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66화 (166/232)

§166. 제니의 저항

세렌딥의 세 왕자라는 동화를 아십니까?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추궁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말 그대로 세 명의 왕자가 여행을 다니며 벌어지는 일에 관한 우화입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설명 드리자면, 이런 식입니다.

왕자들은 타지에서 낙타를 잃어버린 상인과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낙타의 특징을 완벽하게 설명해내죠. 상인은 편협하고 어리석은 대중이 으레 그러듯, 왕자들이 낙타를 훔친 범인이라 단정 짓고 자국의 황제에게 심판받도록 끌고 갑니다.

황제 앞에서 왕자들은 어떻게 낙타가 한쪽 눈이 멀고, 다리를 절며, 이가 없고, 꿀과 버터를 지고 있는지 알았는지 설명합니다. 길 중에 수풀이 적은 곳의 풀을 뜯은 건, 다른 쪽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테니 눈이 멀었으며, 발자국 중에 발을 끌고 다닌 흔적이 있으니 절름발이일 테며, 한쪽 길에는 개미가 이어졌고, 다른 길에는 파리가 이어졌으니 각기 꿀과 버터를 쏟았다는 내용입니다.

압니다, 작가가 인물에게서 일말의 현명함을 짜내기 위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짜냈는지요.

제가 말하고 싶은 바는, 세상에 우연한 일이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왕자들은 빼어난 관찰력으로 단서를 놓치지 않고 흔적의 본질을 통찰해낸 것입니다.

저는 이런 기술을 전문적으로 단련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의심스러우시겠죠. 빼어난 지성은 항상 도전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절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제 능력을 시험해 보려 하는 것일 테죠. 저는 제 가치를 증명하는데 도가 텄습니다.

...알고 있습니까? 그래요? 하긴, 그분도 저만큼은 아니지만, 이런 기술에 능통하시니까요. 가까이서 보고 들은 당신이라면 아시겠죠.

계속 말하자면, 폭풍우 한가운데 서는 일과 비슷합니다.

빗물과 바람, 세차게 쏟아지며 얼굴과 옷을 적시는 매 순간순간이 우연처럼 느껴지겠지만, 그조차 절묘한 계산 속에 탄생한 필연이라는 것이죠.

이번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류가 불었을 뿐인 거죠.

줄리엣의 부름에 그녀가 답한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아니라도 누군가 답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테지요.

무슨 말이냐면, 그분은 오지랖이 넓죠.

... ... ...

... ...

...

세상이 바뀌었단다.

조금 전까지 내게 매달려서는 추한 몰골을 보이던 남자들은 행위가 끝나자마자 시침 떼며 엄숙한 얼굴로 잘난 척했다.

처음에는 꼴이 퍽 우스웠지만, 이제는 조금 싫증났다. 골목 한복판에서 허리춤을 풀 때는 언제고, 일이 끝나면 떨어진 고상함을 회복하겠다고 날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여간, 손님은 각계각층에 있었고, 뒷골목에 몰려드는 사정도 다양했다. 그러다 보니 길바닥 매춘부만큼 세정에 훤한 사람도 드물었다. 다른 데서는 하지 않을 얘기도 천한 창녀한테는 쉬이 털어놓았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역시 요즘은 누가 찾아와도 이런 얘기만 되풀이했다.

세상이 바뀌었단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도시는 꽤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천명 받은 업무는 지엄하신 하느님의 계율하에 불변의 법칙을 고수하고 있었기에 체감은 더 적었다.

'남자는 여자를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소명을 꽤 잘 이행하고 있는 셈이었다.

도시에서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내가 일하는 방직 공장이었다. 런던이 불타는 동안에도 공장은 돌아갔다고 들었다. 안식일을 제외한 6일간 공장은 24시간 가동되었다.

입구의 철문은 언제나 아침 6시와 저녁 6시에만 10분간 열렸다. 예외는 없었다. 그중 하루라도 제때 들어가지 못하면 주급이 나오질 않았다. 나는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했다.

업무는 간단하여 누구에게나 설명할 수 있었다.

나는 지하 방적실에서 일하는 감개인데, 맡은 기계 6개를 번갈아 살피며 실패에서 실이 끊어지지 않게 주기적으로 풀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 정성을 쏟는 데도 공장의 기계가 오래된 탓인지, 아니면 천의 품질이 나쁜지 하루에도 몇 번씩 끊어지곤 했다. 그때는 재빨리 기계를 멈추고 끊어진 실을 골라내서 매듭으로 묶어줘야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12시간 동안 걸어야 했고, 또 빠르게 움직이는 실타래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야 했기에, 일이 끝나면 다리와 손이 퉁퉁 부어있곤 했다.

그렇게 한 주를 마치면, 토요일 저녁에 주급으로 16실링이 나왔다. 여성치고는 제법 받는 편이었지만,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공장 여자가 몸을 파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남들보다 조금 까다로운 성격이라는지 아는 사람에게 안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일부러 공장에서 멀리 떨어진 화이트 채플까지 갔는데, 그러면 저녁 7시쯤이 되었다. 통금이 10시이니, 잽싸게 손님을 받고 9시에는 장사를 마쳐야 했다.

거기서 나는 운이 좋았다. 어두운 데서는 꽤 반반한 얼굴을 타고난지라, 골목 가로등 사이에 서 있으면 공치는 날이 없었다.

이렇게 성실하게 일주일을 보내면 약값과, 간단한 화장품으로 사치 부릴 만큼 용돈까지 벌었다.

이렇듯이 나는 스스로 특별하지 않았다. 누구나와 같은 그런 삶이었고, 거기에 사소한 행운과 불운, 저만의 작은 행복을 곁들였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말 못할 비밀 하나가 있었다.

아직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끔찍했던 순간들. 새하얀 페리위그. 천사. 하수도... 문장! 그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

"불쌍한 톰, 불쌍한 제니...."

"얼씨구, 아주 팔자가 폈어?"

나는 조이를 돌아봤다.

"노래까지 부르고, 살판났어."

"내가 노래 불렀다고?"

그러자 그녀는 기가 찬단 듯이 고개를 돌렸다. 저런 반응이니 거짓말은 아닐 터였다. 이런 일이 최근에는 아주 잦았다.

처음에는 누구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였는데, 이제는 큰 소리로 노래하게 되었다. 그 욕구는 호흡처럼 자연스러워서 남에게 듣기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노랫말은 항상 같았다.

'아침에 태어난 불쌍한 톰, 저녁에는 땅에 묻히지. 아침에 태어난 불쌍한 제니, 저녁에는 고아가 되지. 불쌍한 톰, 불쌍한 제니. 둘이 어디 갔지 물으면, 천사가 데려갔다 하겠지.'

오싹하지만 마음에 드는 가사였다. 특히나 노래에 내 이름이 있는 게 좋았다.

'그날의 일은 잊으시죠. 어렵겠지만, 그래야 합니다.'

남자는 다짜고짜 찾아와서 훈계했다. 어쩌면 나보다 어린 나이, 아직 앳된 얼굴에는 벗겨 낼 수 없는 때가 짙게 깔렸었다.

'방금 그 노래,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됩니다.'

그런 말까지 들었는데, 나는 어째서 이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을까. 금기이기 때문에 더 자극적인 걸까.

아니, 아마도....

"담배 필요한가?"

상념에서 깨어나자, 눈앞에 번듯한 복장의 신사가 서 있었다. 엄숙한 척하는 눈망울 사이로는 추잡한 시선이 내 몸을 향하고 있었다.

"그럼요."

나는 일부러 간드러진 콧소리를 내며, 안고 싶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얼간이에게 안겼다.

일진이 안 좋은 날이었다. 손님 하나를 받고는 그 뒤로 왕래가 없었다.

"지금 몇 시야?"

골목에서 나온 조이가 날 보며 다짜고짜 물었다.

"음, 아마 아홉 시쯤."

"돌아가야겠네. 너는?"

"...그러게."

이런 시간이면 손님을 받는대도 문제가 되었다. 물고 있던 담배와 가래침을 한 번에 바닥에 뱉어냈다.

"잘 가."

"너도."

우리는 간단히 인사하며 맞은 편으로 떠났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가는 길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나는 아는 얼굴들에 인사하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불쌍한 톰, 불쌍한 제니...."

밤 아래를 걸으며, 절로 낮은 노랫소리가 흘렀다.

"톰?"

그건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또 다른 골목 안에는 작은 소녀 한 명이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옷을 봐서는 꽤 사는 집 아이였다.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이런 늦은 시간에 나다니는 것일 테지.

그리 생각했더니, 소녀의 눈가에 물기가 차 있었다. 그러고 보면,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 돌아갈 수 없는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얘, 나한테 한 말이니?"

나는 물었다.

그러자 소녀는 그대로 골목 안의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두운 게 무섭지 않은 듯한 동작이었다.

나는 잠깐 망설였다.

시간도 늦었고, 내일도 일이 있다. 애들끼리 모여서 강도질을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모로 보아도 간섭하지 않는 게 제일이었다.

끝내, 나는 소녀를 쫓았다.

이대로 보냈다가 무슨 사고라도 당하면 뒷맛이 안 좋다. 그런 이기심만이 이유였다.

예상과 달리, 소녀는 아주 날렵했다.

기껏해야 골목대장 수준이나 할까 싶었더니, 아예 거리에 사는 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발놀림이 지체없었다.

"애야, 나는 술래잡기하기엔 너무 지쳤단다. 좀 잡혀주지 않으렴."

한창 때 아이를 퉁퉁 부은 다리로 쫓기는 쉽지 않았다. 다행히 이 근방 지리를 잘 알지는 않았는지, 서서히 유도하자 보기 좋게 구석에 몰려주었다.

"나쁜 일은 안 할 테니까 이리 나와."

길목을 지키고 부르자, 결국 갈 데 없는 소녀가 쭈뼛거리며 그늘 밖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잡으려면 다시 도망칠 셈인지 손이 안 닿는 거리에서 멈췄다. 승냥이 같은 년!

"하지만 절 쫓아왔잖아요."

"그야 걱정되니까 그렇지. 늦은 시간에 울고 있는 아이를 어떻게 그냥 두니?"

우리는 잠깐 대화 없이 있었다. 나는 내가 먼저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톰이 누구니?"

"죽었어요."

"아, 그래... 그것 때문에 울고 있었던 거니?"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가 이상해요."

"아저씨가 누구, 아니, 이상하다는 건 무슨 뜻이니?"

"기억이 없어지는 병에 걸렸대요."

분명 들어본 얘기였다. 치매가 아니라, 그런 열병이 유행처럼 돈다는 얘기가 주변에서 간간이 들려왔었다.

"그래서 마리가 죽을지도 몰라요."

"어, 마리는 또 누구야?"

"아저씨네 가정부요."

소녀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그러던가. 그녀가 하는 말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정리해보자. 너희 그, 아저씨? 너희 아빠가 병에 걸렸어. 그런데 왜 가정부가 죽는다는 거야?"

"그건...."

뭔가 답하려던 소녀는 말을 멈췄다. 모종의 입막음이 느껴지는 침묵이었다. 나는 범죄의 직감을 느꼈다.

"오늘 당장 시급한 일이니?"

"아니요."

"그러면 내일 밤 7시에 여기 나올 수 있니?"

소녀는 날 빤히 봤다.

"왜요?"

"어쩌면 내가 도움이 될 지도 몰라서 그래."

"왜요?"

같은 질문이었지만, 의미는 상이했다.

"그야, 잠자리가 안 좋으니까. 아, 그렇다고 내가 도와준다는 건 아니야! 이런 쪽으로 도가 튼 사람을 하나 알고 지내거든."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최근에는 만난 일이 없었다. 게다가 아주 바쁘게 지내는 걸 아는 만큼 부탁하기에도 양심이 찔렸다.

바빠서 상대 안 해줄 게 문제라기보단, 너무 열심일 게 뻔해서 문제였다.

"아참, 헤어지기 전에."

떠나려던 소녀는 멈춰서 날 돌아봤다.

"이름이 뭐니?"

"줄리엣이요."

"줄리엣, 그리고?"

"그냥 줄리엣이에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다음 날, 줄리엣은 약속 장소에 나와 있었다.

"일찍 나왔네?"

덜 어두워서 그런 걸까, 줄리엣은 전날과 다른 사람처럼 의젓했다. 형제가 있다면 아마 맏이겠지.

우리는 함께 어느 가정집 앞으로 향했다. 집이라고는 하나, 낡은 공동주택이었다. 나는 문을 힘껏 두드렸다.

"저기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다시 두드려도 반응은 같았다. 줄리엣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나는 문고리를 당겨봤다. 그러자 문은 당황스러울 만큼 시원스레 열렸다.

"가택 침입은 불법입니다."

"깜짝야!"

열린 문틈 사이로 손이 빠져나왔다. 조금만 더 놀랐으면 아예 문으로 찧어버릴 뻔한 위험한 국면이었다.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골랐다.

"있으면 대답 좀 해요."

"무슨 일입니까?"

그는 인사조차 없이 물었다. 못 본 사이에 더 사람 같지 않아졌다, 나는 그런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미안한데, 소개해줄 아이가 있어서요."

"중매입니까? 됐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대화가 끝나려는 기색이자, 줄리엣이 갑자기 문틈 사이로 몸을 집어넣었다. 예상 못 한 상황이었다.

"앗, 잠깐, 얘!"

나는 창백한 얼굴로 아이를 잡았다.

겁 먹을까 봐 여기 와서 설명하려 했던 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를 보면, 분명히....

결국, 문은 완전히 열렸고, 그 너머 있던 청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피로가 쌓여 창백한 얼굴, 살이 문드러져서 거즈로 덧댄 한쪽 눈두덩, 길게 찢어진 입꼬리, 장시간 갈지 않아 진물이 흐르는 목 붕대와, 그 틈새로 비치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이빨들....

"괜찮아, 이분은 생긴 건 이렇지만 형사님이야."

나는 급히 설명했다.

분명 놀라거나 충격받을 줄 알았는데, 소녀의 옆모습은 의연했다. 아니, 도리어 그를 보더니 더 차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뭐야, 나만 바보 같게.'

세 사람 중에 당황하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저는 줄리엣이에요. 형사님이 절 도와주실 수 있나요?"

소녀는 씩씩하게, 조금 더 보태면 남자애처럼 당차게 자기소개했다.

"...이야기는 들어보마."

"그리고요?"

청년은 말없이 줄리엣을 내려다봤다. 까득, 까드득, 좀처럼 귀에 익지 않는 이 가는 소리가 목에서 흘렀다. 잠깐, 목에서만 나는 소리가 맞나?

"이름이요."

"피터 윌슨... 윌슨 형사라고 부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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