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44화 (144/232)

§144. 등불파

차량은 경찰청 건물 바로 앞쪽 골목에 숨겨져 있었다.

최근 런던 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개조차였다. 마부들이 적기조례 폐지 후에 말을 자동차로 바꾸고, 쓰던 마차를 그대로 자동차에 이어 붙인 것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여하튼, 그런 구조였기에 운전석과 마차 좌석의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운전은 윌슨이 했고, 나와 배즐은 자연스레 뒤에 앉게 되었다. 피치 못해 합승한 우리는 서로 옆자리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앞만을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을 가던 중, 배즐은 대뜸 말했다.

"아까 했던 말."

나는 옆자리를 돌아봤다. 그는 말 걸고도, 아무 티도 내지 않고 정면만 피곤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사실이야?"

나는 뭐라 해야 할 지 몰라서, 똑같이 앞을 보며 되물었다.

"무슨 말."

"그거 있잖아. 무슨 약을 먹어서는."

처음부터 뭘 물으려는지는 알았지만, 괜히 한 번 시침 떼었다. 그가 묻는 건 수사국 건물에서 나눴던 마지막 대화의 연장이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배즐은 남에게 하는 말처럼 막연하게 말을 던졌다.

내가 미끼를 자청한 직후였다.

아니나 다를까, 배즐은 곧바로 따지고 들었다. 비록 내가 그에게 안 좋은 감정을 품어서 그가 하는 짓거리 하나하나가 미덥잖게 보이긴 했지만, 그가 아니라도 충분히 물을 만한 질문이란 건 인정했다.

실그윈 숲의 야수는 반드시 날 쫓는다.

나조차도 직감으로밖에 확신하지 못하는 사실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결국, 나는 그에 상응하는 정보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킬 박사가 남긴 유작, 하이드와 그에 얽힌 비밀들을 말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허황된 이야기이긴 했다. 내 안에 야수의 파편이 있고, 우리 둘이 실존적인 이유로 서로의 죽음을 갈망한다는 내용이었으니.

그 설명 이후로 배즐은 한동안 얼이 나가 있었다.

가뜩이나 깃털처럼 가벼운 그가 넋까지 빼고 있으니,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한심한 작태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차에 탈 때까지 묵언 수행을 하던 그가 가까스로 꺼낸 말이 이것이었다.

나는 말했다.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달고 사는 건 아니지."

일부러 그러려 한 건 아닌데, 유난히 날카로운 말이 나왔다. 배즐은 다시 상념에 빠지더니 말이 없었다.

"계획은 이렇습니다."

운전석의 윌슨이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말했다.

"경찰 병력은 외각부터 침투할 겁니다. 도중 만나는 야수는 모두 제거하고, 형사는 설득하여 기존 계획대로 관할 구역을 지키게 합니다."

"설득이 통하지 않으면?"

"그 정도로 머리 나쁜 형사는 없습니다. 경찰이 작전구에 나타나는 시점에서 상황이 바뀌었다는 걸 알 겁니다."

윌슨은 확고한 어투로 답했다. 나는 그의 동료애를 굳이 더 시험하지 않았다.

"여기서 핵심은 실그윈 숲의 야수입니다. 죽지도 않고, 장정 여럿이 붙어도 제압이 안 되는 힘에다, 좁고 복잡한 골목과 건물 사이를 넘나드니, 통상적인 방식으론 대처가 안 되는 괴물입니다."

그의 지적대로, 나 역시 야수를 억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단순한 상황에서는 저지할 수단이 없다고 판단했기에, 웨일스까지 가면서 대처법을 알아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수확도 얻지 못했고, 이제 와서 금방 묘책이 떠오를 리도 만무했다.

단 하나, 가장 먼저 떠올랐고, 예상컨대 가장 효과적일 방책 하나만을 제외하고는.

"아예 쫓아낸다면 모를까."

내가 나직이 말하자, 윌슨은 운전하면서 얼굴을 숙였다.

"고개를 들게, 형사. 자네 판단은 정확해. 나도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자네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먼저 제안하려 했네."

윌슨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계속 내렸다.

"그게 무슨 뜻이야?"

배즐이 등받이에서 몸을 떼며 물었다.

"말 그대로, 그놈 하나가 나타나면, 모처럼 투입한 경찰 병력이 묶이게 되지. 그렇다고 방치하자니 피해가 발생할 테고. 그렇지만 오늘 하룻밤만 놈을 골목에서 쫓아낸다면,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놈 혼자 남는다면 나중에야 차차 정리하면 되니까."

그는 점차 입을 벌리더니, 탄식처럼 말했다.

"그래서 미끼였군."

배즐의 표정은 좀처럼 진정되질 않았다. 그것은 내가 여지껏 본 것 중에 가장 진실한 반응이었다.

마치 기름막이 한 층씩 휘발하는 것처럼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마구 떠올랐다. 경악, 분노, 망설임 같은 얕은 감정부터 떠올랐다 사라졌고, 나중에는 분노나, 두려움 같은 깊은 감정이 드러났다.

그런 것들마저 사라지고 나서는 가장 정갈하고, 정직한 감정만이 침체했다. 바로 순수한 당혹감이었다.

"대체 왜?"

그는 꾸밈없이 물었다.

"많은 돈을 받기로 약속했나?"

"내 형편이 안 좋기는 하지만, 고작 돈푼에 목숨을 걸진 않아."

"아니면 경찰에게 진 빚이라도 있나?"

"아주 없다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게 큰 빚까지는 없어."

"그렇지 않으면 영웅이라도 되겠다는 건가?"

"꼭 예전에 비슷한 말을 들었는데."

배즐은 점점 더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공교롭게도 절반쯤 그와 같은 DNA를 공유하는 나도 점점 닮은 표정을 짓고 있을 터였다. 여러 문답을 거치고도, 그 끝은 처음과 같았다.

"그러면 왜?"

정말 그 말대로였다.

"댁도 사냥을 하지 않나? 그것도 위험하긴 매한가지지."

"바보 같은 소리 말아! 그건 그냥...."

배즐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가 하다 만 말을 끝맺었다.

"사기지."

"그게 뭐 잘못됐나?"

그는 정색하며 되물었다.

"내가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소설가와 같아. 허풍을 좀 떨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민족적인 자긍심을 심어주었는데, 내가 한 일이 그렇게 잘못되었나?"

"그걸로 돈을 벌었지."

"정당한 노동에 대한, 무형 상품 제공에 대한 보수지. 더 풍부하고 깊은 감정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소설보다는 소문이 더 낫고, 그런 면에서 나는 소설가만 아니라 연기자를 겸하기도 하지. 내가 그 노동의 대가로 보수를 얻는 게 문제 될 게 있나?"

나는 은근히 그에게 말려 들어가는 걸 느끼고, 서둘러 대화를 끊었다.

"판사도 아닌 내가 잘잘못을 따질 권한은 없지."

"그러면."

"여하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여기서 아무것도 걸지 않은 건 너뿐이라고."

그러자 배즐은 당황하며 곧장 되물었다.

"내가 왜 걸어야 해? 내 일도 아니잖아."

그는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윌슨을 돌아봤다. 배즐은 묵묵히 운전하는 윌슨을 보다가, 온몸에 두른 붕대가 어떤 경위를 거쳤는지 짐작했는지 경악했다.

"아니, 그렇잖아?"

공허한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화는 어색하게 단절되었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차내에는 침묵이 깃들었다.

앞으로 닥칠 위험에도 불구하고 따분한 시간이 이어졌다. 원래도 필요없는 말을 하지 않는 윌슨이었지만, 이제 그는 필요한 말 외에는 아예 하지 않았다.

대신 과묵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목 근처에서 계속 까득까득하며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 불규칙함이 영 거슬렸지만 적응하고 나니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소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깐 졸았다. 그러면서도 깊게 잠들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옆에서 중얼거리는 배즐의 혼잣말을 듣고 말았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아마 윌슨도 들었을까, 그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우리 둘 중에 누구도 그 말에 토 달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옳을지도, 아니, 분명 옳았다. 위험을 멀리하지 않고, 이득을 좇지 않는 게 보편적인 삶이라고 보긴 어려웠으니까.

그런 면에서 배즐은 우리의 모범이었다.

그에게는 도덕이 없다. 삶에 충실하기에 죄를 범하고, 고통을 피하기에 행복하다. 생물 본원의 욕구에 충실하기에, 그는 현자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나의 어리석음은 어디서 온 것인가.

한때는 애국심이라 오해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게 아닌 줄 안다. 향토애라고 하면 조금은 말이 되었지만, 그걸로도 다 설명되지는 않았다. 귀족의 교육은 받은 적이 없어서 계급의 의무 따위도 없다. 그렇다면 나의 어리석음은 어디서 왔는가, 고통은 어디서 왔단 말인가!

나는 그 답을 생각하며 졸며 실려갔다.

잠시 후, 나는 눈을 떴다.

누가 깨운 것은 아니고, 차가 느려지는 수평가속도에 깨어났다. 차는 마침 골목을 꺾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영 서장이 약속한 지원은 허투가 아니었다.

멀리서 보아도 수십, 아니, 어쩌면 백은 되어 보이는 경찰복 차림의 무리가 가로등 아래에 뭉쳐 있었다. 그 모습은 위압적이다 못해, 나처럼 무고한 사람조차 무슨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나 자신을 의심하며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릴 발견하자마자 일제히 같은 동작을 취했다. 나는 경찰처럼 경직된 조직에서 어떻게 등불파 같이 감각적인 이름이 나왔는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건 어떤 은유도 아니었다.

───끼익!

윌슨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나도 눈을 질끈 감았다. 정면에서 갑자기 터져 나온 환한 빛에 눈이 적응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일출에 준하는 광채였지만, 아직은 해가 뜨기에 먼 한밤중이었다.

간신히 실눈을 뜨고 보자, 그 빛의 출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모든 경찰은 각자 왼손에 막 켜진 등불을 들고 있었다.

"성명과 직함을!"

그중 한 명이 차 쪽으로 다가오며 외쳤다.

워낙 밝은 탓에 그는 거의 그림자처럼 보였지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키가 거인처럼 큰 사내였다. 나도 그리 작은 키는 아니거늘, 족히 머리 하나는 더 컸으니 말이다.

그가 조금 더 다가오자, 나는 잠깐이나마 그를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경찰은 윌슨보다는 나이 들어 보였지만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꽉 조여 맨 경찰모 줄 때문에 피가 잘 통하지 않는지 얼굴이 울긋불긋 숨쉬기도 힘들어 보였다.

"피터 윌슨."

윌슨은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범죄수사국 형사."

경찰은 고개를 까닥이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뒤돌았다. 그리곤 모여 있는 경찰들을 향해 고함질렀다.

"왕립구 소속 경사, 덜레스 외 67명! 발령받았습니다!"

나는 그제야 영 서장과 윌슨이 나눈 거래가 어떤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서장은 처음부터 이 일을 은폐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그 반대였다. 그는 페터 국장이 그토록 숨기려고 했던 수사국의 비밀 작전을 대중에 공표하여, 그 일을 빌미로 수사국 권한을 축소하려는 수작인 게 분명했다.

나는 잠깐 주변을 둘러봤다. 예상대로 저 멀리 골목에서 여길 향해 사진기를 들이민 양복쟁이 여럿이 보였다. 내가 잠깐 찾아도 뻔히 보이는데, 한참 여기서 대기하던 경찰이 몰랐을 리 없었다. 저들이 여기 있는데도 모종의 사주가 들어간 게 분명했다.

자신을 덜레스라고 소개한 경사는 다시 몸을 돌려 차 앞까지 다가왔다.

"호송하겠습니다."

단어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밤이 지나면, 수사국과 경찰청의 힘 싸움 축이 완전히 기울 테니, 그들이 벌써 승리자처럼 자만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지는 않았다.

"그러면 두 분."

윌슨을 고개 돌려 우릴 바라봤다.

"자네는?"

"저는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배즐은 군말 없이 차에서 내렸다. 나는 잠깐 더 자리에서 윌슨을 마주 보다, 그가 눈을 피하고서야 조심스레 하차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가까이서 본 덜레스는, 아니, 경찰 무리는 더욱 험상궂었다. 눌러 쓴 경찰모 아래 그늘진 얼굴에는 딱딱한 긴장이 맺혀 있었고, 경봉을 든 손은 어찌나 주먹을 꽉 쥐었는지 가죽 장갑이 구겨져 있었다.

그 풍채는 여러모로 비인간적이었고, 이처럼 경직한 분위기는 군인에게서나 나타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경찰 훈련 외의 특수한 교육을 받았을 거라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이 잘 조율된 일흔여 명의 경찰은 마구잡이로 차출된 게 아니라, 아마 등불파의 실질적인 행동력, 영 서장 개인의 지지기반이 분명했다.

모든 경찰이 등불을 들고 앞으로 걷자, 우릴 중심으로 한 광구가 비좁은 골목에 낀 형태로 나아갔다. 위압적이고 무자비한 압력에 밤이 쫓겨나고 있었다.

나와 배즐은 객인처럼 대열 옆을 걸었다. 사람은 많았지만, 숨소리밖에 들리는 게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껏 사담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알다시피 내 걸음이 빠른 편은 아니기에, 건장한 청년들의 행군에 발맞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조금 뒤처질 때마다 옆에 선 덜레스가 거칠게 손으로 몸을 잡아끌었다.

"그건 영 서장 지시인가?"

뜻밖에도 나 대신에 나선 것은 배즐이었다.

"그 양반이 막 경우 없이 사람 몸에 손대고 그러라고 그러던?"

"걸음이 느리셔서...."

"변명은 됐고, 자네 판단이라는 건데, 자네가 보기엔 우리가 어디서 그따위 대접받을 사람처럼 보이나?"

덜레스는 한참 위에서 노려보더니, 종국에는 고개만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젊으니까 잘하라고. 실수하지 말고."

그는 외려 젠체하며, 덜레스의 등을 두드렸다. 하는 모양을 봐선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워낙 예상 밖의 인물에게 도움받은 터라,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몰라서 보고 있었더니 배즐은 슬쩍 내게 다가와서 한마디했다.

"너도 똑바로 하고. 네가 비실비실하고 있으니까 싸잡아 무시 당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덜레스는 그 이후로 가뜩이나 불쾌한 인상이 더욱 나빠졌다.

내가 어디서 기가 밀리는 편이 아닌데도, 무심코 그의 옆을 피해 걸을 정도로 말이다. 어쨌거나 목적지, 수사국의 작전 구역에는 금방 도착했다.

"정지, 여기는 현재 수사국이 수사 진행 중이라 경찰은 출입이 안 됩니다!"

형사 한 명이 다가오며 저지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는 오히려 경찰들에게 붙잡히는 꼴이 되었다. 오해하려고 해도, 워낙 많은 경찰이 한 번에 나타나니, 누구라도 문제가 생겼다고 알 만한 상황이었다.

형사는 곧 저항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고 순순히 물러났다. 처음 한 명이 잡히고 난 뒤부터 몇 명이나 되는 형사가 줄줄이 연행되는 것처럼 뒷열로 넘어왔다.

"발견했습니다."

앞에 선 경찰 한 명이 낮은 소리로 외쳤다.

"저게 야수입니까?"

덜레스가 물었지만, 나는 앞에 선 경찰들에 막혀서 전혀 보이는 게 없었다. 대신 답한 건 배즐이었다.

"그래, 맞아. 사람처럼 보이지만, 움직임을 보면 알지."

그 대답에 덜레스는 목에 건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러자 맞추기라도 한 듯, 앞열부터 순차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 펼쳐진 광경은, 나보다는 푸주한에게 익숙할 모습이었다.

총 없이 야수를 사냥하는 게 위험할 거란 예상은 정말 무지한 것이었다. 하기야 지성조차 없는 짐승이다. 수십 명의 건장한 청년이 눈에 불을 켜고, 문자 그대로 등불을 켜고 달려드니 겁먹지 않는 게 이상했다.

육중한 경봉이 야수의 몸에 떨어졌다.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가죽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는데, 인피도 동물 가죽의 일종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나는 총성이 그렇게 자비로운 줄은 처음 알았다.

내 경험상 폭력이 클수록 가해자는 현실에서 멀어지곤 했다. 지금 꼴이 마침 그랬다. 피가 튄 탓인지 아니면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얼굴이 붉은 경찰들은 점점 더 거친 폭력을 행사했다.

"그만!"

나는 무심코 참지 못하고 내가 외친 줄 알았다.

하지만 소리 지른 건 덜레스였다. 그는 경찰이 다 멈추지 않자, 다시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제야 경찰들은 한 명씩 물러나서 거친 숨을 쉬었다.

"이동한다!"

경찰들은 그제야 지친 걸음으로 터덜터덜 시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들이 발을 뗄 때마다 밑창 모양으로 찐득한 핏자국이 남았다.

"잠깐만요, 허버트 씨!"

경찰에게 억류되어 있던 형사 한 명이 날 알아보며 다가오려 했다. 그는 바로 저지당했지만, 내 주의를 끄는 데는 성공했다.

"이게 어찌 된 겁니까, 왜 당신이 경찰이랑 있습니까?"

"상관없잖나. 내가 누구랑 있든."

"배신하신 겁니까?"

"나는 처음부터 자네들 알력 싸움에는 관심 없었어."

"그러면 왜 이제서 경찰을 돕는 겁니까!"

시민의 안위를 위해, 그렇게 대답하려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 그것 때문인가, 차에서 배즐과 나눈 대화가 좀처럼 마음에 걸렸다.

"허버트 씨!"

결국,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뒤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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