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이갈이
1898년 6월 24일, 금요일.
시위대가 길을 막고 있어 크게 돌아가야 했다.
아침부터 도시 곳곳에는 불만 품은 군중이 속속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계기는 피터 윌슨 사건이었지만,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전날 밤에 일어났다.
괴물 출현으로 불안해진 시민들이 해명을 촉구하며 스코틀랜드 야드 앞까지 향했다가 무력 진압당한 것이다. 일은 곧장 기사화되었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런던에서 벌어지는 대부분 일이 그렇듯이 이번 소동도 자연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시기 자체가 워낙 절묘하기도 했고, 시위대는 민중 자발적인 단체치고는 조직적이었다. 경찰에 의해 해산했다가도 금방 다른 장소에서 규합했다.
그들 배후에 모종의 정치 세력이 개입했으리란 추측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 정체까지 대번에 알아챘다.
작년 말, 국회 의사당에서는 올드코트 대학 붕괴 사건이 촉발한 정쟁, 소위 '백장미 전쟁'은 나날이 격해지기만 했다. 전쟁이란 별명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한 번 불붙은 정쟁은 점차 악랄해져 모략, 흑색선전 따위는 기본이고, 결투 명목으로 공개 살인이나 다름없는 짓거리를 빙자했다. 이렇게 진흙탕 싸움이 이어지자, 의원들이 연달아 사퇴, 은퇴, 심지어는 사망자도 대거 속출하여 현재는 서민원 의석 절반이 비어 있는 참상이었다.
아무리 앙숙이라 해도, 양당이 평화에 목말랐다는 건 누구나 알았다. 때마침 나타난 외부의 적은 좋은 핑계가 되었다. 경찰청, 그보다는 등불파의 대두였다.
피터 윌슨이 그 희생양이 되었다.
가뜩이나 위협적이던 등불파의 최근 행보였기에, 양당은 경찰 내부에서 일어난 내분 사건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물어뜯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줄곧 사건의 진위에 의문 품는 것도 그리 별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기사 내용을 되새겼다.
정치적인 맥락을 제하고, 오직 사건 경위만을 나열하면 이러했다.
피해자의 이름은 조셉 그랜담, 경찰 내 직급은 일반 순경으로, 사망 시각은 약 오후 11시 55분.
당시 야간 순찰 중이던 그랜담은 좀도둑 행위를 목격하고 추격을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그는 혼자였고,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각은 사망 5분 전이었다.
정황상 피터 윌슨이 이 과정에 합류한 듯했다.
어째서 그가 거깄었는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그는 형사 신분으로 범인 체포에 협력했을 테고, 실제로 어렵지 않게 구속했다.
그때 사건이 일어났다.
그랜담은 범인 구속을 위해 몸을 숙였고, 그 자세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머리에 탄환이 박혀 즉사했다. 총성은 한 번 울렸고, 윌슨은 정확히 그랜담의 머리를 조준하여 사격하였으니 명백한 살인이었다.
동기는 불분명했다. 둘뿐인 목격자, 신원 미상의 잡범은 곧장 사건 현장에서 달아나서 여태껏 누군지 밝혀지지 않았다. 윌슨과의 관계 역시 알려진 바가 없었다.
또 한 명의 목격자는 기자였다. 그는 기삿거리를 찾아 거리를 배회하다, 처음에는 그랜담과 도둑의 추격전을 보고 따라왔다가 우연히 사건과 마주한 것이었다.
현장은 어두웠고,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지만, 총성을 듣고 반사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것이 바로 신문에 실린 사진이었다.
기자는 이 시점에 윌슨이 당황했거나, 이미 짐승처럼 이성을 잃었으리라 주장하며 두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하나는 그가 대놓고 사진을 찍어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점을 두고 그랬다.
확실히 사진 속 윌슨의 모습은 나조차 처음 보는 것이었다.
평소 감추려고 애쓴 붕대가 풀어져 드러난 맨살, 뺨과 목, 그리고 손목에는 하얀 균열이 나 있었다. 상이 흔들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이상성 만은 누구라도 알 법했다.
밝히건대 나는 본문을 믿지 않았다.
윌슨이라는 청년은 고지식하면서도 정의로운 면이 있어, 이유 없이 무고한 사람을 해칠 사람이 아니었다. 하물며 같은 경찰 동료라면 더욱이.
때마침 주변에 사진기를 든 기자가 있었다는 것도 작위적이었다. 어쩌면 그는 아주 까다로운 덫에 걸린 걸지도 몰랐다. 내가 여태 그를 찾고 다니는 이유도 보호하고, 진실을 추적하기 위함이지 결코 체포를 위한 게 아니었다.
반면, 페터는 다르게 주장했다.
그는 윌슨이 괴물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변했기에, 종래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탈피했기에, 내가 아는 바와 달리 행동하는 게 당연하다고도 했다.
나는 그게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란 걸 알았다.
변화는 무자비하다. 특히나, 우리 같은 인종에게는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불안한 것은 내 속내였다. 나는 그저 안전을 증명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윌슨이 변하지 않았으며, 어둠 속에 숨은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한편, 다른 증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줄리엣이 몇 번 찾아왔어요."
제니는 말했다.
"몰랐죠? 애들한테 관심도 좀 가지고 하세요."
"걔가 자네한테 왜?"
그녀는 물끄러미 날 바라봤다. 그녀는 날 책망하고 있었다. 나는 수줍어졌다.
"신문, 봤어요."
"그러면 내가 여깄는 이유도 알 테지."
나는 제니가 약지에 낀 골무 반지를 눈치챘다. 그녀 역시 내 시선을 눈치챘다. 아무래도 삶에 변화가 있던 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아무것도 몰라요. 사건에 대한 거라면요."
"그밖에 아무거나 좋아. 최근 그가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했거나, 무언가 심중의 변화라든가, 뭐든지."
"피터가 남한테 자기 고민을 떠벌거리는 모습이 상상 돼요?"
피터, 그녀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그도 그렇군."
나는 순순히 납득했다. 잠시간 괴로운 적막이 흘렀다. 침묵 끝에 제니는 정정했다.
"거짓말이에요. 그와는 많은 얘길 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봐요, 영감님. 사람은 바뀌어요. 그 고지식하고, 꽉 막힌 형사님이 여자 품에 안겨서 우는 소리 하기도 한다고요."
"잠깐, 그 말은 자네하고, 그하고...."
제니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이 먹고 남녀 일에 참견하는 건 꼴불견이에요."
"하지만, 자네는 혼인한 몸 아닌가."
"이미 예전 일이에요."
그녀는 길게 말했다.
"아무리 강렬해도, 뜨거워도, 결국에는 식기 마련이더라고요. 저보다 배는 오래 산 영감님을 세워두고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습지만,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사람은 다들 바뀌죠. 대신, 그는... 그 정도가 남들보다 심했어요.
이빨이 늘어날 때마다 한 걸음, 한 걸음... 인간에서 멀어졌어요. 몸도, 마음도. 지금 찾으시는 게 누군가요? 대화재 때 절 구한 멋진 형사님? 아니면 그보다 전의 순진하고 무고한 피터 윌슨 순경?
찾을 수록 괴로울 뿐이에요. 그런 사람은 이제 없어요. 우리는 그저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뿐이에요. 그것도 일종의 변화겠죠."
나는 그때 알았다.
"나는 자네가 좀 더 당찰 줄 알았어."
"봐요, 영감님. 사람은 바뀐댔잖아요."
사람 중에는 우는 법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걸, 그리고 어떤 미소에서는 바닷내음이 나기도 한다는 걸.
"그는 사람을 죽였어요. 그런 그가 지금도 제가 아는 피터와 같은 사람일까요? 저는 알고 싶지 않아요."
기대했던 제니에게서도 수확은 없었다.
이쯤에서 깨달았지만, 윌슨 주변의 인간관계는 아주 협소했다. 그렇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었다.
표현하자면 수축이라 할 만했다. 우화를 준비하는 곤충이 몸을 웅크리는 것처럼, 그는 천천히, 그러면서 일정하게 관계를 좁혀 나갔다. 그중 제니가 마지막이었을 뿐이다.
가뜩이나 딱딱하던 성격이 이때껏의 사건으로 더 폐쇄 지향으로 바뀐 탓이리라. 그 고립에 나는 적잖은 지분을 가진 듯하여 죄악감을 느꼈다.
수색은 다시 원점이었다.
1898년 6월 26일, 일요일.
혼란은 연일 격해졌다. 시위대는 '경찰은 괴물 집단' '해명 요구' '폭력 진압 반대'와 같은 문구를 연호하며 행진했다.
이틀간의 예고대로, 시내 각지의 시위 단체는 스코틀랜드 야드로 동시에 진격했다. 집회 자체를 저지해야 할 경찰은 모두 경찰청 앞에 집합했고, 웰링턴 병영은 침묵했다. 시위대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거리를 점거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끝내 브라이언 영 서장이 시위대 앞에 나섰다.
그가 연단에 서자, 언제 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가 되었다. 살벌한 기류 속에 영 서장은 첫 말을 꺼냈다.
"지난 1년, 시내 범죄율은 삼분지 일로 급감했습니다."
사건에 대해 무언가 해명하리라는 모두의 예상이 깨졌고, 시위대 쪽에서는 야유 세례가 쏟아졌다.
이때 영 서장은 여러모로 대중 연설에 익숙하지 않은 티가 났다.
그는 소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대신 발언을 이어나갔고, 때문에 앞열에서도 아주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만 간신히 뒤 내용을 들었다.
나는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그가 뭔가 말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다만 그가 말한 내용 자체는 추후 전문 기사로 실려 알고 있었다.
영 서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런던에는 범죄가 들끓고 있습니다. 개편을 반복하여 경찰 조직은 현재 더 없이 효율화되었으며, 우수한 개개인은 밤낮없이 헌신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악행을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투자의 부족입니까? 런던은 범죄 대책에만 매년 1억 6천만 파운드를 붓고 있습니다. 이는 시 예산의 10%나 되는 거금입니다. 이는 세계 어느 도시보다 큰 비용입니다. 그럼에도 전망은 어둡기만 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개인이 기관총을 가지게 되는 날을 말입니다. 한 사람의 일탈로만 수십, 수백 명이 죽고 다치게 될 겁니다. 범죄율이란 허상의 지표입니다. 원천 차단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실패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 자리에서 선언합니다. 우리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지고 있습니다. 전황은 암울합니다. 우린 아주 이른 시일 내로 패배하고 말 겁니다."
영의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야유와 악다구니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는 결코 뛰어난 연설가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호소에는 그 자체로 사람을 엄숙하게 만드는 힘이 담겼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나는 현장에서 제법 떨어져 있었지만, 이 뒷부분은 똑똑하게 내 귀로 들을 수 있었다. 그만큼 대중은 조용히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남은 길은 둘입니다. 예정된 패배를 담담히 받아들이거나, 이제라도 방법을 바꾸거나. 제게는 계획이 있습니다. 저는 범죄 자체가 가진 실체를 압니다.
런던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에는 공범자가 있습니다. 여태껏 그자는 법망 바깥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가 결백을 주장했으나, 저는 이 자리에서 그를 고발하려 합니다."
그때였다.
갑자기 경찰 하나가 연단 위로 뛰어들었다. 바닥으로 쓰러진 서장의 몸에서는 붉은 핏물이 흘렀다. 그제야 시민들은 눈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암살이었다.
"침착, 침착히!"
누군가 외쳤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시위대가 와해하듯이 흩어지며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쓰러져 다치는 사람이 속출했고, 혼란을 틈타서 남의 물건에 손대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비명이 머릴 헤집었다.
암살자는 군중 속에 섞여 도주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를 보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추격했다. 오히려 북새통이 달리지 못하는 내게 유리했다.
그는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좁은 골목을 파고들었고, 나는 곧바로 따라 들어갔다.
"거기 서!"
나는 권총을 뽑아들며 외쳤다.
"여러 번 경고하지 않겠네. 손을 들고, 천천히 몸을 돌려."
까득, 까득.
골목 밖에서의 소란에도, 괴한 쪽에서 선명한 소음이 이어졌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등 돌린 채 서 있을 뿐이었다.
"윌슨?"
그제야 그가 천천히 고개 돌렸다.
숨기지 않은 옆 얼굴이 비치기 시작했다. 뺨부터 목까지 길게 이어진 균열에는 하얀 이빨이 맞부딪히며 까득, 까득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네."
내가 뭐라 더 하기 전에 총소리가 났다.
뒤편이었다. 나는 몸에 밴 습관으로 곧장 포복했다. 날 향해 쏜 게 아니었다. 윌슨의 코트가 붉게 젖기 시작했다.
"자, 잠깐!"
"쫓아!"
윌슨이 달아나기 시작하고, 엎드린 내 옆으로 세 명의 경찰이 문자 그대로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쫓았다. 마지막까지 그에게서는 까득, 까득거리는 이 가는 소리만 들려왔다.
끝끝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안에 무수한 의문이 마구 떠올랐다. 그중 유독 대답을 촉구하는 질문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었나?
자신 있게 입 벌린 나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윌슨이 총 맞는 순간에도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나는 그저 분한 마음에 이를 갈았다.
까득, 까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