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60화 (160/232)

§160. 철의 요람

"이제 알았네."

나는 말했다.

"방금 말했던 괴물은 호기심이었어. 안 그런가?"

"위험을 핑계 대며 탐구를 멈출 만큼 어설픈 학자는 우리 천문대에 없었던 거지. 나 이외에는... 나만은 끝내 아무 선택도 하지 않았네. 학자의 기질이 약한 탓이야."

학자는 회한에 젖어 말했다.

내게는 이번 일의 실체가 점차 드러나는 듯했지만, 블랙은 전혀 종잡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가 영리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니다.

부족한 게 있다면 관대함이었다. 그는 음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한 포용력이 턱없이 낮은 탓이다.

"밤마다 굳게 닫은 금문이 열렸네. 해가 밝으면 우리는 숙직실을 돌며 사라진 인원을 확인하고, 단단히 준비한 채 적도실로 가서 실종자를 다른 방으로 옮겼네. 당연하지만 안에서 그들이 뭘 관측하고 깨달았는지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 아마 기억도 하지 못할 테지만."

"이 헛소리를 들어주고 있어야 합니까?"

블랙은 신물이 난다는 어조로 짜증 냈다.

"정리합시다. 그리니치 천문학자들이 모두 이반 황제처럼 뭔가를 보고 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걸 잊기 위해 악마인지 뭔가와 계약해서 기억을 지웠다고요?"

"악마라고 할 수는 없지. 그건 엄연한 생물이니까."

학자는 꿋꿋이 설명을 계속했다.

"런던, 빈, 이스탄불... 몇몇 역사적인 도시에서는 천문 망원경을 팔지 않네. 그리고 그런 도시에서 천문을 배우게 되면 누구나 같은 서약을 거치지. 오직 천문학자 사이에만 공유하는 밤하늘의 비밀이야."

그는 여러 도시를 호명했다. 마땅한 공통점 없이 나열된 듯한 명단이었지만, 나는 최근 그 도시들에서 일어난 사건을 하나 알았다.

"모두 운석이 충돌한 도시군."

"우리가 알고자 했던 건, 지구를 공전하는 암석의 정체였지, 추락 원인 자체는 전부터 알고 있었네. 어느 생물의 이동 경로 아래에 있기 때문이야. 부딪히고 밀려서는 그대로 지면에 충돌한 거지."

학자는 말했다.

"밤하늘은 생물의 밑면이다. 무수한 숫자의 겹눈과 외골격을 가졌으며, 자전을 따라 지구를 공전하며 떠다니는 광물을 포식하는 존재이지. 그러면서도 태양의 맞은 편에서 매일 지구를 한 바퀴씩 돌기에, 그 실체는 누구도 보지 못한 채 구름이나 안개 따위로 곡해하게 되는 거야."

그는 계속 말했다.

"아마, 구원을 바랐던 거겠지.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당시에는 신처럼 여겨지던 존재였어. 우리는, 나의 전 동료들은 저 생물을 런던으로 불러들였네. 그런 감정도 느낄 줄 안다면, 분명 기꺼이 응했겠지."

"스스로 밤하늘에 비견할 만큼 거대한 생물이라 하지 않았나? 아무리 밤이 어둡다고 해도, 그런 것이 도시에 나타났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

나는 물었다.

"그럴 테지. 내려보낸 것은 알 뿐이었으니까."

그러자 학자는 담담히 답했다.

"그야 기뻐하겠지. 런던은 특히나 마음에 드는 산란지였을 테니까. 유충의 먹이인 해충이 들끓고 있으니까."

나는 좀 전에 보았던 시체에서 파리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마침내 이해했다. 포식자가 있기에 오지 못했을 뿐이었다.

"저것은 알을 품고는 상공에서 수백, 수천 년간 산란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 뿐이야. 식사하고, 번식하는 존재가 신이 될 턱이 있나. 정체를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네. 알은 사람들의 머리에 기생하여 뇌를 포식하며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아까 보았던...."

블랙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사실은 아니었네. 한 명, 우리 중에 가장 여리고 감수성 풍부했던 이가 있었지. 지금은 탑의 1층에서 숙면하고 있지만... 어째서 뛰어내린 걸까. 공포에 지고 만 것일까, 아니면 계약을 되돌릴 방법을 필사적으로 모색하다가 잃어버린 이성이 끝내 오판을 내린 걸까. 물어볼 방법은 없지... 나머지는 순응했네. 방식이야 어쨌거나 약속이 지켜졌던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학자는 계속 말했다.

"대부분은 요람을 떠났지만, 몇몇은 아직도 그러지 못했네. 개체의 차이인지, 아니면 습성인지... 혹은 응석을 부리는 것인지. 자네들이 본 것은 그중 하나일 거야. 하지만 늦건 빠르건 일어날 일이었지. 피차 비상의 꿈을 꾸고 있으니...."

"비상?"

"우리는 운이 좋아."

그는 대뜸 말했다.

"비행은 인간의 몽상이지. 하지만 과학의 발전은 눈부시고, 가속은 정지 한계를 넘어섰기에, 우리 다음 세대에는 천정에 닿겠지."

"그 망상도 실체가 드러나는군!"

블랙은 목소리 높여 외쳤다.

"선생께서는 골방에서 책만 읽으셔서 모르시나 본데, 독일에서는 이미 대서양도 건널 수 있는 비행선이 출범을 앞뒀어."

그의 모습에선 지적하는 사람 특유의 기백은 전혀 없었다. 나도 한때 저랬다. 이 세상에서 이성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것도 모른 채.

"비행의 꿈이 고작 새와 견주고자 함인가? 바다를 항해하던 조상들이 쫓은 북극성은 고작 그런 의미를 가졌던가?"

학자는 열변을 토하더니,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도 보았네."

의미는 명백했다.

"어째서 이제서 보고 만 걸까. 학구심은 없었네. 앞선 동료들이 무엇 때문에 죽어야 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마땅한 이유는 되지 못해. 아마 벌레들 보모 노릇이 지쳤던 거겠지."

그는 매캐한 한숨처럼 토해냈다.

"꿈은 망각으로 끝나야 하는 법이야... 진정한 공포는 샛별과 함께 떠오른다."

그리고 끝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는 잠든 사람처럼 침묵했다. 하지만 소리는 들려왔다. 두개골 안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축축한 날개를 터는 것 같기도 하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기는 듯하기도 하고, 어쩌면 외골격을 부대끼는 소리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째선지 내겐 그것이 꼭 속삭이는 말소리처럼 들렸다. "밤하늘, 밤하늘." 하고 말이다.

우리는 그를 두고 떠났다.

블랙은 무단침입을 발설할 수도 있으니 그를 처리해야 한다고 완강히 주장했지만, 들은 얘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그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블랙 역시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만에 하나 그게 다 사실이라 칩시다. 그걸 어떻게 돈으로 바꿉니까? 상술은 기술입니다. 연금술 같은 게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떠날 생각을 않았다. 우리는 결국 적도실을 목표로 계단을 올랐다. 그러는 중에도 몇몇 방을 거쳐 갔는데, 절반은 블랙의 뜻이었고 나머지는 내 뜻이었다.

나는 블랙이 원하는 걸 전부 챙기게 두었다. 대신 내가 찾던 것은 4층의 마지막 방에 있었다.

특별한 용도가 있다기보단 외부인에게 선보이기 위한 전시실처럼 보였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방보다 검소한 사치가 돋보이는 방이었다. 다만, 문은 2년보다 더 오래 열리지 않은 것처럼 뻣뻣하고, 세 겹이나 되는 엄중한 경첩이 걸려 있기도 해서 어쩌면 귀중품을 두는 창고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어떤 용도로 쓰였건, 안에 있는 것은 초상화였다. 각 그림 아래에는 역대 천문대장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연도를 거슬러 올라가던 나는 외진 구석에서 유약한 인상의 중년인이 그려진 그림을 발견했다. 옆에 걸린 것이 2대 천문대장이었으니, 분명 이것이 초대 천문대장의 초상화임이 분명했다.

전혀 면식이 없는 인물이었다. 명패는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하필이면 손도 닿지 않은 위치였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블랙을 불렀다.

"이게 그렇게 찾으시던 겁니까? 그리니치 천문대의 창설자?"

그는 손쉽게 명패를 떼어 들었다. 그리고는 내게 건네는 대신 자신이 먼저 내용을 살폈다.

"이봐."

하지만 그는 미간을 좁히고, 관심 없는 것처럼 내게 건넸다.

"이름이 아니라 무슨 문장 같은데. 라틴어입니까?"

나는 그걸 받아들고는 바로 말했다.

"게일어야."

"그런 언어도 할 줄 아십니까?"

"아니."

그럼에도 이 문장은 읽을 수 있었다. 전에 보고 외운 문장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구절이었다. 나는 지나치게 혼란스러운 나머지 머리를 매만졌다.

보일의 두 제자, 뉴턴과 이름 없는 학자, 하지만 그리니치는 뉴턴이 아닌 또 다른 학자에 의해 창립되었다. 뉴턴과 학자, 뉴턴... 그리고....

나는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것은 어느 인물이 남긴 잠언이었다.

"Déan staidéar san eagna, agus sábhálfar tú."

(지혜롭게 배우라, 그리하면 구원받을지니.)

200년 전, 수도원이 대학으로 바뀐 이래, 역대 모든 학장의 이름은 같았다. 그 이름은 보이지 않는 대학의 후신인 왕립 학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한 뉴턴이 남긴 보편사무국에서도 예의주시하는 것이었다.

언덕 위의 대학에 틀어박혀 편집증적으로 멸망에 대비하고 있는 초인의 이름, 그 삼천 가지 이름 중 으뜸은 뉴턴, 그리고....

"케이시 오' 제럴드."

그와 뉴턴은 한 번도 같은 인물이었던 적이 없었다.

"당신이었어."

...그 뒤로 정신없이 달렸다. 기억은 확실하지 않았다. 분명한 건, 우리가 천문대 옥상에 도달했다는 것뿐이다.

적도실, 창공을 관측하기 위해 신설된 돔형의 현대식 관측소. 이 안에 런던에 모든 사단을 일으킨 원흉이 존재했다.

"정말 자네도 보겠나?"

"말리지 마시죠. 여기까지 와서 물러가란 말입니까?"

만용이건, 광기이건, 블랙의 의사는 확고했다.

나는 적도실 문을 열었다. 안에서는 축축한 습기와 악취가 풍겼다. 바닥에는 곤충의 배설물과 표피 따위가 퇴적해 있었고, 천정... 천정!

반구형의 돔 벽면에는 인간의 머리를 닮은 곤충이 수십 마리 달라붙어서는 몸을 부비대고 있었다. "밤하늘, 밤하늘." 그런 소리를 내면서.

학자가 말한 대로라면 위험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자, 신발이 껍질을 밟아서는 부스럭거리는 소음이 났다. 그러자 천장에 걸린 무수한 시선이 날 향했다. 천장에 매달려 날 바라보는 머리를 닮은 곤충과 인간을 닮은 겹눈.

나는 어렵사리 개패 장치를 찾아서 열었다. 첨탑을 감싸는 돔이 갈라지자, 바깥에서 석양의 흐릿한 빛이 안으로 쏟아졌다.

유충들은 바닥에 떨어지거나 하기도 했지만, 끝내는 하늘을 향해 비상했다. 그 이유는 어렴풋이 알 듯했다. 저들이 어미를 닮았다면, 결국은 하늘과 우주의 경계인 저 상공으로 귀소할 테니까.

아직은 일렀다. 날개가 다 마르지 않고, 외골격이 얇아서는 우주의 추위를 견딜 수 없다. 언젠가 바위와 철을 씹을 만큼 성장하게 된다면, 그날에는 무수한 머리가 런던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나는 목적으로 하던 천체 망원경에 다가갔다. 다른 시설은 배설물로 완전히 더럽혀졌지만, 이상하게도 망원경 근처만은 먼지 외에는 깔끔했다.

"공포는 샛별을 따라 뜬다."

학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밤에는 하늘을 가린 생물, 밤하늘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던 거겠지. 아니면, 빛에 비춰봐야 할 만큼 선명한 관측이 필요한 것이든. 어느 쪽이건 지금이라면 보일 테지."

내가 망원경 조작에 애먹자 옆에서 블랙이 조정을 도왔다.

"전에 써본 적이 있나?"

그렇게 묻자, 블랙은 "저도 잘 못하고 있는데, 선생님보다는 나을 뿐입니다." 라는 귀염성 없는 대답을 내놨다.

조금 뒤, 나는 그들의 말처럼 우주에 맞닿은 광석군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태양 빛이 시계를 방해했다. 형체만 어렴풋이 봐서는 자연적인 암석보다는 꼭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철판처럼 보였다.

그렇게 하염없이 공전하는 광석들이 렌즈 너머를 지나쳤다. 기대했던 것만큼 극적인 변화도, 각성도 없었다. 블랙마저 초조해서 날 비키게 하려 할 무렵, 나는 보았다.

그게 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이해였다. 나는 보고, 무엇인지 알고, 그럼에도 그게 어째서 거깄는지 알지 못했다. 태양과 상식이 번갈아 나를 방해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은 진실은 이랬다.

그건 우주복이었다.

주변의 파편은 무수한 인공위성과, 유인 우주선의 잔해였다. 그중에는 국기도 하나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

.........

.........

지구 표면을 덮은 구름은 매우 잘 보이고, 지구 자체의 그림자도 뚜렷하게 보입니다. 하늘은 완벽하게 검습니다. 검은 배경을 등진 별은 밝고 선명하게 보입니다. 지구는 특징적인 푸른 후광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후광은 특히 수평선에서 잘 보입니다. 하늘은 옅은 청색에서 깊은 청색, 그리고 검은 청색, 자주색, 끝내는 완전한 흑색으로 바뀌어 갑니다....

.........

.........

망원경 너머에는 철과 플라스틱으로 덮인 행성이 보였다. 푸른빛이라고는 조금도 비치지 않았다.

"지구는 슬픈 별이에요."

옆에서 목소리가 속삭였다. 블랙? 아니었다. 이건 여성의 것이었다.

"인류는 그들의 요람을 벗어날 수 없어요. 나는 최초이자 마지막 우주인이에요."

"앨리스."

나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었다. 뒤로는 전에 보았던 만국박람회의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환상이 아니었다. 기구와 건물, 조각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 광경에는 오직 생명만이 누락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앞에는 앨리스가 서 있었다.

"예전에, 아주 예전에, 교수님께서 왜 직접 보지 않느냐고 물었죠?"

"그래, 물었지. 그때, 자네는 망원경이 지구까지 닿지 않아서라고 대답했고."

"직접 보시니 어때요?"

"보이지 않는군."

그녀는 웃었다. 나는 해맑은 농담에 어울려 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꿈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무엇이 있어도 이상하게 여기질 않았지. 하지만 자네는 이것이 현실이라고, 여기가 명왕성이라고 말했지. 그뒤로도 나는 여기가 정신세계의 일부라고 여기면서, 보이는 모든 게 자네와 나의 환상 같은 거라고 여겼지."

"아니에요, 교수님."

앨리스는 수줍게 말했다.

"여기에는 환상 같은 건 없어요. 있다면 오직 교수님뿐이죠."

"그렇다면, 그러면...."

나는 쉽사리 묻지 못했다.

"거대한 전파 망원경이나, 박람회 기구는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지?"

앨리스는 뭔가 말하려 했지만, 내가 계속 말하는 바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네 말고 이 별의 주민은 다들 어디 있나? 유고스라는 이름을 붙인 행성의 원주민은 대체 어디 있지? 세 번째 방문이지만, 한 번도 그들을 본 적이 없어."

"그들은 오래전에 떠났어요."

그녀는 잠깐 뜸들였다. 얼굴에는 어떻게 하면 상대가 덜 충격받을까 염려하는 듯한 망설임이 떠올라 있었다.

"처음 제가 여기 도착했을 때부터, 누구도 살지 않았어요. 여기는 외딴 별이에요."

"내게 말했던 유고스 같은 단어는?"

"남은 유적을 통해, 저는 그들의 언어를 배웠어요."

"불가능해!"

나는 무심결에 외쳤다.

"아무리 자네가 언어에 능하다고 해도, 고작 4개월 만에 유적에서 기원이 불분명한 외계의 언어를 습득하는 건...."

앨리스는 슬픈 미소를 지어, 내가 떠올린 참혹한 진실이 맞았노라 선고했다.

"지구에서 자네가 죽은 건 1년밖에 안 되었어."

"빛조차 두 별을 잇는데 5시간 20분이 걸려요. 그러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은 어떨까요? 게다가 영혼은 시공간을 초월해요. 교수님도 아시지 않나요?"

그녀가 말하는 대상은 아마 에드워드겠지만, 나는 그런 존재를 몇 명이나 더 알았다. 우주의 끝, 시간과 공간의 지평에서 어느 악한 신을 숭배하며 절하고 있는 영혼들을.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출생이 그랬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가능하다는 것만큼은 끔찍하리만큼 잘 알았다.

"대체, 여기 얼마나 오랫동안 홀로 있던 건가?"

"아주 오래요."

그녀는 낮게 웃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슬프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정말 몰라서 그래요. 처음에는 해가 뜨고 지는 걸 세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도 말해줄 수 없다는 걸 알고부터는 관뒀어요. 두렵기도 했고, 화나기도 했지만, 그런 감정도 결국엔 흩어졌어요. 끝에 남는 건 의문이더군요. 대체 저는 어째서 여기 있는 걸까. 왜 죽어서도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무얼 위해 존재하는 걸까."

얼마나 시간에 매몰되면 이처럼 남 일을 말하듯이 할 수 있을까. 나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구의 일이 궁금해졌어요. 다행히 여기 주민들은 많은 정보를 남겨뒀고, 저는 그걸 기반으로 망원경을 만들었어요. 오래 걸렸지만 할 만한 작업이었죠. 처음에는 교수님이 본 것만큼 심하진 않았어요. 지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푸른 바다는 어렴풋이 비쳐 보였죠."

그녀는 말했다.

"저는 망원경을 들여다봤어요. 아마, 꽤 오래요. 교수님이 상상하는 시간보다 더 길게요. 그러다가 일정 주기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바다가 검게 물들고, 땅이 피로 물들며, 지구를 감싼 암석의 수가 늘어났어요. 그리고 그다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반복했죠."

"암석은... 우주를 향해 발사한 위성과 유인 우주선이야."

나는 비통하게 말했다.

"이 시대의 기술은 아니었지. 최소 100년은 뒤에야 존재할 것들이야. 본래는 성공했어야 하지.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지, 계속해서 실패하고...."

"지구에서는 시간이 반복되고 있나 봐요."

앨리스는 맑고 투명한 눈으로 날 응시했다. 투명한 나머지 영혼마저 투과하고, 저 은하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런 눈으로.

"절 죽인 에드워드도 그런 얘기를 했었죠."

"나도 마찬가지야."

"네?"

"나는 에드워드처럼 인생을 반복한 것은 아니지만, 100년 후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네. 왜 한 번도 그걸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 설령 내가 전생의 기억을 가졌다면, 그건 과거의 것이어야지, 미래의 것일 리가 없잖아!"

"저한테는 말하지 않았잖아요!"

"내가 미쳤다고 이런 얘기를 하고 다니겠나?"

그녀는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그 무수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앨리스였다.

"저는 많은 걸 포기했어요. 그리고 교수님이 나타났죠."

앨리스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이 제 이름을 불러주시자, 제가 누구였는지 기억났어요. 그리고 교수님이 떠나고, 오랜만에 생각을 했어요. 어째서 저와는 다른 시간대, 다른 공간에서 사는 교수님이 여기 나타날 수 있었을까 하고요."

그녀는 말했다.

"아마도 제게 역할이 있는 거겠죠."

저 멀리 해가 뜨고 있었다. 런던의 여명이 다가온다.

"저는 기다림이 특기예요. 예전에는 아니었지만, 지구의 10년이나 20년쯤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절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아줘요."

전처럼 깨어날 시간이 가까워지는 걸 직감한 나는 어떤 작별의 말을 건네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던 차, 갑자기 떠오른 것이 있어서 급히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네."

"네?"

"나는 곧 죽을 거야. 뇌에 벌레 알이 심어졌거든."

그러자 앨리스는 뭐가 보이기라도 한다는 듯이 내 이마를 노려봤다.

"안 보이는데요? 잠깐 머리 좀 내려봐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리고 나는 깨어났다.

정말 볼품없는 작별이었다. 하지만 죽기에는 이르다. 보라, 저기 보란듯이 해가 뜨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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