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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97화 (197/232)

§197. 위대한 배신

잠깐 사이에, 나는 헉슬리에 관하여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헉슬리는 전직 군인이다. 그는 참전 경력이 있고,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장군이라 불리길 원한다.

헉슬리는 공산주의자이다. 에펠 탑 사건으로 7차 파리 혁명이 발생했을 때, 그는 노동자 회의에서 제 2 코뮌 결성을 꾀했다가 진압당해 본국으로 도망쳐 왔다.

헉슬리는 현실주의자이다. 그는 최후의 투쟁에 필요한 세 조건을 식음, 위생, 성벽으로 규정했고, 셋 모두 이뤄냈다.

헉슬리는 로맨티스트다. 그는 고립된 환경에서도 옷만큼은 반드시 각지게 다려 입었다.

헉슬리는 직각을 숭상한다. 각이란 재단이며, 잣대이다. 그는 무엇이든 수학적 도표로 나타낸다, 설령 신앙마저도.

그런 평가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나는 주로 귀보다는 눈으로 사람을 보곤 했다. 그런 나의 중립성이 무색하게, 끝내 대면한 헉슬리는 들은 것보다 비범한 인물이었다.

비록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헉슬리 장군은 아주 기이한 인물이었다.

그에게서 외형적인 특징을 찾아내긴 어려웠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40대 신사였으며, 궁핍한 와중에도 가위로 다듬은 수염에는 청빈한 맛깔이 있었다.

때 묻은 울 코트는 차별적인 시선을 받기 딱 좋았겠지만, 모두가 더러운 여기서는 그리 눈에 띄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동작이었다.

아직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에는 모종의 법칙성이 적용된 게 분명했다. 한편으로는 익살스럽게 보였지만, 동시에 소름 끼쳤다.

데이비드 헉슬리는 다짜고짜 물었다.

"귀하는 신을 믿나?"

나는 대답을 망설이다가, 슬쩍 말을 흐렸다.

"통성명까지 마다하며 꺼낼 논제는 아닌 줄 아네만."

"아직 대답을 못 들었네."

헉슬리는 끈질기게 다시 물었다.

"정의에 따라 다르겠지."

관찰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상대법을 정하는 내 방식은 지금까지 영국 사회에서 잘 먹혀 왔다. 반면, 지금은 어떤 문학적 과장도 없이, 그와 만난 직후였다.

이런 식으로 초면부터 저돌적이고, 심지어 다소 철학적인 주제까지 더해지니, 나는 그만큼 수비적인 태도가 나오게 되었다.

대답은 아주 조심스러웠다.

"전역 후에 사교계에 입문했다고 들었네."

헉슬리는 다리를 꼬았다.

"군인 물이 아주 잘 빠졌네, 귀하."

일단, 그는 무례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그는 내게 적대적이었다. 여기 오고 몇 번째 하는 말인지 몰라도, 이유로는 짐작 가는 게 전혀 없었다.

"신이란 게, 불과 세 글자 단어에 묶어둘 만큼 작은 개념은 아니지 않나."

"범위를 좁히면 답할 수 있다는 뜻이겠군."

"자네가 말하는 게, 기독교의 신이나 지적 설계자 따위라면, 나는 영국 사회에서 보편 통용되는 가치밖에 말하지 않겠네. 그런 걸 묻는 게 아닐 테니까."

"그러면?"

"케이시 오' 제럴드를 말하는 거라면, 아니. 나는 믿지 않네."

"이유를 묻지."

나는 슬슬 지쳐갔다.

헉슬리는 파상적으로 압박해 왔다. 그와의 문답은 파도처럼 굴곡져 있었는데, 나는 여전히 이 문답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는 학살자에 불과하니까."

"개인의 도덕관으로 신의 자격을 규정하나? 애초에 도덕이란 무엇이고, 어찌 재단할 수 있나?"

그는 허점을 찾았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자네 논리에는 기준이 없다. 기준 없이는 질서가 없으며, 질서 없이는 목적도 없다. 단결된 의지가 없는 집단은 다수의 개인에 불과하며, 그것으론 집단 체제의 효율을 살릴 수 없다."

그제서야, 나는 이 문답의 정체를 알았다.

그와 동시에 머리끝까지 피가 솟았다.

"자네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호통쳤다.

"하늘에는 학장의 승리를 예고하는 별이 화창하고, 1054명의 학생들이 몇 달째 컴컴한 요새에 갇혀 있는데, 지금 자네는 염병할 기 싸움이나 벌이고 있군그래!"

그는 날 기선 제압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긴박한 와중에, 나는 참지 못한다! 이따위 것은 참지 못한다!

"이제 와서 문외한에게 방침을 지시받고 싶지는 않다."

"반년 동안 건물 안에 갇혀 있는 게 말인가?"

"최전선에서 내가 성공적으로 학장을 저지하는데, 그간 귀하께선 어디 있었지? 안락한 벽난로 옆?"

"입만 뚫리고, 눈은 닫혔군! 저기 창밖을 보게! 저렇게 화창하게 별이 떠 있는 마당에!"

"실체 없는 위협이지. 귀하께선 전등을 단 어선을 봐도 적 전함을 봤다고 하겠네.  여기는 이성의 보루일세. 모든 일에는 실리가 있어야지. 지금 서투르게 행동하면, 별빛처럼 헛된 몽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험이 닥치네."

나는 뭔가 더 말하려 했다. 그 전에 헉슬리가 실망한 투로 읊조렸다.

"우리는 같은 전쟁을 보고도, 다른 결론을 내렸나 보군."

"같은 전쟁이라니, 그게 무슨...."

말뜻을 이해하자, 거짓말처럼 피가 식었다.

"1880년 이탈리아, 거기에 나도 있었네. 왕립 육군 소속이었지. 귀하의 전선에는 아주 큰 피해가 있다고 들었지만, 희생이라면 나도 못지않게 봐왔네."

그는 고루한 말투로 선고했다.

"사르데냐 섬은 어떤 전선보다 피해가 컸다지만,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조금 알겠네. 교훈은, 없었나 보군."

손끝이 시렸다.

"난, 나는."

헉슬리는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몸을 돌려, 뒤에 있는 찬장에서 반쯤 태운 담배를 꺼내 들었다.

"나도 사람이기에, 귀하의 우려는 이해하네. 사정을 모르면."

그는 성냥이 아닌 부싯깃으로 불붙였다.

이 시점에서 나는 좀 전부터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냈다. 장군은 오로지 직각으로만 움직였다. 나는 공포심을 느꼈다.

"대책 없이 죽음만 기다리는 꼴로 보였을 테니까."

"틀렸나?"

"지난 반년 동안, 우린 학장의 마수에서 꽤 자유로웠지. 하물며 건물 부지에는 그 괴물조차 들어오지 못하네."

헉슬리는 독한 연기를 내뿜었다. 곰팡내 같은 게 섞여 있었다.

"비결이 궁금하지 않나?"

나는 피치 못해 착석했다.

그는 책상 서랍에 열쇠를 꽂아넣고는, 안에서 낡은 양피지 한 장을 꺼내 내 앞에 놓았다.

자세히 보고자 손을 뻗자, 헉슬리는 빠르게 뒤로 잡아당겼다.

"눈으로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내용은 이랬다.

'케이, 아마 마지막 편지겠지. 깨 있는 시간이 나날이 짧아져.

인류 모두가 거쳤던 길이니, 두려워도 나아갈 수밖에.'

나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이게 눈으로 물었다.

"뉴턴 친필이네. 임종 사흘 전에 작성되었지. 그 후 혼수에 빠져 깨어나지 못했으니 사실상 유서지."

아이작 뉴턴, 또 그자였다.

200년 전에 죽은 신학자, 그를 둘러싼 관계는 올드코트 대학의 각종 불가사의 중에서도 단연 복잡한 것이었다.

뉴턴은 언제나 모순성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시작점이면서 현대에는 어떤 영향력조차 남기질 못했다. 역사에서 돌출된 존재이나, 동시에 지워져 있었다.

그는 비밀 속에 묻혔지만, 복잡성에서 나오는 명료함 또한 있었다.

"케이(Cay)."

뉴턴의 비밀은 언제나 한 명의 인물과 이어졌다.

"영국 정부에는 하나,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 부서가 있네. 보안국이라고도 하고, 검열국이라고도 하지.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보편사무국이라 하네. 알고 있나?"

"그래, 그것이 뉴턴이 조직했던 사조직이란 사실도."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좋군. 하지만, 그 조직이 어디서 시작했는지는 모를 거야. 올드코트 수도원에는 수난의 역사가 있네. 수도사들은 성벽을 축조하고, 비밀 통로를 만드는 식으로 저항했다... 그리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거대한 미궁을 만들지는 않았네."

나는 어떤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뉴턴은 수도원 시설의 은밀성을 꿰뚫어 봤고, 여기를 거점으로 불가시파, 뉴턴파, 한때 여러 이름으로 불렸지만 지금에는 보편사무국이라 불리는 무장 사조직을 조직했네. 대부분 시설은 후대에 지어진 걸세. 어쨌거나, 그 시작이 바로 여기, 십이사도 칼리지란 것만은 틀림없지."

편지가 여기서 발견된 이유는 설명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몇 가지 의문은 남았다.

"한편, 당시 조직을 이끌었던 건, 뉴턴이 아닐세."

"케이(Cay)."

"지금 보여준 것 외에도, 그와 뉴턴의 친분을 증명하는 자료는 여기저기 남아있네. 둘은 아주 긴밀한 사이였지. 뉴턴 자신이 후사를 맡길 만큼... 어쨌건, 그 부탁은 이뤄지지 않았네. 케이는 뉴턴 사후 손바닥 뒤집듯이 배신했고, 조직은 살아남았으나 당시의 여파로 뉴턴이 추구했던 방대한 계획, '보편 사무'는 원형조차 남지 않게 되었지. 그리고, 당대 보편사무국 말인데, 최초에는 이런 이름으로 불렸다더군."

헉슬리의 설명에는 틀린 부분이 있었다.

보편사무국은 뉴턴 사후에도 보편 사무 업무를 계속해왔다. 다만, 아주 소수의 인물에게만 구전되어, 그가 알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동시에 그의 설명은 많은 의문점을 풀어주었다.

그토록 현명했던 뉴턴이 어째서 사후를 대비하지 않았는지, 보편 사무 계획이 어째서 유능한 개인에게 맞춰졌는지, 불가시학이란 하나의 학문이 왜 그렇게 여러 분파로 갈라지게 되었는지, 그가 죽고 보편사무국이 붕괴 직전까지 내몰린 이유, 그 모든 게 케이라는 인물의 존재로 설명되었다.

"케이시즘이라고."

나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다.

"케이는 뉴턴이 학장 케이시 오' 제럴드를 부를 때 쓰던 애칭이네. 여기 십이사도 칼리지는 학장의 원점이며, 그가 벗은 인간성의 허물이고, 위대한 배신이 실연된 장소이기도 하지."

헉슬리는 말했다.

"그러니, 귀하의 도움이 필요 없네. 우리는 이미 위대한 배신을 재연할 준비가 되었네."

사실상 축객령 같은 선고가 내려지고, 나는 헉슬리의 사무실에서 쫓겨났다.

문밖에는 낯익은 거구가 서 있었다.

"아, 교수님."

그는 덩치에 맞지 않게 살갑게 반색했다.

"타미, 자네로군."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해리스는 민망해하며 웃었다. 그가 이렇게 넉살 좋았던가, 뭐, 사람은 바뀌는 법이니까. 얼추 보아도 고생을 깨나 한 얼굴이었다.

"무사하셨군요."

"나야 그렇지. 기다리고 있었나?"

"네, 진에게 듣고."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

모습은 바뀌었어도, 사람 속일 성격이 아닌 것은 여전했다. 나는 실실 웃으며 놀렸다.

"다음에는 문에서 더 떨어져 있는 게 좋겠어."

"알고 있었습니까?"

해리스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아니."

그는 허탈하게 웃음 지었다.

"자, 이미 들었겠지만, 자네 대장은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보더군. 끼워줄 생각도 없는 것 같고."

물론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한시가 급한 와중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답답했다.

"저...."

해리스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눈을 깔고 주먹을 꽉 쥐더니 운을 떼었다.

"교수님만 괜찮으시면, 절 따라오시지 않겠습니까?"

"무슨 셈인가?"

"저는 역시 납득할 수 없습니다. 헉슬리 장군님은 교수님에 대해 모르셔서 그럽니다. 이번 일에서 교수님이 빠져서는 안 돼요."

한때, 그렇게 숫기없던 해리스가 이제는 꽤 듬직한 얼굴로 요구할 줄도 알았다. 나는 기특한 마음을 누르고 물었다.

"내가 어쩌길 바라나?"

"도와주세요. 장군님은 혼자서 위대한 배신을 성공시킬 생각입니다. 마치...."

케이시 오' 제럴드처럼, 그는 소리 내지 않고 말했다.

나는 뜸 들이다가 물었다.

"하나만 묻지. 헉슬리도 그렇고, 위대한 배신이란 게 정확히 뭔가?"

해리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 눈을 직시하며 답했다.

"살인 계획입니다. 헉슬리는 학장을 인간으로 격하시키고, 살해할 겁니다."

그는 말했다.

"200년 전, 뉴턴의 묘를 파헤쳤던 학장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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