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94.십이 마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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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은 부하들에게 노인의 호위를 맡겨 두고, 금명하를 쫓아다니며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가 잔뜩 모인 적을 단번에 처리하는 것을 보며 밑에 들어가길 잘했다 생각했다.
저런 무위라면 중원을 손아귀에 쥐는 게 꿈이 아닐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저 분이 만들 문파에는 쟁쟁한 사람들이 잔뜩 들어올 테니까 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여주인은 빠르게 몸을 움직여 흑도방에서 가장 커다란 건물로 향했다.
“어디 있을 텐데···”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어느 조직이던 가지고 있는 비밀 창고였다.
비밀 창고는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숨기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곳은 지하뿐이다.
여주인은 이래 보여도 초절정의 무위를 갖추고 있다. 바닥을 부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그녀가 내공을 모아 진각을 밟으려는 찰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녀는 살수 조직, 현 무명의 수장이다. 주위를 확인하는 것은 기본인데 뒤를 잡혔다. 그건 곧, 그녀보다 강한 살수이거나, 뛰어난 고수임을 뜻했다.
“저···누구신지···?”
여주인의 말에 중년의 사내가 의아하단 듯이 쳐다보며 답했다.
“여기를 뒤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 조사를 했다는 건데 내 얼굴도 모르는 건가?”
사내의 말로 유추해보면 보나마나 흑도방의 수장일 게 뻔하지만 그녀는 이미 수장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정체를 모르니 여주인은 짐짓 모르는 척을 했다.
“저는 아무도 없길래 돈이 되는 물품을···”
여주인은 통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혹시라는 생각으로 거짓말을 해보았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됐고, 여기를 조사한 이유는?”
사내는 이미 그녀의 의도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남은 방법은 둘 중 하나뿐이다.
‘도망이냐, 싸움이냐···’
여주인은 조직의 수장을 할 정도로 지혜로웠기에 결정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내가 서 있는 반대편 창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콰직
여기는 1층이다. 창문으로 뛰었으니 곧바로 바닥을 구르며 도망칠 작정이었는데 몸이 떨어지질 않았다.
“하하, 거 되게 빠르시네.”
사내는 여주인의 옷을 잡아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잡아 둔 상태였다.
여주인은 빠르게 옷을 버리고 빠져나갈 생각이었지만 사내가 여주인을 안으로 던지는 게 더 빨랐다.
-쿠당탕
고작 잡아 던진 것 정도로 착지하지 못할 그녀가 아니었지만 사내의 던지는 힘은 그녀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
도망치는 게 불가능하다면 남은 방법은 또다시 둘 중 하나다.
‘투항이냐, 싸우냐···’
그에 대한 답을 결정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상대해주마!!!”
일부러 크게 외치며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적을 만났음을 금명하에게 알렸다.
금명하와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지만 분명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정도 수준의 고수가 합류하면 충분할 거야···난 그때까지만 버틴다.’
무력으로 버틸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녀는 자랑인 입담으로 시간을 끌 예정이었다.
헌데 처음부터 그녀의 행동의 의도를 대부분 맞혔던 사내에게 그녀의 입담이 통할 리 만무했다.
“목소리를 일부러 크게 낸 걸 보면 동료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난 그걸 기다려 줄 생각이 없거든.”
-쿠웅
사내가 진각을 밟아 여주인이 밟고 있는 바닥을 부쉈다. 그와 함께 바닥이 무너지며 지하 공간이 드러났다.
그녀의 예상이 적중했던 것이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감당 못할 적이 눈앞에 있으니 말이다.
-척
여주인은 아까처럼 볼썽사납게 나가떨어지지 않고, 초절정의 무인답게 완벽하게 착지했다.
그녀는 착지와 동시에 주변의 지형을 살피며 이용할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척
사내가 내려온 것을 보고 여주인은 곧바로 싸울 태세를 갖췄다.
‘최대한 시간을 번다···’
그녀의 품속에는 갖가지 암기들이 들어있다. 무위의 차이가 상당히 나는 것을 보면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녀는 그저 상대가 당황하게 만드는 것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있다.
‘그 정도면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 테니까.’
여주인은 먼저 오감 중 하나인 시야를 가리기 위해 연막을 터트리려 했다.
하지만···
‘없다···!’
몸을 아무리 더듬어도 연막은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 다른 암기들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이걸 찾는 건가?”
사내의 손에서 암기들이 쏟아진다. 모두 그녀의 것이었다.
여주인은 그걸 보자마자 자신이 잡혔을 때, 빼앗겼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다면···’
-탓!
여주인이 사내를 향해 달렸다.
“그건 안 좋은 선택인데···”
무력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달려든다는 것은 무언가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사내는 여주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니 그저 경계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사내의 경계가 무색하게도 여주인은 육탄전을 벌였다.
다리, 주먹 등이 교차하며 날아오지만 사내에게 통할 리 없었다.
“한심하네.”
사내가 주먹을 뻗었다. 분명히 빠른 주먹이었지만, 여주인에게는 너무도 천천히 보였다.
빠르고도, 느린 주먹이었지만 여주인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퍽
주먹에 맞은 여주인은 벽까지 튕겨 나갔다. 죽일 생각으로 뻗은 주먹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죽일 생각이었다면 여주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먹과 벽에 부딪힌 충격으로 몸을 못 가누는 여주인에게로 사내가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온 사내가 여주인을 향해 말한다.
“이렇게까지나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는 걸 보면 동료가 소리를 못 들었나 본데.”
-퉤
여주인은 침을 뱉어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런 걸 숨겨 둘 줄은···”
여주인이 뱉은 것은 침뿐만이 아니었다. 항상 최후의 최후를 대비해 입 속에 고이 모셔 둔 독을 묻혀 둔 침이었다.
입 속에 넣어 두기 위해 몇 달을 고생했으니 지금까지 숨기는 것 정도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쾅!
사내는 내공을 담은 주먹으로 신경질적으로 여주인의 배를 내리쳤다.
“끄윽···!”
벽에 부딪혀 몸을 못 가누던 것은 연기였지만 지금은 진심이었다.
여주인은 충격이 가시기 전까지 움직이는 것은 물론, 침을 뱉는 행위도 하지 못할 것이다.
사내가 쏟아낸 암기 중에서 약으로 보이는 것을 들어 향을 맡고, 만져본 후에 입에 넣었다.
“살수들은 항상 해독제를 가지고 다니기 마련이지.”
이제 약도 먹었고, 여인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니 사내가 지하에 숨겨둔 것을 가져가려 하는데 위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뭐하냐?”
위를 쳐다보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확실히 들렸다.
사내가 위쪽을 경계하는데 뒤쪽에서 손가락이 뻗어져 나와 사내의 볼을 찌른다.
“얍.”
-팡
뒤를 향해 발을 걷어참과 동시에 뒤로 뛴 사내가 적을 확인했다.
자신의 발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그 순간적인 발차기를 피했다는 것은 자신보다 고수를 뜻했다.
“누구냐.”
“나? 금명···나는 화왕이다.”
순간적으로 이름을 밝히려다가 이제는 별호를 알려야 하니 화왕을 언급했다.
별호에 왕이라는 글자는 누구나 달 수 있다. 하지만 자신보다 고수가 왕을 사용한다면 그건 엄청난 고수를 뜻했다.
‘어중이떠중이들의 왕과는 다르니까.’
어중이떠중이 무인들은 그저 왕을 동경하기에 혼자 별호에 왕을 집어넣어 부르나, 자신보다 고수라면 다른 사람들이 왕이라 인정한 것이다.
잘하면 사내는 오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긴장했다.
“화왕은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야, 그렇겠지. 오늘 지었으니까.”
오늘 지었다는 것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채, 혼자서 왕이라는 별호를 넣은 것이다.
그렇다 해서 적이 어중이떠중이가 되는 건 아니다. 그 실력은 진짜였으니 말이다.
“관련이 없다면 꺼져지 그래.”
“관련이 없지는 않은데···그보다 넌 누군데.”
“답할 이유는 없지.”
“허.”
금명하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기껏 답을 해줬는데 사내는 답할 이유가 없다 하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난 대답해줬잖아.”
“그렇다고 내가 답할 이유는 없지.”
“어이없는 놈이네. 뭐, 됐어. 족치다 보면 알아서 불 테니까.”
그 말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모를 수가 없었다. 사내는 바닥에 떨어진 암기를 들어 금명하에게 달렸다.
암기의 사용법 정도는 충분히 꿰고 있고, 약을 찾기 위해 암기를 모두 확인했으니 사용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사내는 가장 먼저 연막을 터트렸다. 오감 중 하나인 시야를 가리기 위함이었다.
“뭐야?”
금명하는 갑작스럽게 터진 연막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연막은 태어나서 처음보는 것이니 말이다.
그 사이 사내는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은···후각.’
붉은 색의 구슬을 터트리니 매운 내가 진동을 한다.
“에취! 에취!”
현경의 무인인 금명하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감각이 예민하고, 그건 후각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재채기를 하고 있는 금명하의 뒤쪽으로 단검을 던져 뒤쪽에 자신이 있다고 착각하게끔 만든 사내가 앞으로 뛰었다.
시각, 후각, 청각을 모두 이용하였으니 사내가 움직이는 것을 금명하가 알아챌 수 있을 리 없었다.
금명하가 기감을 펼쳐 두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파천신권(破天神拳).”
하늘을 향해 파천신권을 쏘아 연기를 하늘로 날려보냄과 동시에 사내가 저 뒤로 밀려났다.
사내는 방금의 무공만으로 금명하가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내는 멍청하지 않았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상대할 수 없는 적에게 덤비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뭐든 다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굳이 대답을 해주겠다는데 금명하가 굳이 사내를 죽이거나, 때려 눕힐 필요는 없었다.
“그럼 잠시 대기.”
“예.”
금명하가 아직 누운 상태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여주인에게로 다가갔다.
“움직일 수 있나?”
“끄으으으···조금 정도는 가능합니다.”
말하는 것만 들어도 못 움직일 것 같기에 금명하는 부축을 해주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그보다 저 놈한테 궁금한 것들 물어봐.”
여주인은 제대로 상황을 둘러볼 상황이 아닌지라 그저 금명하의 말을 들었다.
“여기는 무엇을 위해 있는 겁니까?”
“녹림의 인명부를 보관해두는 곳.”
녹림의 인명부. 그것은 고작 말단 산적이 아닌, 녹림의 진짜 실세들이 적혀 있는 인명부일 게 뻔했다.
“그렇다면 흑도방은 녹림과 무슨 관계인 겁니까?”
“흑도방은 녹림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빼앗은 돈을 현물화하는 통로로 사용되는 곳이지.”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은 다른 데에도 있습니까?”
“두 곳 정도 더 있지만 규모는 이곳이 제일 크고, 녹림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말은 곧, 흑도방은 녹림에서 꽤나 중요한 곳이라는 소리다.
“그럼 당신의 직책은 뭡니까?”
“녹림의 십이마군 중 하나인 십이 마군이다.”
여주인이 흠칫 놀랐다. 십이마군이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고, 거기다 십이 마군이라면 끝에 있지만 그 권위는 녹림에서 절대적이니 말이다.
“시, 십이 마군···악!”
여주인이 놀라고 있는데 금명하의 손에 의해 점점 압박되던 팔이 이제는 참기 힘들 정도로 꽉 쥐어져 있었다.
“대, 대협···!”
여주인의 목소리에 금명하가 손을 놓고 십이 마군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복수할 상대인 총채주의 밑에 있는 십이 마군을 본 것만으로도 총채주에 대한 분노가 솟아오른다.
금명하가 분노하니 자연도 함께 분노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기운이 떨리고, 기운이 밀도가 급격하게 상승한다.
금명하는 간신히 화를 참으며 여주인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묻질 않았네. 이름이 뭐야.”
“비, 비령입니다.”
“그래, 비령. 미안하지만 건물을 부수지 않겠다는 약속은 못 지킬 것 같다.”
금명하가 허공섭물로 비령을 띄워 지상으로 올려 보냈다.
“여기서 최대한 멀어져.”
금명하는 비령을 부축하며 기운을 운용해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 덕분에 비령은 달릴 수 있는 정도는 되었으니 곧바로 달렸다.
비령이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것을 느낀 금명하가 십이 마군에게 말했다.
“너는 총채주가 아니지만 억울해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 목표는 사파를 지워버리는 거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금명하의 분노가, 현경의 무인의 분노가 터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