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69화 (169/232)

§169. 앨리스의 비상 (2)

그 다음 날부터, 나는 조사를 시작했다.

'교수님'의 정체에 관해서는 하나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작년의 일이지만 워낙 기이한 사건이었기에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심야였다. 사감이 급히 부르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내려오니, 정문에 교수님 한 분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게 이상한 질문을 여럿 했고,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크게 낙담하여 돌아갔던 것이다.

그 사람은 필레몬 허버트 학장 대리였다.

소문으로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런던 내에서는 상당한 유명인이라는 듯했지만, 정작 동기들도 아는 바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들려오는 얘기도 식솔을 죽였다든지 하는 뒤숭숭한 것뿐이었다.

무뚝뚝한 군인 출신 교수, 그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강의 내용에도 흥미가 없어서 어떤 식으로 수업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어쩌면 믿기 힘들지 몰라도, 얼마 전까지 나는 아주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이었다. 그러한 기준에서 그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존재였다.

정확히는 내 쪽에서 일부러 피해 다녔다고 해야 했다.

다만, 작년 봄 이래의 일이었다. 교수님은 면식조차 없는 내게만 유난히 친근한 어조로 대했다. 혹은 드물게 측은한 눈으로 보기도 했다.

...마치 내가 모르는 추억을 가진 것처럼.

그것이 신경 쓰였다.

반면, 허버트 교수님은 아주 용의주도한 인물이었다. 어디서 무얼 하더라도 좀처럼 흔적을 남기는 일이 없었다.

잠깐 여기 내가 교수님을 추적하며 적은 쪽지가 있다. 이걸 보며 내가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알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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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 수업 끝. 이르게 끝냄. 복도로 나옴.

13:04. 2층으로 올라감.

13:10. 맞은 편 복도 끝에서 1층으로 내려감.

13:15. 1층 막다른 복도로 들어감.

13:20. 5분째 나오지 않음.

13:22. 교수님이 사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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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후 조사해 보고 알았지만, 대학 건물에는 숨겨진 길이 여럿 있었다. 3년 동안 다니면서 이런 구조로 되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대부분은 외길이었기에 따라 들어가면 반드시 들킬 터였고, 모조리 암기하기에는 교수님이 다니는 길만 해도 수가 많았다.

통로가 없는 길로 다닐 때에도, 교수님은 외진 길만 골라 다니면서 멀리 돌아가기도 했다. 먼저 앞서가려 해도, 인기척을 내지 않고 경로를 휙휙 바꿔대니 몰래 쫓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기분 나쁜 습관이었다.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야 이처럼 편집증적인 버릇이 붙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나마 나중에는 몇 가지 요령이 생겼다.

교수님이 외길로 들어가면 걸음이 느린 만큼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고, 또 지팡이 소리는 들으려고 하면 꽤 크게 들렸다.

그만큼 교수님은 신출귀몰했다. 문외한이 내가 보기에도 호기심으로 접할 영역은 아니었다.

"그래요, 사실대로 말하면... 저는 겁먹었습니다."

나는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윌슨 형사가 말했다.

"그러긴커녕, 선생님도 모르게 그의 자택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꼭 제가 범죄자 같네요."

"법적으로는 그렇죠."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

"아하, 법이라. 정의롭지 못한 이가 무고한 사람을 핍박할 때 단골 소재네요. 이제 와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잖아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서 듣고 있던 여인, 제니가 이야기를 독촉했다. 거기에 윌슨은 (티는 내지 않았지만) 발끈하여 반박했다.

"아무렇지 않은 법은 없습니다."

"좋은 게 좋다는 말을 하려 했던 거예요. 왜 화를 내고 그래요."

"화내지 않았습니다."

형사의 노기를 잠재운 것은 소녀의 무구한 눈동자였다. 사실 그보다는 따분한 눈동자였지만.

줄리엣의 시선을 감지한 윌슨은 헛기침하며 날 돌아봤다.

"당신이 어떤 이유로 선생님의 신변을 조사했는지는 알겠습니다. 그게 도덕적으로 어떤지 따질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형사다운 행동을 했다.

성큼 내게 다가온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그가 형사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어쩌면 형사 교본에는 이런 강령이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추궁할 때는 그 사람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며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15인치 다가갈 것.'

완벽한 잡생각이었다.

"하지만 설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이상을 눈치챘고, 거기서 위기심을 느낄 만큼 영리한 사람입니다. 호기심으로 그랬다는 설명에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나는 눈을 맹렬히 깜빡였다.

"그런가요?"

"무슨 뜻입니까?"

"아뇨, 미안해요.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서요. 그런 말을 들을 줄 몰랐어요. 호기심으로는 안 되는구나...."

"리들 양?"

"처음이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계속 말했다.

"전에도 빼앗긴 적이 있어요. 어린 시절인데요, 다들 알고 있지만 나는 모르는 내가 있어요. 지금까지는 어려서 그랬겠거니 했지만요, 다 커서는 이상하잖아요? 빼앗긴 걸 되찾고 싶어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 줄은 몰랐어요."

내 말이 끝나자, 제니가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윌슨에게 말했다.

"우선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는 게 어때요?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네?"

윌슨은 끄덕였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가정부 셜리 마리는 대외적으로 활동이 없는 인물입니다. 심지어 법적으로는 사망한 인물이죠. 당신은 어떤 식으로 그녀와 접촉해서, 무언가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 말에 틀린 부분이 있습니까?"

"어, 일단 한 가지 정정하자면요, 교수님 댁에 가정부가 있다는 건 몰랐어요."

나는 부끄러워서는 헛기침했다.

"사실 무단침입했다가 들킨 거죠. 그게 첫 만남이었어요."

미행은 점점 대담해졌다.

여러 차례 반복하니 자신감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종잡을 수 없는 교수님의 행보에 지친 탓도 있었다. 그에게는 분명 깊은 비밀이 있었지만, 정작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교수님의 댁까지 따라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집값이 비싼 런던치고는 큰 집이었다. 내가 알기로 교수님은 미혼인데, 집에는 내가 본 것만 다섯 명의 아이가 살고 있었다. 머리색이나 눈 색이 제각각이라 이상한 상상을 하기 딱 좋았다.

어쨌거나, 나는 월담했다.

교수님께서는 외출 중이었고, 당연히 아이들은 얌전히 집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창문은 열려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그렇게 해뒀다. 전에 경첩부에 솜을 끼워놓은 덕이었다.

'어쩌면 내게는 도둑의 소질이 있는지 모르겠는걸.' - (엄숙한 윌슨 형사님의 이름에 맹세코 이야기의 흥을 돋우기 위한 농담임. 앨리스 리들은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함.)

사실 이 시점에서 나는 조금 부주의했다. 아무도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마음에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집안을 뒤졌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뛰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서재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여러 외국 도서와 학술서가 무분별하게 꽂혀 있었다.

여기서 교수님이 별로 정리정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는데, 서고에는 책이 눕혀져 있거나, 책 위에 올려져 있거나, 심지어는 책이 아닌 잡동사니가 다량 배치되어 있었다.

조심히 둘러보던 중이었다.

"누구세요?"

심장이 철렁 가라앉았다.

문틈 사이로 흐르는 빛줄기에 검은 인영이 드리웠다. 형체는 분명 사람의 그것이었으나 목소리는 아니었다.

차라리 나는 우연에 기대었다. 바이올린 현이 끊어지며 우연히 말소리를 닮은 소음이 났다는 식으로 말이다.

"여기서 뭐하시는 거죠?"

하지만 여긴 바이올린 따윈 없었고, 그 음색은 분명 날 향하고 있었다. 그 소리에는 감정이 담기지 않았지만 나는 추궁받고 있었다.

나는 창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리들 아가씨?"

그것은 날 불렀다.

"당신이죠? 저예요, 셜리 마리. 가정부요."

"어떻게 저를 알죠?"

나는 고장 난 태엽처럼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물으셔도...."

빈말로라도 기복이 두드러지는 음색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망설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틈에 도망칠 텐가, 아니면 대답을 기다릴 텐가.

물론 후자는 미친 짓이었다. 비록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남았다. 그리고 속내 연극처럼 한탄했다.

'아, 위험과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성이라.'

대답은 돌아왔다.

"주인님이 일하시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죠? 우리는 전에 만났어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음색이었지만, 냉정하게 평가하면 아주 정중한 말씨였다. 어휘 자체는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았지만, 스스로 밝힌 가정부라는 신분에는 알맞았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게다가 공감대까지? 나는 애써 친근감을 느끼려 했다. 물론 그러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가택 침입에 대한 변명부터 떠올려야 했으니까.

"도와주세요."

상대는 대뜸 말했다.

"아으, 어, 네?"

나는 차분하게 되물었다.

"주인님 때문에 오신 거죠?"

"저도... 마침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는데요."

상대는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비명 지른 것은 굳이 묘사할 필요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절한 셜리 마리는 괴물이 아니었다. 사실 대부분 사람보다 사려 깊었다. 그녀와 내가 한 살 차이란 걸 알고는 어찌나 놀랐는지.

나는 몇 번씩 찾아가서 마리에게 여러 일화를 들었다. 모두 교수님에 관한 것이었는데 일부는 알던 것이고, 나머지는 믿을 수 없이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그중 그녀가 무척 중요하게 다룬 부분은 웨섹스 지방 어느 시골 여관에 들렀을 무렵의 일이었다.

"말하던 중에, 주인님은 갑자기 침묵했어요. 그리고,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다투려는 듯했죠. 워낙 갑자기 일어난 변화라서, 저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마리는 말했다.

"그리고, 움직임이 멎었어요. 주인님은 한참 정자세로 서 있다가,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어요. 내일은 바쁠 테니까 이제 자야 한다고."

"이상한 일이군요."

"그 이상이죠! 우리는 그렇게... 가벼운 얘기를 하고 있지 않았어요. 반면, 주인님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고요. 그날부터 실수가 늘어났어요. 이제는 아예 아이들 이름마저 까먹었죠. 심지어 절 옛날 어린 시절처럼 대하는 순간마저 있어요. 아아, 저는 이제 견디기가 힘들어요."

미안한 말이지만, 마리가 고충을 털어놓는 동안 내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 교수님은 기억을 잃어가고 있고, 나는 이미 잃었다.

연관성이 있을까?

"리들 아가씨?"

"아, 죄송합니다. 그래서, 두 분이 나누신 말씀이 어떻다고요?"

"그건... 조금 사적이라."

"앗, 그러면 괜찮아요."

"하지만 주인님께서 마지막으로 하려던 말은 기억하고 있어요. 영국 역사에 관한 얘기였어요. 헨리 6세, 백년전쟁, 장미전쟁... 그게 중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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