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불야성
런던에서 가장 밝은 장소를 묻거든, 대부분은 버킹엄 궁전과 빅 벤을 떠올리곤 했다. 그건 사실이 아닐뿐더러 어떤 이들에겐 대단히 모욕이 될 수 있는 대답이었다. 허나 누구도 오해를 탓하지는 않았다. 낮의 도시에서는 그렇다. 태양 아래서는 밝기의 정도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지 않은가. 과잉에서 나오는 무지를 어느 누가 탓할 수 있을까.
그러나 밤이 오면은, 밤의 도시에서는 그 차이는 확연했다. 도시가 어둠에 질식하고, 가난한 이를 향한 모든 문과 창문이 걸어 잠겼을 때, 절실히 간절하여 하늘에 기대야 하면 선처럼 그어진 길을 보게 된다. 그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주로 파리라고 부르고, 때때로 나방이라 부르는 런던의 명물, 끝내는 나방파리라 부르게 되는 해충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해충의 길을 따라가면 그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화이트홀 4번지, 런던에서 가장 밝은 거리.
빛은 길 건너, 저물지 않는 건물에서 나왔다. 런던 광역경찰청, 그곳이 나의 목적지였다. 엄밀히 말하면 거기 달린 부속 건물이 그랬다.
밖에서 볼 때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장소였다. 이유는 분명했다. 어두웠기 때문이다. 어느 때고 위압적인 불빛이 흐르는 건물이었지만, 모든 빛이 균일하진 못했다.
"여보게."
길 앞에는 접선한 형사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들고 있는 사진과 날 번갈아 쳐다보곤, 내게 따라오라는 듯이 앞서 걸었다.
인사할 준비를 하던 나는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형사는 내가 아는 정문으로 향하는 대신, 평생 있는 줄도 몰랐던 뒷문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경찰청 본관을 통하지 않고 곧장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난간 없는 계단이 하나 놓여 있었다. 나름 연식이 오래된 건물이었기에, 나는 두 기관의 뿌리 깊은 알력을 느꼈다.
형사는 날 부축하진 않았지만, 내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릴 만큼 인내심은 있었다. 그는 내가 다 오르고 나서야 복도로 이어진 문을 열었다. 그러자 불타는 건물에서나 날 법한 짙은 매연이 흘러나와, 나는 그 자리에서 몇 번이나 기침했다.
앞서 말했듯이, 여기 복도에서는 건물 중에서 가장 어두운 빛이 나왔지만, 결코 조명이 어두운 탓은 아니었다.
경찰청 부속 건물로 있는 범죄 수사국은 언제나 천장 가득 자욱한 연기로 안개 낀 날씨처럼 흐렸다. 눈이 불거진 형사들은 방과 복도 사이를 분주히 오갔고, 그들의 손에는 길이는 저마다 다르나 연기를 흘리는 독초가 들려 있었다. 천장 벽에는 타르가 맺혀 만들어진 종유석이 런던 범죄사의 깊이만큼 거꾸로 솟아 있었다.
나는 여기 처음 방문한 게 아니었지만, 분명한 건, 들를 때마다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쪽입니다."
"음."
형사는 일부러 인적이 끊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날 안내했다. 그는 심지어 계단에서도 잡지 않은 팔을 부축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묻고 싶은 건 더러 있었지만, 굳이 대답 들을 수 없는 질문을 하며 내 가치를 떨어트리는 버릇은 없었다.
나만큼 침묵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안쪽 작은 회의실 안에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페터 국장은?"
"안 계십니다. 곧 윌슨 형사가 올 겁니다."
그는 짧게 답했다. 그러고는 기다리라는 듯이 방에서 나갔다.
나는 홀로 남아서 방 정경을 살폈다. 몇 명이 더 올지는 몰라도, 의자는 겨우 네개 뿐이라서 많은 사람이 들어오기에는 부적합해 보였다. 그리고 이 철제 의자는 별로 허리에 친절하지도 않았다.
중앙에는 책상이 하나 있었는데, 좁은 방의 대부분 면적을 차지하는 큰 사이즈였다. 그 위에는 분필로 칠이 된 런던 행정 지도가 있었다. 선은 주로 화이트 채플과 인근 행정구 골목에 그어져서 어떤 의미인지 대강 짐작은 되었다.
슬슬 나는 윌슨이 어떤 이유로 날 여기 불렀는지 궁금해졌다. 얼추 보아도 내가 계획에 손댈 부분은 없어 보였고, 단순히 설명을 위해서라면 굳이 여기가 아니어도 되었다.
형사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움직임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것 같았다. 홀로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나는 아예 눈을 감았다. 졸린 것은 아니었고, 눈을 뜨고 있으면 따가워서 눈물이 흐르는 탓이었다.
"이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낯선, 동시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라 다른 건 몰라도, 여기 런던에 둘 중 하나가 없는 건 분명하구나. 인재 아니면 네 일거리 말이야."
배즐은 보자마자 탄식하며 독설을 쏟아냈다. 그가 올 줄은 예상했지만, 저번에 그렇게 헤어지고도 뻔뻔하게 말 거는 그의 담력은 놀라웠다.
"대꾸도 않나?"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그는 내게서 대각선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좋아."
그리고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적막한 방 안에서는 서로 헛기침하는 소리만 몇 번 들렸는데, 침묵을 견디기 힘든 게 아니라 순수하게 숨쉬기 힘든 탓이었다.
윌슨이 나타난 건, 그로부터 십여 분이 흐른 뒤였다.
"두 분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 안에 들어오는 윌슨을 보며, 나는 무심코 그 뒤에 다른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방문이 닫히도록, 방 안에는 우리 네 사람밖에 아무도 없었다.
윌슨의 상태는 예상한 것보다 더 나빴다.
목에 두른 붕대는 오래 갈지 못했는지, 부목 채로 누렇게 곪아서 단단히 조여져 있었고, 감염이 퍼지기라도 했는지 다치지 않은 왼쪽 눈에도 거즈를 덧대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입술은 사막에서 발견한 시체처럼 바짝 말라 건조했고, 눈두덩의 살갗은 늘어져서는 검게 괴사한 것처럼 보였다.
몸은 그토록 쇠약하였지만, 눈빛, 그 눈빛의 예리함은 흉기에 가까웠다. 불과 망치가 아닌, 이빨로 첨예하게 벼려낸 날카로움이었다.
"자네."
내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 말을 윌슨은 예상이라도 한 듯이 칼같이 잘라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제삼자의 존재를 느꼈다. 그리고 내가 어째서 그런 착각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가 말할 때마다, 소리는 입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는 입과 목, 두 군데에서 들렸다. 정확히는 이를 가는 듯한 소음에 가까웠지만, 그것도 분명 이빨의 음성이었다.
윌슨의 신체에서 일어난 변화에 놀랄 시간은 없었다. 그는 곧바로 놀랄 만한 얘기를 꺼냈다.
"수사국의 계획은 전야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잠깐, 전야부터라니."
배즐이 따지듯이 물었다.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실은 상부에서는 이번 계획에 두 분을 배제하려 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처음과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늑대 사냥만이 목적이라면, 형사 인력을 아끼기 위해서 전문가를 대동하는 게 효과적이었습니다."
진짜 전문가인지는 둘째치고, 나는 턱 끝까지 오른 말을 삼켰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수사국 가용 인력은 모두 투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상자와 최소 행정 인력을 제외한 150여 형사가 동원되었습니다. 표면상으로는 늑대 사냥이지만, 아시다시피 실제 주적은 야수입니다. 그렇다면 2년간 그것들을 상대한 수사국 형사만큼 요령 있는 전문가는 없다는 게 상부의 판단입니다."
상부라고는 하나 수사국장 페터의 독단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이어진 설명을 듣고 납득했지만, 배즐은 그러지 않았다.
"우리가 꽤 못 미더웠나 보군."
영 맥락 없는 불평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윌슨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상의 이유로, 국장님께서는 이번 작전을 정치적으로 이해하고 계십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일일이 이해가 느린 건 여전하구나."
배즐은 굳이 비아냥거렸다.
"선생님께서 안 계신 동안, 수사국은 정국에 수난을 입었습니다. 어디서 유출되었는지 지금껏 일어난 실종 사건 명단이 신문에 올랐고, 그걸 수사국 주도로 은닉하고 있다는 게 탄로 났습니다. 다행히 시민들은 아직 야수의 정체까지 도달하진 못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입니다. 국장님은 지금이라면 늑대를 핑계로 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군."
윌슨의 동의는 별로 놀랍지 않았지만, 동시에 놀라웠다. 그의 판단은 합리적이었고, 그리고 절대 그가 입에 담지 않을 만한 것이었다.
나는 젊은 형사가 2년 사이에 얼마나 바뀌었는지 새삼 체감했다. 아니, 그보다 더했다.
"본 작전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늑대 사냥입니다. 수사국을 지키기 위해 늑대 주검을 전시하는 게 제일 목표인 겁니다. 그런 연유로 이만큼 대규모 동원을 하고도 작전의 본의는 들켜서는 안 되고, 출동한 형사 중 절반은 지금도 기자들을 막고 있습니다. 가당치도 않죠."
그는 냉소적인 말투로 비웃었다.
"저는 국장님 뜻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 계산으론 이 정도 작전이 가능한 건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지금 뒷골목을 정리하지 못하면, 앞으로는 점차 피해가 늘기만 할 겁니다."
"자네 독단이었군."
나는 놀란 마음에 중얼거렸다.
"저 말고도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는 동료는 여럿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수사국은 너무 약합니다. 모처럼 독립 수사권을 가졌지만, 윗줄이 경찰청에서 귀족원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서장의 그런 미온적인 태도로는 런던을 구할 수 없습니다."
윌슨은 바뀌었다. 그는 전보다 노련하고, 악의에 찬 존재로 탈바꿈했다. 한때, 그는 무엇이든 하려 했다. 그게 가능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려 했다. 이건 일종의 우화였다.
"이런 얘기를 우리가 들어도 되나?"
배즐은 계산적인 눈으로 윌슨을 바라봤다.
"상관없습니다."
윌슨은 결연한 어조로 답했다.
"저는 그분을 쏴본 적도 있으니."
"뭐, 지금 자네, 뭐라고."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숱이 적은 남자는 모자를 벗지도 않고, 태연하게 윌슨 옆에 섰다.
나는 그가 누군지 알았다.
"서장, 외람되지만 여긴 자네가 있을 곳이 아닌 줄 아네만."
"선생께서 어찌 생각하는지 몰라도, 우리 경찰청과 수사국은 한 지붕 아래의 가족 같은 것이네. 아무래도 외부인에게는 어려운 사정이겠지만."
남자는 능청맞게 내 말을 고스란히 내게 돌렸다. 고작 한 마디 나눴을 뿐인데도, 한 국가 기관에서 파벌을 이끄는 장의 정치 관록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그대로 배즐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남작의 저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못난 아우를 두고 계신다고."
"당신은?"
배즐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남자를 바라봤다
"왕립구 경찰서장을 지내는 브라이언 영입니다."
"이거, 못 알아봤습니다. 제가 런던에는 오래 있지 않아서."
그제야 그는 내밀은 손을 마주 잡았다.
왕립구 경찰서장, 그리고 경찰 내 등불파를 이끄는 수장, 브라이언 영은 태연하게 수사국의 심장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윌슨."
"이상한 생각하지 말게."
영은 내가 거는 말을 원천 차단하고는 대변했다.
"먼저 제안한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이 청년이니까."
나는 윌슨을 돌아봤다.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변혁은 발로 뛰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뿐입니다. 혼자 노력으로는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개인에게 가능한 가장 큰 성과를 내는 방식을 사용한 겁니다."
그의 외눈이 둔하게 움직였다.
"정치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 소임에 태업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방법론상 변화를 일으켰을 뿐입니다."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윌슨은 바뀌었다.
그러면서 나는 몹시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의 무수한 변화에도, 내가 보기에 그의 본질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그에게 일어난 변화는 모두 외부 환경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런 변화는 흔히 상처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여기 형사는 보기 드문 인재요. 하지만 여긴 상찬하는 자리가 아니니 접어두고, 상황은 얼추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사국이 이런 비밀을 숨겨두고 있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죠. 그리고 이토록 악화시킨 국장의 무능함에 대해서도요."
그가 말하는 얼추, 가 어디까지 인지 알기 어려웠지만, 윌슨의 성격상 일을 대충 처리할 리가 없었다. 윌슨은 도시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었다.
런던 뒷골목의 야수, 지킬 박사의 실험, 어쩌면 강과 하수도의 해저인과, 런던 대화재 이면에 숨겨진 진실, 그리고 노란 외벽 회사의 전투기까지... 어디까지가 얼추 인지 짐작도 되질 않았다.
한편, 배즐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껏 구슬픈 어조로 말했다.
"저도 고향 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면, 다른 곳이 아니라 곧장 여기로 왔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손에 닿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재난은 안타깝죠. 하물며 그것이 범죄에 의한 것이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거라면 비극성이 배가 됩니다. 그 때문에 경찰력을 늘리고, 치안 역량을 확대해야 하는 겁니다."
"런던에도 이렇게 훌륭한 생각을 가진 분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둘은 끼리끼리 잘도 어울렸다. 그러는 동안, 나는 윌슨을 쳐다봤다. 그는 외눈을 움직여 눈을 마주치더니, 앞뒤로 가볍게 주억였다.
나는 이것이 그의 참뜻임을 이해하고 물러났다.
"산통을 깨서 미안하지만, 그래서 어쩔 텐가?"
내 질문에 두 사람은 대화를 멈췄다.
"그렇잖나. 소개하려고 데려온 건 아닐 테고. 우리가 여기 왔다는 건, 어떤 계획이 준비된 것일 테지."
"걱정하지 않아도, 우리 경찰관들이 작전 구역 인근에서 대기 중이네."
영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나는 반대했지만, 형사가 자네를 불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지. 사실대로 말하면, 실례가 안 되면 좋겠습니다만, 고작 두 명이 더해진다고 바뀔 상황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윌슨 형사의 안목을 믿기로 한 겁니다."
처음에는 날 보며 말하다, 자연스레 그는 배즐을 보며 말을 마쳤다.
"지금부터 차량으로 화이트 채플까지 이동할 겁니다. 거기서 대기 중인 경찰의 계획에 합류해 주시면 됩니다. 세부적인 계획은 가는 길에 설명할 겁니다."
윌슨은 담담히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배즐은 갑자기 흐름을 끊었다.
"이리 말해서 미안하지만, 나도 서장님 생각에 동의야."
그는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젖혔다. 철제 의자는 체중을 바치기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앉아본 사람으로서 그게 다소 연출된 몸동작임을 확신했다.
"오해하지 말게. 내가 뛰어난 사냥꾼인 건 맞으니까. 하지만 수십, 어쩌면 백 명 정도가 짐승 사냥을 위해 나섰다면, 이건 사냥꾼 한 명이 나선다고 바뀔 만한 상황이 아니지."
"저번이랑 말이 다르군."
내가 지적하자, 배즐은 전혀 알아듣지 못한 얼굴을 했다. 표정을 지은 건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찰나에서 배즐이라는 형제의 본질을 처음으로 알 듯했다.
배즐은 순간만을 살았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그때의 이득을 위한 것뿐이었다. 그 안에 자신을 담는 일은 없었다. 그러기에 쉽게 거짓을 말하고, 그러기에 쉽게 잊었다.
그러기에 그는 원망받는 이유를 모른다. 그걸 알고 나니 내 안의 분노는 사그라지고, 역겨움만 남았다.
"게다가, 처음 전해 들은 것보다 일이 훨씬 까다롭고 위험하다는 것도 알았지."
"떠날 테면 떠나게. 나 혼자라도 할 테니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배즐은 내 말을 끊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수사국의 요청이 아니라면, 나는 어떤 식으로 보상을 얻는지 묻고 싶은 거네."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건이 정리되면, 선생과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영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둘은 짧게 눈빛으로 대화했다. 거기에 어떤 뜻이 담겼는지 몰라도, 배즐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물러났다.
"저는 두 분께서 제 역할을 다 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윌슨의 외눈은 오직 나만을 향했다. 타인의 가치를 점치는 계산적인 눈이었다. 그건 아주 차가운 방식의 부탁이었고, 타인과 자신 모두 상처 입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 사실도 모를 만큼 눈치가 없었다면, 잠깐 생각해 봐도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나는 윌슨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가 세운 계획은 내가 여기 오며 생각한 내용과 일치했다.
나는 비통하게 확신을 말했다.
"내 역할은 미끼겠군."
윌슨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내 눈에는 목에 감긴 붕대가 들썩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그는 목으로 호흡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