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탄화炭化
런던은 불변의 도시이다.
사람들은 종종 십 년 전부터 도시에서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내 경우에는 직장도 일정했기에 더욱 체감되었다. 출근길 풍경은 항상 같았다. 공사 중인 골목은 몇 년째인지 공사 중이었고, 매번 같은 길로 돌아가야 했다.
가게는 가끔 바뀌었지만, 식료품점이 망하면 또 다른 식료품점이 입점할 뿐이었다. 바뀌는 건, 간판뿐이라 진열장 위치도, 품목도, 심지어 맛까지 똑같았다.
집과 직장 사이에 있는 패딩턴 역에는 항상 같은 시간에 열차가 들어왔다. 정시는 아니었다. 출근 시간 기차는 언제나 3분씩, 퇴근 시간 기차는 5분씩 늦었다.
연일 들리는 프랑스와의 전쟁 소식도 이제는 다른 나라 일 같았다.
나는 출병한 군인도, 죽었다는 사람도 본 적 없었다.
가끔 라디오 뉴스에서는 다급한 어조로 처음 듣는 섬 이름을 말하며 포격 소식을 전했다. 군함용 기름이 부족하다며 해마다 등윳값이 조금 올랐지만, 그만큼 주급도 올라서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남는 돈은 저축하거나, 새로운 보험에 들었다. 보험증이 배송되면 서랍의 상자에 넣었다. 어딘가에 쓰거나 한 적은 없지만 보험은 많을수록 좋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일상(Daily Grind)은 변치 않고, 나날은 순간이되 영원했다.
나는 이런 생활에 의심을 품은 적 없었다. 불만이 없었기에 변화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견고한 생활의 불변성은 확고했다.
그런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나는 처음으로 여윳돈을 사적인 용도로 썼다. 처음으로 안 사실이었지만, 도시에서 음주도, 흡연도 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고, 그 드문 예외 중 하나였던 나는 남들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처지였던 듯했다.
심장이 뛰었다. 계속, 계속!
그날, 나는 쇼핑몰에 들렀다.
여러 가판대가 있었지만 헤매지는 않았다. 매번 사야 할 품목은 같았고, 물건 위치도 항상 그대로였다. 큰 반복 속의 작은 반복이었다.
나는 필요한 물건을 전부 담고, 그날 처음으로 예정에 없는 곳으로 향했다.
장갑이 필요했다. 오늘 일터에서 저지른 실수 때문이었다.
멍청하게도 장갑이 부지깽이에 걸린 줄도 모르고 불 속에 담가뒀고,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어서 큼지막한 구멍이 나고만 뒤였다.
10년 근속 기간에 처음 범한 실수였다. 내 안에서 뭔가 바뀌고 있는 걸까.
어쨌거나, 일터와 사생활에서 의복을 구분하지 않는 나였다. 어디서나 검댕투성이로, 전신에 묵은 기름이 끈적했다. 이러고 있으면 언제나 불에 닿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탓에, 그때 나는 장갑 없는 맨손이었다. 평소보다 조심했어야 하는데, 새 장갑을 집어 들다가 실수로 다른 사람과 손이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다."
상대는 곧장 사과했다. 나는 답사하지 않았다.
대신 붉어진 얼굴로 경악하며, 짐을 내팽개치고 매장 화장실에 뛰어들었다.
이미 손등이 불긋불긋 올라 있었다. 급히 찬물로 씻자, 벗겨진 살 껍질 아래로 속살이 나타났다. 소각로 앞에서의 통증과는 달랐다. 참지 못하고 아랫입술을 물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결핍되었다
공동空洞이다. 나만이 지상에서 텅 빈 구멍 같았다. 무얼 잃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온기다. 추위에서 태생한 나는 체온을 타고나지 못했다.
이건 겉으로 드러나는 부류의 성질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혈색이 조금 안 좋고, 체온을 잴 때도 평균보다 기껏해야 1도에서 2도쯤 낮게 표기되는 정도였다.
고작 그 정도의 차이로, 나는 영영 온기를 잃고 만 것이다.
나는 타인과 살을 맞댈 수 없었다. 우연히 닿기라도 하면, 오늘처럼 화상을 입었다. 그래도 불편하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되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가진 적 없으니, 가지는 법조차 몰랐다.
그것이 바뀌었다.
그날 나는 거즈로 칭칭 감싼 손으로는 장바구니를, 다른 손에는 찰랑거리는 등유 통이 들려 있었다. 이게 최근 시작한 사치였다.
나는 매일 빈 통과 함께 출근해서, 퇴근길에 채워서 돌아왔다. 한 통 전부 쓰는 데는 하루면 족했다. 비어 있는 난로 기름통에 등유를 채워 넣었다. 이제는 라디오도 틀지 않았다. 소리 들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창이나 문도 열지 않고, 나는 난로를 최대한 가동했다. 이렇게 매일 밤, 나는 일산화탄소에 질식하도록 방 안을 덥혔다.
그래야만 잠들 수 있었다.
탄소 중독은 다채로운 꿈을 보여줬다.
첫날의 꿈 이래 나는 밤마다 만국 각지를 여행했다. 오직 런던에서만 나고 자란 나는 한 번도 들러본 적 없고, 상상해본 적 없는 풍경이 이어졌다.
고대 로마의 유적지, 큰 교회가 여럿 있는 마을, 수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밀물 아래의 대륙, 광활한 대양과 가파른 절벽, 들판 위의 이국적인 짐승과 해안의 뾰족한 바위, 가본 적 없는 온후한 기후의 섬....
어쩔 때는 시간조차 넘어갔다.
뭍에는 아무것도 살지 않고 드넓은 바다가 어디까지나 펼쳐져 있었다. 종아리까지 차오른 원시의 바다에는 포식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원생동물이 유유히 떠돌며 헤엄쳤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옷을 갈아입지 않는 버릇을 후회했다.
몸에서 흐르는 기름이 흘러 바다 표면 위에 퍼졌다. 내 우려와는 달리 바다에선 아무런 소동도 없었다. 육상 생물 출현 이전의 바다에선 그저 고요하고 왕성한 생명만이 가득했다.
나는 어째서 이 광경이 이토록 아름답게 보이는지 깨달았다.
색채였다.
내가 가진 표현력으로는 차마 표현할 길이 없었지만, 현실과 꿈속은 아주... 아주 달랐다. 이 세계에서 나는 춥지 않았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 짐작은 되었다. 저기 하늘의 광구, 저기서 처음 보는 광채가 뿜어졌다.
그곳은 정말 아름답고, 따뜻한 장소였지만, 마지막에는 역시 처음의 작고 이상한 소각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어떤 장소라도 오래 머무르진 못했다.
경적 소리가 들린다.
매일 듣는 기차의 그것과는 달리 사납고 거친 날것의 소음이다. 삐이익, 삐이익, 머리가 멍해지며, 손발이 바들바들 떨려오면, 나는 구역질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몸에는 발한이 일어나고, 긴 질식으로 신체는 차갑다.
제때 깨어나지 못하면 침대에서 구토하거나, 기절하기도 했다. 절박한 몸짓으로 창문을 열면, 바깥의 산소가 냉기를 몰고 다가왔다.
그래도 첫날처럼 죽음에 가까웠던 적은 없었다. 그 이후에는 경적 소리를 듣고 깨어나면 정말 위험한 순간에는 이르지 않았다.
그리고, 첫날만큼 흥분되었던 적도.
숨을 내쉴 때마다, 나는 얻으면서 잃어갔다.
산소, 일산화탄소, 산소, 그리고 이산화탄소! 산화와 탄화, 영원한 순환!
산소는 분명 독소였다.
폐부 깊숙이 산소를 채우고, 폐포에서 모든 이산화탄소를 꺼내면, 어렴풋이 떠올랐던 기억과 지혜는 모조리 빠져나가고 말았다.
수면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몸은 피폐해졌으며, 기억은 흐릿해 졌으나, 내 몸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해졌다.
그렇게 두어 시간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아침 종이 울렸다. 노동 시간을 아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영국에는 해가 뜨지 않았다.
그날도 평범한 아침이었다.
길가에는 두 줄로 늘어진 군중이 의욕 없는 걸음으로 모두 어디론가 걸어갔다. 나도 행렬 일부였다.
거리는 항상 밝았다.
등불파, 그러니까 중앙 런던 전기 조명은 태양을 대체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오늘날 런던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도시로 알려지는 데는 이들의 공로도 적지 않았다.
진짜 그래?
나는 최근 스스로 묻는 일이 늘었다. 분명 열 걸음 간격으로 촘촘히 박힌 가로등에는 어둠이 끼어들 구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길을 걷는 사람들 아래에는 더없이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달리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많은 사람이 광산에서 일하는 걸 안다. 거기서는 돌과 흙만이 실려 나온다. 벌써 10년째 땅을 파고 있지만, 뭔가 캐내거나, 지하 공간에 짓거나 하지도 않고 그저 파 내려가고만 있었다.
그런 건, 이상하지 않나?
호소하듯이 주변을 둘러봐도 호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묵묵히 직장으로 향하기만 했다. 나 혼자 알아챈 것인가, 아니면 모두 알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그래도 일상은 반복되었다. 매번 똑같이, 내가 패딩턴 역을 지날 때쯤이면 역에 기차가 들어오고....
... ... ... !
... ... ... !
... ... ... ?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테러다!"
누군가 외쳤지만, 머리가 받아들이질 못했다. 그저 따뜻한 바람이 분다고 생각했다. 옆을 돌아보자, 기차가 폭발로 쓰러지고 있었다.
삐이이 하는 소음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만져 보니, 귀에서 피가 흘렀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으로 사고가 붕 떠 있었다. 생에 대한 실감이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도망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만히 서서 타오르는 역사驛舍를 응시했다.
쓰러진 기차에서는 검은 광석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정체를 바로 알아봤다. 얼마 전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광석이었다. 그중 일부가 내 발치까지 날아왔고, 나는 홀린 듯이 곧장 주워들었다.
상상했던 감촉이었다. 코에 갖다 대었다. 상상했던 냄새였다. 그리고, 조심스레 핥았다. 상상했던 맛이었다.
나는 역사 쪽으로 달려가며 바닥에 떨어진 광석을 마구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흘러내린 부스러기조차 아쉬웠다.
역사 한가운데에서, 나는 멈춰 섰다.
이제 와서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떤 기이한 물체를 발견하고 멈춰선 것이었다. 물체? 확신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그림자일지도 몰랐으니까.
내가 그것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검정, 그뿐이었다. 형태나 크기, 거리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홀연히 세상에 뚫린 공동, 어쩌면 나와 닮았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서 그걸 잡았다.
우선 잡히는 물체라는 데 안심했다. 붙잡은 장갑에 녹색 반사광이 비쳤다. 옆으로 돌려 보니, 녹색 형광빛으로 글자가 하나 적혀 있었다.
숫자 팔.
내가 발음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았다. 나는 직후 발생한 2차 폭발의 열파에 휩쓸려서 날아가고 말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병상이었다.
내가 눈을 뜨자, 뭔가 급히 소란스러워졌다. 패딩턴 환자, 화상 같은 단편적인 정보만 간신히 들어왔다.
은은한 조명밖에 없는 실내였는데도 너무 눈부셨다. 빛이 이렇게 밝은 줄은 처음 알았다. 사물의 윤곽이 무너지고 오직 면과 색깔로만 보였다.
내가 있는 방 바깥에서는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청각 또한 이상할 정도로 예민했기에 엿듣기는 어렵지 않았다.
...적화부단(Red Stokers)의 테러는 올해만 세 번째로 런던 시내에서는 처음입니다. 대영철도의 대표이사 조지 허드슨 주니어는 '절대적인 보복'과 같은 거친 표현을 쓰며 격양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집에 있는 것과는 달리 또박또박 말소리가 들리는 좋은 라디오였다. 단지 들릴 뿐, 내용은 와 닿지 않았다. 모르는 이름이 많은 탓이었다.
잠시 후, 의사처럼 보이는 인물이 피로한 눈으로 나타났다.
"몸은 괜찮습니까?"
"왜 이렇게 밝은 거죠?"
"진정용 헤로인 효과입니다.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헤로인이 뭔지 몰랐다.
"더 물을 건 없습니까?"
"그래야 합니까?"
나는 스스로 놀랄 만큼 차분하게 되물었다. 의사는 당황한 것처럼 잠깐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합니까?"
"패딩턴 역... 뭔가 옆에서 폭발했습니다."
"역사 기둥이 가림막이 되어서 직격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풍압으로 쓰러지면서 생긴 타박상이 더 크니까요."
그런 것치고는, 내 몸은 미라처럼 붕대로 감겨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옷에 묻은 기름이 발화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직접 화상으로 분류되는데, 보통 화재보다도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입고 계셨던 의복이 방화 재질이었던 덕에 기름만 전부 태우고 피부에는 직접 닿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해도 천운이지만요."
내 옷이 방화 재질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어쩌면 소각장에서 쓰는 멜빵 작업복이라 특수 처리가 되었는지도, 아니면 처음 지급받을 때 안내받은 석면 재질이라는 특징과 관련 있는지도 몰랐다.
"아무리 가볍다고 해도, 비유하자면 수 분 동안 소각로 속에 들어있던 것과 같습니다.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 가능성도 있고, 진통 효과가 사라지면 발작이나 쇼크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의사는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의학 지식이 없는 탓에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상대의 말투로만 겨우 내 상태를 유추했는데, 그리 심각한 것처럼 들리진 않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과는 손만 맞대어도 고통스러운 내가 정작 불 속에서는 이렇게 온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무심코 주머니 쪽으로 손을 향했다가, 아무것도 잡히지 않자 물었다.
"제 옷은 어딨습니까?"
"입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그러고 보니, 옷이 탔다고 했다.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은 혹시."
"석탄 말입니까?"
석탄! 그건 석탄이라 하는구나.
어찌 그렇게 멋진 음색이 있을까. 나는 속으로 발음했다. 석탄. 석탄!
"이미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병원 측에서 폐기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나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기에 순순히 체념했다. 석탄은 순수하게 타기 위해 있었다. 불에 들어가고도 멀쩡히 돌아올 턱이 없었다. 그것은 나처럼 불순한 것에나 있는 일이다.
"그것 말고는 현장에서 찾은 건 이것뿐입니다."
의사가 뒤에 신호를 보내자, 조무사가 철 쟁반에 올려진 검은 광석을 가지고 나타났다. 내가 손을 뻗자, 그녀는 내가 쥘 수 있도록 쟁반을 기울여 건넸다.
한 차례 불탔음에도, 그건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형태도, 감촉도... 분명 앞면에는 '8'이라는 숫자 모양으로 발광하고 있었다.
나는 빛깔에 빨려 들어가듯이 응시했다.
"그러면, 저녁때 다시 한 번 찾아오겠습니다."
"퇴원하겠습니다."
의사는 눈살 찌푸렸다.
"지금은 괜찮은 것처럼 느껴져도 화상입니다. 방심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퇴원하겠습니다."
그는 콧잔등에 주름을 접었다.
"수속해 드리겠습니다. 가입하신 보험에 따라서는 입원 치료비 일부 상환이 가능합니다만,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만."
나는 잠깐 생각하다 고개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해주세요."
"그러면 보험은 없으신 걸로."
그는 고개 끄덕였다.
나는 거리로 나왔다.
병원 앞 간판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광고문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조금 걷자, 의사가 말한 헤로인 약효가 다 되었는지, 붕대 아래의 온몸이 쓰라리게 아팠다. 특히 찬 바람이 따가웠다. 마치 피부가 없는 것 같았다.
"석탄, 석탄."
나는 몇 번이고 발음했다. 그때마다 혓바닥이 부싯깃을 부딪히는 것처럼 탁탁하고 불똥 튀었다.
꿈속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그걸 생각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의문은 있었다. 왜 나는 지금까지 석탄을 몰랐을까?
석탄은 다름 아닌 소각장에 있어야만 했다. 그것 외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물체이며, 동시에 소각로 안에서 무엇보다 붉게 빛날 수 있었다.
그렇게 대량의 석탄이 기차에 실려 있었는데, 오늘만 우연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봐 왔던 모든 기차에는 석탄이 실려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 많은 석탄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다시 한 번 병원 쪽을 돌아봤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오늘의 런던이 있기까지, 노란 외벽 8개 회사의 공로는 대단했다. 모든 일자리는 저들이 만든 것이며, 무수한 보험으로 시민의 삶을 윤택하게 했다. 덕분에 모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치 불안도, 변화도 없는 안정된 삶을 살아간다.
나는 소각장 쪽으로 걸었다.
사고를 당했으니, 오늘 결근은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몰랐다. 어쩌면 다친 몸으로도 출근하는 열의가 고평가 받아서 더 오래 소각장에 머무를 수 있을지 몰랐다.
그나저나 적화부단은 왜 석탄차를 터트렸을까. 그들은 거기 석탄이 실렸다는 걸 알았을까, 아니면 순전히 우연이었을까.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생각, 품지 않을 의문이 앞다퉈 나타났다. 체내에서는 뭔가 끓어 올랐다. 열과는 달랐다.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욕구, 욕망에 가까운 것으로 호기심보다는 뜨거웠고, 탐구열보다는 건조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그래, 갈증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들이 어딨는지는 알았다.
한때는 런던 교외 거주 구획이었지만, 지금은 단절된 지역이다. 그래도 원한다면 가볼 수는 있을 터였다. 나는 그 장소의 이름을 발음했다.
"마일 엔드."
혓바닥이 따끔했다. 혀에는 그을음이 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