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불운의 시대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제임스는 말했다.
"440배로 달다면요."
"우리는 지금 농담하자는 게 아니야."
"저도 그렇습니다!"
그는 정색하며 외쳤다.
연단에 선 그는 전처럼 떳떳한 게 아니라, 사람들을 피해 구석에 내몰린 생쥐처럼 불안하게 보였다.
"프로이센 자동차를 생각해 보시죠!"
어거스틴의 몸이 흠칫 떨렸다.
"초기에는 말 그대로 회사가 난립했죠. 스패너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직공을 자칭했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준비된 기술자였습니다. 우리처럼요!"
"더 많은 건 요구 안 할 테니, 공장 건물 전부 처분하고 지분만큼 배분하게."
"궤간 전쟁은 또 어떻습니까? 그 많고 다양하던 철도가, 지금은 어디서나 같은 규격이죠. 조지 허드슨은 그야말로 왕이었습니다!"
첫 만남 때는 열정적인 호소력으로 마음을 훔쳤던 그가 지금은 핏발 선 눈으로 정제되지 않은 문장을 마구 내뱉었다.
어찌나 살벌한 기세였는지, 그를 몰아세우던 투자자들도 한발 물러서고 말 지경이었다.
"재판까지 가서는 자네나 우리나 좋을 게 없어."
"그래요, 당신들 말대로 공장을 처분한다 칩시다. 그러면 수중에 얼마나 남을 것 같습니까? 눈앞의 석고상을 깨부수고, 자갈 더미로 팔아서 얼마나 큰돈을 벌겠느냐고요! 브릭턴은 단일 화학조미료 공장으로 영국 최대 규모인데, 그런 시설을 헐고 녹여서 쇠붙이로 팔아넘기겠다는 무식한 소리를!"
끝내 제임스는 악을 쓰며 펄쩍 뛰었다.
"영광을 되돌리고 싶지 않습니까?"
"근데 그럴 수가 없잖나."
"있다면요."
제임스는 정색했다.
"440배로 달면 됩니다."
조금 전과 같은 말이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제임스가 버티던 사이, 그들 마음에도 달콤한 망설임이 피었던 것이다.
앞선 수개월간 그들이 쌓아올린 지방에는 단맛이 가득 차 있었다. 뇌수에까지 스며든 달짝지근한 낙관이 다시금 선택을 유보하게 했다.
"440배."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문책이 파하는 분위기로 흘러가자, 목장주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건 아마 나뿐인 듯싶었다.
"이제 단 건 충분한 것 같은데...."
결국, 제임스는 새 조미료를 개발하겠다는 언약과 함께 풀려났다. 그러는 사이에도 사업은 젖은 각설탕처럼 빠른 속도로, 착실히 붕괴하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 둘째 형님께 들은 말을 떠올렸다.
그 내용인즉슨 이랬다. "레몬." 집에서만 쓰는 오랜 애칭이었다. "만약 네 수중에 분수에 맞지 않는 거금이 들어온다면, 그때는 내게 와서 상담하거라. 너는 돈 관리가 서투르니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세상 일이란 게 네가 뿌린 대로만 거둬지는 것도 아니잖니."
둘째 형님은 대화 상대를 엄격하게 골랐다.
의도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일상적인 회화 사이에도 언제나 의미를 숨겨뒀고, 결코 해설하지도 않았기에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대화는 매 순간이 일종의 퍼즐이었고, 그가 하고자 한 말을 눈치챌 때면 기이한 지적 쾌감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었기에, 때때로 나는 불연소를 느꼈다.
그런 탓에 나는 그러기에,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그것도 어떤 은유로 여겼다. 끝내 내가 눈치채지 못한 우화적인 교훈이 담겼을 거란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제야 안 사실이나, 그라고 항상 돌려 말하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나는 수렁에 빠졌다.
한동안, 나는 두 가지 업무로 바빴다.
하나는 법률 자문을 구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빈 금고를 채워넣는 일이었다. 불행히도 둘 모두 마땅한 성과는 없었다.
내가 초조해하는 게 여간 눈에 띄었는지, 마리조차 의심스러워하며 물었다
"요즘 바쁘게 다니시네요?"
"따로 알아볼 게 있어서."
나는 일부러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매번 저지르는 실수이지만, 이런 애매모호한 태도는 젊은 처자의 호기심을 돌려두는데 별로 도움되질 않았다.
"저번에 하신다던 그 일이겠군요."
"뭐? 아니야."
이것 또한 매번 저지르는 실수인데, 정색하고 부정해서는 눈치 빠르고 영악한 처녀를 속여 넘길 수 없었다.
"주인님이야 똑똑하니 어련히 잘하시겠지만, 돈의 소중함에는 워낙 또 둔감하시잖아요."
마리가 하는 말은 옛적에 둘째 형님께 들은 말과 같았다. 어째 날 아는 사람은 모조리 이렇게 말하니, 인정할 마음이 안 들어도 이쯤이면 받아들일 때도 되었다.
"정말 그래."
나는 한숨처럼 말했다. 이번에 돌아온 반응은 원하던 것과 달랐다. 내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자, 마리는 정말로 걱정하기 시작하며,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물어왔다.
"정말로 무슨 일 있으세요?"
"어쩌면... 아니, 큰일이 있었지."
"이걸 어쩌면 좋아. 위험한 일인가요?"
"아니, 아니. 그런 일이 아니야. 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봤어."
정직하게 말하니, 마리는 되려 안심했다.
"그건 큰일도 아니네요."
"큰일도 아니라고? 세상에, 셜리 마리, 무슨 일이야. 자네가 그렇게 대범한 성격인 줄 몰랐는데."
"나가서는 반송장이 되어 돌아오는 것보단 백 배 나아요. 게다가, 주인님이 돈 손해를 보는 일이야 한두 번도 아니잖아요?"
듣기는 불쾌했으나, 딱히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얼마 정도요?"
"뭐가?"
"딴청 피우지 마시고요. 얼마나 잃으셨는데요?"
"미리 말해두는데, 내 돈이야. 얼마가 되었건 자네가 날 훈계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아두게."
나는 슬며시 손으로만 액수를 말했다. 마리는 얼빠진 것처럼 손 모양을 따라 하더니, 호들갑 떨며 내 팔에 매달렸다.
일말의 과장도 없이 자빠질 뻔했다.
"주인님!"
"알아, 나도 아니까 좀 떨어져!"
간신히 찰거머리를 떼어내고, 나는 자세를 정돈하며 구겨진 옷 주름을 손으로 털어서 폈다.
"살림으로 아끼면 뭐해요!"
"어차피 내 돈이잖나."
분명 잘못이었지만, 지적당하니 괜히 인정하기가 싫었다. 무신경하게 내뱉은 나는 한동안 이어질 잔소리에 대비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예상과 달리, 마리는 더 추궁하는 대신, 두 손을 맞잡고 비볐다.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은 거잖아요?"
"방금, 자칫하면 한 명은 죽을 뻔했지만."
"과장이 심하세요."
나는 정색하며 답했다.
"자네는 자네 무게를 몰라."
"어떻게 그런 말을 하세요?"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나, 실제로 그런걸."
아무래도 마리의 기분을 해친 모양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그 자리를 벗어나며 혼잣말처럼 주절거렸다.
"그런 태평한 소리가 잘도 나오는군그래.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면,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깟 돈푼 좀 잃었을 뿐이니, 그걸로 누가 죽으란 법은 없지...."
두 번의 파탄 이후, 호텔 풍경은 살벌하게 변모했다.
홀 쪽에서는 항상 고함, 또는 악다구니, 실랑이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무엇도 언어가 되지 못한 아우성에 그쳤다. 나는 어디선가 이런 소음을 들어본 듯했다.
연식이 긴 공장 기계가 덜컹거리거나, 증기차의 발차와 엇비슷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무엇도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은 없었다.
그에 관해, 메리안 여사는 침묵했다. 다른 투숙객 역시 그랬다. 한 번은 로비에서 다른 투숙객과 마주쳤는데, 그들은 수상쩍은 몸짓으로 복도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씁쓸한 향이 맴돌았는데, 종교 미사에나 쓸법한 향로에 태운 쑥 냄새 같았다. 이러다 보니 소음에 정당한 지적을 할 사람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나야 이러한 소란에도 익숙했지만, 악취만큼은 참기 힘들었다. 홀에서는 그간 묵은내와 가지각색 향신료가 섞여서는 사육장 냄새가 났다.
"그만, 그만합시다!"
내가 홀 안에 들어서자, 제임스가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 말에는 달리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오직 빼빼 마른 목장주만 그쪽을 바라봤는데, 초점이 흐릿해서 그가 일부러 거길 본 건지, 아니면 머리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목이 어쩌다 그쪽으로 돌아간 건지 알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멱살잡이하며 드잡이질하는 이들이 있었고, 나머지는 그들을 둘러싸고 꽥꽥 고함지르고 있었다. 맞은 편 탁자에는 우울한 얼굴로 흑후추 뿌린 돼지를 앞에 두고 질겅질겅 씹고만 있는 자들이 모여 있었다.
윌 해리 올리버는 구석 자리에서 여전히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뭔가 적기도 하고, 골똘히 생각하기도 했지만 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450배로 합시다!"
제임스는 경매인처럼 외쳤다.
"늦었어요, 450배는 이미 있다고요!"
"그러면 455배!"
우리는 숫자 전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숫자를 조금씩 높여 부른 조미료가 시장에 출시되었고, 제임스는 스스로 약속한 440배만큼 단 것을 완성하지도 못했다.
공장을 처분할 시기도 넘겨, 최초 적자 이후로 연일 누적된 금액은 이미 시설을 저당잡고도 메울 수 없었다. 명백한 파산이었다.
나는 무거운 각오를 다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까지 설득이 통할지 몰라도, 더 이상 험악해지도록 둘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돈이라고, 무언가 행동이 필요한 때였다.
"이제 더는 못 참아."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다.
돌아보니 시종일관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던 목장주가 벌떡 일어났다. 그 손에는 엽총이 들려 있었다.
그걸 알아본 사람들은 요란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사방팔방 흩어졌다. 오직 한 사람, 사선 끝에 놓인 제임스만이 손을 위로 들며 제자리에 멈췄다.
"돈 돌려놔. 아니면은...."
"진정, 진정하세요. 절 쏴도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시잖아요?"
제임스는 근래 가장 차분한 소리로 목장주를 달랬다.
"되돌릴 수 있습니다. 제가 되돌릴 수 있어요. 단맛은 자극입니다. 쾌감이죠. 수요는 영원하고, 그 말은 기회는 언제든지 찾아온단 말입니다. 455배, 아니, 500배, 그 이상의 순도도 가능합니다. 그러면 지금 잃은 돈은요."
정작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여지껏 끊임없이 되풀이한 내용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돈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하지 않아?"
"제가 뭐라 했습니까. 영원이요! 다른 말로는 무한이죠. 무한의 도시에서는 재화 따위는 하등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정 중요한 건 영원이죠."
다만, 그 뒤에 지껄이는 말은 의미심장했다.
나는 지금껏 그가 집착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 여겼는데, 어쩌면 다른 내막이 있는지도 몰랐다.
"중요하지 않다?"
"그래요. 언젠가 이해할 겁니다, 시간은 많으니 틀림없이...."
"나는 그게 다였어."
목장주의 마른 입에서 무거운 숨이 흘렀다.
그 직후의 일이다. 갑자기 그의 다리가 꺾이며, 몸이 뒤로 넘어가더니, 처절한 총성이 울렸다.
상황조차 채 파악하기도 전에 두 사람이 동시에 쓰러졌다. 제임스는 무사했다. 피를 쏟으며 쓰러진 건, 전혀 다른 쪽에 피난해 있던 신사였다.
홀 중앙과 가장자리에 한 구씩 시체가 놓였다. 사람들은 벽에 붙어, 바짝 얼어서는 이 불가사의한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나는 조심스레 목장주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엽총이 잡혀 있었다. 나는 그의 손을 풀어, 총을 치우고는 맥을 짚었다.
"죽었습니까?"
"예."
"둘 다요?"
그 질문에 나는 과묵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조사 결과, 목장주의 사인은 아사였다.
직접 방아쇠를 당긴 건 아니고, 사후 직후의 경련으로 발포한 것이었다. 그가 쓰러지며 돌아간 총구 방향에 무고한 피해자가 있던 것 또한 불운한 사고였다.
두 구의 시체가 자루에 담겨, 연달아 실려 나갔다. 목장주의 마른 시체는 포대도 작았다. 총격당한 신사는 원체 무거워서 네 사람이 끌어야 했다. 자루를 따라다니는 파리도 신사 쪽에만 잔뜩 끓고, 목장주의 시체가 담긴 포대 쪽으론 다가가질 않았다.
그 광경을 관망하며, 나는 옆에 선 올리버를 보지 않으며 말했다.
"결국, 사건이 일어났군요. 당신 주장과 달리요."
"아닙니다."
그는 떳떳하게 답했다.
"본건과는 무관한 사고죠."
"사고요?"
나는 따지듯이 되물었다.
"발포 과정에 발포자의 의사가 있었습니까?"
"허어."
"그저 불운이 겹쳐 일어난 우연한 사고였습니다. 이봐요, 사고는 언제나 일어납니다. 확률상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게 어디서, 어떤 식으로 일어나게 할 지, 그 부분이 감찰의 재량입니다."
"허어."
"결국, 여기서 불운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게 답니다."
올리버는 진심으로 그리 믿는 듯이 말했다. 이론이라 부르기엔 얄팍하고, 신념이라 부르기엔 자기보신적이었다.
나는 그저 짧은 추임새만 연달아 내뱉었다.
한편, 이번 '사고'의 피해자가 될 뻔했던 제임스는 충격이 여간 컸는지, 발포 이후로 창백해져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머리 색이 살짝 옅어지고, 광대뼈가 보일 만큼 앙상해져서 추레한 노인 같았다.
"여보게."
나는 널브러진 제임스를 불렀다. 그는 흰 눈으로 날 힐끗 살폈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그의 입술이 진동할 때마다 "450배, 460배...." 같은 소리를 냈다.
"아니, 아무것도."
도무지 뭔가 캐물을 상태가 아니었기에, 나는 단념하고 물러났다. 제임스는 내가 멀어질 때까지 "470배, 480배...."하고 중얼거렸다.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다른 투자자도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일전 나와 지하에서 지독한 꼴을 봤던 어거스틴은 그나마 나았지만, 거리에서 토하는 걸 봤기에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추궁할 상대는 하나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 보르조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 경찰에게 조사받던 메리안 여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심한 얼굴로 제자리에 돌아가 있었다.
나는 데스크에 팔을 올려놓으며 물었다.
"어떻게 한 겁니까?"
"총성이 났길래, 곧장 경찰을 불렀죠."
그녀는 툭 시침을 떼었다. 나는 지팡이로 융단을 푹 찔렀다.
"이 아래, 뭐가 있습니까?"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아니면, 후각이라 할까요?"
아무리 노려봐도 메리안을 위협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겁박하기를 체념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양모는 충격을 흡수하죠. 많은 사람이 오가는 로비이니, 누군가 소리로 바닥 아래가 비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 깔아둔 것 아닙니까?"
"확신하는 말투군요. 그것도 꽤 오래전부터요."
"처음 여기 방문한 날부터 알았습니다. 융단 틈새를 지팡이로 들추고 두드려봤죠."
탐험가 시절 때부터의 습관이었다.
당시에는 부실한 지반을 피해 가려 익힌 것이지만, 지금에는 조금 다른 용도로 강박적으로 조사하고 있었다.
"그것참 무례하군요."
메리안 여사는 단언했다. 확실히 그랬다.
"맞아요, 당신 추측대로, 호텔에는 숨겨둔 지하가 있죠."
그녀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 뿐만 아니라,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융단이 깔린 장소까지 나왔다. 그녀는 이음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뒤집었다. 해묵은 먼지를 들이마셔, 나는 절제된 기침을 했다.
바닥에서 털실 면적은 점점 줄고, 눅눅하고 상한 나무 바닥이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자물쇠가 걸려 있는 지하 입구 역시 나타났다.
"이 또한 연륜인지, 어린 생각이 훤히 들여다보여서요. 무슨 유치한 생각을 했는지 알겠어요."
그녀는 자물쇠를 열었다. 나는 무심코 품 안의 권총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녀는 날 비웃듯이 지하실 문을 활짝 열고, 내려가는 계단에 걸터앉았다.
"우리 호텔에서는 간헐적으로 경매를 엽니다."
"알고 있습니다."
"여기는 그 상품을 보관하는 창고지요."
그 안에는 여러 크기의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 있을 뿐, 특별한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지하에 있는 뭔가 때문에 일이 벌어졌을 거라, 그리 생각했나 보죠? 미안하지만, 여기는 아무것도 없어요."
메리안 여사는 다시 일어났다.
"보다시피, 텅 비었죠."
"그렇다면."
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지금은 대체 무슨 시대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