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여관에서 있던 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른 펜화가 나타났다.
늑대와 인간의 상간과 결합부의 해부도부터, 조금 더 해체한 장기 구조, 또 어떤 연유로 묘사된 건지 이름 모를 꽃, 반대로 처음 봤지만 용도를 짐작하게 하는 날붙이, 거기에 무수한 벌레 먹음....
마지막 장에 도착해서야 겨우 나는 읽을 수 있는 문장을 찾았다.
주석이었고, 원문에 달린 번역문이었다. 홀로 필적이 다르기도 했고, 중세 영어로 쓰여 있는 것이 후대에 기술되었다는 건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렵사리 읽어낸 내용은 이랬다.
'절제한 기관은 숲에 버리고, 늑대가 되찾을 수 없게 잿물을 뿌린다.'
낙태 수술의 마지막 절차였다.
"헨리 6세의 공적으로 이 땅에서 같은 죄악이 벌어지는 일은 없어졌고, 기록은 말소되어 잊혔다. 하지만 숲에 닿은 브로닐스와 란고스 두 마을은 알았던 거야, 늑대가 사라진 숲에는 늑대가 아닌 다른 야수가 살고 있다는 걸... 그러기에 두려워했지."
"그게 당신 역할이었군요."
나는 치미는 욕지기를 누르며 말했다.
"돌아올 야수를 감시하고 잊은 이들에게 경고하는 것."
"그들은 모순적이게도 잊되 두려워하려 했던 거야."
결과적으로 두 마을이 꾀한 음습한 계획은 실패했다.
그들은 너무 완벽하게 자신들의 죄를 잊었고, 죄의식은 남았으나 그게 무엇인지 알지는 못했다. 그들은 평생토록 서로 감시하며 떨어야 하는 저주에 걸린 것이다.
그 때문에 야수가 돌아왔을 때, 누구도 노인을 찾지 않았다. 노인 역시 제 역할을 도외시했다. 그는 오히려 외부자인 지킬 박사에게 모든 비밀을 불고 야수의 복수를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노인의 복수도 실패했다.
지킬 박사는 그가 상상한 것보다 더 잔인한 계획을 가진 인물이었고, 야수는 런던에서 그에게 고문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응어리진 죄의 웅덩이에는 온갖 악의가 해충처럼 들끓었다.
죄에 얽힌 마지막 죄인은 나였다. 이것은 나의 원죄의 일화이기도 했다.
지킬의 악행에 분노한 나는 그가 야수에게 죽도록 내버려뒀고, 그 결과 지금껏 야수는 런던에서 활개치고 있었다. 죄에는 형벌이 따랐고, 나는 미쳐서 저 크로노스와 같은 죄악을 범하고 말았다.
"그가 실패한 것은 유감이야...."
"그것뿐입니까?"
나는 서운하게 중얼거리는 노인에게 물었다.
"대응법은 없습니까? 두 마을은 야수가 돌아오길 그렇게 두려워했잖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음산하게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깁니까?"
"평생 가족의 정을 모른 나도 부모 같은 감정을 품기는 했지."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서서히 불온한 확신이 차올랐다.
"뭔가 있었군요."
"한때는. 지금도 호수 밑바닥 어딘가에 있을 테고."
노인은 웃었다.
"부모가 어찌 자식의 뜻을 막겠나?"
쇳소리 섞인 허한 웃음이 동굴 벽에 메아리쳤다.
노인은 더 많은 걸 알지는 못했다.
모든 사건의 전후를 알지 못하는 마리는 대화 흐름으로 혐오는 느꼈을지언정 충격받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스스로 사건을 분석하며, 과정을 연상하여 여기까지 이른 나였기에, 노인의 생략된 말 속에 얼마나 역겨운 진실이 숨겨졌는지 알 수 있었다.
진상은 참으로 추한 것이라, 나는 한참을 침묵했다. 뭔가 말하게 되면 내 안에 깨우친 추악한 진실이 파편처럼 흘러 나올까 봐 입을 꾹 다물었다.
한편, 마리는 그녀대로 그녀다웠다.
우리가 동굴을 떠나기로 하자, 그녀는 남겨진 노인이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마지막까지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있던 마리는 길을 거슬러 돌아가서 노인에게 함께 떠나기를 제안했다.
노인은 날 대할 때보다 한껏 공손한 말투로 거절했다.
"안 돼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는 타이르는 어조로 계속 말했다.
"인간이 아닌 우리가 인간과 살기 위해서는 선택이 필요합니다. 실은 그대도 알지 않습니까?"
짧은 대화였지만 마리는 뭔가 느낀 바가 있는지 설득을 포기했다.
나로서는 거기 어떤 속뜻이 담겼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실은 거기에 신경 쓸 만큼 여유도 없었다 여하튼, 돌아오는 길에 마리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밤길은 유난히 조용했다.
우린 어두운 겨울 호수를 다시 건너고, 축축하게 젖은 몸으로 쉬지 않고 걸었다. 달조차 뜨지 않은 밤이라 추웠다.
몇 번이고 란고스에 들러 도수 높은 술 한 잔과 포근한 잠자리를 얻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지금껏 절도 행각이 전해지지 않았을 리 없었다.
굳이 그걸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찬 바람이 불 때마다 젖은 살갗이 뜯어져 나가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하지만 나는 단언컨대 더운 것보다는 추위가 낫다고 주장하기에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 걸어서 우리는 란고스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건물에 도착했다.
마차를 세워둘 수 있게 둔 자리며, 가축을 키우는 흔적이 있는 목책을 보아서 목장 겸 마차 여관 정도로 보였다. 간판에는 글자 하나 없이 검은 암탉 그림 하나만 덜렁 걸려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암탉은 하얀색이었다. 마구간 건초는 말라 비틀어진 것이 주인이 별로 부지런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점은 아무래도 좋았다.
내겐 창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열기와 굴뚝에서 피어나는 줄 구름이 사보이 호텔의 최고급 방보다 아늑하게 느껴졌다.
나는 문앞에 마리를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은 날 보자마자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궁이로 안내했다.
"일단 불가에서 몸을 좀 녹여요."
도통 남의 말을 따르지 않는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고분고분하게 그리하도록 했다. 내가 지나온 복도를 보니 코트에서 떨어진 물이 길을 그렸는데, 내 행색이 여간 초라하게 보이지 않을 터였다.
"마실 건...."
내 입에서 깜짝 놀랄 만큼 건조한 목소리가 나왔다.
"술은 없고, 우유는 있어요."
"한 잔만 주게."
"묵고 가실 거예요?"
"그리고 밖에 일행이 하나 있는데."
주인은 밤늦게 찾아온 손님에게 질문하지 않는 현명함을 가졌다. 대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침대 하나를 써도 돈은 세 명분 받을 거예요."
"하나?"
"오늘 밤은 손님이 많아서요."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가끔 조용한 단체 손님이 찾아오거든요. 그래요, 오늘처럼 꼭 달이 없는 날에만요."
어찌나 형편 좋은 변명인지, 평소 같았으면 한마디 했겠지만 지금은 말씨름할 기력도 없었다. 오직 빨리 올라가서 쉬는 것만이 간절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을 내주게."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마리를 데려와서 주인과 마주치지 않게 2층으로 올려보냈다. 그녀가 추위를 타지 않는 것이 이럴 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주인은 우리 둘, 구체적으로는 마리에게서 뭔가 불온한 느낌을 받은 듯했지만 돈까지 챙긴 마당에 뭐라 하기는 뭐했는지 군말 없이 넘어갔다.
그렇게 날이 넘어가는 듯했다.
...야심한 밤, 딱딱한 나무 침대에 앉은 마리는 불현듯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뭐가?"
내가 시침떼자 마리는 몸을 돌려서 내 쪽으로 앉았다.
"전부 다요."
"그렇게 말하면 몰라."
나는 그녀가 입 다문 틈을 타서 말했다.
"내일은 역까지 가야니까 지금 쉬어두게."
"또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시는군요."
"내가 뭘?"
마리는 퉁명하게 말했다. 아마도.
"주인님께서는 늘 제가 어리고, 눈치 없다고 여기시는지 몰라도."
"그렇지 않아."
"저도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답니다. 전부 관련 있는 이야기죠?"
그녀는 날 가만히 봤다.
"런던에서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와서, 교회 물건을 훔치고, 호수에 잠긴 동굴에 들어간 것부터, 형사님이 찾아오신 일이나, 그리고, 이번에 다쳐서 오신 일까지 전부요."
나는 잠깐 움찔하곤, 도리어 성내듯 말했다.
"자네하고는 상관없잖나."
"늘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죠!"
그러자 마리는 더욱 큰 소리로 돌려줬다.
평소에는 이만하면 넘어갈 법도 했는데, 돌아오는 격정적인 반응에 나는 살짝 놀라서 움츠러들었다.
"전부 그렇게 숨기실 거면 처음부터 그러셨어야죠!"
"마리."
"학술회에 넣으실 때 하신 말은 다 거짓말이었나요? 저도 다 알아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하지만 그 뒤로 알려주신 게 아무것도 없고요!"
"소리가 너무 커. 옆방까지 들리겠어."
"제가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마리도 말을 멈췄다.
그녀는 고장 난 태엽 장치처럼 우뚝 멈춰서 입만 느리게 움직였다.
"제 말은."
마리는 자신이 한 말에 충격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게 아니라."
슬슬 익숙해진 그녀의 목소리 중에서도 유독 낯선 음색이었다. 나는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읽어내려고 노력하다가, 문득 그게 울먹임이란 걸 깨달았다.
눈앞이 뿌옇게 물들었다. 이게 정녕 현실인가, 내가 항상 우려하며 두려워한 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저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요."
"자네는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어. 그러지 않으면 내가 자네를 여기 왜 데려왔겠나?"
"주인님은 거짓말을 못해요."
마리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오랫동안 사람 눈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품는지 알 수 있다고 믿었지만, 수은 눈동자는 그런 내 믿음을 배신했다.
"처음부터 알았어요."
그녀는 속삭이듯 낮게 말했다.
"제가 저택 안에만 있는 게 불쌍해서 데려오신 거잖아요, 옥스퍼드 때처럼요."
"그렇지 않아."
나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곧 알았다. 마리가 옳았다. 때때로 그녀는 나보다 내 생각을 잘 알았고, 이번만큼은 그 사실이 끔찍하게 싫었다.
"마리."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었지만, 새삼 나의 처참한 말주변머리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달래야 할까, 아니면 화를 내야 할까. 한참 고민하다 나온 것은 이따위 질문이었다.
"아까 노인에게 뭔가 들었나?"
마리는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꺼렸다.
"셜리 마리."
"떠나기 전에, 그분이 저한테 속삭이셨어요."
"뭐라고?"
"영국인은 개를 사랑한다고요."
나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미안, 나는 무슨 뜻인지 잘...."
"늑대는 죽었고, 개는 살았다고,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과 살기 위해서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요."
그제야 말뜻을 알아듣고,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내가 아는 한, 마리는 경박하게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녀가 말을 꺼냈다면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깊은 고민이 있은 뒤일 것이다.
그런 마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아니, 내가 그런 생각이 들게 한 것이다. 어느 쪽이건 내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기 충분했다.
마리는 마저 물었다.
"저는 주인님에게 사육되고 있을 뿐인가요? 번거롭지만 돌봐줘야 하는 애완동물인가요?"
나는, 무슨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웃으며 얼버무릴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에 입꼬리를 움직이려 했지만, 얼굴 근육은 미동조차 않았다.
"죄송해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
머리가 어지럽고, 호흡이 거칠었다. 마리의 목소리가 멀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주인님?"
나는 쓰러졌다.
심한 고열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나도 이미 젊은 나이가 아닌데, 전날부터 다친 몸으로 강행군하고, 한겨울 호숫물로 몸을 적신 채 한참이나 밤길을 걸었으니 말이다.
원인은 어쨌건 쓰러진 나를 간호한 건 마리였다.
그녀는 영리하게도 주인과 문틈 사이로만 필담으로 필요한 물자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그러는 중에 내 주머니에서 돈을 빼서 쓰기는 했지만, 원래부터 가계 관리는 그녀가 하던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의식을 잃고 이틀째 되는 날, 오후에 갑자기 열이 오르면서 고비가 찾아왔다고 했다. 마리는 심지어 정체를 들킬 각오까지 하며 의사를 찾으러 나가려 했지만, 내가 갑자기 깨어나서 말렸다고 했다. 나는 그 일에 대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여하튼, 나는 다시 쓰러졌다.
게다가 이번에는 얼마나 심하게 앓았는지, 내가 죽는 줄 알았던 주인은 집안에서 시체가 나오는 걸 막으려고 쫓아내려고 단단히 벼르고 오기까지 했다. 마리는 그런 주인에게 문틈 사이로 슬쩍 맨얼굴을 보였고, 그 뒤로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반쯤 기절초풍했다.
하여튼 그런 고비를 지나고 나고 다음 날 새벽에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내가 쓰러진 동안 있었던 일,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을 쓰자면, 마리의 무용담을 듣게 되었다.
"정말 자네에게는 번번이 도움만 받네."
나는 미안해할까, 고마워할까 고민하다가 순순히 감사했다.
사실 여기서 죽었다면 마리는 타지에서 홀로 남게 되었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늘 상정하던 최악의 죽음이었기에 지금껏 심장이 철렁거렸다.
그리고 그녀가 사흘간 느꼈을 마음고생까지 생각하면, 사실 사과건 감사건 말로는 무얼 해도 부족한 일이었다.
나는 누운 채로 말했다.
"내가 자네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그러자 마리가 갑자기 내 말을 끊었다.
"아니, 유언을 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아. 네."
말실수에서 비롯된 서먹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이번 일을 자네한테 숨긴 건, 그래, 숨겼었지. 왜 그랬는지, 이제야 나도 알겠네."
열병이 뇌를 녹이는 동안 무수한 상념이 피었다 시들었고, 놀랍게도 그중 대부분은 마리에 관한 것이었다. 또, 그중에서도 대부분은 걱정이었고, 나머지는 마지막 대화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어째서 그녀에게 이토록 모질게만 대했을까, 그리고 어째서 숨기려 했을까.
답은 여럿 떠올랐다.
내가 마리를 죽였고, 이번 사건이 그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나는 죄와 직면하는 게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그녀 말대로 내가 그녀를 불쌍히 여기고만 있을 뿐인가? 분명 내가 무리해서라도 마리를 학술회에 들인 건 사후에 마리를 아서에게 위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길고 긴 사고 끝에, 나는 나 자신을 완벽히 이해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지었다.
"자네는 너무 어려."
내가 기대한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반응 자체가 돌아오지 않았다. 마리는 그대로 굳어서, 조금 걱정스러울 때까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리?"
"네, 네?"
"자네 괜찮나?"
"아뇨, 네, 괜찮은데요."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방금 하신 말이 무슨 뜻인지."
"말 그대로야. 이번 일은 자네가 알기엔 너무 잔인하고, 또, 아주, 아주 선정적이야."
"그러니까, 제가 나이가 많았다면...."
"그런 가정은 하지 말고. 지금 자네만 두고 하는 말이야."
마리는 드물게도 갑자기 소리 높였다.
"저는 올해로 스물이에요!"
"고작 스물이겠지. 내 눈에는 아직 어려."
"믿을 수 없어요, 세상에, 고작 그런 이유라고요? 지금 거짓말하시는 거죠?"
"내가 거짓말하는지 어떤지는 자네가 더 잘 안다며."
사람이 모처럼 용기 내어 고백했더니, 도리어 추궁을 당하니 기분이 상해서 나는 심술궂게 말했다.
"애초에 자네, 교접이 뭔지는 아나?"
마리는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고? 정말로?"
"주인님, 주님께 맹세코 그런 건 제가 고아원에 있을 때부터 알았답니다."
나는 충격에 잠깐 입을 달싹거리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주님은 기뻐하지 않으실 텐데...?"
그러자 마리는 얼굴을 내리깔았다.
"자네, 지금 우나?"
"아니요, 웃고 있어요."
마리는 그리 말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우는 게 맞는데?"
"그러니까 주인님이 여자를 못 만나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마리가 우는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나는 줄곧, 그리고 그녀가 울음을 그친 뒤로도 계속 그녀 눈치를 살펴야 했다.
좁은 어깨가 들썩이고, 그때마다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촛불에선 심지가 타고 있고, 달은 여전히 수줍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지만, 방 안은 조금 밝다. 1월 7일 새벽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