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92.흑도방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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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사내가 몸을 부들대며 천천히 일어난다. 금명하가 온 힘을 다해 날린 주먹도 아니기에 겨우 일어설 수 있는 정신은 남아있었다.
사내는 쉽게 날린 주먹에 자신이 날아간 것을 보고 금명하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자신이 속한 흑도방의 위세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네, 네놈은 누구길래 감히 흑도방의 일원을 건들지? 죽고 싶은 거냐?”
“죽여봐.”
흑도방을 거론했음에도 조금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으며 대답한 금명하에 사내는 당황했다.
“뭐, 뭐라? 그딴 식으로 나오면 흑도방의 형제들이 가만 있지 않을 거다!”
“알았으니까. 뭐든 해보라고.”
“이, 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내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고 뒤로 달아났다.
당연히 금명하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흑도방 어쩌고 하더니 왜 도망가는 거야?”
금명하가 파천마군을 다시 안아 들고는 사내의 뒤를 쫓았다.
사내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그저 얄팍하게 무공을 익혀 범인보다 조금 더 빠른 정도, 그게 다였다.
‘겨우 저런 실력으로 상인을 그렇게 괴롭혔다고?’
사내는 척 보기에도 약해 보인다. 금명하의 기준이 아니라 해도 사내는 형편없었다.
범인과 싸우면 대부분 지지는 않겠지만 덩치 좋고, 힘 좋은 범인한테는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의아함을 담고 금명하는 사내의 뒤를 계속해서 쫓았다.
사내가 발을 멈춘 곳은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사내는 주위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문 안으로 들어갔다.
금명하는 따라 들어가면 들킬 수도 있으니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기감을 넓혀 소리를 극대화했다.
이것만으로도 3층 건물 전체의 소리가 들리니 사내가 무엇을 하는지는 충분히 들릴 것이다.
“주인님, 웬 이상한 놈이 나타나 하던 일을 방해했습니다.”
사내의 말이 들리고 이어서 주인인 듯한 여인의 말인 들려온다.
“흐음? 이상한 놈? 뭐하는 놈인데?”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안순에서는 처음 보는 놈잉었습니다.”
“처음 보는 놈이라···흑도방의 이름을 대기는 했고?”
“예, 흑도방의 이름을 댔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외지인인 것 같습니다.”
“외지인이라···처리하지 뭐.”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방해가 된다고 곧바로 처리한다는 것은 곧, 사람의 목숨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말이었으니.
‘흑도방이 어떤 곳인지는 잘 알았다.’
더 들을 것도 없었다. 금명하는 사내가 들어갔던 건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니 백의(白衣)를 입은 매혹적인 여주인이 금명하를 바라보며 금명하를 바라보며 말한다.
“손님, 지금은 장사를 하지 않으니 나가주세요.”
여주인이 나가 달라 말하고 있는데 사내가 금명하를 가리키며 말한다.
“저, 저 자입니다.”
“호오? 저 남자가?”
여주인은 빠르게 금명하를 훑어봤다. 빼빼한 몸에 헝겊을 겨우 이어 붙인 옷을 입고 있는 데다 며칠을 씻지 않았는지 거무칙칙하다.
‘개방도 아니고, 그냥 거지네.’
개방의 일원들은 감추려 해도 무공을 익혔다는 티가 나게 되어 있지만 금명하에게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럴 그럴 게 금명하는 현경의 무인이다. 화경의 무인이 와도 무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을 텐데 화경도 못된 이에게 간파 당할 리가 없었다.
여주인은 금명하가 개방의 일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지만 함부로 덤벼들지 않았다.
자신의 부하는 미약하디 미약하지만 무공을 익혔으니 범인에게 질 리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손님? 여기에는 왜 찾아오셨는지요?”
여주인은 금명하의 정체를 모르는 척 말을 걸었다.
하지만 기감을 넓힌 금명하에게는 사내가 금명하의 정체를 말하는 순간이 너무도 잘 들렸다.
“이미 잘 알고 있으면서 왜 묻는 거지?”
“어머, 들으셨나 보네. 헌데 저희가 흑도방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냥 찾아오셨다는 것은 마음의 준비가 되셨다는 건가요?”
그저 떠보기로 던져보는 말이었다. 금명하는 상대의 가벼운 도발에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성장했다.
현경의 경지란 그런 것이다. 어떠한 도발을 건다 해도 금명하를 도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족이나 동료 같은 친한 관계의 사람을 인질로 잡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건 내가 아닌 것 같은데.”
“호오? 무력에 자신이 있으신가 보네요. 절대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말이죠.
여러분 나와서 저 분이 주제를 깨달을 수 있도록 조금만 손 봐주세요.”
여주인의 말에 문 뒤에서 백의를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주르륵 나온다.
금명하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여주인은 금명하가 전혀 당황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금명하에게 뭔가 숨겨둔 수가 있는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금명하의 모습에서 그런 점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고, 자신의 부하는 무공을 미약하게 익혔기에 힘만 좋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반면, 지금 나온 사내들은 그녀가 평범한 살수들이 아니다. 어줍잖게 배운 무공으로는 상대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회를 드리죠. 그냥 나갈 생각은 없나요?”
금명하는 사내들이 나왔음에도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따분했다.
악당이라면 무언가 준비한 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겨우 살수뿐이었으니 말이다.
“준비한 게 이게 다라면 실망인데.”
여주인은 금명하의 말에 심사가 뒤틀렸다.
지금 나온 이들은 웬만한 문파도 하루만에 정리할 정도로 뛰어난 살수들이다.
금명하에게, 금명하 따위에게 저급한 취급을 받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여주인은 최대한 속마음을 숨기며 미소를 유지한 채로 웃으며 말했다.
“호호,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네요. 하지만 이걸로도 충분할 것 같네요.”
말하던 여주인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죽여.”
살수들의 움직임은 상당했다. 금명하가 아니었더라면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로 죽음을 맞이했을 정도렸다.
금명하가 아니었더라면 말이다.
“하아.”
금명하는 파천신공을 운용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신체에 내공을 불어넣어 활발히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고작 그것만으로도 살수를 상대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살수들의 움직임은 다양했다. 단검으로 시작해, 침을 쏘고, 암기를 날리고, 협공을 하는 둥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금명하를 공격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모든 것을 금명하가 여유롭게 극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주인은 금명하가 너무도 여유롭게 부하를 상대하는 것을 보고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실력을 숨긴 고수···?’
여주인의 부하들은 실력이 상당한 만큼 주로 무림인을 암살하는 임무를 맡는다.
헌데 그런 이들이 고작 한 명에게 고전하고 있다.
‘이럴 수는···잠깐만, 저 뒤에 노인은?’
여주인의 생각이 순식간에 금명하의 약점을 찾았다. 그리고 그걸 혼자만 알고 있을 여주인이 아니었다.
“뒤에! 뒤에 노인을 잡아!”
살수들에게 여주인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몇 명이 금명하를 막고, 남은 이들이 노인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그건 금명하를 자극하는 행동일 뿐이었다.
“멈춰!”
금명하의 내공이 자연의 기운을 타고 주변에 퍼졌다. 그것만으로도 살수들의 몸이 멈췄다.
지금 움직여서는 죽게 된다는 것을 자연의 기운이 살수들의 본능에 전하는 것이었다.
살수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걸 보며 여주인은 마음이 답답해졌다.
“뭐하는 거야! 빨리 움직여!”
그녀의 명령에 살수들은 몸이 움직일 뻔한 것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지금 상황에는 습관보다 본능이 우선이었던 덕에 목숨을 구한 것이다.
금명하가 천천히 걸어 여주인의 앞으로 이동했다.
여주인은 금명하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저 한 걸음씩 천천히 걸음을 옮길 뿐인데 감당할 수 없는 것, 거대한 태산이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금명하의 정체도, 무위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나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여주인의 재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재능이 상당하다 해서 금명하의 발이 멈출 일은 없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금명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았다.
여주인은 그 모습에 오히려 더 공포를 느꼈다.
다리가 풀리고, 오금이 저린다. 그녀는 이제야 자신이 어떠한 사람을 건드렸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제, 제송함미다···”
달달 떨리며 하는 말은 발음이 똑바로 되지도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저 공포에 바들바들 떨고만 있으니 금명하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딱
금명하가 손가락을 튕기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압도적인 중압감이 풀리며 살수들도 다리가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금명하는 쭈그려 앉아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정말 흑도방이냐?”
“아, 아닙니다!”
“하? 그건 또 뭔 소리야.”
“아, 그게 저희가 흑도방은 맞지만, 흑도방이 아닙니다. 아, 맞긴 한데 아니고, 근데 맞는데···”
여주인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횡설수설하고 있다.
금명하는 고개를 저으며 여주인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정신을 차리는 것을 도왔다.
따듯하고, 푸근한 기운에 여주인은 금세 기운을 차렸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됐고, 무슨 말인지나 제대로 들어보지.”
“아, 예.”
여주인이 숨을 크게 한번 내뱉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흑도방은 원래 저희의 이름입니다. 저희는 살수 집단으로 흑도방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왔습니다.
좀 높은 사람들에게는 알 사람은 아는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웬 놈들이 흑도방의 이름으로 사파의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지금의 흑도방입니다. 저희는 감히 흑도방의 이름을 사칭하여 더러운 짓이나 하는 놈들에게 본 때를 보여주러 왔습니다.”
여주인의 말을 정리하면 대충 사칭범들을 잡으러 왔다는 것이다.
헌데 여주인의 말에는 한 가지 모순이 있었다.
“헌데 살수 집단이라면서 왜 백의를 입는 거지?”
살수는 들키지 않는 게 중요하다. 눈에 안 띄어야 하고, 무언가를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되니 흑의(黑衣)를 입어 자국을 나타내지 않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여주인은 물론 부하들까지 모두 백의를 입고 있었다.
“그건 흑도방에 전해 내려오는 방칙으로 백의에 조금의 피도 묻히지 않는다는 자부심입니다.”
여주인은 말하면서도 자신이 하는 말이 창피했다.
지금까지는 그게 진실이라 믿었고, 그걸 실현해왔지만 그런 믿음을 간단히 깨부술 수 있는 자가 눈앞에 있으니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됐고, 사칭범들과 너희의 차이는?”
그 말에 여주인은 여기서 말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굴리는 짧은 시간에도 금명하가 눈치챌 수 있으니 곧바로 입을 열어야만 했다.
“그 놈들은 온갖 더러운 일들은 다 한다고 보면 됩니다.
여기 안순의 모든 이들이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입고 있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 아닌가?”
금명하는 안순에 오자마자 여주인의 부하가 상인을 짓밟으며 폭행하는 것을 보고 쫓아왔다.
그것만 보면 백의를 입은 흑도방도 별 다를 바 없었다.
“대협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해십니다. 저희가 괴롭히는 상인은 흑도방을 불러내기 위해 저희쪽에서 위장한 인력입니다.”
“하지만 상인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는데.”
“저희 흑도방에는 무공을 배운 살수만이 있는 게 아닙니다.
혹시라도 대협께서 보신 것처럼 간파 당할 수도 있으니 범인도 준비해 뒀습니다.”
여주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계획에 꼬인 것이 가짜 흑도방이 아닌, 자신이라는 말이 된다.
‘엄한 사람들을 두들겨 팬 입장이 됐네.’
금명하가 내공을 두른 채로 적당히 싸웠다지만 그것만으로도 살수들에게는 죽을 만큼 위험한 싸움이었다.
‘아니, 살수들한테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가? 사람을 죽이는 놈들이니까···’
사람을 죽이는 놈은 나쁘다고 생각하려는 금명하에게 자신도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그래. 직업이니 어쩔 수 없겠지.’
자신까지 나쁜 놈이 될 순 없으니 흑도방을 착한 쪽으로 치부했다.
그렇게 되면 금명하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생겼다.
“일을 도와주마.”
“예? 무엇을···”
“흑도방. 내가 지워주마.”
골칫거리를 치워준다는 말이었지만 여주인에게는 다르게 해석되었다.
‘아니, 우리를 왜 지워···미친 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