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91화 (191/232)

§191. 총과 밧줄

나는 세 번째 시체를 건져 올렸다.

이자도 같았다. 신원 미상, 군용 화기, 익사 혹은 동사... 더는 확인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방법도 없었다.

설계상의 문제인지, 아니면 거기에 배수로가 나 있는지 몰라도 실내의 물은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 정확히 계단의 맞은편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체는 한 방향으로만 몰렸다. 물에 부풀고 창백한 시체가 부대끼는 모습은, 처음 본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익숙해지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었다. 나는 맹렬한 추위 속에서도 정확히 중앙의 화이트 타워로 향했고, 예상대로 여기서 뭔가 사건이 벌어졌다.

나의 동물적인 감각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저 불길도 곧 꺼질듯 하면서도 아직 뜨겁지 않던가.

마침 생각이 난 김에 나는 불가에 널어둔 옷을 털었다. 사이사이 낀 살얼음이 유리 결정처럼 깨져 바서졌다.

덕분에 축축함을 가셨지만, 겨울 한기가 묻어 있었다. 그렇다고 입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나는 몸을 벌벌 떨며 한 겹씩 걸쳐 입었다.

내가 비록 차림새에 깐깐하지는 않지만, 차마 남에게 못 보여줄 몰골이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내가 향할 곳이 파티장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홀은 침수되었고, 수위는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높아져 있었다. 이런 물속을 헤치고 1층을 탐색할 자신은 없었다.

그러면, 길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계단을 올랐다.

2층 홀에 오르자, 역한 악취가 풍겼다.

여러 사건으로 이런저런 악취에 길든 덕에, 그 정체는 대번에 짐작되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그건 도저히 실내 한복판에서 날 만한 냄새가 아니었다.

냄새는 차치하고, 침수한 1층에선 몰랐지만, 이제 보니 건물은 그 밖의 위화감도 가득했다.

본래 화이트 타워는 숙직 병사들을 위한 시설이었을 터였다. 그런데 정작 실내는 그보다 사무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으며 둘러봤다.

무단으로 여길 사무실로 쓰던 이들이 누군지 몰라도, 아주 급박하게 떠난 것만은 분명했다. 바닥에는 정돈되지 않은 종이와 책, 파일 등이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었다.

나는 허리 숙여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내용은 공문서의 형식을 따랐되, 필적이나 문장은 도저히 어수선해서 읽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하나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들이 여기에?

파삭파삭.

나는 고개를 번쩍 치들었다. 열린 창에서 분 바람에 종이 나부랭이가 부대끼고 있었다. 어디서도 인기척은 없었다.

홀에서 이어진 방문은 하나 빼고 모두 열려 있었다.

나는 닫힌 방문 틈새를 바라봤다. 희미한 주황색 불빛이 어른거렸다. 촛불 빛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밖에서는 빗소리만 계속 이어졌다.

가까이 붙자, 안에서 느리게 끼익, 끼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악취의 진원지도 여기였다. 문을 열기도 전부터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대강 짐작이 갔다.

나는 소리 없이 문을 열었다.

예상과 달리,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등 돌린 채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밧줄에 목 매고 좌우로 왕래하고 있었다. 그 바로 아래에는 그가 흘린 오물이 고여 있었다.

"신부님."

"오실 줄 알았습니다."

호프먼은 천천히 뒤돌았다. 나는 발을 멈췄다.

벽에는 반사광이 비치고 있었다. 비록 내 쪽에선 보이지 않지만, 신부의 손에 들린 무언가에 촛불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알아챘다. 이처럼 차가운 빛을 내는 금속은 몇 없다.

"이제 알겠군. 너는, 신부 같은 게 아니었어."

"두 가지 틀렸습니다."

그는 손목만을 움직였다. 권총이 어둠 속에서 드러났다.

"호프먼은 교구로부터 인정받은 신부입니다. 국교회 명부에도 실린 엄연한 사실이죠."

그리고,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저는 호프먼이 아닙니다."

"이젠 지긋지긋하군. 온통 거짓뿐이야."

호프먼, 아니, 남자는 코안경을 벗어서 책상 위에 올렸다.

"그것도 틀립니다. 적어도, 저는 신부로서 역할을 다했습니다."

"너는 누구지?"

그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의미심장한 질문을 돌려줬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그야."

"혹시 듣지 않았습니까. 신도, 파발, 어쩌면 소문 좋아하는 이웃으로부터... 맞춰보죠. 이런 내용 아니었습니까? 신부님께선 원래 교도 신부였다고, 며칠 전부터 동쪽으로 가겠다고 했다고, 혹은 마지막으로 런던 탑 근처에서 본 적이 있다고."

단번에 나는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다. 모두 자작극이었다. 나는 진절머리 치며 물었다.

"전부 한통속이었군. 어디서부터, 어디, 어디까지 계획된 거지?"

말하던 중 불현듯 떠오른 가능성에, 추궁하던 목소리가 점차 떨렸다.

그리 말하다가, 나는 어떤 가능성을 깨닫고 목소리를 떨었다.

"파라 함장, 그의 건도 자네들 소행인가?"

질문이라고는 하나, 추궁에 가까운 것이었다. 의심은 확신에 가까웠고, 나는 그가 대답할 때까지 참을 자신이 없었다.

주먹을 꽉 쥔 채로 떠는 내 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시종 차분했다.

"무슨 오해를 하는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순수하게 알던 사이였습니다."

나는 그 대답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동시에, 이어질 말을 예상할 만큼 영악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 밖에도, 제겐 친구가 많습니다. 앨버트 파라, 어거스틴 브라운, 로버트 스콧, 피터 윌슨... 우연히도, 그들 모두 제게 사후 장례를 맡길 만큼 돈독합니다. 설령, 당신은 눈치채지 못했다 한들, 소피 여사의 장례식에도 저는 있었습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언제부터였나?"

"우연히, 당신은 지역 성당에서 저와 재회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우연하게 전해 들은 행적을 쫓아 지금 여기에 있죠.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당신은 우연히도 그런 성격이었으니까요."

그는 계속 말했다.

"조금 더 원론적인 얘기로 돌아가죠. 당신이 저와 재회했던 건, 우연히도 제가 속한 세인트 주드 교구에 이주한 덕입니다. 아무리 거금이 있다 해도, 그런 번듯한 저택... 요즘 같은 주택난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겠죠. 아마도...."

그리고, 그는 통렬하게 혀를 튕겼다.

"운이, 아주 좋았다."

"전부 자네 소행이라고?"

"우연이란 좌표입니다. 서로 무관한 여러 벡터가 한 점에서 충돌할 때, 그 인과에 당위성을 찾지 못할 때면 우린 그걸 우연이라 부릅니다. 실제로는 정해진 시간,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함에도요."

그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저는 위치를 정합니다. 도시에서 우연들이 정해진 자리에 있게 합니다. 그럼에도, 이 도시에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게 너무 많지요."

태도와 말투는 겸손했지만, 입에서 나오는 표현은 그렇지 않았다.

"불가능해."

"우린 불가능이 뭔지 압니다. 반면, 우리의 적에는 그런 틀이 없죠."

나는 노인을 노려봤다.

"한 번만 다시 묻겠네. 너는, 누구지?"

"오베르토."

"본명이 아니군."

내 지적에, 오베르토는 의외란 듯이 눈을 떴다.

"왜 그러지?"

"아뇨, 조심성만이 몸에 배어서요. 어쩌면, 당신에겐 이전 직함 쪽이 더 익숙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말했다.

"보편사무국 부국장이라고."

사실, 알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문서에 적힌 내용은 분명 그들의 것이었다. 거기다가 군인이 아니면서 군용 장비를 다수 운용하는 조직은 달리 알지 못했다.

"옆의 사람은?"

"전 국장님이십니다."

오베르토는 매달린 시체를 마치 산 사람처럼 태연하게 대했다.

"임종하시고 아직 반 시간도 되지 않았죠."

"자살인가?"

"생전부터 결단력이 뛰어나셨죠."

나는 그가 비아냥하는지 헷갈렸다. 재회했을 때부터 그가 보여주는 감정은 극히 제한되어 도저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보편사무국은 여태 신중했다. 그들이 사회 전반에 행사하는 막대한 영향력에 비해 그 실체를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비슷한 집단으로, 토끼풀십자회가 있었다.

홈즈를 중심으로 재능 있는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이 조직이 얼마나 서투른지, 개개인의 재능은 비할 바가 아님에도 집단으로서 정교함이 어찌나 차이가 컸는지 생각하면 보편사무국의 역량은 얕볼 만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오베르토는 몇 번의 만남 동안 완벽하게 날 기만했다. 그랬던 이가 공들인 계획을 망치고, 이런 알기 쉬운 형태로 정체를 털어내는 의중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나 묻지. 어째서 이전 직함이고, 또 그는 왜 전 국장인가?"

오베르토가 내 쪽을 돌아봤다.

"보편사무국 런던 36개 지부, 전국 39주 지부는 전멸했습니다. 캐나다 지국, 호주 지국과는 이전부터 연락 두절되어 있었습니다. 상황은 다르지 않을 테죠. 보편사무국은 이제 실체 없는 조직입니다."

오베르토가 어찌나 차분히 말했는지, 나는 그 말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우린 졌습니다."

"누구에게?"

나는 물었다.

"어쩌면, ...신."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적막해진 방 안에서는 전 국장만이 끼익거렸다.

"어째서 나였나?"

오베르토는 천천히 날 돌아봤다.

"자네들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여, 지금 여기에 있게 종용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왜 나였지?"

그는 답하는 대신 갑자기 제안했다.

"잠시 걸을까요?"

나는 무심코 주변을 둘러봤다. 화이트 타워는 두꺼운 외벽 탓에 겉보기와 달리 층마다 몇 개의 방이 있을 뿐인 좁은 건물이었다.

향할 곳은 오직 위나 아래뿐이었다.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그는 벗어둔 안경을 천천히 다시 걸었다. 그리고 런던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내 옆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그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보아하니 취급도 퍽 익숙했지만, 전혀 위협적이진 않았다. 그는 순순히 총을 뺏길 수도 있는 거리까지 들어왔다.

나는 더더욱 진의를 알기 어려워졌다.

"당신이, 튜더 회장을 살해한 날."

"알고 있었나?"

그는 말을 멈췄다.

"아시듯이 시티 오브 런던을 포함해, 런던에는 33개의 행정 구획이 있습니다. 반면, 보편사무국 런던 지부는 총 36개, 그중 3개 지부가 오직 특정 기관을 감시, 조사하는 목적으로 특수 창설된 지부이기 때문입니다. 올드코트 대학, 노란 외벽 거리, 그리고 왕립 학회의 소재지, 벌링턴 하우스... 당신 동료, 윌슨 형사의 고발 이후, 벌링턴 하우스의 안주인이 사라졌다는 게 확인된 이상, 응당 경위를 조사할 수밖에요."

방밖에 나오자, 그림자 아래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잘 보니, 물은 불과 계단 몇 단 아래까지 차 있었다. 이런 속도라면 2층이 침수하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탑이 강변에 가깝고, 벽에 둘러싸여 물이 고이는 환경이라 해도, 2층이 침수할 정도면 대체 바깥 도시는 어떤 상황이란 말인가.

나는 창을 내다보기가 불안해졌다.

"여기까지 물이 찼군요."

오베르토는 담백하게 감상을 말했다.

"오를까요?"

"그러지."

우리는 쓸모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계단에 올랐다. 오베르토의 느린 발에 맞추자니, 얼마 되지도 않는 통로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튜더 회장이 죽은 날, 보편사무국 런던 8개 지부가 침묵했습니다."

그는 하던 말을 계속했다.

"모두 황도 아래를 지나는 구획이었죠. 백야 현상은 선전포고였습니다. 비록 기습당하기는 했지만, 공격 자체는 상정하던 것이었기에 우리는 준비한 방침에 따라 대응했습니다. 그리고...."

오베르토는 타인의 일처럼 말했다.

"사무국은 몇 달에 걸쳐 철퇴했습니다. 초기에는 일부 감각이 예리했던 요원들은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만...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에 무력화된 후로는 현상 유지조차 벅찼습니다. 아니요, 불가능했죠. 지부는 무력하게 하나씩 점멸했지만, 우리는 각 지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섣부른 조사 행위는 피해자를 늘릴 뿐이었죠. 마지막, 시티 오브 웨스트민스터 지부가 무너졌을 때, 남은 생존자를 규합하여 도착한 곳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나는 이후 전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모로 보아도 런던 탑은 준비된 시설이 아니었고, 1층에서 보았던 참상 또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당신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당신을 여기로 유도했느냐고요. 그건 국장님의 지시였습니다. 이건 제 추측이지만, 그분께선 어떤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겁니다."

나는 말했다.

"그리고, 국장은 자살했다."

"아마 당신은 모를 테지만, 국장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그의 판단을 신뢰하고 따랐죠."

오베르토는 자상히 제안했다.

"슬슬 정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여기는 다행히 총도 있고, 밧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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