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93화 (193/232)

§193. 바닷망상

차마 속뜻을 묻기도 전에, 오베르토는 말을 잘랐다.

"말이 길었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중요한 순간을 놓칠 수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순간?"

그는 답하지 않고, 서둘러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봐!"

나는 허겁지겁 그 뒤를 쫓았다.

원형 계단은 어두웠고, 오래 가만히 서 있은 탓에 다리가 아려서는 걸음이 느렸다. 간신히 3층에 올랐을 때, 그는 이미 안쪽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이제 와서 대체 무슨 생각을, 어이쿠!"

그를 쫓아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축축한 바닥에 발이 헛돌았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 나서 주변을 보자, 3층 홀 바닥은 온통 물난리였다. 빗물이 이런 데까지 들어올 리가 없었다.

잘 보니 색이 혼탁했다. 최소 두 액체가 섞인 상태였고, 나는 잠깐 관찰하고 확신했다. 모두 내가 잘 아는 것이었다.

"소금물, 그리고...."

소금기 묻은 바닷냄새 속에서도 그것은 지워지지 않고 강렬하게 나타났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본래 생물에게 후각이란 바닷속에서 이 냄새를 가려내기 위해 있던 것이었으니까.

"유혈 사태가 있었군."

나는 조심스럽게 앉아서 손으로 수면을 흔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붉은 핏물이 혼탁하게 뒤섞였다.

"오래되지 않았고."

아무리 섞였다고는 해도, 아직껏 응고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시체를 봤지만, 외상은 없었네."

"그들의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면?"

오베르토는 찬찬히 고개를 움직였다.

"본래 가둬뒀지만, 아무래도 흘러넘치게 되었습니다."

닫힌 문에는 자색, 어쩌면 어두워서 그리 보일 뿐이지, 실제로는 화사한 색상일지도 모르나, 지금 내 눈에는 자색으로 보이는 천막이 걸려 있었다.

그래도 민무늬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어떤 실용적이거나, 심미적인 용도보다는 그저 안을 가리기 위해 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주변을 봤다.

홀에서 이어진 다른 방은 모두 열려 있었고, 마찬가지로 축축했다. 닫힌 문은 오직 오베르토 앞에 있는 것뿐이었다.

"넘치다니, 뭐가?"

그는 손을 뻗어 방을 가리켰다.

나는 한 걸음씩 거기 다가섰다. 발끝에 뭔가 부딪혀서 떠내려갔다. 어떤 어류의 파편처럼만 보였다.

"가까이."

내가 그것에 신경 팔리자, 오베르토가 말로 재촉했다.

결국에는 나도 방 앞에 도착했다.

"여기 말고 마땅한 피난처는 없었습니다. 여기는 학장보다 위대한 존재가 거한 장소, 그라도 두려워서 피할 수밖에."

한때, 나는 바다 위에서 지내곤 했다.

가끔씩 육지조차 보이지 않는 원양에 나올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나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원형 돔은 무한하게 펼쳐졌다.

소리에는 거리란 개념이 없었다.

바로 옆처럼 생생하던 소리도, 실은 저 창공, 혹은 몇 해리나 떨어진 원경에서 들려온 것이곤 했다.

그러다가, 밤이 오면은 모든 게 달라졌다. 달빛과 어둠의 압력에는 소리조차 가라앉았다.

침상에 누워 전우의 뒤척임과 헛기침, 몰래 올라타서 한 달째 잡히지 않는 쥐새끼가 벽을 갉아대는 소리, 쉴 새 없이 선체를 때리며 우릴 끌어당기는 파도 등이 멀어지고, 잠들기 직전이 되면 매일 밤 귓전에 똑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수면이 경계였던 듯싶었다.

본래는 물 위에서 사는 인간이 들을 수 없는 해저의 소리였다. 여기서는 소리가 기체보다는 액체에 가까운 속성을 가졌다.

세상 끝에서 불어와서 맞은 편 세상 끝으로 달려가는 바람보다는, 벽 틈새로 스며든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때의 소리였다. 용맹한 뱃사람이 돛대 위에서 세상을 향해 지르는 함성보다는, 헝겊 모포만 덮은 채 들썩이는 병자의 입에서 나오는 가래 낀 기침 소리였다. 웅장한 증기선이 출범할 때면 굴뚝 너머로 매연을 쏟아내며 우렁차게 울리는 경적보다는, 비 온 다음날에 올라오는 습한 공기가 하수도 뚜껑을 지나는 소리였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자신만만하게 지휘봉을 휘저을 때마다 호응하는 일천 명의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합주곡보다는, 해변에서 안이 텅 빈 소라고둥을 귀에 대었을 때 들리는 소리였다.

그건 심해의 음성이다.

문 안쪽에서는 먹먹한 철썩거림이 이어졌다. ...철썩, 철썩!

오베르토는 보란 듯이 천막을 걷어 올렸다. 나는 꺼리는 마음으로 피치 못하게 안쪽을 살폈다. 철문에는 작은 창 하나만 나 있었다.

방 안에는 새까만 물결이 파도처럼 치고 있었다.

어디로도 샐 곳이 없는 게 분명한데, 달의 인력이 여기서만 유난히 강한 것처럼 물은 천장을 때렸다가, 완전히 벽면으로 쏟아졌기를 반복했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수중 구석에는 웅크린 사람이 있었다. 그는 등 돌리고, 무릎을 앉고 있었다.

나는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뇌수술동과 똑같군."

"어떻게 그걸."

오베르토는 내 말을 듣고 정말 놀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침입자의 보고가 있었죠. 그때는 멋 모르는 좀도둑이 말려들었다고 생각했건만."

"작년 10월 30일경 일이라면 내가 맞네."

"거기서는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는데요."

"내가 있잖나."

나는 뻔뻔하게 답했다. 오베르토는 쓴웃 음지었다.

"이러니,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사람이라 단정하겠습니까."

"잘도 웃으면서 말하는군. 나는 거기서 일어난 참사를 봤다고 말하고 있네."

나는 창에서 눈을 떼어놓으며, 정색하며 그를 쳐다봤다.

"그건 용서받을 게 아니야."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오베르토는 빤히 내 눈을 마주 보며 물었다.

"작은 희생으로 큰 희생을 덮었다, 이런 식으로 말할 셈인가?"

그러자 그는 미소 지었다. 다른 게 아니라, 정말 우스운 영국 농담을 들었을 때, 타인에 대한 모멸을 참지 못할 때만 짓곤 하는 얼굴이었다.

"뭐가 그렇게 우습나?"

"직접 보고도 모르겠습니까? 뇌 수술동, 런던 탑."

나는 눈을 떨었다.

"뉴게이트 형무소. 공통점을 아시겠습니까?"

"무슨, 무슨 말이지?"

오베르토는 뒷짐 지며 허리를 폈다. 신장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았지만, 그와 나는 분명 높이가 달랐다.

나는 피고인석의 죄수처럼 떨었고, 오베르토는 재판장의 판사처럼 고했다.

"그건 모두 당신에게서 비롯된 참사입니다. 그해, 당신은 깨워서는 안 되는 존재를 불러냈습니다."

그는 단언했다.

"데이곤."

강풍이 불어 닥치며, 실내에도 비바람이 몰아쳤다.

창틈 너머 먹구름이 응답이라도 하듯이 맥동 쳤다. 그때마다, 나는 검은 형상을 봤다. 층층이 쌓인 적란운이 사방으로 찢어지는 모습 같았지만, 그건 구름이 아니었다.

"필레몬 허버트, 퇴역 군인, 상류사회의 이단아... 그 이름이 보고서에 오른 것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오랫동안 기이한 사건을 해결해왔고, 그건 우리의 영역과도 겹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사 때마다 우리는 당신의 무고를 증명할 뿐이었습니다."

오베르토의 굴곡진 얼굴을 빗물이 타고 내렸다.

"어느 사건 이후로, 서류상의 출현 빈도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당신은 단숨에 불가해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가정부 살인...."

나는 겁먹은 소리를 냈다.

"1895년, 뉴게이트 형무소에서 기이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한 죄수가 환각, 환청, 정신착란을 호소하더니, 동일한 증상이 죄수와 간수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시급하게 형무소를 통제하고 경위 조사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죄수는 이미 보석으로 출소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죠."

오베르토는 눈으로 말했다. 바로 당신이라고.

"당시에는 심각성을 몰랐던 사무국은 무엇보다 은폐를 우선시하고, 빠른 해결을 위해 안일하게 조치했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죄수 일부를 마침 자리가 있던 런던 탑으로 이감한 겁니다."

나는 이후 전개를 알았다.

오베르토는 두려워하는 내 얼굴을 보며 짐작한 듯이 말했다.

"이미, 알고 계셨군요."

그 말대로였다.

당시 런던 탑 사건을 확인한 나는, 도저히 그 사건을 내가 겪은 환상 체험과 분리해서 볼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집착적으로 런던 탑에 몰두했던 것이었다.

"런던 탑, 그리고 호주에서의 참패를 반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머지 죄수는 여전히 뉴게이트 형무소에 남아 있습니다. 서류상으로는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입소도, 출소도 이뤄지지 않고 있죠."

뇌수술동과 같았다. 두 사건은 본질적으로 같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연속된 사건으로 사무국은 지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관련된 요원들은 정신적 외상을 호소했고, 대부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요원 회복과, 호주 대륙에서 나타난 거인의 규명, 시급하게 당면한 과제는 둘이었습니다. 조직 내에 위기감이 팽배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주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지?"

"동부 해안선을 다시 측량해야 하겠죠."

오베르토는 체념 섞인 어조로 중얼였다.

"아직도, 거기에 육지라는 개념이 남아 있다면 말입니다."

나는 차마 호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더 묻지 못했다.

"조직 내부에는 위기감이 팽배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기존 보편 사무 개념을 넘어서는 극단적인 대응책도 여럿 제시되었습니다. 그중 격렬한 논쟁 끝에 채택된 것이 바로, 아마 자세한 결말은 저보다 당신께서 잘 아실 테죠."

오베르토는 은근한 눈치를 내게 주었다.

아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느끼는 죄악감이 공연히 적대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게 했다.

"뇌수술동 계획이었습니다."

그의 지적이 맞았다. 나는 실제로 거기서 모든 일의 경과를 확인했다.

보편사무국은 올드코트 대학과 접선했고, 마침 다른 뜻을 품고 있던 제임스 타운 칼리지의 학장 대리와 협업하여 병원동을 건설했다.

완전한 무지를 추구하는 제임스 타운 칼리지와, 완전한 이해를 추구하는 보편사무국의 모순을 품고 발생한 시도는 필연적인 실패로 끝났다.

뇌수술동이란 공간은 무의식에 용해되었다. 이미 그곳은 인간 세상보다 우주, 또는 바다에 가까웠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했습니다. 저 검은 바다가 현실을 침식하지 못하게, 그 해악을 감시하고 격리했습니다. 정보는 모두 통제했고, 여파가 닿은 시설은 폐쇄했으며, 증상자는 격리하여 수감했습니다."

오베르토는 방에서 떨어져서, 창가 너머를 봤다.

"튜더 회장이 죽고, 도시의 균형이 무너지기 전까지는요."

그를 따라서 올려다본 하늘의 균열은 전보다 크고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여기서는 태풍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 사이로 성가 합창이 섞여서 들려왔다.

"문자 그대로 런던은 전쟁터입니다. 두 신적 존재가 고작 하나의 도시를 두고 겨루고 있죠. 전에 두 존재와 접촉했던 적이 있는 요원은 누구보다 빨리 알아챘습니다. 그는 이번 사태를 경고하고, 자해하다가 죽었습니다."

내게도 일어났던 현상이었다, 나는 그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았지만. 이제야 그간 몇 주에 걸친 일들이 이해가 되었다.

"처음에, 당신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 했습니다."

"내가 그랬나?"

나는 수치심에 모른 척했다.

"하지만, 신께서도 돌보지 않는 세상이라면, 인간은 누구에게 용서받아야 합니까? 저는 그래서 웃었습니다."

오베르토의 말에서 느껴지는 절망감이 워낙 거대해서 아무 대답도 나오지 못했다.

그때, 쩌억하며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통로입니다, 마지막 통로가 열립니다!"

그는 다시 닫힌 문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더니, 천막을 두 손으로 잡아 뜯었다. 나는 조금 늦게 도착해서 안을 바라봤다.

구석에서 웅크려 있던 인간이 움찔거리며, 머리를 마구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저들은 사람을 교두보 삼아 넘어옵니다!"

내가 뉴게이트 형무소에서 보았던 환상과 일치했다.

"곧 저길 통해서 어인이 나타날 겁니다! 저 말고 다른 요원은 모두 그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동작은 점점 생물의 움직임보다는 누군가 쥐어뜯는 것처럼 바뀌었다. 갈라지는 소리는 점차 커지더니, 사람의 눈과 입 구멍이 뜯어졌다.

오베르토는 이미 체념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어인이라면 전에 상대해본 적 있었다. 어디까지 싸울 수 있을지 몰라도, 여기서 이런 식으로 죽을 생각은 없었다.

핏물이 솟구치며, 그 사이로 검은 덩어리가 울컥거리며 수중으로 쏟아졌다. 그리고, 방 안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어인이 아니군요."

오베르토는 말했다.

통로가 되었던 사람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서는 무수한 조각의 고깃덩어리 같았다. 통로 자체는 완전히 닫혔는지, 이제는 방 안의 파도조차 사라지고 없었다.

물 속에는 사람 형상이 언뜻언뜻한 육편, 섞이지 않는 핏물, 그리고 정체불명의 덩어리만이 고요하게 떠다녔다.

"어쩌면."

그는 말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호기심이 풀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호기심?"

"검은 바다요. 환각을 경험한 이는 누구나 같은 공간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외딴 우주에 버려진 왜행성, 빛이 존재하지 않는 방사선의 하늘, 생명 없는 바다, 썩은 진흙으로 남은 육지와 어인들...."

오베르토는 열정적으로 묘사했다.

"저는 운 좋게도 이 지경까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영영 알지 못할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우주 어딘가에 그런 공간이 있다면...."

그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나는 그의 시선이 향한 실내를 돌아봤다. 덩어리는 한 개체가 아니었는지, 시간이 지나자 풀어지기 시작했는데, 그중 일부가 문에 달린 창문 쪽을 절묘하게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동시에 그것을 보았다.

나와 달리 오베르토는 바로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가 둔감하거나, 이해력이 떨어지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있었다.

Walmart.

비닐 봉투에 적힌 알파벳 문자가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옆으로 흘러갔다.

나와 오베르토는 느리게 경악했다. 그는 남들보다 비범한 능력을 지닌 탓에, 누구의 설명도 듣지 않고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검은 바다는, 외우주의 차가운 왜행성은, 별이 없는 죽은 우주는!

"두려웠겠지."

나는 말했다. 오베르토가 천천히 고갤 돌렸다.

"어인 말이네. 검은 바다에서, 우주는 단순히 가려진 게 아니었어. 거기에도 항성은 존재했네. 모든 별이 꺼지고, 시꺼먼 빛을 가진 악의에 찬 태양 하나만이 존재했지. 아마 먼 미래는 아니고, 아주 단시간에 일어난 변화였을 테지. 그러기에, 생존한 어인들은, 아니, 데이곤, 그조차도 두려움에 몸서리친 거야."

내 입이 점점 크게 벌어졌다.

"그들은 도망자였네. 설령 시간을 거슬러서, 절박한 도망자들... 대체 미래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우리는 한참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허버트 씨, 제가 했던 강연을 기억합니까?"

오베르토는 대뜸 물었다.

"그래, 기억하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알지 말라든지, 무지한 채로 보호받으라든지, 그 설교는 보편사무국의 정수나 다름없었군."

나는 일부러 구시렁대는 투로 말했다.

"이 세상에는 빛이 있기 전부터 이 땅과 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실은 그때 제가 말하지 않았지만, 창세기에는 또 하나의 원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창백했다.

"호셰크, 어둠이요! 사람은 모두 물과 어둠으로 빚어낸 존재입니다. 어쩌면, 늦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기회가 없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심해의 자식입니다."

나는 이제 오베르토의 태도를 이해했다.

그의 권유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는 국장이 죽은 시점에서, 이미 산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무엇에든 초연하던 반응이나, 아무 가식 없는 언동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을 터였다.

지금은 아니었다.

"무고함은 무지에서 나옵니다. 앎은 죄악입니다."

나는 물었다.

"그건 누구의 말인가?"

"주께서...."

오베르토는 손을 올렸다.

"저는, 이제 신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존재가 실존한다면."

"허튼 생각 말게."

나는 손을 뻗었다.

"그는 대체 얼마나 악의에 찬 존재일까요?"

오베르토는 구강에 총신을 밀어 넣었다.

눈치채는 게 늦어서, 이미 멈출 수 없었다. 오늘은 모든 게 너무 늦었다.

나는 곧 닥칠 참상을 예상하고 눈을 감았다.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고요했다.

나는 눈을 떴다. 오베르토는 그 자세 그대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천천히 총신을 빼냈다. 우리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모든 게 똑같아 보이는데, 마치 소음만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빗소리다."

오베르토는 엄숙하게 말했다. 그는 마치 적막을 깨는 일이 커다란 죄라도 되는 것처럼 소곤소곤했다.

여하튼, 그 말은 맞았다. 실내까지 불어서 몸을 적시고 있던 비바람이 거짓말처럼 그쳤다. 우리는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똑같이 창가로 걸어갔다.

비는 멎고, 구름은 걷혔다.

하늘에서 황금빛 오후의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몸에 체온이 돌아왔다.

나는 아래를 봤다.

직전까지 도시를 삼킬 듯이 범람하던 강물은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엄청난 양의 잔해가 떠내려가는 것을 봤다.

어인이었다.

모두 목이 잘리거나, 눈이 뚫렸거나, 내장이 파헤쳐진 모습이었다.

"이게 대체."

나는 오베르토를 돌아봤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막연한 어딘가를 보는 게 아니라, 거기 있는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초점이 뚜렷했다.

그의 옆모습에서는 아까와 같은 절망이나 체념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중에 가장 생기 넘치고, 열정적이며, 환희에 차 있었다.

나는 공포를 느꼈다.

오베르토는 기쁘게 외쳤다.

"케이시 오' 제럴드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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