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199화 (199/232)

§199. 할렐루야

광산이라.

젊은 세대의 언어는 자유롭다. 형식이 없으니, 표현에는 거침이 없다. 말 그대로 여기는 광산이었다. 비록 금이나 석탄은 없지만, 여기서는 그보다도 가치 있는 걸 캐냈다.

지난 시간이여!

나는 시멘트벽에 차츰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문자처럼 새겨진 글귀가 있었다.

'케이시 오' 제럴드 귀하에게.

숱한 논쟁에도, 나의 주장은 금과 같아서 한치 변화도 없네. 지식이란 자격 없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며, 또한 나는 자식을 낳아 전통적인 가정을 꾸릴 의향도 없네.

직접 찾아와서 진솔히 사과하고, 자신의 그르침을 인정한다면, 지난 결례는 모두 잊도록 하겠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이는 여기서 끝이야.'

"이것은?"

"발굴한 문서 사본이에요."

진은 말했다.

"짧은 문서는 찾아내면 그 내용을 발견 장소에 기록해요. 옮겨 적기에는 길다 싶으면 약식으로 번호와 제목만 적어두죠."

듣고 보니, 숫자나 논문 제목 같은 문장이 여기저기 적혀 있었다.

"꼭 유적 발굴지 같군."

"처음에는 그렇게 부르던 애들도 있었죠."

"그런데?"

"걔들도 내려와서 일해보고는 모두 광산파로 갈아탔거든요."

나는 때아닌 농담에 실소했다. 그래, 고될수록 유머의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지,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알았다.

전시관에 온 관광객처럼 나는 태평하게 벽면과 가구 주변을 돌면서 살폈다. 대개 제목조차 없이 숫자 번호만 적혀 있었기에 알아낼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개중 하나 기억해둘 만한 것은 '프린키피아 초고'였다.

어쩌면 아서가 부탁한 '전-프리키피아 대화록'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것만 염두에 두고, 기회를 봐서 빼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하는 생각보다 길었고, 방도 그만큼 많았다.

하기사 학생 천 명이 여길 반년 동안 파헤쳤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건 그래도, 대부분 내게 흥미롭지 않은 것들이라 수확 없는 탐색이 계속되었고, 집중력은 점점 흐트러져만 갔다.

"잠깐 봤지만, 장군은 아주 고지식한 군인 성격이야."

나는 집중을 환기할 겸 말했다.

"자기가 합리적이라 믿는 만큼, 제 상식에 매달리듯이 맹신하지. 아마 제 생각과 다른 건 죄다 비합리적이라 여길 테지."

"어쩜 그렇게 본 것처럼 잘 아세요?"

"내가 군인 성격이라 했잖나. 에는 저런 치들이 널리고 널렸어."

"아하, 교수님 성격이 그래서."

나는 바로 진을 째려봤다.

그녀는 기죽기는커녕 애교스럽게 사과했다. 해리스는 뒤에서 과묵하게 따라오면서 왠지 안절부절못했다.

"여하튼."

나는 헛기침했다.

"헉슬리는 저들이 무사한 게 주술 덕분이라 한치 믿어 의심치 않겠지. 그가 가진 상식으로는 깊이 침투한 적을 반년간 방치할 이유가 없으니까."

내가 독백하듯이 읊자, 진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학장이 우릴 봐주고 있는 거라고요?"

"뭐든지 의심하고 보게. 그러면 자연스레 사고도 폭넓어지지. 우리 눈에는 오직 결과만이 보이니까, 원인은 고정되지 않은 변수인 거야. 모든 문장에 '여하튼'을 붙여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진은 물끄러미 날 쳐다보다가 말했다.

"강의 때 이런 걸 했으면 좀 더 인기가 좋았을 텐데요."

"뭐? 내 수업은 항상 인기 좋았어."

"그런 셈으로 하죠, 여하튼."

그녀는 얄밉게 덧붙였다.

"자네들이 학장이라면 왜 우릴 내버려두겠나?"

"할 수 있으면서요?"

"할 수 있으면서."

진은 끙끙대다가 말했다.

"필요하기 때문이겠죠?"

"어떤 것에?"

"뭔가, 주술이나, 의식 같은...."

그녀는 별 자신이 없는지 우물거렸다. 오히려 대답이 나온 쪽은 한참이나 생각하던 해리스였다.

"그게, 싫지 않겠어요? 미련이나...."

"미련?"

"아니요, 그게."

"똑바로 좀 말해."

해리스가 떠듬거리는 모습이 답답했는지 진이 타박하고 들었다. 그제야 그는 또박또박 발음했다.

"학장에게 여기는 특별한 장소잖아요. 그런 곳에서 피를 보기 싫은 건, 당연하지 않나요?"

나는 즉시 부정하려 했다.

그간 봐온 학장은 기독교적 신성을 모방하려 했다. 그런 만큼 그는 완벽을 추구했고, 인간성이란 상극의 개념이기에 반드시 버려야만 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자연스레 십이사도 칼리지가 학장이 벗고 남긴 인간성의 허물이라며 단정 지었다.

그러나 해리스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공했다.

학장은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다. 몇몇 정황으로 미뤄보건대 그에게 여전히 인간적인 불완전성이 남아 있는 건 자명했다.

그가 아직 버려내지 못했다면?

한창 끝나지 않는 우화를 하는 중이라면, 끝내 그가 마지막 인간성마저 벗겨 낸다면... 누군들 그의 승천을 막을 수 있을까.

정작 발언한 당사자는 여기까지 깨달은 기색이 없었다.

그간 경험으로 나는 정직보다도 나은 기만이 있는 줄 알았기에, 이 소름 끼치는 통찰은 홀로 함구하기로 했다.

정작 발언한 해리스는 여기까지 깨닫지 못한 듯했고, 나는 그간 경험으로 정직보다 기만이 나을 때가 있는 줄 알았다.

"근데 그러면 학장이 십자가를 부수거나 할 필요는 없잖아요? 우릴 살려두고 싶은 거라면 그냥 내버려두면 될 텐데, 그건 꼭 자기 힘이 닿지 않아서 애쓰는 것 같잖아요?"

"그건 모르지. 우리 적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임을 잊지 말게. 정말 십자가의 주술이 통했을지도 모르지만, 통하는 척 기만을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허튼짓을 못하게 지속해서 위협하고 있을 수도...."

나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더욱 그럴싸한 가능성을 눈치챘다.

"어쩌면, 탈출을 계획하지 못하게 가둬두려는 작정인지도."

"뭐 때문에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이마를 두드렸다.

"성 헨리 8세 칼리지가 무엇을 위해 있었는지 잊지 말게."

내 대답을 알아챈 진은 질겁했다.

"이도 저도 가정일 뿐이야. 여러 생각을 하란 건, 여러 상황에 대비하란 뜻이지 혼자 겁먹어서 위축하라는 뜻이 아니네. 그래서야 정작 중요할 때 움직일 수 없는 법이야."

기껏 좋은 말을 해주는데도, 두 학생은 그저 시큰둥했다.

나는 기분이 상하서 조사를 재개했다.

그러던 중에, 또 하나의 편지 내용이 적힌 부분을 발견했다. 나는 복도 쪽의 흐릿한 불빛에 의존하며 차근차근 읽었다.

'케이, 나조차 뭐가 널 그렇게 두려워하는지는 모르겠어. 자신을 가져.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지혜로운 자야.'

거기 적힌 구절은 뜻밖에도 아주 낯익은 것이었다.

나는 내심 조소했다. 뭇 추종자가 같은 말로 그를 숭배하건만, 그 기원이 친우의 격려문이었단 사실이 아주 익살스러웠다.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군."

"네?"

나는 벽에 손을 댄 채 주절거렸다.

"위대한 배신, 어디선가 들었다 싶었지. 이제 기억났어. 뇌수술동, 그곳에서 비슷한 표현을 들었지."

한때 제임스 타운 칼리지의 학장 대리였으나 이제는 원형마저 잃고 범인류를 자청하게 된 불쌍한 자는 내게 이렇게 고했다.

"위대한 무지야말로 제임스 타운 칼리지의 숙명이며,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구원받기 위한 존재로 점지받았다고. 두 개의 칼리지에 주어진 두 개의 사명, 우연이라기엔 절묘하지 않은가?"

나는 묻듯이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답을 내놨다.

지혜는 불가시의 적, 보이지 않는 미래를 엿보는 육감이기도 하다. 별빛에 비친 허상이 실제이건 아니건, 학장은 이미 세 개의 칼리지 중 하나가 배신하는 미래를 예견했다.

그가 꿈속에서 내게 이걸 보인 이래 나는 줄곧 그 역할이 누구의 것인지 궁금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분명 성 헨리 8세 칼리지, 즉, 나의 역할이라 믿기도 했다.

허나, 나는 다분히 의도적인 형태로 축출되었다.

제임스 타운 칼리지는 배신자로서 부족했다.

그들은 학장의 적인 보편사무국과 손잡고 학장과는 상반된 계획을 꾸몄으나, 계획은 실패했으며 그 응보 또한 처참히 치렀다. 심지어 보편사무국과 학장의 관계성이 밝혀진 지금에는 그의 수족이나 다름없었다.

상황이 점차 명백해졌다.

"이게 모두 계획된 거라고요? 학장은 200년 전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요?"

진은 따지듯이 물었다.

"그럼, 그러면... 우리가 여기 있는 데는 무슨 의미가 있죠?"

가정의 결말은 처참했다.

무엇보다 불쾌한 점은, 설령 추측이 사실이라 해도 마땅한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여기 갇힌 이상, 어떤 형태로도 주어진 운명에 저항할 수 없었다.

악의로 가득 찬 델포이 예언 같았다.

그때였다.

"둘 다 내게서 떨어져."

"네?"

"하라면 해!"

내가 소리 죽여 일갈하자, 진과 해리스가 각자 방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몸을 계단 쪽으로 향했다. 그때, 격통이 일었다.

"악!"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어깨 쪽이 아프단 사실을 깨달은 건, 그다음이었다. 총성이 뒤늦게 귓전을 맴돌았다.

"교수님!"

"이, 병신...!"

나는 이를 악문 채 밀어내려 했지만, 이런 상태로 해리스의 거구를 밀어내는 건 어림도 없었다.

"순순히 물러나는 게 수상하다 했지."

발소리는 기계적으로 균일했다. 높낮이도, 간격도, 마치 기계 같았다. 그의 손에는 포연이 흐르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헉슬리...!"

"장군일세, 경."

그는 일체 감정 없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들어봐요, 장군님!"

"어떤 경우에도."

헉슬리는 해리스의 말을 끊었다.

"공동체의 질서를 위협하는 것은 중대한 반역 행위이다. 문책을 피할 수는 없을 걸세."

"자네 혼자서 학장과 싸울 수는 없어."

"그래서 천 명의 동지를 거느리고 있잖나. 소수는 귀하 쪽인듯싶네만."

그가 손짓하자 대동한 학생들이 친위대처럼 나와 해리스를 억류했다.

"위대한 배신은 실패할 거야!"

나는 외쳤다.

"학장은 처음부터 이 상황을 예측했네! 그는 재림 예수가 될 작정이야, 자네는 배신자 유다의 역할이고!"

헉슬리는 태연했다.

"그러면 위험하지 않게 실패하면 되지 않나?"

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학장 본신이 머문 장소는 대략 짐작하네. 세 개의 칼리지 모두와 맞닿았으며, 런던 전체를 굽어살필 수 있는 장소, 아일랜드 성인의 탑. 거기서도 과시욕이 강한 학장이라면 탑 꼭대기에 있을 테지."

그리고는 다시 날 내려다봤다.

"하지만, 나는 학장과 대면하지 않을 걸세."

그가 조금 더 다가와, 그의 구두가 거의 얼굴에 닿을락 했다.

"뜻밖인가? 오래전에 일선을 떠난 경은 모르겠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네. 장군, 장교가 병들과 진창을 구르며 위협에 노출되던 시절이 아니지. 하물며 이건 전쟁보다 쉽네."

헉슬리는 말했다.

"실망스러운 해리스 동지에게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도면상으로 올드코트 대학의 연계성을 증명했네. 정교한 기계 장치... 아마 그렇게 말했을 테지? 그런데 말이네, 기계가 정교하면 정교할수록, 작은 결함에도 큰 붕괴가 일어나는 법, 나사 하나, 태엽 바퀴 하나도 시계를 멈추는데, 아예 그 삼분지 일을 도려낸다면 어찌 되겠나?"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대학은 학장의 역작일세! 그리고, 그 기계적인 완벽성이 학장의 힘을 지지하지. 그게 갑자기 없어지면 어찌 되겠나? 신의 자리를 탐하던 그가 단숨에 인간으로 추락한다면, 더는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지. 그는 수명조차 한참 넘어선 200살의 늙은 노인에 불과할 테니까."

헉슬리는 갑자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가 했더니, 그의 친위대가 나와 해리스를 잡아 일으켰다.

"이제 알았겠지만, 이 작전에 위험성은 일절 존재하지 않네, 경. 누구도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고, 설령 실패해서 학장이 건재한다 한들, 지금도 우릴 어쩌지 못하는 그가 대학을 잃고는 무엇이나 할 수 있겠나."

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 작전의 좋은 점은, 그 과정에 어떤 위험도 동반하지 않는다는 점일세, 경."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그는 아주 논리적인 인물이었고, 단순한 우려쯤으로는 흔들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실패한다 해도, 그 자체로는 정국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말이 틀렸나?"

조금이면, 아주 조금이면 착상이 닿을 것 같았는데, 그것이 부족했다. 어깨에 박힌 총탄이 미칠 듯이 뇌 표면을 찔러댔다.

"놔, 이 얼뜨기들아! 내가 걷겠어!"

나는 날 붙잡은 학생들 손을 떨치려고 했다. 헉슬리는 슬쩍 보며 비웃듯이 눈썹을 기울이며 말했다.

"놔주게."

간신히 풀려난 나는 왼손으로 지팡이를 힘껏 부여잡고 씩씩대며 계단을 올랐다.

우리는 지상으로 나오고, 한참 더 올라가서 4층에 갇혔다.

간신히 도착했을 무렵에는 출혈이나 발열 때문에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아팠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옷을 찢어서 급한 대로 지혈까진 했던 듯싶었다.

그리고, 안심이 들자 바로 기절했다.

다시 깨어났을 때, 나는 도무지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없었다. 창밖에는 쓰러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샛별이 환했다.

"으으...."

"교수님?"

옆방에 갇힌 해리스가 신음을 듣고 황급히 물었다.

"내가, 내가 얼마나 오래 쓰러졌지?"

"지금은 저녁이에요."

"꼬박 하루를 누워 있었군. 이렇게 다급한 와중에...."

나는 갇혀 있는 독방을 다시 살폈다.

철창문과 좁은 창문이 달린 독방... 이곳이 수도원 위에 세워진 대학 건물임을 생각하면, 대체 이런 방이 어떤 이유로 존재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갇힌 건, 나와 해리스뿐인 듯싶었다.

"진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숨어 있었으니까 무사할 겁니다."

"그래... 혹시 물은 없나? 목이 칼칼한데."

"죄송합니다."

"돌겠군."

나는 바닥에 떨어진 수통을 살폈다. 의식이 흐릿한 와중에도 용캐 소독할 생각이 들었는지 전부 어깨에 부어놓은 후였다.

"옌장, 상처가 아니라 여따 부었어야지...."

입에다 통을 털다가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괜히 군소리했다.

"그리고?"

"네?"

"그 뒤에 아무 일도 없었느냐고 묻잖나."

"아, 아아... 네, 대신에...."

"대신에, 뭔가?"

"저 혼자 생각해본 게 있습니다."

나는 조금 기다렸다가 욱해서 재촉했다.

"말하라고 안 하면 평생 입 다물고 있을 텐가?"

"앗, 아뇨, 말하겠습니다. 아까 칼리지마다 맡은 역할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내가 그랬지. 제임스 타운 칼리지에는 위대한 무지가, 그리고 십이사도 칼리지에는 위대한 배신이...."

"그런데 왜 십이사도가 배신자죠?"

"그건...."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제가 자세히 알지는 않지만, 주술이나 의식에서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나요? 건물 설계까지 도맡아 할 정도로 꼼꼼했던 학장이 왜 십이사도 칼리지 같은 이름을 붙였죠? 그들 중에 배신자는 유다뿐인데."

해리스의 질문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통증이 잊힐 만큼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을 정리하려고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아니, 그건...."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숨죽여 상대가 누군지 살폈다. 그녀는 우리 철창문 앞에 멈춰 섰다.

"진!"

"쉿, 조용히 해. 몰래 빠져나왔어요. 세상에, 괜찮아요?"

그녀는 닫힌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내가 감옥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래."

"그래, 가 아니라... 거의 시체 꼴...."

진은 해리스의 감옥마저 열어줬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바깥 상황은 어떤가?"

"맞아요, 그것 덕분에 열쇠를 빼돌릴 수 있었어요. 헉슬리는 지금 당장에라도 위대한 배신을 결행하려 해요."

"뭐?"

나는 놀란 나머지 반사적으로 물었다.

"샛별 때문이에요. 겉으로는 동요하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불안했던 거죠. 밤이 되도록 어두워지지 않으니까 저쪽이 손 쓰기 전에 대응해야 한다고...."

불길한 직감이 들어맞았다. 완전히 학장의 계획대로였다.

"해리스, 자네 아까 칼리지 이름의 의미 따위를 말했지?"

"아, 네."

"하나 틀린 점이 있네. 배신자 이스카리옷 유다는 십이사도가 아니야."

"지금 태평하게 그런 얘기나 하고 있을 때에요?"

진이 답답해하며 발을 굴렀다.

"아니, 내 말을 들어! 자네 말마따나 이름이 가진 의미는 중대해. 세 개 칼리지 모두 과거 모종의 이름을 모방한 건, 그것을 재현하겠다는 의사표명이나 다름없지. 바보 같으니!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나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어째서 위대한 배신을 수행할 칼리지에 십이사도라는 이름을 붙였는가, 그들이 스승의 죽음을 도외시했기에? 베드로가 세 번 부정했기에? 아니, 아니야! 애초에 아예 다른 사람인 거야!"

내가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하자, 두 사람 다 나를 뒤쫓았다.

"에린의 십이사도야. 들어본 적 있나?"

나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계속 말했다.

"과거, 켈트 교회를 조사한 적이 있네. 알다시피 학장은 아일랜드 교회 문화에 병적으로 집착하지 않던가. 그때 알게 되었지. 이들은 6세기 무렵에 클로나드 수도원의 동문으로, 아일랜드 기독교 선교에 왕성히 이바지한 공로로 성인으로 추앙되었네."

"그게 왜요?"

"아직도 모르겠나? 그들이 바로 배신자야!"

진의 맹한 대답에, 나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일랜드 전통의 신앙을 져버리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기독교로 전향한 배신자 말이야! 배신이라는 단어에 정신이 팔려서 그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못했어. 배신이란 곧 선교이고, 그 말은 종교의 승리, 즉, 학장의 승리를 말하네."

두 사람도 마침내 깨달았는지 몸을 들썩였다.

"그리고, 그 클로나드 수도원에는 삼천 명의 제자가 있었다더군. 학장이 무얼 모방했는지 이제야 알겠어."

나는 앞서 걸으며 외쳤다.

"헉슬리는 안전 따위를 말했지만, 배신행위 자체를 막아야 해!"

그때였다.

"케이시 오' 제럴드가 왔다."

"뭐?"

나지막한 목소리에 뒤돌아보려던 찰나, 갑자기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의 기색은 아니었다. 나는 어떤 징조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아주 오래전부터 수없이 악몽으로 본 장면이기 때문이다.

추락하고 있었다.

나는 급히 창가로 다가갔다. 지면이 위로 오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건물이 가라앉고 있었다. 건물에 닿아 있던 아일랜드 성인의 탑은 자연스레 떨어져서 신화 속 바벨 탑처럼 치솟았다.

"학장의 소행인가? 헉슬리가 무언가 저질렀나? 하지만, 어떻게? 그에게는 이렇게 지면을 가라앉힐 만한 힘이 없었을 텐데?"

시간이 없었다. 통증 때문에 사고가 흐렸다.

케이시 오' 제럴드 학장은 처음부터 배신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처음이란 게 언제를 가리키지? 수도원을 대학으로 개축할 때? 보편사무국을 떠났을 때? 뉴턴이 죽었을 때? 그의 무덤을 파헤쳤을 때?

혹은, 시멘트를 부을 때부터?

"실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가라앉히는 게 목적이었다면...."

사고가 착착 맞춰졌다.

올드코트 대학은 학장의 역작이다. 기계적인 완벽성이 힘의 근원이다. 어쩌면, 침몰하는 지반을 억지로 지탱할 만큼 강력한 힘....

건물이 떨어져 나가며, 사방의 토양이 일제히 무너져 내렸다. 토사와 바위가 유리를 깨며 쏟아져 내렸다.

나는 다급히 외쳤다.

"진!"

진은 죽었다. 할렐루야.

"해리스!"

해리스는 죽었다. 할렐루야.

"거기 괜찮나?"

헉슬리는 죽었다. 할렐루야.

나는 피하지 못했다. 낙석이 머리를 쳤고, 그대로 쓰러졌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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