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57화 (157/232)

§157. 강과 하늘의 악의

피곤하다.

최근, 그런 생각을 하는 일이 늘었다. 피로는 새삼스럽지 않았다. 다리를 잃은 후부터 어딜 다니든 젖산이 필요 이상으로 쌓였다. 만성 피로는 의사가 말하지 않는 합병 증세였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탈진은 장기와 근육에서 오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영적인 측면에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쉰 적이 언제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옛일을 생각하자니 후두부가 따뜻해지며 도통 생각 안 하느니만 못할 정도로 멍했다. 적어도 근래는 쉬지 않았다.

"요즘 일이 많으셨잖아요. 그래서 그럴 거예요."

마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분명 그랬다. 요즘 따라 바쁜 일이 많았고, 대체로 끝 맛이 안 좋았다. 봄에는 새집으로 이사했지만 귀찮은 일을 보게 되었고, 원치 않는 결투 참관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리고 장례식도 여러 번 다녀왔다. 결투자하고... 아니, 결투에서 죽은 건 한 명일 텐데, 왜 식을 두 번이나 갔다고 생각했지?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나?

나는 바로 물었다.

"내가 최근에 장례를 다녀왔잖아. 그게 언제였지?"

"어떤 장례식이요?"

다행히 기억은 제대로 된 모양이다. 하지만 식까지 다녀와 놓고, 누구의 장례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주인님?"

"아니, 잠깐 생각 좀 하느라."

"역시 좀 쉬시는 게 어때요?"

그럴 수는 없었다. 대학 일이나 이사 건으로 맡은 일은 정기적으로 봐줘야 했다. 게다가 아서나 블랙에게 부탁받은 일도 있고, 여하튼 바빴으니.

"하다못해 오늘만이라도요."

마리는 조심스러웠다.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유리잔을 다루듯이.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내 모습도 어지간히 안 좋은 듯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잠깐 산책이라도 다녀오지."

"멀리까지 가시나요?"

마리는 걸려 있는 코트를 들고 따라왔다. 날이 풀려서 이젠 입고 싶지 않았지만, 런던 거리를 맨몸으로 다니는 건 옷을 더럽히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 멀진 않아. 그래도 늦을 테니, 문단속 잘하고 있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런던에는 새가 날지 않는다.

현지인이라면 누구나 알았지만, 예술가들에 의해 교묘하게 은폐되어 온 사실이다. 이것을 세상에 가장 먼저 고발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무명 사진사였다.

한 달을 런던에서 체류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가 찍은 사진을 인화하던 그는 자신의 사진 어디에도 새가 없다는 걸 깨닫고 이 비밀을 만천하에 알렸다.

1855년, 내가 태어난 해, 마지막 새가 런던 하늘을 떠났다. 무분별한 오염은 강과 하늘에 흩뿌려졌고, 지금에서는 어느 쪽이건 해충만 들끓는 곳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1858년, 템스 강 악취로 국회의사당이 폐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후에야 각종 산업 규제가 하원에서 발의되었지만, 그 대부분은 오수 규제안이었고 결의가 끝나고도 하늘은 무법천지로만 남았다.

1898년, 지금도 하늘에는 새가 날지 않는다. 그럼에도 푸른 하늘을 기억하는 늙은 화가들은 여전히 캔버스 변두리에 작고 새하얀 비둘기 한 마리를 그려 놓고는 했다.

도회지를 벗어나면 사정은 조금 나았다.

부산한 런던 항에는 외국에서부터 배를 따라온 갈매기떼가 꼬질꼬질한 날개를 퍼덕이며 해안가에 떠밀려 온 썩은 물고기나 불가사리를 주워 먹곤 했다. 그리고는 정박한 배가 항구를 나설 때면 함께 떠났다.

번잡스러운 항구에 낯선 바람이 분다. 바다를 건넌 이국의 해풍이다. 나는 번잡한 항구 한복판에 서서 바삐 오가는 인부들을 하염없이 구경했다.

가장 근래의 방문이라면 뇌수술동 당시에 태평양에서 들어온 일이지만, 아무 용무도 없이 여길 찾은 건 어언 2년 만이었다. 여기서 일한 적은 없지만, 추억만은 남 못지않게 묻혀 있었다. 아니, 침몰해 있었다.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며 귀국한 항구도 이곳이었고, 전쟁터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목발을 짚으며 하선한 항구도 바로 여기였다.

모두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잊기는 어려운 일뿐이었다.

아니, 정말 그런가?

고작 그런 일들로 런던 앞바다에 애틋한 감정이 생겼을까? 이토록 불연소한 감정이 맴돌이칠 수 있을까? 나는 분명 무언가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떠오르질 않았다.

분명 이쯤 있던 것인데, 나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잡히는 건 반쯤 찬 수통뿐이었다. 습관적인 동작으로 뚜껑을 열고 목을 축였는데, 예상과 달리 위스키가 아니라 미지근한 물이 들어 있었다.

내가 이랬을 리는 없고, 마리가 한 건가? 그녀는 내가 금주하길 바랐으니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영감님, 비켜요!"

나는 옆에서 들리는 고성에 허겁지겁 앞으로 걸었다. 그러자 내가 서 있던 자리로 하역한 짐을 짊어진 인부들이 우르르 몰려 지나갔다. 한편에서는 항구 확장 공사로 모래주머니와 돌을 수레 가득 실어 나르고 있었다.

런던 항은 원래도 바쁜 장소였지만, 템스 강 뱃길이 막힌 후부터는 더욱 그랬다. 정박장에는 이미 배가 가득 들어찬데다, 앞바다에서는 순번을 기다리며 정박한 배가 가득 보였다.

배들을 지켜보던 중, 나는 불길한 감각에 휩싸였다.

뭐라 설명할 수단은 없지만, 눈에 보이는 대수로는 삼 할 정도 배에서 불온한 일치감을 느낀 것이다. 물론 닮기야 했지만, 고작 그 정도로 이런 감각을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바다를 좋아하십니까?"

이유를 찾기 위해 배를 뚫어져라 보고 있자니, 누군가 옆에 다가와서 물었다.

"아니면 배를 좋아하십니까?"

잠깐 주변을 살폈지만, 달리 말걸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인사할 생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상대를 알아보고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이미 예상했는지 태연히 악수를 권했다.

"이거, 언젠가 뵐 줄은 알았지만,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허버트 씨."

나는 떨떠름하게 그 손을 잡았다.

"방금 질문에 답하자면, 둘 다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해군 출신으로 압니다만."

"그러니까 더욱 싫지요."

그는 사교적인 미소를 띠며, 품에서 시가 상자를 꺼냈다. 안에는 얼추 봐도 값비싸 보이는 담배 석 대가 들어 있었다.

"저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다르죠. 제 눈에는 바다나, 그 위의 배 따위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수평선 너머 잠자고 있는 드넓은 땅만이 보입니다. 채굴을 기다리는 부귀와, 고국에 안길 영화가 잠든 땅."

나는 그의 이력을 아는 만큼, 그가 무얼 말하려는지 알았다.

"암흑대륙... 아프리카 말이군요."

"사람들은 아무 가치 없는 황야로 간다며 비웃죠. 이름도 없는 대륙...."

남자가 시가에 불을 붙이자, 담뱃잎 특유의 단내와 바닷냄새가 번갈아 코끝을 스쳤다. 그러나 섞이지는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진짜 천치가 누구인지. 고대에는 아프리카는 지금처럼 버려진 땅이 아니었습니다. 초기 로마 제국이 그들과 교류했고, 심지어는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죠. 좌로는 아프리 민족, 우로는 페르시아 제국, 그리고 로마 제국을 아우르며 문화를 전파하던 위대한 나일 강의 문명이 있었습니다. 그런 강성한 문명이 기반을 둔 땅이 비옥하지 않다는 건 얼토당토않습니다."

그는 연기를 삼키고, 가래침을 바닥에 뱉었다.

"...설령 그렇다 쳐도, 자원 없는 땅이란 없는 법입니다. 아메리카 황무지에서 금이 쏟아진 것처럼, 우리는 황금과 석탄, 그리고 다이아몬드를 무더기로 쌓아두고 건드리지 않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심지어는 간단한 측량조차 해보지 않고요. 그게 왠지 압니까?"

나는 답하지 않았다. 아서와의 대화로 생긴 버릇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명백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나는 피치 못해 의문형 대답을 꺼냈다.

"글쎄요, 비용 때문입니까?"

그러자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조소를 머금었다.

"차라리 그러면 낫지요. 이유는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말 그대로입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 얘길 꺼립니다. 당신도 방금 그러지 않았습니까? 로마 때부터 그 땅은 아프리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몇몇 학자 외에는 모르는 사어나 다름없죠. 그렇다고 마땅한 이름을 붙인 것도 아니고, 그저 어두운 대륙이라고 부를 뿐입니다. 지구본을 보면, 그 넓은 땅이 마치 공동처럼 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중은 지중해 남쪽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로, 남극같이 일 푼 가치도 없는 동토에 집착합니다. 웃기는 일이죠."

그는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오늘부로 모든 게 달라질 겁니다. 제 오랜 숙원은 이제 막 출항했을 뿐이지만, 계획은 원대합니다. 우리는 북미에서 그랬던 것처럼, 남쪽 해안에 사람을 심을 겁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땅이라면 어디든 전선과 철도로 연결할 겁니다. 그렇게 마주치는 모든 땅에 깃발을 꽂고, 끝내 동쪽 해안에 이를 무렵에는 누구도 아프리카를 문명화되지 않았다고 못 할 겁니다. 이번 세대에는 끝나지 않겠지만,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남자는 목에 힘을 주고 외치며, 바다를 향해 손 뻗었다. 나는 그가 흥분한 나머지, 자신의 포부를 드러내고자 그런 동작을 취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는 앞바다의 배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이십니까? 저것들은 북해 조선 공학에서 새로 건조한 금세기 마지막 여객선들입니다. 본래는 백성 해운에 인도될 예정이었는데, 이번 사업 건으로 싼값에 대여했습니다."

나는 마침내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았다. 내가 눈여겨본 배들에는 모두 같은 사기가 걸려 있었다. 북해 조선 공학, 그리고 백성 해운. 일개 회사 선박이 한 항구에 집합해서 채워진 광경은 일찍이 본 적 없는 장관이었다.

하지만 나는 순수하게 감탄할 수 없었다. 그뿐이라면 불길하게 여길 이유도 없었다. 두 회사가 가진 공통점이 문제였다.

"배는 앞으로 10차례 런던과 케이프 타운을 오가며 사람과 자원을 나르게 되었죠. 처음에는 목수와 농부를 보낼 겁니다. 마을이 생기면 거기에 템즈 워터의 인부를 보내 수도 공사를, 그다음에는 중앙 런던 전기 조명를 보내서 전기 공사를, 그리고 서던&미들랜드 철도를 보내 철도를 깔 겁니다. 모든 공사가 끝나면 드 블랙스톤의 관측사를 보내서 광물을 찾게 하고, 마지막으로 광부들을 보낼 겁니다. 드 블랙스톤, 동인도회사는 그 계획의 초석으로 자금원 역할을 할 겁니다."

남자는 자신만만하게 회사 이름을 연호했다. 그 모든 이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업은 이미 저만의 것이 아닙니다. 영국의 부가, 노란 외벽 회사가 저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도 대중처럼 이 세실 로즈를 망상가라고 생각합니까?"

그는 한껏 들뜬 얼굴로 웃었다.

대화가 끝나고, 세실 로즈는 바로 떠났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아주 바쁜 사람이었고, 길게 대화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굳이 내게 말을 건 이유는, 한때 자신의 대척점에 선 주장으로 유명했던 내게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기 위함인 듯싶었다.

그뿐이었다. 다른 악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은 내게도 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세실 로즈에게는 날 적대할 이유가 많았다. 그가 소유한 '드 블랙스톤'은 노란 외벽의 아홉 회사 중 하나이니, 그는 아마도 관리위원회의 일원일 터였다.

게다가 그가 이번에 아프리카 개발을 위해 신설한 '동인도회사'는 다름 아닌 그 에드워드와의 협업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는 내가 음지의 경쟁자라는 인식조차 없어 보였다.

나는 상황을 다시 정리했다. 사실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회사와 위원회는 아서 프랑크를 적대하지만, 내가 그와 함께하는 줄은 몰랐다. 나 개인을 향한 공격은 모두 에드워드의 독단이었고, 그 과정에 회사의 힘을 빌리지도 않았다.

당연하게도 나는 에드워드가 내 정보를 저들에게 알렸을 줄 알았는데, 실상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상황도 전부 맞아떨어졌다.

문제는 의도였다. 어째서 회사와 손을 잡은 에드워드는 내 정보를 저들에게 숨기고 있을까. 그가 어떤 흉계를 품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자니, 필연적인 두통이 찾아왔다.

머리가 복잡해서 찾아온 항구에서 오히려 병을 얻어갈 지경이 되자,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머무르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쯤이었다.

"선생님."

오늘따라 날 아는 척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보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 있었다. 그만큼 이름을 떠올리는 걸 힘들어하자, 청년은 쓴웃음 지으며 자기 이름을 댔다.

"마구스입니다."

"아, 그래. 마구스. 또 부둣가에 만나는군."

나는 변명처럼 아는 척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에 대해 잊은 건 아니었다. 태평양을 건널 방법을 찾아 헤매던 내게 뱃삯을 대준 그 선한 젊은이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머리가 복잡하면, 바다를 보러 나오곤 해서요."

"마침 나와 같군."

잠깐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대로 헤어져도 괜찮았지만, 아무래도 마구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반쯤은 의무감으로 물었다.

"글은 잘 되어 가나?"

"사실은...."

그렇게 말하며, 마구스는 자신이 보고 겪은 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마구스는 처음에 쓰던 원고를 폐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했던 경고는 그의 혈기를 자극하는 역효과를 냈고, 마구스는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각국 천문학지에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직접 런던 근교에 있는 운석 충돌지점에 답사를 나갔다.

미국에 알려졌던 대로 운석이 떨어진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한때 마을이 있었다는 자취는 있었지만, 거주민이나 남은 건물 모두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그 점을 마구스는 수상히 여겼다. 크레이터는 100년 사이에 거의 풍화되어 있었고, 그는 직경을 측정하고, 운석에 관한 기록 사료에 의존해, 그만한 규모 충격을 내기 위해 얼마나 큰 운석이 떨어져야 하는지 계산했다.

정확한 자료가 없는 탓에, 마구스는 아주 큰 오차를 가졌지만, 평균 100kg 정도의 바위 정도 크기 물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는 현장에서 그러한 물체는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마구스가 보낸 전보에 답신이 날아왔다. 그는 여러 모순되는 정보 속에서 취합해서 신뢰성 있는 내용만을 수집했다.

시대의 한계로 정밀한 관측 자료는 남지 않았지만, 가장 이르게 관측된 것은 1105년 마인츠에서 일어난 충돌이었다. 그 뒤, 1532년 크라이오바 충돌, 1690년 흑해 낙하, 1785년 런던 충돌, 1811년의 빈 충돌, 1853년 브뤼셀 충돌, 1857년 이스탄불 충돌, 1888년 티미쇼아라 충돌 등, 본래는 달에 막힐 정도의 작은 운석 충돌이 기이할 정도로 짧은 주기로 계속되었다. 검증된 바는 없지만, 관측으로 추정하건대 육지가 아닌 바다에도 여러 지점 낙하가 있었을 거란 신빙성 높은 가설도 존재했다.

지도상에서 이런 지점들은 곡선으로 나타났지만, 마구스를 비롯한 천문학자들은 정말 올바른 지도인 지구본에서는 이것이 직선 형태라는 걸 알았다. 그 결과, 지구의 자전과 거의 평행한 선이 그어졌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마구스는 말했다.

"이러한 충돌의 공통점은 그 피해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을 하나를 지도에서 지울 수는 있지만, 거기 있는 건물과 사람을 모두 파괴할 만큼은 아닙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대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마을이 사라진 건, 운석 충돌과 별개의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운석 충돌을 은폐하려고 한 것처럼."

마구스는 두려운 목소리로 결론지었다.

"선생님 말이 맞았습니다. 이 연구는 제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일에서 손을 떼려고 합니다."

"잘 생각했네."

나는 진심을 담아서 대답했다.

우주에서 무언가 쏟아지고 있다. 악의가 비처럼 내리고 있다.

그날, 마지막 일정은 공장에 들르는 것이었다.

나는 가장 큰 아이,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여자애가 입기 괜찮은 옷을 몇 벌 집어들었다. 맞춤옷을 해주려는 생각은 있었지만, 당장 옷이 맞지 않는다니까 급한 대로 큰 옷을 사서 가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문앞에 왠지 여자애 한 명이 홀로 서 있었다.

"앗, 아저씨."

그 아이가 내게 말을 걸자, 나는 겨우 그 아이의 이름을 떠올렸다. 줄리엣이다. 가장 큰 아이.

나는 사온 옷을 건네려다가, 그녀를 보고 손을 멈췄다. 그리고 물었다.

"옷이 맞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니?"

줄리엣이 입고 있는 옷은 맞춤옷처럼 딱 맞아 보였다. 색도 바래지 않은 새 옷이었다. 그녀는 불안한 기색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네."

"그런데 그 옷은 아주 잘 맞아 보이는구나. 누가 사줬지?"

줄리엣은 내 눈치를 살폈다.

"괜찮아, 화 안 낼 테니까."

"아저씨요."

그녀는 말했다.

"아저씨가 재단사에게 데려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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