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82.후일을 기약하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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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명하가 협곡으로 떨어졌다. 이제는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남궁연은 절망했다. 금명하의 허망한 결말에 자신은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중요할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울부짖는 것뿐이었다. 그 사실은 자신을 더욱 더 무력하게 만들 뿐이었다.
총채주는 남궁연의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이 정도라면 과연 스승이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분노할지 기대가 되었다.
총채주가 바닥에 앉아 무기력하게 있는 남궁연 앞에 쭈그려 앉았다.
“말코 놈에게 똑바로 전해라. 네놈의 제자는 온 몸을 부숴 협곡에 버렸으니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말이다.”
남궁연에게서 아무런 대답도, 대답을 할 낌새도 보이지 않으니 총채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곽두야, 가자.”
“예.”
남궁연은 총채주가 떠나는 것에는 관심도 주지 않은 채, 그저 금명하가 떨어진 협곡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 * * * *
방천은 도와주러 온 이와 함께 도망치려 대화를 이었다.
“네가 여기는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따라왔지.”
방천을 도와주러 온 이는 양헌. 방천과 함께 수련을 받았던 친구였다.
“아니, 그걸 어찌 감으로 안다는 거야?”
“그냥 감일 뿐이다. 그리고 그 감은 정답이 되었지.”
방천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고작 감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이곳까지 찾아온 것을 누가 실행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그저 감으로 치부해버리고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네 덕분에 살 수 있었다. 솔직히 절망적인 상황이라 욕 보이지 않고, 스스로 목굼이라도 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멍청한 짓일 뿐이지. 때로는 안 될 것을 알아도 멈추지 않아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그렇겠지. 그보다 이쪽으로 가면 안 된다.”
“그건 무슨 소리야?”
“명하가 반대쪽으로 도망쳤다.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지만 총채주는 알 수 없는 자다.
그러니 돌아가야 돼.”
기껏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금명하를 살리려 했는데 그게 실패한다면 희생이 의미가 없다. 그러니 방천은 금명하와 빨리 합류를 해야만 했다.
“반대쪽이라면 저 멀리로 돌아가야 할 거다. 가자.”
원래라면 마을에서 합류하는 게 가장 안전하지만 방천이 억지를 부려서라도 갈 게 뻔하니 양헌은 방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방천도 그걸 모를 리는 없으니 제안을 수락했다.
방천이 돌고, 돌아 협곡을 마주하고, 협곡을 따라 가다 보니 남궁연과 쓰러져 있는 음소도를 찾을 수 있었다.
방천은 남궁연이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는 가까이 다가갔다.
“무슨 일 있었느냐?”
남궁연은 대답하지 않고 금명하가 떨어진 협곡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에 방천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명하가 없다···’
두 명이 보이지만 금명하가 보이질 않고, 남궁연이 협곡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방천이 망설임 없이 협곡을 뛰어내리려는 것을 양헌이 막았다.
“저기는 너라도 빠져나올 수 없다!!!”
“알고 있다. 그래도 가야 돼. 명하가 기다리고 있다.”
명하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남궁연이 비틀비틀 일어났다.
“명하는···이제 없어요···”
남궁연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방천이 묻는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남궁연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자신도 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금명하의 스승은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총채주는 명하의 온 몸을 부숴 버리고 협곡으로 던졌···”
말을 끝까지 잇지도 못하는 모습에 방천은 남궁연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런···”
금명하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방천은 곧바로 양헌에게 다가갔다.
“나랑 같이 협곡으로 내려가자! 너랑 내가 힘을 합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양헌은 그 말에 답해줄 수 없었다. 협곡은 너무도 깊었고, 방천과 자신이 힘을 합친다 해도 나올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그냥 떨어져도 살기 힘들어 보이는 곳을 온 몸이 부숴진 채로 떨어졌다.
금명하가 살아남았을 가능성은 전무하니 양헌은 가능성도 없는 도박에 목숨을 걸 수 없었다.
양헌이 답하지 않고 침묵하니 방천은 무릎을 꿇었다.
“제발···아직 명하가 살아있다고···”
되도 않는 부탁임에도 방천의 처절함을 본 양헌은 방천을 꾸짖을 수 없었다.
제자가 없는 자신이 그의 마음을 공감할 순 없을 테니 말이다.
“미안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금명하를 찾으러 내려가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사과뿐이었다.
방천도 협곡을 내려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정도로 사리분별을 못하는 자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제자의 시체도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신을 비판하고, 혐오해도 돌아오는 것이 없으니 그저 안 될 일에라도 사정을 해 본 것이었다.
양헌은 방천과 다른 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마을로 향했다.
제자를 잃은 슬픔에 자신을 자책하는 방천, 애정하던 사람을 잃고 모든 감정이 섞여 멍한 남궁연, 큰 충격을 입은 듯 뼈가 으스러지고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음소도.
이 모든 이들이 금명하를 위해 사파의 왕과 겨루었다.
그 결과가 비록 참담하지만 여기서 멈춰 서서는 안 된다. 그도 그럴 게 이들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앉아만 있을 건가?”
양헌의 말에 자책하던 방천과 멍한 남궁연이 멈칫했다.
둘은 멍청하지 않다. 지금의 상황을 판단하지 못할 만큼의 바보가 아니었다.
‘가만히 있는다고 명하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방천과 남궁연이 서로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둘의 방법은 완전히 달랐다.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 잡놈을 잡을 때까지···”
방천은 지금까지 화경의 경지에 만족하고 살았다. 물론, 현경의 경지에 대한 미련은 있었지만 지금에 만족하니 굳이 수련에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방천은 오직 수련에만 매진할 것이고,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총채주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녹림과 함께 그 자를 역사 속에 묻는다···아니, 역사에서도 파낸다···!”
남궁연은 본인의 무력으로 얼마나 걸릴지도 모를 일에 매진하지 않고, 남궁세가를 이용하여 총채주를 죽일 생각이었다.
총채주를 멸하려면 녹림도 함께 멸해야 하니 남궁연은 오늘부터 권력을 얻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서로가 다른 방향이지만 둘의 목표는 완전히 일치했다.
그리고 둘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다.
“검왕께 가야겠네.”
“저에게 힘을 실어주세요.”
방천은 화경의 경지를 깨고 현경이 되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현경의 경지에 있는 남궁연의 아버지, 검왕에게 조언을 구하려는 것이다.
남궁연은 권력을 얻기 위해 무당의 장로 두 명을 세력으로 두기 위함이었다.
세력이라면 남궁세가의 가주인 검왕이 이미 존재하는 남궁연이었지만 세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야 무림맹의 뜻을 정해 정파가 녹림을 칠 수 있도록 만들 테니 말이다.
“아버지에게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대신 저에게 힘을 실어주세요.”
“알았네. 잘 부탁하네.”
양헌도 금명하와 관련이 없지 않았으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나도 자네에게 힘을 실어주지. 하지만 우리 둘만으로는 자네가 하려는 일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
내 지금까지 중원을 돌며 만났던 이들을 소개해주지.”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양헌은 무당에 있지 않고, 중원을 돌며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이들은 모두 선한 사람들이었으니 대부분이 남궁연을 도와줄 것이었다.
“지금 바로 움직이시죠.”
“일단 정비를 하고 가지.”
“그냥 바로 가시는 게···”
“음 노부의 상태가 좋지 않기에 일단 치료를 하고 가야할 성 싶네.”
“아···”
남궁연은 그제서야 음소도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헌은 지금 남궁연이 오로지 복수에만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조언을 해주었다.
“복수는 차갑게 진행해야 하는 거지, 뜨겁게 하는 것이 아닐세. 그러니 마음을 좀 식히게.”
남궁연도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다면 자신은 총채주와 다를 게 없을 테니 남궁연은 숨을 내뱉었다.
속에 있던 나쁜 숨이 밖으로 나가고, 새로운 숨이 폐를 가득 채운다.
남궁연은 가볍게 생각을 정리했다. 양헌의 말로 인해 자신이 너무 한쪽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식이라면 주변을 둘러보질 않을 테니 자신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방식은 주변을 생각 않는 사파나 다를 바 없으니 남궁연은 자신의 방법, 정파의 방법으로 해야 했다.
생각을 끝낸 남궁연이 양헌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뻔했습니다.”
“그런 짓은 사파나 할 법한 방식이지.”
“예, 맞습니다. 저는 오직 정파의 방식으로만 녹림을 지울 겁니다.
그 결과로 총채주에게 알려줄 겁니다. 정파의···명하의···방식은 틀리지 않았다고.”
방천은 그저 남궁연이 대견할 뿐이었다. 자신은 힘이 없어 정파에서 세력을 만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건 남궁연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은은히 제갈에 버금가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저 소문일 뿐이다.
확실히 능력을 보인 적도 없고, 남궁세가외에 세력을 보인 적도 없다.
그렇다 보니 실질적으로 정파에서 힘이 있는 이들에게는 그녀의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다.
남궁연이 정파에서 세력을 일구려면 꽤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남궁세가의 금지옥엽(金枝玉葉)인 남궁연이기에 노력으로 될 일이다.
만약, 어정쩡한 문파였다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정파에서 세력을 일구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일 것이다.
남궁연보다는 그나마 이름이 알려져 있는 방천이나, 양헌이 이름을 알리는 것이 더 빠르겠지만 그들은 무당에서 버려진 취급을 받고 있다.
금명하와 남궁연이 장문인과 협상을 했다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 이 둘이 세력을 일구는 것을 가만 놔둘 리 없다.
상당히 복잡해질 게 뻔하고, 잘못하면 정파가 선한 쪽과 악한 쪽, 둘로 나눠질 수도 있을 정도로 둘이 세력을 일구는 것은 힘든 일이다.
결국 남은 것은 남궁연뿐이니 둘은 남궁연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둘이 할 일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강해지는 것. 둘 모두 화경의 경지이니 현경의 경지를 이루고 다시 총채주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계획과 마음을 다 잡은 방천이 협곡을 바라보았다.
‘이 나이에 다시 수련이라니···스승을 고생시키는구나 못된 제자야···’
마음을 다 잡았다지만 협곡을 바라보는 방천의 눈에는 아직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 * * * *
어두운 동굴이었다.
피워져 있는 모닥불이 아니었더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의 어둠이 드리워져 있는 동굴이었다.
금명하는 그런 곳에서 눈을 떴다.
“살아는 있구나.”
온 몸의 부서지고, 끝이 안 보이는 협곡으로 떨어졌음에도 금명하는 살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구해질 수 있었다.
그를 구한 건 왜소한 체격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떨어지고 있던 금명하를 받아 자신이 살고 있던 거처로 끌고 왔다.
하지만 금명하의 온몸이 너덜너덜하고, 협곡의 바닥에 존재하는 이런 곳에서 치료약이나, 의원이 있을 리 없으니 그저 데려온 게 다다.
노인은 딱히 필사적으로 금명하를 살릴 생각으로 데리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람이 떨어졌고, 그걸 주워 온 것일 뿐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하는가?”
그저 노인은 금명하에게서 바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 데려왔다.
하지만 금명하는 총채주에게 당하며 극심한 고통으로 정신을 놓았다.
정신을 놓음과 동시에 자아를 잃었으니 기억이 남아있을 리 없다.
금명하의 눈동자가 좌우로 약간씩 움직였다. 부정의 표현이었다.
바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니 노인에게 금명하는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너로 하마.”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노인은 금명하의 몸에 손을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