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46화 (146/232)

§146. 짐승보다 못한 (2)

"그나저나."

그는 운을 떼고, 한참 더 생각하다가 말했다.

"늑대는 하나가 아니었군."

"그래. 아마도, 우리가 본 것보다는 더 많겠지."

비명은 한 지점에서만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영국에서 늑대는 멸종한 게 아니었나?"

"어쩌면 살아남은 마지막 무리일지도."

나는 그리 추측했다.

"늑대가 있다는 건, 두 눈으로 본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지. 문제는 이거야. 그것들이 왜 도시에 나타났을까."

"그건 뻔하지."

"그래?"

배즐은 잘 안다는 듯이 말했다.

"민가를 습격하는 거랑 똑같아. 도시와 마을이 커지면서, 야생동물의 영역과 겹쳐서는 먹이를 찾아온 거야. 지금도 중앙아시아 쪽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

그의 자신 있는 설명에도, 나는 좀처럼 납득이 되질 않았다.

지금 런던에서 날뛰는 무리는 어쩌면 영국 마지막 늑대였다. 지금 시대까지 사람 눈을 피해 살아남은 노련한 무리가 고작 굶주림에 이끌려 도시에 나타났다는 건 설명치곤 부족했다.

설령 먹이를 찾아왔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투쟁할 필요는 없었다. 실그윈 숲의 야수가 지난 2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골목에 숨어 살며 사냥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 순간, 나는 웨일스에서 들은 일화를 떠올렸다.

"만약, 늑대가 인간에게 복수를 꾀한다면?"

"어째서?"

"헨리 6세 이후로 인간은 영국 땅에서 공존하던 늑대를 완전히 몰아내고, 심지어는 멸종까지 몰아넣었어. 그렇다면 그 최후의 생존자가 피할 수 없는 멸종을 앞에 두고 떠올릴 만한 선택은 뭐가 있을까?"

"그게 복수라고?"

배즐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일축했다.

"말도 안 돼. 늑대가 아무리 영리하다 한들 짐승이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어."

보통은 그처럼 생각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나는 바로 직전에 생존마저 도외시하는 공격성을 눈앞에서 봤다. 마치 사람을 공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처럼, 동료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그 야만성을 말이다.

분노, 그 거대한 야성이 생존 본능을 억누른 것이 아닌가.

나는 다시 한 번 런던에서 큰 재해가 벌어지지 않을까 마음속 깊이 불안감을 느꼈다. 어떤 원리인지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올라가는 오라클의 계산 값도 점점 임계점에 달해가고 있었다.

"여하튼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은 여기서 한 몸 건사하는 것만 생각하자고."

배즐은 나의 우려도 모르는 듯이 태평히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정말로 속이 없어서 그리 말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이건 그 나름의 세상을 바라보는 법이었다. 오직 현재에 충실하기에 나오는 현실적인 결론이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말하는 우려도 괜한 게 아니었다. 배즐은 발을 멈췄다.

"늑대야."

그는 산탄총을 품에 끌었다. 나도 총을 꽉 쥐며 앞을 겨눴다.

어둠 속에서 슬그머니 나타나는 늑대들은 척 보아도 지쳐 있었다. 두 마리의 늑대 중 하나는 어딜 다쳤는지 회색 갈기에 피를 묻히기도 했다.

"가까이 오는 놈은 내가 쏠게."

배즐이 외쳤다. 빗소리 사이로도 똑똑히 들리는 깔끔한 발음이었다.

잠깐의 대치가 이어졌다.

늑대라고 해도 별로 싸우고 싶은 상태는 아니었기에, 어쩌면 무사히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적대적인 늑대들은 그 적개심을 행동을 표출했다.

두 마리가 연달아 달려왔다.

────탕!

먼저 접근한 늑대가 산탄에 맞고는 뒹굴었다. 확인할 것도 없는 즉사였다. 그에게 두 번째 늑대가 이어 달려들었다.

나는 진즉 방아쇠를 당겼었다. 하지만 소총에서는 가벼운 반동만 느껴지고, 아무런 화약 폭발음도 따라오지 않았다. 빗물에 의한 불발이었다.

"필레몬 허버트!"

배즐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탕!

두 번째 총성이 나고, 늑대가 쓰러졌다.

가까스로 총알을 교체하는 시간이 맞았던 것이다. 나는 깊은 한숨을 흘리며 탄피를 빼냈다.

"일부러 그랬지?"

"아니, 진짜 아니야. 방금 껀 불발이었다고."

나는 급하게 변명했지만, 배즐은 농담이었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나는 괜히 젖지 않은 속옷으로 약실의 물기를 닦아냈다.

어쩌면 이런 삶을 바랐을지 몰랐다.

고독하게 인생을 견뎌내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혹은 받쳐주면서 사는 그런 삶 말이다. 아니,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말 한마디만 한다면, 당장에라도.

"잠깐."

앞서 걷던 배즐이 한 손을 들며 신호 보냈다. 나는 또 다른 습격을 예상하고, 소총을 앞으로 겨눈 채 천천히 걸었다.

어두운 빗속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건, 지킬 박사였다.

이제는 옷 같지도 않은 넝마를 두르고 있는 모습은 완연한 야수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시점에서 거의 죽음을 각오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불사의 야수와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배즐의 반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는 불안하거나, 겁먹은 것 이상으로 어떤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 듯이 경악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본 게 뭔지 알기 위해 조금 더 걸었다.

그러자 서서히 시계가 트이며, 나 역시 그 골목 깊숙한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걸 형용할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어떤 특정한 형체를 가지지 않은 유동체처럼 검고 무성한 존재였다. 그나마 그 안에서 닮은 것을 찾아보자면 커다란 늑대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보자마자 그게 뭔지 알았다.

그건 실그윈 숲의 야수가 몸소 낳은 새끼였다!

그 옆에는 겁먹은 듯이 우는 어린 늑대 한 마리가 있었고, 이미 인간의 피부가 다 벗겨져서는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워 보이는 야수가 두엇 있었다.

"저것들, 저것들은 이걸 지키려고 한 건가?"

배즐은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 말대로, 지킬, 아니, 실그윈 숲의 야수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항상 달려드는 모습밖에 보지 못했기에, 그게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단 것은 여실히 느껴졌다.

그 모습은 배즐이 말한 것처럼 새끼와 부상자를 지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인간을 향한 복수가 아니었던 거야."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뱉을 때마다 입에서 쉰내가 흘렀다.

"늑대는 자손을 지키기 위해 도시에 왔던 거야!"

나의 가설은 모두 빗나갔다.

실그윈 숲의 야수가 늑대와는 무관한 고대의 존재라는 추측, 늑대가 인간에게 복수를 꾀한다는 그 모든 추측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것은 인간과 야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맞았다.

그러지 않고선 지금 내가 보는 광경을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2년 동안 야수가 사람에게 쫓기며 도시를 떠나지 못한 것도, 이제 와서 늑대 무리가 런던에 나타난 것도 모두 설명이 되었다.

나는 전에 마리가 하려다가 만 말을 이제 알았다.

그건 나는 느낄 수 없는, 마리와 야수, 그리고 셰리 패트릭만이 공유하는, 고아들만이 가질 수 있는 정서였다.

실그윈 숲의 야수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인간은 출생을 부정하고 숲에 버렸고, 늑대는 인간에게 죽어 사라졌다. 그랬기에 수백 년을 살고도, 야수는 여전히 고아였다.

그 긴 세월을 숲에서 숨어 살던 야수는 그랬기에 셰리 패트릭 앞에서는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둘은 너무나도 닮았기에, 그러기에 그건, 몸을 빼앗은 게 아니라....

────탕!

배즐의 산탄총에서 탄연이 잠깐 흘러나왔고, 이내 비에 씻겨 사라졌다. 나는 놀라서 그와 총구가 향한 방향을 바라봤다.

총알은 모두 실그윈 숲의 야수에게 꽂혔다. 정확하게는 그가 몸으로 막아낸 형국이었다.

"봐라, 필레몬. 피하지 않는다."

배즐은 날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저번이랑 달리 상처도 바로 낫지 않는구나. 상처가 크면 낫는 데도 오래 걸리는 모양이야."

내가 야수의 진실을 알아내고 경악하는 동안, 배즐은 꾸준히 여기서 살아나갈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끝에 내린 결론은, 차마 나는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잔혹한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조금 전에 품었던 망상을 정정했다.

우리는 평생 서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탕! 탕!

배즐은 계속 쐈다. 총성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상황에 맞지 않는 공포를 느꼈다.

불현듯 찾아든 한 불쾌한 상상 때문이다. 나와 야수는 서로 죽이기를 갈망한다. 이건 이성적인 존재인 나조차 거부할 수 없는 충동이다. 하지만 야수는 지금 가만히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만일, 정말 만에 하나, 동족을 아끼고,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 생물의 본성이라면, 절대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에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그때, 나는 다름 아닌 배즐을 봤다. 마침 그도 날 보고 있었다. 그는 절반 정도 나의 거울이었기에, 나는 어렵사리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게 되었다.

나도 총을 들었다. 그 뒤에 내가 쐈는지는 기억이 흐릿했다. 총알을 세어 본다면 알겠지만, 나는 총알을 주머니 채로 버려서 지금은 알 방법도 없다. 유일한 공범인 배즐은 그 일이 있고 바로 떠났기에 물을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해가 뜰 때까지 우린 살아 있었다.

우리 뿐만 아니라, 경찰과 형사도 살았다. 그들은 다시 한 번 후방에서 전력을 규합해, 남은 야수와 늑대를 모조리 사냥했다. 그런 그들이 우리를 발견했을 무렵, 골목에는 차마 살아있다 하기 어려운 실그윈 숲의 야수가 있었다.

두 마리의 새끼와 상처 입었던 개체는 죽은 지 시간이 꽤 지났다고 했다. 나는 그걸 쏜 게 내가 아니길 절실히 바랐다. 여하튼, 야수의 행방은 알지 못한다. 죽었거나, 그에 준하는 상태가 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는 이제 야수를 죽이려는 충동을 느끼지 않는다.

.........

.....

...

..

.

배즐의 소식은 신문으로만 접할 수 있었다. 그가 영 서장에게 보수를 묻지 않은 것도 이제야 이해되었다. 두 사람은 정부 각처와 기자들을 방문하며 이번 사태 이면에 있던 수사국의 실태를 날조하며, 그러나 반박하려거든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 형태로 퍼트렸다.

나는 이것만 보고도 일련의 일화를 각색한 게 배즐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스토리텔링이 그의 방식과 같았으니 말이다. 그가 사기꾼인 걸 알고도 굳이 중용한 영은 사냥꾼으로서 배즐이 아닌 작가로서 배즐을 요구하고 있었으니 그가 정직한지 여부는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던 셈이다.

거기까지 알고 나는 신경을 껐다. 두 거짓말쟁이가 런던의 정치판을 어떻게 흔들어놓건, 페터 수사국장이 어떻게 대처할지, 윌슨은 어떻게 되었는지, 무엇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날 밤 이후, 내 안에 응어리진 진흙 같은 게 빗물에 씻겨 내려간 기분이 들었다. 밤마다 혈액을 충동질하던 야수의 꿈은 꾸지 않게 되었다. 대신에 꽃의 꿈을 꿨다. 이름 모를 하얗고 여린 꽃 한 송이가 부토 위에 싹튼 그런 꿈을 말이다.

마침 그날도 비가 왔다.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묘에 들른 나는 배즐과 재회했다. 우산을 쓰고 있기는 했지만, 멀리서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묘비 앞에 서 있었다. 서 있는 자세가 엉거주춤하기로니 거기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 같았다.

그도 머지않아 날 발견하곤, 서먹한 표정을 짓더니 옆으로 비켜났다. 그의 배려가 무색하게, 나는 그 옆에 설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 묘, 거기 아니야."

"어?"

배즐은 어색하게 탄성을 냈다. 어쩌면 그런 소리는 내지 않았는데, 내가 빗소리를 잘못 들은 것일 수도 있었다.

"아버지 묘, 거기 아니라고."

나는 다시 말했다.

"기리는 마음만 있으면 됐지, 장소가 뭐가 중요해."

심히 뻔뻔한 말투로 그리 말하면서, 그는 내가 아버지 묘 앞에 서자 은근슬쩍 내 옆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나란히 선 채, 묘비도, 서로도 아닌 정면을 바라봤다. 앞에는 누굴 위해 만들어졌는지 모를 예수상이 이끼를 담요처럼 덮고 있었다.

"그래, 기억하기 쉽네. 예수상 건너 묘."

우리는 그렇게 나란히 섰다. 동행이라 할 만큼 가깝지는 않고, 그렇다고 남처럼 보일 만큼 멀진 않았다. 우산 끝도 가까스로 닿는 거리에서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내일 런던을 떠날 거다."

"둘째 형님은?"

"진작에 만났지."

대화는 어색하게 끊겼다. 이 순서대로라면 다음에 나올 사람이 누군지 둘 다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결국 묻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물은 거나 다름없었기에 배즐은 알아서 답했다.

"어머니는."

그는 자신이 말을 꺼내고, 다시 침묵했다. 그것도 대답이 되었다. 우리는 말없이 대화하고 있었다. 피가 이어진 남, 말하지 않는 대화, 그 정도가 우리 관계로 딱 어울렸다.

"만나지 않아도 되나?"

"됐어.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봄비는 차가웠다. 아니, 늦겨울 비는 쌀쌀했다. 우리는 대화 없이 한참 거기서 있었지만, 배즐이 재채기하고 나서부터 헤어질 준비를 했다.

그는 떠났다.

인사는 없었다. 나는 그가 떠난 자리를 내려다봤다. 진흙에는 그의 구두 밑창을 본뜬 작은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비는 계속 내렸고, 고이다가 넘친 물은 줄줄 흘러서 잔디를 지나고, 보도 틈 사이에 빠졌다가, 끝내는 빗물과 구분할 수 없게 되어 사라졌다. 어디론가, 강으로, 그래, 강으로.

곧 묘비 앞에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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