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54화 (154/232)

§154. 뇌가 녹는 열병

"하지만 놀랐습니다."

블랙은 이런 식으로 말을 텄다.

"이런 곳에서 선생님을 뵐 줄이야... 다른 사람 유품이나 뒤적거리실 분은 아니고, 아시던 분입니까?"

"그래, 조금은."

"그럴 줄 알았습니다."

짧은 대화가 부자연스럽게 끝났다. 우리는 소피 부인이 살던 집 앞에 멈춰 섰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블랙은 어찌 이해했는지 어깨를 으쓱이더니 문고리를 당겼다.

"이봐."

잠금은 걸려 있지 않았다.

"이건 범죄야."

"그런 구분도 두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매번 말하지만, 자네와 나를 동선상에 두지 말게."

열린 문 너머로 흙먼지와 발자국으로 지저분한 현관이 드러났다. 경찰 외에도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다는 말은 사실 같았다. 우선 블랙이 들어가고, 내가 그 뒤를 따랐다.

그는 장갑 낀 손으로 벽을 쓸며 앞으로 걷던 중에 벽에 걸린 액자 앞에서 멈췄다. 사진 없는 액자였다. 오래 닦지 않은 먼지 때 위로 최근에 난 손자국이 역력했다.

"제법 살았나 봅니다."

블랙은 휘파람 불며 액자를 벽에서 떼어냈다. 나는 그 손을 지팡이로 내리쳤다.

"아얏!"

"내 눈앞에서 하나라도 훔쳐봐."

"그냥 보는 겁니다. 제가 좀도둑입니까?"

그는 앓는 소리로 항변했다.

"아시다시피, 이런 일은 제 전문이 아닙니다."

"빈집털이?"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저야 사람 간의 오해를 없애고, 마음의 문을 여는 작업을 주로 하지 않습니까?"

블랙은 독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관계란 산 사람 사이에서나 생기는 것이니, 죽은 사람 뒷정리 따위는 제 분야가 아니죠."

"말이나 못하면."

우리는 한층 더 안으로 들어갔다. 소피의 집은 고급 가구와 이국의 문양이 수놓아진 카페트, 태피스트리로 덮여 있는 것 외에는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였다. 그녀를 아는 나로서는 서정적인 분위기 자체가 놀라웠다.

"어떤 용무인지는 묻지 않으십니다?"

"대답 못 들을 질문하는 취미는 없네. 그리고, 듣지 않아도 무슨 일인지 짐작은 가고."

블랙은 무성의하게 가구를 이리저리 뒤적이며, 내 쪽을 보지도 않고 따분한 말투로 말했다.

"뻔하죠, 늘 전형적입니다. 제 일이긴 하지만, 사실 별로 중요하진 않습니다."

"자네도 그런 말을 하는군."

"남의 뒤나 닦고 다녀서야 버는 돈은 뻔하죠. 그것도 전형적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일은 딱히 제 전문이 아니거든요."

"그러면, 어째서 맡았나?"

내 질문에, 블랙은 슬쩍 상반신을 비틀어 돌아봤다. 그의 입가에는 불쾌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제야 물으시는군요."

나는 내가 직전에 했던 말을 바로 거슬렀다는 걸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그는 태연하게 되물었다.

"그러는 선생님께서는 뭘 하고 계십니까?"

"하나만 확인하지."

블랙의 질문에, 나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내가 대답할 거라 생각하고 묻는 건가?"

"질문에 돈 드는 건 아니니까, 혹시 모르잖습니까. 그리고 좀 전에 말한 것처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거야말로 제 전문 아니겠습니까. 대답을 듣는 거야, 제 역량에 달린 문제겠죠."

이러한 낙천적인 어조와 반반한 외모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속아 넘어갔을지 쉬이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허나 분명한 건, 둘 모두 나를 구슬리기엔 턱없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 합의도 없이 실내를 수색했다. 블랙이야 그 나름 의뢰주를 위해 찾는 게 있을 테고, 나는 뭘 찾는지도 모른 채 마구 헤집었다.

소피 부인처럼 강한 여인이라면, 어떤 단서를 남겼으리란 막연한 기대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집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오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찾으리란 희망은 사그라졌다.

그런 와중에 눈에 들어온 건, 책이었다.

눈에 띈 건, 순전히 우연이었는데, 그 외에도 바닥에는 널브러진 책이 잔뜩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책장 앞에 쌓여 있었지만 말이다. 가치를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 내용물을 마구 뒤져본 것이 분명했다.

다만, 그 책은 홀연히 동떨어진 바닥에 놓여 있었다. 다른 서적과 달리 구겨지거나 한 흔적은 없었다.

나는 무심코 그 앞에 다가가 허리 숙였다. 그러자 블랙은 곧장 반응했다.

"고서군요. 저야 가치는 잘 모르지만."

그가 관심을 보이자, 나는 재빨리 책을 집어 들었다.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슬쩍 물러났다.

"무슨 내용입니까?"

"성경, 아니, 우화인가."

나는 훑어보며 혼잣말했다. 내용은 옛 프랑스어로 되어, 읽는 게 쉽지는 않았다. 대체로 단어 위주로 읽었는데 그조차도 맞게 읽는 건지는 알기 어려웠다.

"악마, 어떤 백작에 관한 내용이야. 악마 백작, 기독교적인 교훈이 담긴 책인가? 악마에게는 자식이 있었고...."

무심결에 읽던 중에, 나는 황급히 책을 덮었다. 소피 부인은 미심쩍은 비밀 결사의 일원이었고, 그런 그녀의 서재에 있는 이러한 고서가 아무 의미 없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블랙이 의미와 가치를 다 이해할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그라면 살점으로 뼈대를 만들어 팔아먹을 줄 아는 작자였다. 그런 그에게 더 보여줘서 좋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이건 가져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평소에도 꽤 그러시더니, 오늘은 아주 작정하고 이중적이십니다?"

"자네도 하나 챙기게. 유연하게 가자고."

나는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그를 구슬렸다.

블랙은 여전히 의심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책의 가치를 낮게 평가했는지 더 추궁하지는 않았다. 결국, 그가 가치 있는 금붙이를 찾아 떠난 사이, 나는 책을 품 안에 단단히 챙겨 넣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한 가지 고찰을 했다. 원론적인 의구심이었다.

책은 숨겨져 있다기보단, 우연하게 거기 놓인 것처럼 보였다. 책장과는 거리가 제법 있었으니, 어떤 사고로 떨어져 나왔다기엔 부자연스러웠다.

앞서 책장을 뒤진 작자의 소행이라 치부하기엔, 홀로 종이가 구김 없이 깔끔한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누군가 책장을 뒤지기 전에, 다른 사람이 일부러 이 책만 꺼냈다고 유추할 수 있었다.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면 읽었을 테고, 아마 소피가 그랬을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당연한 추측이었다.

나는 일련의 흐름을 정리했다.

죽기 전, 소피는 야밤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책을 꺼내 읽었다. 그리고 책장에 다시 꽂아놓는 대신, 그저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녀는 그 뒤, 오랫동안 만진 적 없는 먼지 쌓인 옷 상자를 가져와, 그 안에서 낡은 잠옷으로 꺼내 갈아입었다.

그리곤, 테라스에서 뛰어내렸다.

머릿속에 그려진 광경은 너무 기괴하여, 아무런 논리 없이 나열한 별개의 사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그 순간 느낀 감정은, 기시감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이런 죽음을 본 적이 있었다. 그게 무엇이더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십니까?"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블랙은 모든 용무를 마쳤는지 홀가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이제야 목발 이음매에서 피로감이 몰려왔다.

"일은 다 끝났나?"

"시답잖은 일입니다."

블랙은 동문서답했다. 그는 조금 뜸 들이더니, 대뜸 물었다.

"좀 전에 이번 일을 왜 맡았는지 물으셨잖습니까?"

"그래, 그랬지. 그런데?"

"실은 조사하는 게 따로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이번 일은, 경로가 겹쳤다고 할까요. 기왕 조사하는 겸 용돈벌이나 할 생각으로 한 것이고요."

"갑자기 무슨 바람인가?"

나는 선뜻 속내를 드러내는 블랙을 경계하며 물었다.

"이번 사건은 미심쩍은 부분이 꽤 있어, 오기 전에 나름 알아봤습니다. 죽은 소피 부인이라는 사람은 아주 수상하더군요. 연고자도 없고, 마땅한 자산도 없는데, 이토록 번듯한 주택가에서 홀로 사는 여인이라뇨. 게다가 가재도 고급으로 더러 마련하고 있고... 그리고, 그런 제 인식을 굳혀준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나 지켜보고 있었더니, 그는 날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겨우 이해했다.

"자네는 날 무슨 징조처럼 여기는군."

"부정하지는 않으렵니다. 아무튼, 선생님 지인이라면, 그리고 직접 조사하러 오실 정도면 평범한 죽음은 아니겠거니 싶었죠. 제 추측입니다만, 이번 사건은 자살이 아닙니다.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까?"

블랙은 당돌히 선언했다. 나는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십쇼, 제 전문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그가 하는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곧, 조금 전에 나눴던 대화의 연장이란 걸 깨닫고는 인상을 확 썼다.

"날 떠봤군!"

"거짓말은 안 했습니다. 겸사겸사 제 추측에 보탤 겸, 확인 좀 해본 거죠."

블랙은 뻔뻔하게 말했다. 그 태도가 얼마나 태연자약한지, 정말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전에 뵈었을 때, 제가 선생님께 했던 말을 기억합니까?"

"에드워드?"

나는 무심코 되물었다. 하지만 블랙은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때도 그 이름을 말했는데, 누굽니까?"

"아니, 미안, 잊어버리게."

"그리니치 말입니다. 천문대요."

블랙의 말에 가까스로 기억이 돌았다. 전에 그는 운석 소송을 언급하며, 그리니치 천문대와 관련된 비밀스러운 소문을 내게 말했다. 그 내용 중 대부분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녹아내렸지만, 나는 블랙에게서 정보를 끄집어내려고 일부러 아는 체했었다.

그것이 벌써 작년이었다.

"이제 천문대가 폐쇄된 지 2년입니다. 굼뜬 천문학자 나리들도 슬슬 이상을 눈치챌 상황이죠. 그리니치 역사상 천문학회를 2년 연속 주최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에 반해, 보안은 날이 갈수록 철저해져서, 그리니치 대학에 심어둔 정보원은 아예 접선 자체를 관뒀고요."

그는 드물게도 심란한 말투로 말했다. 말 자체는 편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더 애를 먹고 있는 듯했다.

"처음에는, 저는 그게 행성 X라고 생각했습니다. 태양계에 밝혀지지 않은 9번째 행성 말입니다."

"명왕성, 말이군."

"하지만 그렇대도, 비록 저는 문외한이지만, 고작 새로운 행성 하나 찾아서 발표하는데, 폐문 기간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었죠. 학자들은 박혀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으니,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랙은 갑자기 어투를 바꿔, 내가 익히 아는 탐욕스런 말투로 말했다.

"익히 아시듯, 자물쇠가 견고할수록, 담긴 돈이 많은 법이죠."

"자네는 금세 천박한 얘기를 하는 게 문제야."

"체면 차림은 비싸니까요."

그의 억양은 묘한 부분이 있어, 나는 때때로 그가 진담을 하는지, 농담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런 얘기는 지금 왜 하는 건가?"

"그 뒤로 생각을 좀 했습니다."

"그것참 놀랄 일이군."

"농담 고약하십니다."

블랙은 언짢은 말투로 답하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심각하게 말을 이었다. 경험상, 그가 진지해지면 피곤한 일이 생기곤 했다.

"재작년, 운석 소송이 있을 무렵에, 그리니치 천문대는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작년, 행성 X에 대한 소문이 공공연해졌죠. 하늘 저편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올해는."

그는 말을 멈췄다. 그저 가만히 선 것처럼 보였지만, 눈알은 바쁘게 움직이며 가치를 셈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세는 건, 금화의 무게뿐일 테지만.

어떤 결론이 나왔는지, 그는 조심히 말하기 시작했다.

"비밀 얘기입니다만, 최근에 여기저기서 이상한 제보를 받습니다. 혹시 뇌가 녹는 열병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빈민가를 중심으로 퍼지는 병입니다만."

"일이 일인지라, 자세하게는 모르네만."

"설명 드리자면, 말 그대로입니다. 병에 걸리면 점차 기억을 잃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고열에 시달리다가 사망합니다. 그러니까, 뇌가 녹았다고 말하는 것이죠. 정말 그런지는 해부를 해봐야 알겠지만, 어디 유행병으로 죽은 사람 해부할 만큼 담력 있는 의사가 흔합니까?"

블랙은 차차 설명했다. 그럴수록, 내 안의 기시감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죽음에 관한 기억이었다. 나는 이처럼 죽은 사람을 한 명 알았다.

오스카 피츠헨리 박사.

왕립 학회 소속이자, 학회의 악행을 고발할 자료를 모으다, 끝내 기억을 잃고 차에 치여 생을 마감한 그 불쌍한 인물 말이다.

"전례가 없는 기묘한 병인지라, 치료를 거부하는 의사도 허다하다는 듯합니다. 그야 골치가 꽤 썩겠죠. 그런데, 이 열병으로 죽은 사람들 사이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듯합니다. 어디까지나 야화입니다만."

블랙은 목소리를 한껏 낮춰 설명했다.

"하나는, 목격담입니다. 이 병으로 사람이 죽은 날이면, 주변에서 한두 명은 꼭 어떤 동물을 본답니다. 크기는 개나 고양이쯤 되는데, 털이 없고 날렵한 동물이 밤그늘 속에 나타난다고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열병으로는 꼭 밤에 죽는다는 겁니다. 병상 위에 누워 있던 사람들도 제 발로 실외로 나가서는, 길바닥에서 객사하는 것이죠. 어느 쪽이건 수상한 이야기지만, 나름 조사해본 결과, 비단 괴담 취급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근방에서야 잘 모르겠지만, 조금만 가난한 거리로 가도 아침이면 길바닥에서 시체 한둘은 쉬이 보이니까요."

그의 말대로, 문외한이 듣기에도 그 설명은 지극히 수상해서, 차마 생리학적인 증상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그런 것을 아주 많이 알았다.

"열병과, 천문. 둘을 엮은 데는 마땅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실내와 실외의 차이를 생각해보니, 천장 말고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밤하늘이 보이는 장소 여부뿐인 셈이죠. 그리고 저편에 정말 뭔가가 있다면."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발견했겠군."

블랙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께서는 두 말은 안 하시는 걸로 압니다. 지금 주변에 일손이 없어서 곤랍합니다. 전에 하신 약속, 조만간 지켜주셔야겠습니다."

기억, 열병, 밤하늘... 막연한 사건들이 서서히 맞춰지는 듯했다. 그 끝에 남는 건, 나의 추측이 바르다면 아마 왕립 학회이겠지.

마침 잘된 일이다. 저 하늘에 무언가 있다면, 거기서 무엇이 내려오는지 궁금하던 참이다.

그리 생각하고 있자니, 블랙은 넌지시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제가 말하지 않아도 선생님께서는 멋대로 조사할 줄 압니다. 제가 겸사겸사 돈을 좀 만진대도 문제는 없지 않습니까?"

분하게도, 나는 그 말을 부인하지 못했다.

...집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해가 완전히 저물어 밤이 되었다. 나는 큰길로 나가려 했더니, 블랙은 어째선지 더욱 외진 골목으로 가려 했다.

우리는 거기서 헤어졌다. 그러던 중, 나는 문득 떠오른 게 있어 돌아보며 그를 불렀다.

"있잖나, 전에 자네가 했던 얘기."

블랙은 제자리에 서서, 영문 모를 표정으로 날 돌아봤다.

"어떤 여성이 날 찾았다는 얘기 말이야. 그거 혹시...."

그는 끝까지 듣지 않았다.

"아니요, 소피 부인이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나 날 찾아다니던 여인의 윤곽은 다시 한 번 아지랑이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아, 하지만."

다시 돌아서자, 뒤에서 블랙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뭔가 떠오른 양 덧붙였다.

"나이는 얼추 비슷하겠군요."

"그것뿐인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나는 답례를 말하고는, 다시금 걸었다. 이번에야말로 누구도 서로 멈추지 않았다. 문득 올려다보니, 먹구름에 뒤틀린 밤하늘이 불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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