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92화 (192/232)

§192. 호문쿨루스

어쩌면, 그가 옳을지도 몰랐다.

그간 경험을 통해, 나는 이 세상이 얼마나 위태로운 경계에 놓였는지 알았다. 대양 한복판에 오직 낡은 댐에만 의존하는 저지대와 같으며, 댐에는 무수한 균열이 나서 언제 어디서라도 물이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거기서 내가 한 일이라곤, 목동이 막연히 댐 주위를 따라 걸으며 눈에 보이는 균열만은 메꿔온 것과 같았다. 무지한 목동은 거기 구멍이 난 이유도, 어디에 또 구멍이 있을지도 몰랐다.

개중에는 당장 사고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긴박한 순간도 더러 있었지만, 그게 나의 운이 좋은 덕이라는 보장조차 없었다. 슬슬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모든 곳에 있을 수 없다.

한 번이라도 뚫린 댐이 개인의 분투로 막힐 리도 없었고, 내가 닿지 않은 한 번의 사고라도 온 세상을 망가트릴 수 있다.

세상은 내가 없는 곳에서도 무너진다고!

그게, 어쩌면 이번이었다면.

나는 무기력한 눈으로 오베르토를 봤다. 그에게서 어떤 광증의 흔적이라도 찾아내기 위해, 노골적인 시선으로 그의 안면 거죽 하나하나를 들춰 살폈다. 눈의 충혈이 있지 않은지, 입술에 피가 나지 않았는지, 긁힌 자국이며, 수전증... 뭐라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정상이었다.

다소 지쳤을지언정, 눈빛은 여전히 탁한 이성을 담고 있었다. 오베르토는 미치지도, 거짓말하지도 않았다.

세상은 다시 한 번 내게 묻고 있었다.

'어떻게 죽을 텐가?'

나는 매번 하던 대로 했다.

"자네가 아는 걸 들어야겠어."

"물론, 저는 많이 압니다. 그래도 당신이 뭘 궁금해 하는지는 모르겠군요."

"아이작 뉴턴."

오베르토가 계단 중턱에서 멈췄다.

"보이지 않는 대학의 수장이자, 불가시학파의 창시자 로버트 보일의 제자였지. 그리고, 지금은 학장이라 불리는 케이시 오' 제럴드와 동문이고."

"잘 아시는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는 물끄러미 날 바라봤다.

"그래,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그들이 뭘 작당했고, 지난 200년간 어떤 일이 있었고, 영국 정부를 장악한 자네들이 뭘 꾀하는지, 정작 중요한 부분은 텅 비어 있지."

"저는 순수하게 칭찬할 셈이었습니다."

나는 고소를 머금었다.

"이 질문부터 시작하지. 보편사무국이란, 뭔가?"

오베르토는 천천히 중간 층계를 올랐다.

그리고, 아예 벽을 등지고 섰다. 넓은 공간은 아니었기에, 나는 몇 칸 아래에 머물러서 그를 올려다봤다. 촛불조차 없는 어두운 실내였기에, 그는 윤곽선으로만 보였다.

"보편 사무란, 아이작 뉴턴이 제창한 개념입니다."

그는 입을 떼었다.

"뉴턴은 통제 정도에 따른 사회의 속성을 분류했습니다. 정적인 스타티카 상태, 그리고 동적인 디나미카 상태, 그는 인간 사회에도 자연 철학에 준하는 규칙성이 적용돼야 한다고 믿었고, 이러한 극-스타티카 사회를 이상적인 형태로 여겼습니다.

거기 이르기 위해서, 그는 사회가 거쳐야 하는 일곱 단계의 세밀한 계획을 작성했습니다. 그건 예언서에 가까웠지만, 정교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당대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한 항목도 있었으나, 뉴턴은 문명의 경향성을 통해 훗날의 기술력을 내다본 것입니다. 물론, 그런 계획을 간단히 실현할 수는 없었고, 뉴턴은 세 가지 조건을 덧붙였습니다. 국가 규모의 행정력, 국제 사회의 긴밀한 협력 관계, 그리고 계획 진행을 총괄할 범국가적 단체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서둘러 결론지었다.

"범국가적 단체가 바로 보편사무국이겠군."

오베르토는 잠깐 날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는 인자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와의 연령차를 인식하고, 수치심에 눈을 깔았다.

"뉴턴은 자신의 계획을 공상 속에만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국회 협력을 얻고자 정계에 입성하기도 했고, 가산으로 보편사무국의 전신되는 사조직을 결성했습니다. 접근 자체는 정답이었지만, 그는 몇 가지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뭇 재능을 타고난 그에게 사회성이란 허락되지 않은 작은 영역 중 하나였다는 점, 그의 사후에 프로이센 왕국이 대두하며 국제 협력의 길이 반영속적으로 닫히게 될 거란 점."

뉴턴 개인의 인품이야 내가 알 만한 게 아니었지만, 프로이센 왕국 부분은 아는 바가 조금 있었다. 그건 나와도 무관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잃어버린 왼 다리를 흘겨봤다.

"그리고?"

"자신의 수명이었습니다."

그 대답은 아는 바와 달랐다.

웨스터민스터 사원의 꿈 때문에, 나는 근래 뉴턴의 묘비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오베르토의 표현이 이상하단 사실을 바로 깨우쳤다.

"내가 알기엔, 뉴턴은 빈말로도 단명하지 않은 인물인 줄 아네만."

"말씀대로 뉴턴은 향년 84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면?"

"착각했다고, 그리 말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순간 오베르토의 설명이 흐릿해졌다.

"그는 말년에도 왕성히 활동했습니다. 이유야 어쨌건, 평생 이성적이었던 그는 유일하게 자신의 사후만큼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결국, 뉴턴 사후, 구심점을 잃은 계획은 하루아침에 존폐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럼에도, 살아남았다."

나는 입천장을 튕겼다.

"아니, 이것도 겸손한 표현이군. 불과 200년 남짓한 시간 만에, 자네들은 국회의사당과 중앙 정부 양쪽 실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지."

"뉴턴의 유산입니다."

말투는 겸손했지만, 어투는 그렇지 않았다.

오베르토는 그게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주제라서, 의문을 가질 여지도 없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지금 형태에 이르기까지 사무국은 변혁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 정부 중추를 장악하기도 했지만, 창설 이래의 개념만은 거의 그대로입니다.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지금 시대에도 뉴턴이 제시한 보편 사무 개념은 통용되고 있습니다.

처음 질문에 재차 답하자면, 보편 사무는 포괄적으로는 스타티카 지향적 업무 전반을 일컫습니다. 하지만, 진의까지 아는 경우는 드뭅니다. 엄밀하게 보편 사무는 뉴턴의 일곱 단계 계획 이행만을 말합니다."

문득 정수리 안쪽이 가려왔다. 뇌의 표면에서 막 피어나려는 영감이 기포처럼 부글거렸다. 잘은 몰라도, 지금 설명을 흘려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 계획을 아는 사람은 누가 더 있지?"

"현재는, 저와 당신뿐입니다."

좀처럼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태내에서 불합리한 초조감이 자라났다. 나는 다시 물었다.

"본래는 누가 알게 되어 있지?"

"보편사무국장, 그리고 유사시 국장직을 수행할 부국장 외에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줄곧 품어왔던 보편사무국의 인상과는 달랐다. 이건 차라리 속내 비교했던 토끼풀십자회의 방식에 가깝지 않은가. 조잡한 방식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유능한 개인에게만 의존한다는 점에서 동질성마저 느껴졌다.

"잘 이해가 안 되는군. 이런 말은 미안하지만, 자네들에게는 적이 꽤 많았을 텐데. 나도 그랬고. 그런데도 그런 조심스러운 비밀이 잘도 전승되고 있었군."

오베르토는 다시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처음에는 먹구름 반사광에 착각이라도 한 줄 알았지만, 이제는 여지없었다. 이걸로 그가 웃은 건 두 번째였다. 다만, 그 의미까지 안 것은 조금 뒤였다.

"그걸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죠."

"무슨 뜻인가?"

"뉴턴은 자격 없는 자가 지식을 가지는 데 상당한 경계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미 짐작하고 있는 바였다.

뉴턴 이래, 보편사무국의 방침이 바뀐 적이 없다면, 그들이 목표로 하는 완벽한 사회 통제나, 그를 위해 행하는 철저한 은폐가 누구의 사상인지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개중에 보편 사무는 뉴턴 사상의 집대성입니다. 그가 제시한 계획과 조건은 모두 후대의 해석으로 정립되었을 뿐입니다. 그중 세 번째 조건은 오랫동안 제 안의 의문이었습니다. 실은 거기에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죠."

세 번째 조건이라 하면, 범국가적 조직 대목이었다.

나는 오베르토가 살짝 고양되었다고 느꼈다. 어쩌면 성당에서 보였던 신학적인 면모는 연기가 아니었을지 몰랐다.

"저는 오랫동안 국장님을 보좌하며, 저 나름의 해답을 내렸습니다. 사실 세 번째 조건의 해석은 잘못되었다고요. 동시에 이런 의문도 들더군요. 그걸 눈치챈 것이 저뿐일까 하고, 어쩌면 국장님을 비롯한 전임자들도 알지는 않았을까. 그런 의문이 들자 허탈해지더군요. 사실 모두 알고 있던 겁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도 구현할 여지가 없기에, 암묵적으로 틀린 해석을 고수할 뿐이라고요."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 조건이란?"

"오직 한 명의 초인."

오베르토는 말했다.

"아이작 뉴턴, 혹은 그에 준하는 천재로군."

나는 모두 알았다는 듯이 외쳤다.

"이제 알겠네, 자네가 뉴턴이 범한 실수로 수명을 꼽았는지. 계획은 완성되지도, 완성될 수도 없었던 거였겠지!"

그러자, 오베르토는 씁쓸해하면서도 미소 지었다.

나는 보편사무국의 진실을 알아내고도, 온전하게 그 사실을 음미할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을 보면서, 마침내 그가 미소 짓던 이유를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용케 문제를 풀고 답을 내놓은 학생을 보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통찰은 또 다른 충격을 불러왔다.

돌이켜 보면, 한참 전부터 나는 스스로 묻거나 답하지 않았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 그가 의도한 바였고, 그러면서 그가 티 내기 전까지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경악했다.

말주변이 뛰어난 인물이라면 여럿 알았지만, 그들에 비해 오베르토는 딱히 대단한 언변을 갖췄다는 인상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수동적으로 질문에 답하고만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는 지리멸렬한 답변으로 착실하게 내 사고를 좁히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저 효율적인 정보 전달에만 쓰였지만, 그가 나를 속일 셈이었다면 대단한 고초를 치렀을 게 분명했다.

아니, 이미 그러고 있었다!

그는 단시간에 내게 신뢰를 심고, 내 성향을 이용해서 여기까지 내가 선택한 것처럼 찾아오게 했다. 사무국장의 자살로 무마되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쯤 나는 그의 화술에 휘둘리고 있었을 터였다.

아서나, 홈즈 등과는 분명 달랐다. 이건 개인의 재능보다는 정제된 기술에 가까웠다. 문답 구조의 파괴, 반복되는 조건문 따위의 공식이 분명 있었다.

나는 한 단어를 떠올렸다.

스타티카.

정적 통제, 이게 보편사무국의 정수라면, 지금껏 상대해온 대적자와 궤는 다르더라도, 위험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떤 개인의 무능 때문도, 조직 구조의 부실조차 아님에도, 보편사무국은 붕괴했다.

"역대 사무국장은 모두 유능했습니다."

오베르토는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한때는 당신 제안처럼 각계 전문가로 이뤄진 위원회 형태로 존재한 적도 있었죠."

분명 우연일 테지만, 그럴 거란 확신이 들지 않는 점에서 번거로웠다.

"하지만 누구도, 어떤 형태의 단체로도, 뉴턴 개인의 재능을 따라잡진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뉴턴 시대 이래로, 진보도, 퇴보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동시에 뇌내에서는 또 다른 국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오베르토의 설명이 매개체처럼, 수년간 파편화되어 있던 정보들이 예기치 않게 맞춰지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나는 들끓던 통찰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있었다.

나는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툭 뱉었다.

"질투했겠지."

오베르토는 날 쳐다봤다.

"오' 제럴드 말이네. 동시기에 살았고, 같은 스승을 뒀으나,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평생 뉴턴의 그림자 아래 갇혀 있었지. 그런 그가 지금은 태양과 광채의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다, 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입에서는 나온 것은 신랄한 조롱 조의 말투였다.

"사료는 적지만, 당대에도 오' 제럴드를 뉴턴의 아랫수로 여기던 것은 사실입니다."

"역시나! 항상 의아했지. 음지 주민이라면 응당 제 정체를 숨길 텐데, 학장은 언제나 빌미를 남겨뒀거든."

어떤 면에서, 튜더 회장은 완벽한 대칭점이었다.

죽기 전에야 가까스로 정체에 닿은 회장과 달리, 나는 이미 학장의 개괄적인 이력마저 꿰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교활하지 않던가, 절대 그렇지 않았다.

"거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던 거야."

"공통점이란?"

오늘 처음으로 오베르토가 내 얘기에 흥미를 보였다.

"학문이야. 올드코트 대학에 부임하며, 나는 처음으로 케이시 오' 제럴드라는 인물을 알고 조사하게 되었네. 그 무렵에도 이미 그는 왕립 학회의 객원으로 알려졌고, 다년간 자기 이름으로 논문을 기고하고 있었지. 처음에는 그가 왕립 학회의 산하이거나, 아일랜드 독립 따위를 구실로 잡혀 있다고 착각했지. 하지만 그건 그가 만든 대외 신분용 위장에 불과했네. 하지만, 이것부터 이상하지 않나?"

오베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렇군요. 굳이 대외활동하지 않으면, 위장 신분 따윈 필요하지 않았을 테죠. 제게는 논문 기고 자체가 목적처럼 보입니다."

그는 정확하게 논점을 집어냈다.

"그 외에도 이상한 점은 많네. 오' 제럴드 학장에게는 사람의 기억을 왜곡하거나, 자신을 맹신하게 하는 능력이 있지. 그렇다면, 어째서 학장이 아닌 학장 대리가 필요하지? 그는 그런 번거로운 직위를 두면서까지 학장직을 연임하는 일에 구애되고 있네. 오히려 정체를 노출하는 행위임에도 말이야. 심지어 나는 그의 얼굴마저 아네. 그리니치 천문대에 초대 천문대장으로 초상화가 남아 있더군. 그가 모를 리 없지."

오베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에게는 그런 면모가 있습니다."

"이런 행태는, 마치 자기과시처럼 느껴지지 않나?"

그는 조심스럽게 정리했다.

"오' 제럴드 학장이, 뉴턴에게 열등감을 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뉴턴의 유산을 파괴하려 한다면."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깨달았다.

놀랍게도, 오베르토는 화자인 나보다 먼저 결론을 눈치챈 기색이었다. 그는 천천히 등 돌렸다. 계단 벽에 난 창에는 여전히 어둠 말고는 비치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오베르토는 거기서 눈을 떼놓지 못했다.

"그런 관점으로는 접근해본 적 없습니다."

그는 말했다.

"우린 종종 그조차 인간이었다는 걸 잊곤 했죠. 하물며, 200년 전의 망령이 그런 사사로운 감정으로 움직일 거란 가능성을 점쳐보는 일은 더더욱이."

"예상대로 학장의 목표가 보편사무국 그 자체라면,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 있는 거야. 런던이 망할 거라고 속단하기에는...."

"아니요, 틀렸습니다."

오베르토는 재차 부정했다.

"늦었습니다."

나는 그를 노려봤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그건 그의 첫 질문과 같았다.

하지만 모든 진상을 접한 지금,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게 들렸다. 나는 그제야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을 이해했다. 그는 처음부터 실마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왜 런던 탑이었나?"

"이미 런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답했다.

"여기는 지구의 법칙조차 통하지 않습니다. 그게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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