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52화 (152/232)

§152. 두 고아

부고는 초청장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한동안 그것이 장례식 초대장이란 것도 알지 못했다. 편지의 말미에는 정성껏 악의를 치장한 발신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멜리 에식스(Amélie Essex), 전에 들어본 이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국적은 유추할 수 있었고, 고인과의 관계도 익히 짐작할 만했다.

이 초대장이 날 위해 일부러 공들여 보낸 것이란 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내가 장례에 참가해도 되는지 망설였다.

마침 정리하려고 꺼내둔 양복만 없었다면, 분명 들르지 않았을 터였다. 생각해 보면, 봄은 유난히 이별이 많은 계절이었다. 이맘때면 나는 절로 양복을 준비하며 어떤 부고가 날아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 나는 장의사보다 남의 죽음에 대비하고 있었다.

식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비록 내가 영국인, 그러니까 쥐새끼 주검 하나조차 세기의 비극처럼 과장할 수 있기는 하나, 이 말에는 달리 어떤 수사적 과장도 없었다.

심지어는 너무 소박한 나머지 여길 찾지 못한 문상객이 몇 번이나 같은 거리를 지나는 모습조차 볼 수 있었다. 그중 일부는 뒤늦게 머쓱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고, 대부분은 자신이 낄 만한 자리가 아니라고 믿는지 당황하며 발을 돌렸다.

결국 식장에 남은 것은 자리의 품격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믿는 일부와 오로지 절박한 이뿐이었다. 유이하게 예외가 있다면 나와 소피였다.

"...고인의 소식을 듣고는 탄복하여 식음이 되질 않아 의인의 삶은 어찌도 이렇게 짧은가...."

내가 사람 눈을 피해 조금 늦게 도착했을 때, 장례식은 이미 한참 도중이었다. 늙은 신부는 꺼질 것처럼 희미한 목소리로 적어온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었다. 나는 이 작은 소리를 다른 사람들이 어찌 듣나 궁금했는데, 조금 관찰한 끝에 아무도 듣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역설적이게도 이 자리의 주인공은 고인도, 상주도 아닌 소피였다. 예법을 지켜 소박하게 차려입은 그녀 주변에만 유독 많은 사람이 앉아서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 나갔다. 누군가를 슬퍼하는 것조차 모독할 만큼 욕심이 어린 자리였다.

물론 내 곁에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사람 수가 적었다. 소피를 제외한 대부분이 하나 혹은 둘 정도로 떨어져 앉아 있었고, 거리의 틈이 벌어진 만큼 경박하게 많은 속삭임이 살랑이며 오갔다.

"고인에게는 후계가 없어서."

"듣자니 벨기에 사업도 별 볼 일 없었다는데."

추문과 우려 속에서 나는 하나의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무슨 신호나 암시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 그대로 불현듯 찾아든 불쾌감이었다.

이런 자리에서 지나치게 두리번거리는 것도 아무래도 경우에 맞지 않는지라, 나는 시선의 출처를 찾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천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요, 하느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지니...."

식장에서 살짝 떨어져 뒷구석으로 가니, 담배를 태우며 시간을 보내는 자가 더러 있었다. 내가 그들의 대열에 섞이고 나서야 시선은 사라졌다.

나는 슬며시 돌아 드문드문 앉은 조문객 사이에서 내게 그만한 악의를 품고, 또 드러낼 만한 사람을 탐색했다. 소피와 주변인은 가장 먼저 후보에서 빠졌다.

그녀처럼 거짓을 두르고 사는 사람들이 어찌 제 감정을 능히 표현할 수 있을까. 그거야말로 가능성 없는 이야기였다.

결국 가장 눈에 띈 것은 면사포와 검은 상복을 단정히 입은 여인이었다. 멀리서 봐서는 알기 어려웠지만, 머릿결에서 윤기가 도는 것을 보아 젊거나 어린 여성처럼 보였다.

"남작님."

누군가 내 어깨를 서슴없이 만지며 불렀다. 고개만 움직여 돌아보자, 머리가 벗겨진 남성이 실실 웃으며 날 보고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아니었고, 알아가야 할 만큼 피차 공통점이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날 압니까?"

"아무렴요. 잘하신 겁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죠."

나는 부외자가 그 건에 대해 아는 척하는데 신물이 날 지경이었고, 그렇다고 앞선 수십 명의 잘못을 눈앞의 한 사람에게 화풀이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냥 말을 돌리기로 했다.

"혹시 저 사람도 누군지 압니까?"

"누구요?"

그는 내 시선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아, 에식스 양 말이군요. 고인의 외딸이죠. 아직 어리다고 들었는데 딱하기도 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아까 대화해 보니 생애 대부분을 벨기에에서 보냈다는 만큼 꼭 프랑스인처럼 말하더군요."

그러고는 그는 꼭 추문을 말하는 것처럼 속삭였다.

"그러면 아멜리 에식스 양이겠군요."

나는 넌지시 추측을 물었다.

"남작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그 대답에 나는 그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는 흡연자들이 독한 연기를 뱉어대며 계속 말했다.

"나 때만 해도 에식스가 참 대단했는데...."

"뭐하던 사람이지?"

"누구?"

"죽은 사람...."

"잘 몰라."

제자리에 돌아가니 신부는 여전히 힘없는 음성을 계속하고 있었다. 높낮이가 없으니 언제 주목해야 하고, 또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지루한 연설이었다.

"...주께서 너는 흙에서 난 것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하시매 이별이란 정해진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

바람이 불자 푸른 나뭇잎이 맞부딪히며 소란스러웠다. 앞자리의 노인은 휑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넋두리처럼 혼잣말했다.

"이 나라도 이제 끝장이구나."

장황한 신부의 추도사가 끝나고, 기다리던 인부가 관을 장사하고 나서 장례식은 이렇다 할 폐막 절차도 없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조문객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는 내가 자리를 뜰 때쯤에는 일부러 남아 있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문득 명가의 쇠락은 이 시대에 흔한 일이라지만, 에식스 정도의 이름이 이렇게 관심받지 못하는 것도 드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소피가 말한 삼투 현상인가, 아니면 사람들 마음속에서 에식스 가문은 필 에식스 백작의 사망과 함께 몰락하였는가. 한동안 이런 우울한 상상이 날 따라붙을 것은 분명했지만, 지금은 이걸로 족했다.

나는 애써 떨쳐내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묘지에서 멀어지려 했다.

입구에 서서 기다리는 여인만 없었더라면 그랬을 터였다.

"처음 뵙습니다."

나는 제자리서 모자를 벗어 가슴 위에 올리며 살짝 절했다. 나란들 좋은 반응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가까이서 본 여인은 기껏해야 20대 초입이나 되어 보였고, 그런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닥쳤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돌아온 말은 너무나도 예상의 궤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용서 못 해."

아멜리 에식스는 말했다. 나는 반쯤 쉰 목소리로 물었다.

"저를 압니까?"

"모를 줄 알길 바라는 건가요, 아니면 그만큼도 모를 정도로 우습게 보는 건가요?"

"모욕할 셈은 아니었습니다."

"필레몬 허버트, 당신이 저지른 일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 종류의 원망에 익숙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처럼 직설적이고 올곧은 원망을 앞에 두고는, 나는 비겁자처럼 저도 모르게 한없이 수비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외람되지만 그건 정당한 결투였습니다."

"영국에서는 공개 살인을 군중의 구경거리로 내세우는 것도 결투라고 하나 보죠?"

"고인께서 바란 일입니다."

나는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데 수치스러워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설령 아버, 선인의 일이 무고하다 해도, 당신이 가문에 진 죄는 그것 하나뿐이 아닐 텐데요."

그녀는 차가운 미소를 띄웠다. 분노 속에서 은연중 드러난 모종의 우월감이었다. 좀처럼 드러내기 힘든 추한 감정마저 그녀는 여실히 노출했다.

"무슨 뜻인지 도통."

"조부께서 타계하시기 한 주 전에 당신과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무심결에 되물었다.

"그걸 누구에게서?"

"그게 중요한가요?"

"아니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라도?"

"발뺌인가요? 조부의 죽음은 누가 봐도 명백히 수상했어요! 그토록 정정하시던 분이 하루아침에 늙어서 죽다뇨!"

그녀의 통찰은... 유감스럽게도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게 제 소행이라 말하고 싶으신 거군요."

"아닌가요?"

"일주일에 걸쳐 사람을 늙어 죽게 하는 약물이 있다면, 분명 저는 용의자가 되겠군요. 유감스럽게도 경찰도, 의사도 고인의 죽음에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지만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수사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멜리는 처음으로 입을 다물었지만, 겉으로 보이는 분함은 말하고 있을 때보다 더욱 선명히 드러났다. 보이는 그대로 그녀는 너무 어렸다. 적의는 뚜렷했지만, 위협보다는 안타까움만을 느꼈다.

"당신의 목적이 뭔지는 몰라도, 저까지 죽일 순 없을 겁니다. 제가 버티는 한, 에식스의 핏줄은 끊어지지 않아요. 당신의 죄는 반드시 고발해서 심판받게 하겠어요."

그녀는 소리높여 외쳤다. 증인이라곤 나와 제복 차림의 여인, 그리고 평생 침묵을 지킬 무수한 시체뿐인 선언이었다.

"보기에 위태로워, 하나 조언하자면은."

나는 말했다.

"이런 시대에, 굳이 귀족으로 살고자면, 정직은 미덕이 아닙니다. 적의는 상대를 찌를 수 있는 비수 없이는 보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오늘 아무것도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아멜리는 혐오를 숨기지 않고 째려보며 말했다.

"기분 나쁜 영국인."

그러고는 그 자리를 서둘러 멀어졌다.

나는 그녀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 천천히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이 대화를 엿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나는 염탐꾼이 숨어 있는 큼지막한 묘비 뒤로 다가갔다.

그리곤 그 정체를 확인하곤 경악했다.

소피는 묘비 뒤에, 굉장히 충격받은 얼굴로 주저앉아 있었다.

"엿들은 건 사과해요."

잠시 후, 침착해진 소피는 말했다.

"제가 남의 말을 엿듣고 다니는 여자가 아니란 건 아시잖아요."

그녀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농담인 게 분명했지만, 나는 차마 웃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굳은 얼굴로 서 있자, 조금 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이에요. 엿들을 생각은 없었어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압니다."

나는 말했다.

우리는 서로 무얼 물어보고 싶은지 알았지만, 선뜻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떤 면에서는 아멜리의 정직함이 훨씬 나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처럼 되기에는 너무 닳은 인간이었다.

"저기 아까."

당연히 소피가 먼저 말할 리는 없었기에, 나는 겨우 아까 지은 표정에 대해 물으려 했으나 그녀는 끝까지 묻게 두지 않았다.

"제가 정부 출신이란 건 아실 거예요. 부모에게 팔렸다고."

"들은 적은...."

나는 그녀의 눈을 보곤 정정했다.

"일부러 뒤를 캐고 다닌 건 아니었습니다."

"변명하실 필요 없어요. 남 뒷담화나 하고 다니는 분이 아닌 건 알아요. 그리고... 이런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걸요."

결국, 나는 감당하지 못하고 화제를 돌렸다.

"이런 자리는 참가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책임감도 느끼지 못할 만큼 냉혈한이라 생각하시나요?"

잠깐의 침묵.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맞아요, 저는 비정해요. 죄책감 같은 건 조금도 느끼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아무 이득도 없는 이 자리에 대체 왜 온 걸까요."

나는 어떤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지만, 소피는 실제로 혼란스러워 보였다. 어쩌면 그녀를 둘러싼 모든 거짓과 소문을 벗겨 내고, 얼마 남지 않은 진실만을 남긴다면 이런 모습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허탈하게 웃었다.

"우습죠? 장례식에 참가하는데 득실을 따지고 있으니."

"공감과 위로를 바란다면, 제가 적당한 상대는 아닐 겁니다."

나는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놀랐다. 입 밖으로 내놓으니 머릿속으로 떠올렸을 때보다 훨씬 퉁명스러웠던 탓이다. 그 모습을 보고 소피는 깔깔 웃었다.

"당신은 변하질 않네요. 스스로 떳떳한 삶은 얼마나 멋질까요. 하지만 아시잖아요, 너무 늦었다는 거."

그리고 말했다.

"소피는 사랑을 몰라요."

바라본 그녀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남성을 설레게 하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역겹고, 아름다운....

나는 집에 돌아오고, 양복을 정리하지 않았다. 마리에게 치우게 하지도 않았고, 그저 의자에 걸어놓고 하루를 보냈다. 그건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 되었다.

다음날, 또 다른 부고가 날아들었다.

소피가 죽었다고 한다. 전날 밤의 일이었다. 평소 입던 화려한 의상이 아닌 후줄근한 잠옷 차림으로 테라스에서 뛰어 내렸다는 것이다.

자살 또는 사고사, 나는 마지막까지 그녀답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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