만 이제 와서 그의 연구물을 찾으려는 시도는 얼토당토않았다. 연구소는 불에 탔고, 얼마 남지 않은 일부는 소방대가 모두 가져갔다.

잠깐 생각하던 나는 결론 내렸다.

나는 어떤 종류의 천재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바쁘다고. 오래전부터 내려져 온 가장 근본적인 수사 방식을 도입할 차례였다.

"마리, 혹시 시간 괜찮나?"

그녀는 머리를 옆으로 기울였다. 애교스러운 동작이었지만, 조금 소름 끼쳤다.

"여행 준비를 해야겠어."

"네?"

"웨일스로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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