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외연기관의 꿈
"세 사람."
알리사가 가만히 세 이름을 보며 중얼였다.
"적화부단의 세 명의 창단자죠? 백작님을 포함해서요. 이걸 왜?"
"우리는 이걸 너희가 태어나기도 전에 발견했단다. 정확히는 훔쳤다고 할까."
에식스 백작은 말했다.
"이 서명은 우리 세 명이 현재를 포기한다는 서약이야."
"잠깐, 잠깐만요. 너무 빠르잖아요."
이야기에 잭이 끼어들었다. 그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백작님이 죽는다는 말이며, 하나도... 우리는 혁명가 아니었어요? 파리에서 불을 들여와, 관리 위원회 주도의 사회를 타파하고 태양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던 게...."
"그건 우리 목적이 아니야."
백작은 딱 잘라 말했다.
"우리는 진작 깨닫고 포기했지. 너희가 태어나기도 전에 말이다."
"그럼 이건 뭔데요!"
그건 나도 알았다. 잭이 가리킨 건, 인공위성이었다.
"인공위성이라 했잖니."
"그 말이... 지금까지 알던 게 전부 가짜라고요? 우릴 속인 거에요?"
"너는 참 감정적이구나."
"백작이 그렇게 가르쳤잖아요! 사람답게 살라고!"
"그래, 모두 내가 가르쳤지."
"전부 가짜라면, 이럴 거면, 왜요!"
"불쌍했으니까."
백작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잭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버려진 세계에서 사는 너희가 한없이 불쌍해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하길 바랐어. 그게 영영 이루지 못할 목표면 어떠니.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한 행복할 텐데. 하지만 여생을 착각 속에서만 살아가길 바라진 않았으니까, 임종 전에 알려줄 뿐이야. 그게 다야.
서로 대화하는가 싶더니, 무거운 분위기가 되었다.
"그래도, 조금 더 완곡하게 말할 수는."
"나는 말을 가려 할 줄 몰라. 그럴 상황도 아니고."
잠깐 정적 후에 알리사가 물었다.
"어떤 인물이란 건."
"몰라, 실재하는지도 어떤지도."
"네? 그러면, 안 되잖아요?"
"불교라고 들어봤어?"
백작은 물었다. 나를 비롯해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그러겠지, 생전 남작이 말해준 거야, 먼 이국의 종교라고. 거기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에서 영생하지 않고, 몇 번이고 현실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구나."
그녀는 조소했다.
"나라면 못 버텨."
"설마."
"그래, 눈치챘구나. 그게 남작의 유언이야. 자기는 이미 몇 번이고 되살아나고 있다면서, 다시 태어나면 찾아달라고."
재차 침묵. 하지만 이번 침묵은 조금 더 곤혹에 가까웠다.
"알아, 듣던 것보다 한심한 남자지? 미리 말하자면, 나는 일절 믿지 않아."
백작은 웃으며 말했다.
"말도 안 되잖아. 그게 사실이래도, 어디서 태어날 줄 알고, 그 많은 인구 중에 한 명을 찾아내겠어. 현실적이지 않지. 나는 차라리 손닿는 곳에 있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로 했지. 적화부단, 너희 말이야. 의미 없는 연명이면 좀 어떠니. 뭔가 이뤄야만 인생인 것도 아닌데."
그녀는 다시 웃었다. 문학을 모르는 나로서는 두 웃음의 차이를 알기 어려웠다.
"나는 체념했지만, 피터... 우직한 피터는 달랐지. 걔도 모를 리가 없었는데, 무턱대고 남작의 환생을 찾아내겠다고 방랑길에 나선 거야. 대단한 성격이지. 아직도 걔가 용감했던 건지, 시야가 좁았을 뿐인지 확신이 안 서."
"하지만."
"그래, 결국 죽었지."
몇 번이고 들으면서 기억이 났다.
"자, 이제 정리하자. 아까도 말했지만, 시간이 정말 많지 않으니까. 나도 너희 뒷바라지 말고 정리할 시간은 있어야 하지 않겠니? 딱 한 번만 말할 거야. 잊어도 좋지만, 기억할 거면 정확히 기억해."
알리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적어도 돼요?"
"안 돼. 너희 뇌 말고 어디에도 남겨두지 마. 그곳도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18세기 말엽, 런던 근교에 운석이 충돌한 사건이 있었어. 초토화된 지역에는 4명의 신사가 방문했고, 마을과 운석은 모든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어. 이 사건을 기억해."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별로 자신이 없었지만, 두 사람을 따라서 끄덕였다.
"지구의 시간은 반복하고 있어. 천문학계는 은폐하려 했지만 숨길려야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야. 매번 비슷한 시기에 깨달았겠지. 그야 하늘에는 지난 인류의 실패작이 맴돌고 있는걸. 지구를 떠나지 못한 우주선과, 시체가 들어 있는 우주복 말이야. 그야 절망하겠지. 그런데, 사람은 할 수 없는 거라고, 안 하지는 않아. 무슨 뜻인지 알겠니?
정확한 고도까지는 계측하지 못해도 대기권 이상, 공전 궤도까지 올라가면 사라지지 않아. 그 사실을 깨우친 인류는 항상 같은 행동을 했어."
직전에 준 겁박과 달리 백작은 차근차근 설명해갔다.
"대물림이야. 내가 지금 너희에게 하는 것과 같아. 자기 대에서 마치지 못한 과업을 후대에게 미루는 건 종의 숙명인 셈이지. 이해해?"
그 말이 뭐가 슬펐던 걸까, 알리사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말고 들어. 이건, 조금 달랐어. 과거 어느 시점에 한 사람이 쏴 올린 위성이야. 같은 시기에 수백 대의 동일한 위성이 발사됐지. 각 형제 위성 간의 차이는 오직 한 가지, 추락 시점뿐이야. 그 사람은 궤도 상의 위성 연식을 비교하여, 지구의 시간이 반복되는 주기를 알아냈고 한 번의 반복마다 몇 대씩만 떨어지도록 인위적으로 설정해둔 거야."
백작은 기계적으로 설명했다.
"그런 정밀한 설계지만, 실상 내용물은 별거 없어. 책으로는 겨우 스무 장 안팎의 문자가 내부 금박에 적혀 있는 단순한 철 덩어리에 불과하지. 적힌 내용 대부분은 난해한 경전 같은 것이고, 그나마 알아보기 쉬운 부분은 아주 짧고 건조한, 고백적인 성격의 글귀뿐...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어.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충분...."
그녀는 애틋하게 위성 표면을 맨손으로 쓸었다.
"너희 역할은 이걸 남작의 환생에게 건네는 것. 사실상 불가능하니, 잊어도 좋아. 대신 빼앗기지만 말렴."
"전, 저는 아직도 납득이 안 돼요. 그게 대체 뭐길래요? 남작이 아니라 우리가 해낼 수도 있잖아요!"
잭이 소리쳤다.
"위성의 발사자는 셜리 마리, 그녀는 자신이 남작, 필레몬 허버트의 양녀임을 자칭하고 있어. 아까도 말했지만, 인류는 후대를 위해 저마다 메세지를 남겨 과업을 이어가길 바랐지. 하지만, 이것만은 달라."
백작은 손바닥을 위성 선체 위에 올려뒀다.
"이건, 과거에서 온 구조 신호야."
그녀의 손이 떠나자, 다시금 이름이 보였다.
피터 윌슨
아멜리 에식스
필레몬 허버트
"피터, 피터 윌슨."
나는 홀로 되뇌었다.
"피터 윌슨... 저는 그 사람을 알아요."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절 보고 우주에 가라고 했어요."
"잠깐, 뭐? 그런 말은 안 했잖아!"
알리사가 울다 말고 날 보며 외쳤다.
"지금 기억이 났어."
"거짓말!"
거짓말은 아니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둘과 달리 백작은 아주 차분했다. 오히려 내가 말을 꺼내기 전보다 더욱 차갑게 보였다.
나는 노려보는 눈빛에 위축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믿지 않아.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으니까, 피터 본인이 널 데려왔다고 해도 그랬을 거야."
"마, 맞아요! 갑자기 말해도 믿기는...."
"하지만."
그녀는 외마디에 뭔가 말하려던 두 사람이 흠칫했다.
"불가능을 단정 짓지도 않아. 나는 그렇게 연약하게 살아온 적이 없다. 검증하고 싶지만 최선의 행동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 네가 필레몬 허버트의 환생이라고 하면."
나는 혼란스러웠다.
"필레몬 허버트? 환생?"
"너,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잭이 옆에서 소리 질렀다.
"사람 이름은 잘 못 외워."
"적당히 좀 해!"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만."
백작이 짧게 일갈하자, 잭은 분한 듯이 고개 돌렸다.
"미안하지만, 내 계산이 조금 틀렸구나. 지금은 일단 내 말을 전부 암기해."
"하지만."
"졸리기 시작했어. 정말로 시간이 부족해."
두 사람은 입을 꿍 다물었다.
"지구의 시간이 돌아갈 때마다 많은 게 변하지만 몇 가지 불변하는 게 있어. 별, 우주, 태평양과 관련된 것들이 주로 그래. 남작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었고, 특히 강인한 생명력은 모든 시간대에서 공유하던 특성이야. 목숨이 질기다는 말은, 반대로 어지간한 일로는 죽지 않는다는 뜻도 돼. 이미 지워진 세계의 사인마저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매번 처절하게 죽었어."
백작은 말했다.
"여기 인공위성에는 그런 남작의 특징을 언급하며, 당시 기준으로 부자연스러웠던 실종을 언급하고 있어. 물론... 내가 보기에는 허망한 주장이지만, 그가 시간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 확신한 거지."
"그래서, 구조 신호군요!"
알리사가 퍼뜩 고개 들며 외쳤다.
"위성은 일종의 마도서야. 어떤 때는 은랑의 서라고도 불렸고, 어떤 때는 흑천복음이라고도 불린 힘이지만, 여기에는 변치 않는 이름이 있어."
"마... 네?"
백작은 답하지 않고 말했다.
"심해, 그리고 데이곤."
순간, 세상이 조금 더 어두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건, 모든 별이 꺼지고도 바뀌지 않을 이름, 그러기에 영원한 이름. 여기는 그 이름을 다루는 세 가지 방법, 침몰과 익사, 그리고 표류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도 들으렴. 그중 표류는 닿지 않은 두 원양을 잇는 힘, 적힌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바다를 통해서 시간조차 건널 수 있어."
백작의 언어가 점차 가속하며, 장소는 묘한 활기로 끓어올랐다. 모두가 열기를 느끼고 있었다. 물리적인 열량 말이다.
"그러면,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가면 되잖아요! 바다로!"
"이 세상에, 그래서 어디 있지?"
"네? 아니, 그렇지만...."
알리사는 눈을 깜빡였다.
"달이 없으니 조력도 없고, 태양이 없으니 파도조차 치지 않아. 육지 끝에는 그저 고여서 썩어가는 거대한 물ㅋ웅덩이만 있을 뿐이지. 편의상 바다라고 부르고 있을 뿐, 저건 이미 바다가 아니야."
백작은 담담히 말했다.
"우주."
나는 중얼였다.
"바다가 아니라, 우주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우주가 얼마나 먼지 알아?"
몰랐다.
"열기구를 띄우는 정도로 닿을 거리가 아니라고."
"분명, 미래에도 바다는 없을 거야. 여기에는 데이곤이 어떤 식으로 우주 끝자락에서 탈출하려 한 지까진 적혀 있지 않아. 다만, 우리는 우리대로 가설을 세웠지."
그녀는 말했다.
"태평양은 어느 시대, 어떤 장소에서는 별 또는 우주로도 불렸지. 우리는 바다가 아닌 별을 건너기로 했어. 일정 속도 이상을 주파했을 때, 도달하는 쌍둥이 흉성이 지배하는 꿈의 세계를 거쳐서."
그러고 그녀는 나를 바라봤다. 나는 흠칫 떨었다.
"잘 들어. 너는 필레몬 허버트 남작의 환생이야. 그렇다면,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거야."
"실로 그러하다."
또각, 또각.
지하실 계단 쪽에서 긴 그림자가 아래로 드리웠다. 음성은 거기서 들려왔다.
"그는 정명한 남작의 환생. 별의 비호를 받는 우리 영혼은 불멸이다. 그러기에 때때로 육체를 솎아내어줄 필요가 있지."
또각, 또각.
언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그게 너무 친숙하게 들린 나머지, 나는 그에게 인사할 뻔했다.
"저주받은 에식스의 피 또한 내게는 오랜 숙적이지. 자, 끝이다. 죽음이 네게 왔다."
"알레이스터!"
"늦었다. 이미 잠들었다. 태양이 없는 세계에서 밤은 영원하다. 그렇다면 꿈도 끝나지 않겠지."
또각, 또각.
별로 길지도 않은 계단에서는 끝없이 내려오는 소리만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그림자도 점점 커져만 갔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그림자도 점점 커져만 갔다. 점점 가까워지고, 점점 커졌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그는 이미 내 귀 안에 들어와 있다. 지금 점점 가까워져서, 내 뇌로, 뇌에!
"너는 내 꿈과 이어졌을 뿐이야. 그렇겠지?"
"그 누구도 사람의 꿈을 막지 못한다."
"아니, 누구라도 할 줄 알아. 그저 깨어나면 돼."
총성이 울렸다. 발소리가 사라지고, 지하실에 검지 않은 어둠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그 다음에 알 수 있었다.
"꺄, 꺄아아!"
알리사가 비명 질렀다. 바닥에는 백작의 몸이 쓰러져 있었다. 손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구경의 권총이 들려 있었다.
관자놀이에 뚫린 구멍에선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진짜."
알리사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다시금 계단 쪽에서 다다닥거리며 누군가 빠르게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숨소리조차 멈추고 그곳을 응시했다.
"버니?"
나타난 것은 과묵한 거한이었다. 나를 이곳에 데려왔다는 셋이 여기 모였다.
"가야 해."
"너, 엿듣거나... 그런 짓도 하는구나?"
잭은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알리사는 그새 울음을 그치고 붉은 눈으로 일어섰다.
"가자니, 어디로?"
"몰라. 하지만 백작이 말했잖아."
"일정 속도 이상을 주파... 그러고 보니, 근방 차고에 오래된 증기차가 있었어."
그녀는 뭔가 깨달은 것처럼 고개를 쳐들었다.
"알 것 같아."
"확신해?"
"백 퍼센트는 아니지만, 일단 석탄이랑 저, 인공위성을 거기까지 날라야 해."
나는 즉답했다.
"도울게."
우린 그녀가 말한 장소로 물건들을 날랐다. 보에 올린 석탄을 옮기는 작업은 아주 경쾌한 것이었지만, 인공위성을 나를 때는 끔찍했다.
계단에 올리기도 쉽지 않았고, 문을 통과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처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이 안으로 옮겼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결국, 인공위성에서 날개 부분을 해체하고, 중요한 내부 몸체만 옮기기로 했다. 일이 끝날 무렵에는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잭이 땀범벅으로 물었다. 녹초가 된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내 예상인데, 백작은 일정 속도 이상을 주파하려는 게 목표였고, 여기에 그만한 속도를 낼 수 있는 건 이 안의 증기차밖에 없어."
"저 고물이 굴러갈까? 최소 반세기는 된 물건에다가, 정비하는 모습조차 본 적이 없다고."
"그래도, 멈춰 있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근거는 있어!"
그녀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광물 앞에 섰다.
"석탄이야! 백작은 평생 우리에게 쓰지도 않을 석탄을 모으게 했어! 그게 증기차를 달리게 할 연료였던 거야!"
"그래, 평생 모아서 이 정도...."
잭의 표정이 묘해졌다. 우리는 석탄을 응시했다. 적어도 여깄는 세 사람은 평생에 걸쳐, 그리고 아마 적화부단은 그 이전부터 석탄을 모으려 애썼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이 양은...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우리 모두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가장 먼저 의문을 제기한 것은 잭이었다.
"우리가 모아온 게 이게 다라고?"
"그래... 말이 안 되는 양은 아니야. 너도 알잖아, 우리가 한 번 훔칠 때마다 얼마나 조심했는지... 그리고 또, 유통 자체가 되질 않으니까."
여기서 일하며 안 사실이지만, 모든 석탄은 노란 외벽 회사가 관리하고 있었다. 대중에서는 연로자가 아니면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처음에는 그저 그들이 독점하는 석탄을 어떤 용도로 쓸지가 의문이었지만, 상황이 점차 노골적으로 변하자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이것밖에 못 모은 거야...?"
석탄 공급이 멈춘 것은 남작이 죽었을 무렵이라 했다.
관리 위원회는 석유 사용으로 전환을 강행했고, 그 과정에 런던 외 지역의 수백만 명의 국민이 동사했다고도 했다.
"시대를 건너뛰었어?"
알리사는 창백한 얼굴로 중얼였다.
"낡은 증기차 한 대가 달리지 못하게, 고작 그 정도 연료를 구하지 못하게 하려고 석탄 시대를 건너뛴 거야?"
차고 문이 열리고, 낡은 무쇠 기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옆면에는 때가 낀 구리 조형으로 이런 이름이 적혀 있었다.
SMR 웰스.
"자, 잠깐."
잭이 목소리를 떨었다.
"일단 침착하자. 연료 충분한 거 맞아? 척 봐도 부족하잖아. 몇 분이나 달리겠느냐고, 다시 계산해보자. 어느 속도까지 도달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백작도 바로 달리라고 하진 않았잖아. 기회는 단 한 번이야."
다들 비슷한 불안을 공유하는지 그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나를 제외하고는, 나는 고개 저었다.
"달리자."
나는 고양감에 심장이 박동했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태운 기차가 눈앞에 있다. 수십 명의 인생이 탄화해서 눈앞에 무더기로 쌓여 있다. 이 순간, 나는 순수하게 불을 열망했다.
"너 말이야, 그래, 너! 믿을 수 없다고, 이상하잖아! 갑자기 자기가 남작의 환생이라는 둥... 네가 아니면 어쩌려고! 그것부터 의심스러워!"
잭은 소리 지르며 날 향해 다가왔다.
"애초에, 달려서 우리가 시간을 건넌다고 해도, 어디서 뭘 해야는지도 모르잖아! 인공위성에 적혔다는 글귀 한 줄도 읽어본 적이 없어! 일단 한 번 돌아가고...."
그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어쩌면 끝까지 말했지만, 내가 듣지 못했을 뿐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워낙 큰 소리가 났으니까 말이다.
뒤를 돌아보자, 폐병원이 불타고 있었다. 하늘에는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소란스러웠다. 그 뒤로 꼬리 물듯이 몇 대의 비행기가 우리 머리 위를 다시 스쳤다.
연이은 폭발이 마일 엔드 각지에서 일어났다.
"어?"
우리는 그 정도 반응밖에 하지 못했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뜰 때마다 처음 보는 풍경이 거기 있었다. 무엇이든 파괴되고 있었다.
"달리자."
"그, 그래, 달리자."
"달려야 해."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연료와 인공위성을 기차에 실었다. 오직 기관차체만 달려 있었기에, 네 사람이 다 올라타자니 공간이 부족했다.
"어떻게 해? 다룰 줄 아는 사람 있어?"
"나."
모두가 날 바라봤다.
"내가 알아."
이제야 알았다. 내가 줄곧 꿈에서 보았던 것, 이상할 정도로 좁고 뜨거웠던 소각로는 바로 여기였다. 나는 소각장의 꿈을 꾼 적이 없었다.
나는 외연기관의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