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짐승보다 못한 (1)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경찰은 정확히 반씩 갈라졌다.
처음에는 위풍당당하던 경찰의 모습은 시시각각 지쳐갔다. 수가 적어지는 만큼 빛은 어두워졌고, 그럴수록 바닥의 핏자국은 어둠에 섞여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덜레스는 야수든, 형사든 나타날 때마다 가장 무자비한 판단을 보였다. 매번 피가 흘렀고, 이제는 주변에 시체가 없어도 코끝이 알싸할 정도로 피 내음이 자욱했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뻣뻣하게 다려지고 깃 세운 경찰복이 핏물에 젖어 축축해지자 이제는 누구의 상처인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들 스스로도 상처를 입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 피터 윌슨처럼.
이런 상황에서 유이하게 의연한 건 세 명뿐이었다. 덜레스는 타고난 폭력성으로 한없이 차분하게 지휘했다. 그가 호루라기를 불 때마다 경찰들은 기계적으로 튀어 나갔다.
다른 한 명은 배즐이었다. 그는 지금 상황에 겁먹지도, 흥분하지도 않고, 대신에 팔짱을 낀 채 시종일관 심각하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갈림길이 나타났다.
나와 배즐, 그리고 덜레스는 암묵적으로 같이 다녔기에, 다시 반으로 나뉘었을 때는 71명 있던 인원이 7명까지 줄어 있었다. 덜레스는 여전히 허리춤에 찬 경봉보다는 호루라기에 관심이 많았으니 실질 병력은 셋뿐이었다.
"다음 갈림길에서."
"뭐?"
"한 번 더 나뉜다면, 공격에 취약해질 겁니다!"
빗소리에 목소리가 묻혔다. 하지만 덜레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듯했다.
"그래."
알고는 있었지만 여기 화이트 채플의 골목은 얼기설기 얽혀서는 수렁처럼 사람을 빨아들였다. 다른 이들도 우리만큼 많이 나뉘었을 테고, 이제는 숫자만 믿고 사냥을 계속하기에는 여의치 않았다.
특히, 어딘가에 그것이 도사리는 한은 더욱더.
나는 견착하고 있던 소총을 풀었다. 누구도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다음 갈림길이 분기가 될 거란 건 다들 짐작했다. 눈치를 살피던 배즐도 잽싸게 자기 총을 손에 쥐더니 총알을 밀어 넣었다.
그때였다.
"전방에."
앞에 선 경찰은 말을 하다 말았다. 대열이 멈춰 섰다. 비 때문에 시계가 막혀서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계속 말해."
"잘못 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경찰은 곧바로 정정했다. 하지만 나의 직감이 이걸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언어화되지 못한 불안감이 대뇌 피막 안에서 맴돌았다. 빗물은 그치지 않고 후드득 쏟아졌다.
"이봐, 병력을 물려야 할 거 같아."
나는 덜레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는 거의 알아듣지 못한 얼굴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감이 안 좋아!"
"감이라."
덜레스는 비웃듯이 되새겼다.
"그래, 감! 다른 사람 감이라면 말도 안 꺼냈어. 하지만 이 감 하나로 고립된 전장에서 2년을 살아남은 사람 말이니 한 번 들어보게!"
그는 강경한 어투로 바로 답했다.
"현장 지휘는 제가 합니다. 간섭할 생각은 하지 마십쇼."
그 답변에는 아무런 사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가 일종의 기싸움을 하려고 한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 배즐에게 밀렸던 게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었다.
그 치기를 원동력으로 그는 젊은 나이에 영 서장의 신임을 산 것이겠지만, 지금 같은 때는 독선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때로는 이성과 합리만으론 상황을 잴 수 없다는 걸 모를 만큼 젊었다.
그리고, 비명이 터졌다!
"뭐야?"
어쩌면 비바람이 만든 소음을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그렇게 의심할 만큼 시간이 흐르고, 다시 벽 너머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전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그렇게 비명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였다. 화이트 채플의 골목 곳곳에서 아우성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직감은 대뇌 껍질을 가르고 언어로 나타났다.
"역습이다!"
덜레스는 여전히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그 대신 외쳤다.
"도망쳐!"
좀 전까지 경찰들을 움직이게 하던 흥분은 이미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 간신히 의무만으로 버티던 그들은 내 외침에 곧바로 반응했다.
"이봐, 뭐하는 거야! 멈춰!"
첫말은 날 향한 것이었고, 뒷말은 지나치는 경찰들을 향한 것이었다. 그는 내 멱살을 잡았다가, 바로 풀어놓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걸로는 번지는 공황 사태를 저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멱살 잡힌 동안 위를 보다가, 골목의 벽 위에 누군가 있는 걸 보았다. 어둠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도무지 달리 볼 수 없는 실루엣이었다.
"지킬...."
내가 저지른 원죄, 그 기저에 또아리 튼 뱀은 담벼락 위에 있었다.
"당신은 뭐가 문젭니까!"
덜레스는 다시 날 붙잡았다. 목이 한 번 꺾였다가 다시 들렸을 때는, 이미 지킬은 사라지고 없었다.
"살 사람은 살려야지."
"당신 참견만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문제 될 게 없었다고!"
"뻔히 비명을 듣고도...."
우리는 말다툼하던 도중에 서로 어색하게 침묵했다. 고성과 빗소리 사이에 예기치 못한 소음이 끼어들었고, 우린 서로를 보며 말없이 방금 들은 소리의 진위를 물었다.
소리는 실존하는 것이었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 소리를 내는 것은 네 발로 기며 골목 너머에서 다가왔다.
"늑대?"
덜레스는 자신이 본 것을 무심코 그대로 읊었다. 하지만 그는 틀렸다. 그건 늑대가 아니라, 늑대들이었으니까.
거친 맹수의 울음과 함께 늑대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악!"
덜레스는 아주 잠깐은 잘 싸웠다. 하지만 늑대의 앞발에 밀려 쓰러지고, 등불이 웅덩이에 떨어지며 불이 꺼지고부턴 그저 사냥감이 되었다.
───탕!
그가 당하는 동안,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달려오는 한 놈의 미간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맞은 늑대는 즉사했지만, 주변은 총이 뭔지 안다는 것처럼 동요 없이 달려들었다.
마치 몇몇은 당할 것을 각오한 것처럼, 짐승답지 않은 결연함이었다.
이 다리로 도망치는 건 어림도 없었기에, 나는 침착하게 탄피를 버리고 다음 탄환을 약실에 밀어 넣었다. 빗물이 스며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총을 들어, 두 번째 탄환을 조준했다.
그 순간, 내 몸이 뒤로 날았다.
"어엇!"
나는 뒤에서 덮쳐진 줄만 알고 몸부림쳤지만, 곧 그게 사람의 손이란 걸 깨달았다. 그 두꺼운 손은 날 짐짝처럼 끌어안고는 재빨리 달렸다.
따라오려던 늑대들은 쓰러진 덜레스를 마무리 짓는 데 집중하기로 한 듯이 뒤쫓아오지 않았다. 덜레스와 비명은 쏟아지는 비에 금방 씻어 내려갔다.
1분 정도를 더 달리고, 날 우악스럽게 끌고 가던 남자의 숨이 거칠어지자, 그는 거의 날 벽에 패대기치듯 밀며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나는 그가 누구일지 짐작했지만, 정말로 그라는 걸 알고 놀랐다.
"배즐."
"너 미쳤어?"
배즐은 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입에서 침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을 흘리며, 거친 숨으로 성냈다.
"아주 죽으려고 환장을 했네!"
그는 코트 소매로 입가를 닦으려 했지만, 어차피 젖기는 매한가지라서 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무심코 고개 숙여 사과했다.
"여하튼, 이제 네가 걸어. 어디서 병신이 돼서 와가지곤."
"날 구한 거야?"
나는 바보처럼 물었다. 배즐은 갈림길 너머를 살피다가, 뒤돌아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두고 오랴?"
"아니, 진작 도망쳤을 줄 알았지."
나는 무안한 말투로 말했다.
"그랬었지, 당연히 그랬을 줄 알았지! 그런데 돌아와 보니 무슨 총질을... 말을 말자. 널 가르치다간 내 명만 짧아지지."
왜 돌아왔는데, 나는 그리 물으려다가 말았다. 대신 내 입에서 나올 줄은, 배즐 같은 작자에게 할 줄은 추호도 몰랐던 말을 올렸다.
"고마워."
배즐은 아예 듣지 못한 것처럼, 계속 망을 보면서 말했다.
"그나마 비가 와서 다행이야. 잘만 하면 골목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들키지 않겠어."
"빠져나간다고?"
그는 몸을 돌렸다.
"그러면 늑대한테 죽을 때까지 여기 살려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늑대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실그윈 숲의 야수가 어떤 식으로 경찰을 공격했는지, 오늘 밤이 지나고 비가 그쳤을 때, 도시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무엇도 확실한 게 없이 불연소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지금은 골목에서 안전히 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배즐은 나한테 리넨으로 된 보자기를 던졌다.
"덮어."
"뭐?"
"체온을 지켜야지."
그는 보자기를 하나 잡아 뜯어서 몸에 두르고 있었다. 안에서는 온갖 잡동사니가 우수수 쏟아졌다. 나는 둘러보다가 근처의 번잡하고 노후한 건물에 유난히 이런 것들이 많이 걸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주 도가 트셨군."
"그래서 훔친 물건은 못 쓰겠다?"
"누가 그랬나. 나도 그리 도덕적이진 않아."
나도 내용물을 옆에 쏟아내고, 보자기를 손으로 뜯어 머리와 어깨를 덮었다. 그는 내가 준비된 걸 보고는, 달리 묻지도 않고 총을 두 손으로 쥐며 앞장섰다. 나는 의심 없이 그 뒤를 따랐다.
우리는 빗속을 걸었다.
배즐은 날 신경 쓰지 않았지만, 조심히 앞을 살피면서 가는 덕에 뒤처지지 않고 쫓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러면서도 뒤를 살피며 사주경계를 철저히 했다.
"솜씨가 제법이던데."
"뭐가?"
"도둑질."
나는 말했다.
"옆에 있는데도 몰랐어."
"네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 탐험이란 게 다 그렇지."
"나도 탐험가였는데."
배즐은 콧방귀를 뀌었다.
"아, 그래, 지도에 강을 그리고, 나비 표본을 모으고 그러셨겠지."
"이봐, 난 말라리아도 걸렸다고."
"그건 말라리아가 아니야."
"내가 걸렸다는데, 네가 뭔데."
"살아있잖아. 말라리아는 걸리면 죽는다고."
"그래, 그렇다고 치지, 뭐."
내가 짜증 내며 말을 끊자, 배즐은 어색하게 계속 이어나갔다.
"말하자면, 부업이지."
"도둑질이?"
"네가 서재에 두는 그런 도자기도 다 따지고 보면 장물일걸."
난 굳이 집이 탄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가 전에 날 찾아서 브라운네 들렀던 걸 생각하면, 그도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나는 모종의 불안감을 느꼈다.
내가 가진 한 가지 믿음 때문이었다. 그건 퇴적의 신화이다.
퇴적은 아무 때나 일어나진 않았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 있어야만 일어나지도 않았다. 어떤 우주의 고매한 법칙도 작달막한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설명하지 못했다. 현상은 불합리의 화신이었다. 그럼에도 하나쯤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퇴적은 주로 밤에 일어났다.
그건 팔을 뻗으면 천장이 닿는 다락방 침대에서 누워, 뭉텅 빠진 머리카락이 먼지 덩어리와 섞여 뒹구는 걸 볼 때 일어나곤 했다. 아니면 술로도 이겨내지 못한 지친 밤에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 가로등을 얼싸안거나 옷을 챙길 생각도 못 하고 바닥에 주저앉을 때마다 일어나곤 했다.
내가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믿을 때마다, 문학책의 어떤 따스한 문장에도 마음속 깊이 공감하지 못할 때, 스스로 처지를 비관하며 원망할 때, 내게 사랑이 없다고 믿을 때, 내가 우주에서 버려졌다고 믿을 때, 행복한 가족에 관한 선량한 신화를 볼 때마다 일어나곤 하는 것이었다.
혹은 그래야만 한다고, 나의 비극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망상할 때만 일어났다.
처음에는 그토록 낮고 사소했던 퇴적층은 심장 끝자락에 닿을 만큼 높은 탑이 되었고, 나의 심장이 뛸 때마다 고통을 느끼게 했다. 그건 이제는 이성보다는 아집으로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신화가 되었다.
나는 배즐이 잘 산다고 생각했다.
그가 어머니에게서 짜낸 눈물만큼, 내가 느끼는 공백과 불행만큼 그가 풍족할 것이라고, 아무리 원망하고 증오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만큼 뻔뻔하게 행복하게 살 것이라 진정 믿었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달랐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는 검소와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남의 보자기에 손을 대거나, 냄새나는 그걸 몸에 뒤집어 쓰고 다녔고, 스스로 위험에서 앞장서 길을 찾을 만큼 주도적이었다.
나는 그가 날 미워하길 바랐다.
"앞에 웅덩이."
배즐은 길옆으로 비켜 걸으며 말했다. 나는 그 뒤를 그대로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