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독초
"뭘 그리 심각해지고 그래. 농담이야."
리즈는 살짝 웃었다.
"네가 연애에 관심 없다는 것 정도는 진작 알았어. 고백도, 영국에 미련을 버릴 셈으로 해봤을 뿐이고. 너라면 확실히 거절해줄 테니까."
나는 멈춘 호흡을 계속했다. 만약 리즈가 중간에 말을 끊지 않았다면, 과연 뭐라 대답하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만나고 싶었어."
리즈는 눈웃음지었다. 내가 퍽 멍청한 표정을 지었는지, 그녀는 친절하게 덧붙였다.
"기억 안 나? 네가 말했잖아. 고민이 있으면 언제나 아버지의 묘에 온다고."
말한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한때 그랬던 적이 있던 건 사실이다. 여기 오는 걸 언제부터 관두게 되었더라. 아마 종군한 이후부터였다.
"그런 예전 얘기를 기억한다고?"
"스스로도 놀랐어. 그만큼 절박했던 걸까. 기껏 찾은 거주지는 화재로 없어졌고, 재차 수소문해서 찾아가니 한 번은 실종, 다른 한 번은 이미 이사한 후였으니까."
"설마 매일 여기에?"
물으나 마나 한 질문이었다. 이 런던에서 한해, 만남은 우연히 이뤄지지 않는다.
"왜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 말을 듣지 않는 건 여전하구나."
그녀는 달콤한 비음으로 날 탓했다. 나는 어깨를 좁혔다.
"말했잖아, 만나고 싶었다고."
리즈... 아마릴리스는 나와는 달리 입학부터 주목받는 존재였다. 달리 그녀만이 아니라 당시에는 입학하는 모든 여학생이 화젯거리였다. 케임브리지 최초의 여성 칼리지가 개설된 것이 바로 나의 입학 연도였으니 말이다.
찬반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오가는 중에도 케임브리지는 입학을 강행했다. 엄숙한 학부모와 모든 사감이 익히 염려한 대로, 같은 공간에 놓인 젊은 남녀는 서로 격렬히 의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러지 않았지만, 언제나 동기 이성 화제뿐인 학우들을 통해 불가피하게 엿듣게 되었다. 아마릴리스, 그때 나는 대면한 적도 없는 여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기십 명의 여학생 중에서도, 리즈는 유독 특출난 존재였다. 이유는 더러 있겠지만, 필시 주요한 이유는... 외모였을 것이다.
"회포를 풀거나,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녀는 슬쩍 다가와서, 가만히 서 있는 날 올려다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노크하듯이 내 가슴팍을 툭툭 두드렸다.
"뭐야, 그 군복은? 어디 행사라도 다녀와?"
나는 세게 맞은 사람처럼 뒷걸음질쳤다. 다시금 리즈의 얼굴에 침울한 그림자가 스쳤다. 두 번째였으니 착각할 리 없었다.
"이번에 입대하게 되어서."
"입대?"
리즈는 손으로 턱을 받치며 의아한 소리를 내었다.
"그건 무슨 농담이야?"
"농담이 아니야. 해군 입대하게 되었어."
그녀 얼굴이 서서히 경직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낌새조차 보이지 않고 남몰래 추진하던 일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그녀마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리즈?"
"미안, 조금 놀라서. 그렇구나, 입대하는구나. 내게도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리즈는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예전부터 이랬다. 알트가 과잉으로 본심을 감춘다면, 리즈는 허울과 결핍 속에 숨었다.
종잡을 수 없다.
눈을 보면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오랜 신념도 그녀에겐 통용되지 않았다. 지난 3년을 함께 지냈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아마릴리스는 고향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희미한 H 발음으로 북부, 어쩌면 맨체스터 출신이라 짐작할 따름이다. 그녀는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호라시오 알제는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 찰스 디킨스의 문장은 좋아한다. 그녀는 해질녘의 그림자에 서리는 찰나의 보라색을 사랑한다.
내가 아는 건, 그게 다였다. 리즈는 홀연히 나타나고, 사라졌다. 한밤중의 적막처럼 갑작스러운 여인이었다.
첫 만남부터 그랬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이듬해 초여름이었다. 처음 보는 여학생은 내 앞을 가로막고는 갑자기 물었다.
"네가 필레몬 허버트야?"
그녀가 여성 칼리지의 학생임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장소는 대학 부지 내였고, 마침 나이도 엇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비록 반항이 젊음의 특권이라지만, 이 시절에는 그것이 유난해서 늘상 날이 바짝 선 나는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늦은 방황이었지만, 당시에는 나는 세상 모든 격정과 분노의 대변인이었다. 이토록 명확한 거부였지만, 그녀는 거리낌 없이 다가왔다.
몰이해인가, 어쩌면 무시했을 뿐인가. 그녀와 상당한 시간을 함께 한 지금도 알기 어려웠다.
"소문보다 차가운 사람이네. 오래 귀찮게 하지는 않을게. 잠깐만 어울려줘. 사실은 네게 용건이 있는 것도 아니거든."
얼핏 무례한 말이었지만, 어째선지 나는 거기에 대고 화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유를 찾자면 악의가 느껴지지 않은 탓일 터다.
"프랑크 때문이겠지."
"그래, 잘 아네?"
그녀는 눈을 치켜떴다.
"어째서 그럴까?"
나는 비웃듯이 되물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알트는 학내 최고 유명인사였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많았다. 불행하게도 그는 알아주는 변덕쟁이였고, 정성이 정당하게 보답 받는 일은 드물었다.
그마저도 형편 좋은 경우였다.
평소에도 알트의 주변에는 추종자로 북적였고, 그의 시선에 드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에 준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수많은 실패를 겪은 이들이 내게 주목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국토 절반을 사들일 재산을 가졌다는 프랑크 백작의 외자를 직접 상대하기보다는, 몰락한 귀족 가문의 배경 없는 삼남, 아무런 가치도 없지만 당사자인 나조차 의아할 만큼 알트의 구애를 받고 있는 어린 학생을 상대하는 게 낫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곤 하는 것이다.
그들은 대개 나를 거쳐 가는 다리 정도로 여겼고, 곧 예상치 못한 냉대를 맞이하곤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다른 사람을 찾아."
"이유는?"
"녀석과는 이미 남남이야."
거짓말이 아니었다.
당시에 나는 알트와 한 달 가까이 만나지 않았다. 알트의 변덕과, 그가 내게 보인 관심의 무상함을 고려했을 때, 이는 암묵적인 결별과 다르지 않았다.
"너희는 아주 친하다고 들었는데."
"들은 말을 전부 믿나 보지?"
"의심하는 것보단 속는 게 편하잖아."
화를 내지도 않고, 상처받지도 않고, 그렇다고 떠나가지도 않고 특이한 사람이었다.
"이래 보여도 나는 고집이 꽤 있는 편이야."
"그거 하나는 나와 같네."
나는 그녀의 뻔한 위협을 비웃었다.
결국, 그녀는 떠났고, 나는 금방 잊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잊게 두질 않았다. 다음 날, 그녀는 태연히 다시 나타나서는 지나가는 잡담처럼 말했다.
"역시 너에게 소개받는 게 좋겠어."
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는 아주 겸손한 성격이었다. 그녀의 고집을 '꽤' 정도로 수사했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그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 앞에 나타났다.
피할 방법은 많았지만, 본래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이때는 유독 심했던 탓에 나는 정공법을 고집했다. 나 역시 매일 다니는 길과 시간을 고집하였고, 심지어 늦으면 진다는 기분마저 들어서 일부러 서두르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엇갈리는 일조차 없었다. 나는 부정하고, 그녀는 다가온다. 그런 기묘한 관계가 반년 동안 계속되었다.
돌이켜 보면 이 시기만큼 리즈가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앞서 말한 그녀의 인상도 이때 확립된 것이었다. 동시에 이 시기만큼 내가 그녀에게 무심한 적도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케임브리지의 겨울이 찾아왔다.
생명이 잦아들고, 거리의 풍경이 황량해지자, 오히려 심경은 평온해졌다. 한때, 마음속에 거칠게 불어닥치던 슬픔은 잦아들었고,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필 만큼 여유를 되찾았다.
나는 그간 일어난 심경의 변화를 인정했다. 언젠가부터 변하지 않는 그녀와의 대화에서 적잖은 위안을 얻고 있었다. 나날의 고집스러운 승부는 기다림이 되었고, 날 선 적개심으로 대하던 그녀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어째서 그녀는 알트를 만나야 하는 걸까. 대체 무슨 절박한 사정이 반년이나 나를 만나게 했을까.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첫날에 해야 했던 질문이었기에, 이제서 묻는 데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망설임 없는 전진은 이때도 나의 특기였다.
질문을 들은 그녀는 본 적 없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물어보는구나."
나는 그 말을 듣고, 간신히 그녀가 알트의 소개 때문에 고집부린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그녀는 대답을 말했고, 다음 날부터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릴리스, 예정보다 끈질긴 인연이었다.
동공에 초점이 돌아왔다. 아차, 또 상념에 빠진 모양이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많았다. 나는 이걸 좋은 징조로 여겨야 할지 고민이었다. 회상은 기억이 존재한다는 증명이니까.
나는 구멍 뚫린 뇌를 상상했다. 작거나 큰 구멍 사이로 푸른 기억의 점액질이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그런 영상 말이다. 나는 그 안에 빠져서는 추억에 질식해 가고 있다.
리즈는 내게 왼손을 내밀었다.
나는 의도를 알지 못해, 그녀의 손만을 멀뚱히 바라봤다. 쭉 뻗은 손에서 약지만 살짝 구부리고 있었다.
"내 손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
여간 느닷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기질이 성실한 탓에 본의 아니게 그녀의 손을 빤히 관찰하고 말았다. 인상과 달리 상처가 많은 손이었다. 창백하고 푸른 흉터는 저마다 사연을 말했다.
손을 보고 있을 뿐인데, 어쩐지 수줍어서는 말을 돌렸다.
"케임브리지에서는 몰라도, 런던에서는 장갑을 끼는 게 좋아. 어디나 먼지가 쌓여 있으니까."
어쩐지, 말을 돌린 게 티 났을까. 리즈는 화난 것처럼 한참 말이 없었다.
"리즈?"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모처럼 런던에 왔으니까 네게 동행을 부탁해도 될까?"
이번에도, 그녀는 갑작스러웠다. 항상 그랬다.
"무슨 속셈이야?"
"남을 못 믿는 사람은 고생이 많네."
"재밌는 일은 없을 거야."
"필로, 그거 알아?"
리즈는 자신의 약지를 물었다.
"내 생각은 언제나 너와 달랐어."
저녁 물안개가 피어오를 무렵이었다. 시가지 골목골목마다 샛노란 등불이 신기루처럼 불확실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런 날에는 거리의 소란도 한풀 기세가 꺽인다.
나는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 망신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발은 익숙한 길목을 찾아다니며 제대로 시내까지 안내했다.
거기서 리즈는 당황스러운 제안을 했다.
"글쎄, 들어갈 수 있을지, 어떨지...."
"한 번 시험해 보지그래?"
나는 자신 없이 다가갔다. 그 앞에는 르 호튼, 런던 굴지의 저녁 식당이 있었다. 안개가 꼈다고는 해도, 배경 없는 이십 대 애송이를 예약 없이 들여줄 만큼 호락호락한 장소는 아니었다.
리즈는 장난치지 않는다. 뭘 해도 마땅한 목적을 품는 그녀가 어째서 실패가 뻔한 요구를 했는지 의문이었다.
입구에는 노련미가 묻어나는 늙은 남자가 도어맨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 쪽을 보더니 희멀건 눈썹을 들썩였다.
"안녕하십니까, 필레몬 허버트님. 예약이나 합석이십니까?"
"아니요, 그냥... 저녁 한 끼 하려고요."
노인은 다시 한 번 눈썹을 움직였다. 반응이 작으니 내가 제대로 말했는지 좀처럼 알기 어려웠다.
"동행은 뒤편의 여성 분 한 분이신지요?"
나는 바짝 긴장해서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리즈는 눈이 마주치자 미소 지었다. 조금도 안정을 주지 못하는 미소였다. 다시 노인을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리즈는 내 옆으로 다가와서 속삭였다.
"제법이네, 필로."
"너야말로 무슨 수를 쓴 거야?"
"아무것도."
그럴 리 없었다. 그녀는 남 일처럼 말했다.
"런던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가게에도 가보고, 네 행실에 감사할 일이네."
원래도 그랬지만, 오늘은 리즈를 더욱 알기 어려웠다. 나는 안에서 재촉하듯이 뒤돌아보는 종업원을 보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점내는 바깥과는 별세계였다.
온갖 악취와 소음, 소란은 모두 얇은 문 두 장에 가로막혀 사라졌고, 귓가에 어른거리는 악기 소리와 경박한 웃음소리만 회오리쳤다.
어디 그뿐인가, 눈이 닿는 어디에도 색상이 있었다. 예술에는 소양이 없는 내가 보기에도 실내는 마루 카페트 한 장마저 공예품이었다.
냄새는... 부드러운 빵 냄새, 그리고 열기. 그 모든 것이 감각에 닥친 폭풍이었다. 한편, 그런 부산함이 나를 자꾸 과거로 이끌었다. "제 생각에 영국인은 말을 더 먹어야 합니다." 누군가 말했다.
"뭐라고?"
"아무 말도 안 했어."
리즈는 답했다. 나는 눈을 껌뻑였다.
"미안, 아니, 아무것도. 조금 피곤해서."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머리의 영상은 더욱 번잡하게 들끓었다. 다름 아닌 이 장소였다. 전에 나는 여기 온 적이 있었다. 심도를 따지면 수면 아득히 깊은 해구, 심해의 세계에 존재하는 기억이었다.
"루피노 키안티입니다."
붉은 와인이 강물처럼 잔으로 쏟아졌다.
"내가 마음대로 시켰어. 괜찮지?"
나는 리즈를 멀뚱히 바라봤다.
"비싼 거야?"
"아무리 상대가 나라고 해도 에스코트한다는 자각이 너무 없지 않아?"
리즈는 한숨을 쉬며 푸념했다.
"무서울 정도로 옛날 그대로네. 이 정도는 내가 낼게."
"아니, 미안. 요즘 자꾸 이러네."
"됐고, 요리는 아직이지만?"
그녀는 잔 손잡이를 우아하게 잡아들었다. 의미는 명백했다. 나는 잔을 내려다봤다.
성경의 말씀과 달리 그림자를 머금은 적포도주는 완연한 블랙이었다. 잔 속에서 블랙은 내게 속삭였다.
"전날 선생님 뒤를 캐던 여인 말입니다만. 누군지 알아냈습니다."
"뭐라고?"
그녀가 눈치챌세라, 나는 모른 척하며 잔 몸체를 거칠게 붙잡았다. 잔과 잔이 맞부딪히고, 유리가 진동하자 블랙의 목소리가 거기 맞춰 떨렸다.
"조사한 것은 아니고, 어쩌다 아는 사람이 뉴욕에 있어 전보를 보내봤을 뿐입니다. 답신은 바로 왔습니다. 현지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사라더군요. 사람들은 흑처녀(Black Maiden)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누구보다 선생님께서 잘 아시겠지만, 대중이 짓는 별명이란 대개 조롱입니다. 좋은 뜻일 리가 없죠. 20년간 4번의 결혼과 4번의 사별, 매번 검은 상복을 입은 미혼녀로 돌아온다 해서 흑처녀입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지탄받겠지만, 그녀가 언론에 주목받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나는 잔을 입에 대는 리즈를 바라봤다. 지나치게 빤히 봤는지, 그녀가 수줍은 얼굴로 날 응시했다.
"배우자의 사인입니다. 4명의 배우자는 뉴욕에서 알아주는 명사들이었고, 그들 모두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런 과거 때문에 여인은 가명을 여럿 가지고 있어서 어떤 게 본명인지는 모릅니다만, 20년 전, 처음 뉴욕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녀가 댄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제야 나는 떨리는 손으로 잔 끝을 입술을 댔다. 검은 액체가 목청을 스치며 단말마를 내었다. 달콤하고, 지독하게 쓴 유언을.
"아마릴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