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95.녹림 총순찰 우휘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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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밀도,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의 기운이 지하를 가득 메운다.
현경의 무인이 분노하는 것만으로도 대기가 진동한다.
십이 마군, 우휘는 분노한 금명하를 보며 상황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저런 본 적도 없는 놈한테 화를 산 적은 없는데···’
우휘가 아무리 매사에 장난이더라도 때를 구분하니 누군가에게 이 정도의 원한을 사는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번거롭게 됐구만.’
하지만 우휘는 현경의 무인이 분노한 것을 그저 번거로운 일로 치부해버렸다.
쉽진 않지만 해결할 방도는 있다는 것이다.
“어이! 뭣 때문에 화가 난지는 모르겠지만 화 좀 푸는 게 어때? 그러다 매몰되겠는데 말이야.”
금명하는 듣지 않았다. 우휘가 무얼 말하든 금명하는 우휘라는 인간을 죽일 생각이었다.
“파천신검(破天神劍).”
금명하가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 그으니 자연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검이 아래로 찍어졌다.
-쿵
그 충격에 뿌옇게 먼지가 우휘를 뒤덮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우휘를 죽일 수 없었다.
우휘는 먼지 속을 빠져나와 금명하에게로 달려갔다.
그의 손에는 비령에게서 빼앗은 암기들이 들려 있었다.
‘침은 던져 봤자 호신강기에 막힐 테니···’
우휘가 선택한 것은 작은 구슬이었다. 호신강기로도 독연은 막을 수 없을 테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우휘가 구슬 2개를 던졌다. 구슬은 당연히 금명하의 호신강기에 막힌 채로 터졌다.
-펑
앞에서 독연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금명하에게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웬만한 독은 자신의 몸에 침범조차 하지 못하니 금명하는 독연을 무시하고, 공격을 하기로 한 것이다.
“파천기공탄(破天氣功彈).”
-퓽퓽퓽
독연 속에서 기운의 탄환들이 쏘아져 나갔다.
우휘가 피한다고 피했지만 자신만을 노리는 탄환에다가 그 수가 10개가 넘어가니 모두 피해낼 수는 없었다.
오른쪽 뺨과 어깨를 스치고, 배와 왼쪽 팔다리에 구멍이 뚫렸다.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였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우휘는 슬슬 금명하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기 이제 진짜 그만하지? 아니면 이유라도 알려주던가!”
이유도 모른 채, 금명하 같은 고수와 싸울 이유는 없다. 그것도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는 상대와는 말이다.
이유를 알려달라는 우휘의 말에 금명하가 답해주었다.
“네놈들의 수장인 총채주가 죽을 만한 짓을 했다.”
“그럼 나는 상관없는 거잖아!”
“수장의 잘못은 부하의 잘못이다. 게다가 사파 따위는 존재할 가치도 없는 단체다.”
금명하의 확고한 태도에 우휘로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지금 멈추지 않는다면 나도 더 이상은 안 참는다.”
“참지 마라.”
참지 말라는 말에 우휘의 뱀과 같이 가느다랗던 실눈이 반쯤 뜨였다.
피하고 다니다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으니 이제 제대로 하려는 것이다.
우휘는 금명하처럼 막대한 기운을 뿜어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주위로 기운을 펼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이제야 좀 움직이기 편하네.”
지금까지는 금명하의 기운 때문에 움직임에 제한을 받아왔지만 이제는 방금 같은 기운의 탄환도 여유롭게 피할 수 있다.
우휘가 품속에서 두 개의 칼을 꺼내 역수로 잡아 들었다.
장검이라기에는 짧고, 단검이라기에는 긴 칼은 한 방향의 날만 갈려 있어 도(刀)라고 부르는 게 맞아 보였다.
우휘가 특이한 도를 꺼내 들었음에도 금명하는 신경쓰지 않았다.
“파천기공탄.”
다시 여러 개의 작은 탄환들이 생겨나 우휘를 향해 쏘아졌다.
-퓽퓽퓽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아가는 탄환들은 정확하게 우휘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아아
탄환들이 순식간에 소멸했다. 금명하조차도 겨우 따라잡을 속도로 우휘가 베어내버린 것이다.
“이래도 계속 할 거야?”
금명하가 대답이 없으니 우휘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귀찮게시리. 그럼 이제 제대로 간다.”
우휘가 한 발을 내딛은 채로 도를 쥔 양 손을 앞으로 뻗었다.
“최대한 발버둥쳐라.”
현경의 무인을 향한 우휘의 사냥이 시작됐다.
-팟
움직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일순간에 금명하를 베며 지나친 우휘의 도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금명하가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며 비하지 않았다면 금명하는 치명상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금명하는 우휘의 진짜 실력을 보고는 더 이상의 공격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천신공의 초식 중 가장 빠른 게 파천기공탄인데 우휘가 여유롭게 베어냈으니 다른 초식들은 맞추지 못할 게 뻔하다.
하지만 아직 금명하에게 방법은 남아있었다. 게다가 이런 좁은 공간에 아주 제격인 방법이 말이다.
금명하가 분노로 터트렸던 기운을 자신에게로 압축했다. 그와 함께 주변 일대의 자연의 기운 자체가 사라졌다.
금명하는 압축한 기운에 자신의 기운을 집어넣어 주위로 펼쳤다.
“파천공(破天功).”
파천신공의 마지막 초식, 파천공이었다.
파천공을 펼친 순간 우휘가 금명하에게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 이 지하의 지배자는 금명하였으니 말이다.
우휘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금명하가 빨아들였다 내보낸 기운은 전과 같이 그저 밀도만 높을 뿐이니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전의 기운은 자연의 기운이었고, 지금의 기운은 금명하의 기운이 섞인 자연의 기운이다.
파천공이 유지되는 이 지하에서만큼은 금명하가 자연의 기운을 조종할 수 있었고, 그건 곧 파천공 속에서의 금명하는 신과 다름없다는 이야기였다.
우휘가 다시 튀어 나가기 위한 자세를 잡았다. 곧바로 뛰려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그에 대한 금명하의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너에게 움직임을 허락치 않았다.”
실로 간단한 금명하의 대답이었지만 겪어본 적 없는 무공에 우휘로서는 금명하의 말이 거짓으로 들렸다.
‘무슨 꼼수를 부린 건진 모르겠지만 탈출한다.’
우휘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내공이 더욱 진해졌다.
파천공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주변을 가득 메운 기운 때문에 자신이 못 움직일 거라 예측하고 하는 행동이었다.
우휘가 하는 행동은 정답이었다. 파천공을 깨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더욱 높은 밀도로 밀어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무기술도, 체술도 아닌, 기운을 통해 현경이 된 금명하는 그 누구보다 기운을 잘 다뤘다.
그러니 우휘가 아무리 애를 써도 파천공을 밀어낼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에 우휘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금명하가 파천공을 유지하지 못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런 사기적인 무공을 오래 유지할 수는 없을 게 분명하다. 난 그저 그 전까지 살아있기만 하면 돼.’
정확한 유추였다. 파천공은 현경에 올랐음에도 부담스러운 초식이었다.
하지만 고작 한 명을 상대하는 지금, 파천공은 오직 한 명을 향해 쏟아지고 있으니 금명하는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너에게 서 있는 것을 허락치 않았다.”
-쿵
우휘의 무릎이 꿇려졌다. 이걸로 우휘는 금명하가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에 더불어 금명하는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만약, 금명하가 자신을 죽일 작정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오래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우휘는 금명하가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 판단했지만 금명하의 내심은 달랐다.
‘저 놈을 어떻게 죽이지···?’
죽이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저 어떻게 해야 총채주가 열이 받을지를 고민하는 것일 뿐이다.
그저 죽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십이 마군을 죽이는 것으로 총채주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분노를, 고통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금명하는 십이 마군과 총채주가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도, 총채주가 얼마나 관심을 두는지도 알지 못하니 쉽게 무언가를 할 수가 없었다.
‘인질로 잡느냐, 지금 죽여서 총채주의 분노를 유발하느냐···어느 곳을 고른담···’
금명하가 고민하고 있을 때,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애송아, 뭐하냐?”
파천마군은 파천신공이 펼쳐졌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곳으로 왔다.
헌데 금명하가 파천공을 사용하고서도 가만히 있으니 말을 건 것이다.
“어찌할지 고민중입니다.”
“뭐를?”
“총채주를 화나게 만드려면 이 놈을 죽여야 할지, 고문을 할지, 인질로 삼을지를 말입니다.”
그 말로 인해 파천마군은 금명하가 상대하고 있는 자가 녹림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헌데···
“네놈은 우휘가 아니냐?”
파천마군이 우휘를 알고 있었다. 금명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파천마군에게 물었다.
“이 놈을 아십니까?”
“내가 활동했던 때부터 녹림에 있던 놈인데 아직도 녹림에서 활동하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죽이지 말아요?”
“그냥 얼굴만 몇 번 봤을 뿐이다. 죽여도 상관없다.”
파천마군의 말에 우휘가 당황했다.
“아니, 파천마군님, 오랜만에 봤는데 그게 무슨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저희의 인연은 하늘과 땅이···”
“네놈이 나를 영입하려다 개처럼 처맞고 도망쳤던 인연이지.”
“크윽···”
날렵하게 생긴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우휘는 지금 시대의 사람이 아니다.
일백 년 전까지는 아니었지만 몇 십년전부터 활동하고 있는 이였다.
그는 사파에서 자신의 세력을 모으는 와중에 단신으로 무림을 벌벌 떨게 만들던 파천마군을 영입하려 했다.
자신의 말주변이라면 충분히 영입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파천마군은 이미 금의위라는 뱀의 혀에 현혹되어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았다.
우휘는 파천마군의 말대로 개처럼 맞고 도망을 쳤었다.
그 시절부터 활동을 했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어떤 때는 십이마군으로, 어떤 때는 십이마군을 감시하는 총순찰로, 또 어떤 때는 한낱 산적으로 직업을 바꾸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오며 처음에 녹림의 총채주가 되어 천하를 뒤바꾼다는 열정은 퇴색되어 이제는 그저 재미있게 살 뿐이었다.
헌데 파천마군을 보고, 파천마군의 제자로 보이는 듯한 청년을 만났다.
그의 인생에 딱 두 번 있는 패배를 스승과 제자에게 모두 겪었으니 사람이라면 짜증이 날만 하지만 우휘는 달랐다.
우휘는 그저 이 상황이 재밌었다.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기분. 어쩌면 이 따분한 중원이 파천마군 때처럼 떠들썩하게 바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왕 들킨 거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총채주도 저의 무위를 모두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총순찰로 두고 제가 허튼 짓을 하지 못하게끔 지켜만 볼 뿐이죠.
지금까지는 그나마 총채주가 무림을 시끄럽게 만들 것 같아 도왔지만 제자 분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으니 돕겠습니다.”
우휘는 녹림에 딱히 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익힌 무공이 사파의 것이고, 사파가 행동하기 편하기에 있을 뿐이다.
총채주보다 금명하가 더욱 재미있어 보이니 금명하를 돕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금명하를 조종하여 천하를 시끄럽게 만들고 싶었다. 자신의 손아귀에서 판을 만들고 싶었다.
파천마군은 우휘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니 판단을 금명하에게 맡겼다.
금명하는 잠시간 곰니하더니 파천공을 풀어주었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휘는 말주변이 좋다.
금명하를 꼬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총채주의 약점과 분노할 만한 행동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금명하가 총채주에게 복수하겠다는 것은 이미 들었다. 그러니 약점과 분노할 만한 행동이면 금명하는 당연히 넘어올 것이다.
“총채주의 약점은 자신이 최강이라 생각하고, 우직하다는 점입니다.
싫어할 만한 행동은 그 옆에 항상 붙어 다니는 일 마군 조곽두, 그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럼 그 놈을 데려와.”
조곽두는 항상 총채주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를 데려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무력으로 데려온다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우휘는 자신이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닌, 금명하를 사용하고 싶었다.
“조곽두는 항상 총채주의 옆에 있기에 데려오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그래?”
“예.”
“쓸모 없네.”
쓸모 없다는 말.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 천하를 뒤흔들 장기말이 자신을 모욕하니 그것만큼 열이 뻗치는 일도 없었다.
열이 뻗친 우휘가 이를 악물며 웃었다.
“하하, 좋습니다. 제가 조곽두를 데려오죠.”
금명하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지만, 왠지 모르게 그 말이 자신을 장기말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자신은 그런 사실을 몰랐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