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매사 말하듯이 나는 시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고루하고, 상투적이며, 어떤 작가든지 마지막까지 망설이다 자부심과 좌절 사이에 있는 창작의 무덤 골짜기에서 극단적인 타협을 거치지 않고는 감히 작성하지 못할 문장으로 운을 트는 데는 주저하기 마련이었다.
나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박사님!"
"월터, 키가 꽤 컸구나. 슬슬 나만 하겠어."
"아무래도 그건 말이 안 돼요."
"역시 그런가?"
프랑켄슈타인은 웃으며 월터를 제 자식처럼 번쩍 들어 올렸다. 아이들은 빈말로도 동심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가진 프랑켄슈타인 곁으로 살갑게 모여들었다.
그 모양이 퍽 자연스러워서 도리어 내가 있을 때보다 화목하게 보였다. 물론 내가 뭘 잘해준 일이야 없다지만, 그 꼴이 꽤 배알 꼴렸다.
"프랑켄슈타인 박사."
나는 멀리서 목소리로만 그를 불렀다.
"이런, 가봐야겠다."
"벌써?"
"어르신께서 부르잖니. 이야기는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까."
마치 소설 속 심술궂은 의부라도 된듯한 심정이군, 나는 또 생각했다. 반쯤은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반만 사실이었다.
"아, 박사님."
"마리 양. 심신 평온해 보여 반갑네."
"주인님께 용무인가요?"
"그렇게 되었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심정은 이해해요. 하지만 요즘 건강이 안 좋으시니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나는 더 큰 소리로 불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
그제야 그는 얼마 길지도 않은 복도를 지나,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날 선 말투로 중얼였다.
"자네가 아이를 좋아하는지 처음 알았군."
"하녀와는 아무 대화도 안 합니까?"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꿍하게 답했다.
"듣기는 했지. 하지만, 알다시피 박사께서 내 앞에서는 좀 까칠한 사내인가?"
"선생께서도 그러시죠."
"나는 누구한테나 이러고."
"그게 그리 자랑스레 할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말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남자였다. 이렇게 기가 센 사람이 그 아서와 별탈 없이 협업하고 있다는 게 잘 믿기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모를 뿐, 불화가 있을지도.
"바쁜 자네가 여기까지 걸음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지."
그는 말없이 지갑에서 익숙한 인쇄지 한 장을 꺼내 건넸다.
「Ⅸ」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매번 같았다. 내가 무언가 해냈다고 믿거든, 세상은 어김없이 절망을 향해 행진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암귀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래, 고맙군. 그래서 본론은 뭔가?"
나는 귀퉁이를 접어 책상 위에 올려뒀다.
"한 달 사이에 모든 게 달라졌어. 학술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보편사무국이 사실상 붕괴한 지금에는 아서의 운신도 자유로울 테고, 편지 또한 검열당할 우려가 없지. 이걸 전할 뿐이라면 직접 행차할 필요도 없을 테고."
프랑켄슈타인은 긍정도 부정도 표현하지 않았다.
"공포는 어디서 옵니까?"
그는 물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세간의 무지렁이들은 쉽게 말합니다. 미지, 알지 못하는 게 가장 무섭니... 터무니없습니다. 그자들은 공포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막연한 주제였다. 동시에 흥미롭지도 않았다.
이미 숱한 사건을 겪으며, 나는 무수한 광인이 주절거리는 헛소리에 익숙해져 있었다. 공포와 절망, 어둠, 그러한 막연한 화제들 말이다.
그 속에서도 나는 내 안의 현실주의를 나름 잘 지켜왔고, 대부분이 모호한 말장난이란 사실 또한 잘 알았다.
"그러면 생과 사에 통달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고견을 물을 수밖에 없겠네."
그는 시큰둥한 비아냥에도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공포는 보편적인 감성입니다. 우리 모두가 익히 알며 친숙한 개념에서 파생하기 때문입니다."
우연하게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통찰은 처음 듣는 게 아니었다. 극한의 지식을 추구하던 어떠한 구도자 역시 이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뇌수술동, 그곳이다. 거기서는 공포가 뇌 구조의 일치성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그들은 외과적인 방법으로 공포를 초월하려 들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 또한 그랬다!
그들이 같은 결론에 귀착한 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정말 세상이 그리되어 있는 건가.
"이제야 흥미가 돋으신 모양입니다."
티내지 않으려 했지만, 프랑켄슈타인은 내 태도가 바뀐 걸 곧장 알아차렸다.
"전에, 자네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었지."
그는 살짝 놀란 듯했으나, 쉬이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은 잔혹하죠. 버티지 못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자네는 어떤 답을 내놨나?"
나는 재차 물었다.
"공포란 어디에서 오지?"
"변화요. 사람은, 뭇 생물이란 모든 변화를 두려워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개, 고양이... 대관절 어느 짐승이 불변의 사물에 겁낸 답니까? 차라리 작고 잽싼 쇠파리라면 모를까."
"자네 말대로면, 육상 선수처럼 두려운 존재도 없겠군."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속도는 경향입니다. 좌표가 변화하는 상태, 벡터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빠름의 척도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시속 6만 마일의 천체 위에서 공전하고 있습니다! 범인은 허를 보고, 현인은 실을 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렇습니다! 증가하되 감소하지 않고, 나아가지만 도달하지 않습니다! 우주와 시간, 변한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불변한다고!"
열변을 쏟아낸 프랑켄슈타인은 지쳐서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그가 하려는 말이 점차 이해되었다.
"사람은 늙고, 병들어, 죽습니다."
"죽음, 그건가? 자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요."
그는 말했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두렵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통곡하듯이 중얼였다.
그는 한참 숨을 고른 뒤에야 겨우 일어났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침착하게 고했다.
"당신 친구, 스콧이 출발했습니다. 아문셴도 출발하겠죠. 우리도 갈 겁니다."
"어디로?"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나열된 이름이 가리키는 지점은 명백했다.
"우린 남극으로 갈 겁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말했다.
"저는 당신이 도움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합니다. 스콧과 학술회장님의 생각은 달랐지만요."
그는 냉정하게 말했다.
내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게 프랑켄슈타인이 말하는 것은 별개였다. 아무리 외다리라 한들 내 경력은 무시하기에는 가볍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처럼 영리한 자가 무작정 적의만을 내비치며 내 동행을 거부한다는 게 의아했다. 사실 그는 첫 대면부터 그랬다.
나 역시 그를 두려워했지만, 그는 나에 대해서는 언제나 경멸스러운 어조를 유지해왔다. 나는 처음으로 그 경위가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답장하실 테면 기다리겠습니다."
"그 전에, 잠깐."
프랑켄슈타인이 나가려고 하자, 나는 다급히 만류했다.
"자네는 혹시 알고 있나?"
"이학이라면 박사님보다야, 하지만 뭘 말입니까?"
"그런 게 아니라 아서의 계획 말이야."
그는 갑자기 침묵했다.
뭐든지 시원시원하게 답하던 그가 이상할 정도로 오래 입 다물고 서 있자 나는 도리어 불안해졌다. 프랑켄슈타인이 뭔가 알고 있고, 그게 내게 전하기 힘든 거란 말인가.
그 부자연스러운 침묵의 원인은 금방 밝혀졌다.
"이런 말씀 드리는 게 무례하단 건 압니다만, 당신은 제가 아는 한 가장 겁 없는 사람입니다."
"놀랐네. 자네는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칭찬이 아니니까요. 입에 담는 데도 거부감이 없죠."
말이나 못하면, 나는 속으로만 말했다.
"그리고, 사람을 사귀는 데도 그리 돌아가시는 편이 아니리라 믿습니다."
"다른 사람보단 그렇지."
"그런데 왜 직접 묻지 않는 겁니까, 저보다는 박사님께 편한 상대 아닙니까?"
나는 느닷없는 말에 이해하려 애썼다.
한참이 걸려도 머리에선 아우성만 돌아왔다. 그렇게 홀로 착란하자, 프랑켄슈타인은 지겹다는 듯이 머릴 털고 방에서 나갔다.
"저와는 무관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일단 말해두자면, 저도 전혀 모릅니다."
그러면 왜, 나는 턱 끝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일부러 그랬다기보단 그가 먼저 나가 버려서 기회를 놓쳤다는 쪽에 가까웠다. 학술회에 저토록 협력하는 그가 정작 아서의 계획에는 무관심하다니, 이상한 말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에 물어도 괜찮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 홀로 심사숙고했다. 좀 전부터 내 안에서 불쾌한 가능성이 맴돌이 치고 있었다.
그 감각이 심히 불쾌하여, 나는 감히 문장화하려는 시도조차 망설였다. 하지만 사고가 진척되어 가면서, 필연적으로 그조차 낱말로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아서의 계획을 위해, 행동해 왔다. 모든 사건 끝에는, 그가 하는 일은, 진척... 그리고, 오라클. 아서는 숫자 외에 인쇄지의 다른 문장에 대해서는 모른다며 발뺌했다.
진짜 그래?
내가 아는 한, 그는 어학에 한해서는 천재에 가까웠다. 그런 그가 원대한 계획을 가졌으면서, 자기 발밑에 있는 수수께끼를 수십 년째 방치하고 있다?
그간 나의 행동 방침에 아서 입김이 많이 닿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무언가 해낼 때마다, 일어날 때마다 오라클의 계시는 착실하게 다음 숫자를 내놓았다.
오라클이 정말로 멸망을 암시한다면, 아서는 대체 뭘 하는 거야?
그 추측과 연관이 있는지는 몰라도, 이튿날 나는 고열로 앓아누웠다.
나는 끝까지 필요 없다 했는데 기어코 부른 왕진 의사는 아니나 다를까 건성으로 촉진만 적당히 하고는 피로가 쌓였다며 무성의한 진단을 내놓았다.
"더는 젊지 않으시니까요."
마리는 밉살스럽게 그 말에 동조했다.
"순 돌팔이였어."
"그래도 약은 드셔야죠."
"돌팔이가 지은 약을 뭘 믿고 먹겠나?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하루만 자고 나면 말끔히 나을 거야."
"어쩜 이렇게 고집이 강하신지."
그녀는 가득 채운 주전자를 머리맡에 두고 나갔다. 꽉 닫히지 않은 문 사이로 마리와 도로시의 대화가 들렸다.
"주인님 죽어?"
"허튼 소리하지 말고, 주인님 주무셔야니까 오늘 하루는 겨울잠 자는 곰처럼 조용히 굴어."
"그러면 나가서 놀아도 돼?"
"... ... ."
"... ... ."
제 언니 오빠가 하는 거면 뭐든지 따라 하는 도로시는 나쁜 영향을 받았는지 떼 쓰는 일이 빈번해졌다. 둘이 말다툼하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나는 낮게 심호흡했다.
한편, 마리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복도에서 재차 쿵쿵대는 소리가 들리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잠들지도, 깨어 있지도 못했다.
열이 오르고, 호흡이 가팔라졌다. 한낮의 온기가 전신에 퍼지며 식은땀으로 몸이 축축했다. 이러다간 기절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억지로 사고를 뻗어 나갔다.
그날 나는 명왕성에 있었다. 보거나 꿈꾼 것이 아니라, 아주 짧은 찰나였으나 분명 나는 거기 있었다. 그리 생각하는 근거도 있었다.
아무 걱정도 없는 그 평화롭던 나날. 노스탤지어. 거울. 플라밍고와 보낸 여름. 심장. 석탄 냄새. 검은 태양과 소방수와 기관장. 파란 장미. 내 키의 열 배는 되는 스톤헨지... 이것들은 나의 꿈이 아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나자, 침대 곁에는 한 무리 인파가 서 있었다. 투명한 사람들이었다. 잘 보니 먼지구름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 이름을 차례대로 불렀다.
"아서."
커튼 틈새로 비친 햇빛을 받아 화사한 먼지구름이 아서 프랑크의 모습으로 화했다. 그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귀 기울이자 진짜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때는 기원전 470년, 거인의 아버지가 절명하고 자식은 두 패로 갈라 추한 쪽은 지저로, 고운 쪽은 천상으로 올라서 올림푸스 산턱에 터 잡으니, 이내 사람은 나고 사하는 이유도 모른 채 모래에서 먼지로 오가기를 반복하는 신탁의 시대가 열렸다. 델포이 신탁에 테베의 라이오스 왕이 젖조차 떼지 못한 제 자식을 어찌 대했는지 봐."
환각은 다짜고짜 무슨 뜻인지 모를 헛소리를 늘어놨다. 그건 정말 아서처럼 말했다.
"언어는 본질을 흐려, 필레몬. 언어를 믿지 마."
"그만."
나는 마른 입으로 애원했다.
"너의 부름 때문에, 내가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젊지 않아. 이런 일들을 할 만큼 건강하지도 않아."
"1895년."
아서는 말했다.
"첫 편지를 받고 3년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는지 봐. 너는 아주 잘해주고 있어."
그가 허공에다 손을 허우적대자, 그 기류를 타고 먼지가 시시각각 만화경처럼 다채로운 형상이 되었다.
"아일랜드 대기근, 2차례의 런던 대화재, 고아 학살... 왕립 학회의 대학살 음모를 저지하고, 숨은 역사 이면의 학살자 여왕을 처리했지. 네 덕분에 수백만 명이 목숨을 구했어."
"그리고, 올바른 역사로 돌아갈 가능성이 영영 닫히고 말았지."
"언덕 위 대학에서 지난 200년간 학생을 도축하며, 모든 사람의 눈을 가리며 암약해온 망령의 광기 또한 멈췄지. 인류는 진정 홀로 나아갈 기회를 받은 거야."
"어쩌면 그게 유일한 길이었는지도."
실내는 차츰 어둑해졌다. 방 밖의 소란은 더욱 커졌다.
단지 복도를 뛰 다니는 것만으로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차라리 커다란 인쇄기가 돌아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위인들의 탄생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원래는 다른 시간, 다른 시대에서 살았어야 하는 이들이 19세기의 끝으로 수렴하고 있는 거야. 그 의미를 상상해본 적이 있어?"
"네 계획은 뭐야?"
나는 물었다.
"대체 그 썩어가는 저택에서 뭘 꾸미고 있는 거야?"
아서는 답하지 않았다.
"너는 잘해주고 있어. 모든 일이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대신 그답지 않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달랬다.
"잔인한 사람."
또 다른 먼지구름 한 덩이가 그리운 금발 짐승의 형상을 띄었다.
"그 사람을 믿지 마세요."
"앨리스."
"그는 분노하고 있어요."
"무엇에?"
앨리스는 답하지 않았다.
"저는 그자의 계획을 알아요."
그녀는 말했다.
"살해, 그는 살해하려 해요."
"누구를?"
이번에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앨리스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금발이 샹들리에 유리 세공처럼 반짝였다.
"절 위해서 그를 죽여줘요."
나는 답하려고 했지만, 입이 말라서 숨쉬기도 벅찼다. 가까스로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어 그녈 불렀다.
"가까이."
앨리스는 고분고분 다가왔다.
그녀가 내민 귀에 나는 속삭였다.
"꺼져, 에드워드."
소녀는 배를 잡으며 깔깔 웃었다. 구두를 또각또각 거리며 뒷걸음질쳐서, 햇빛 아래로 들어가고 다시 보니 역시 그냥 먼지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