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강진은 한 건물 앞에 서 있었 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작은 이 층 건물이었다.
“여기입니다.”
옆에 서 있는 신수호의 말에 강 진이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어제 신수호와 만난 강진은 다 음 날 그와 함께 유산이라는 건 물을 보러 온 것이다.
그것 때문에 오늘 노가다 아르 바이트를 못 가지만 상관없었다.
논현…… 한국에서 땅값 비싸기 로 유명한 강남에 속하는 곳이 다. 그런 곳의 이층 건물이 자신 의 것이 된다는데, 노가다 아르 바이트 따위야.
건물 1층은 식당이 자리해 있었 고 2층은 사람이 사는 주거 공간 이었다.
건물을 보던 강진이 주위를 둘 러보았다.
도로 바로 앞, 길가에 위치해 있는 건물…… 작고 낡기는 했지 만 가까운 곳에 논현역까지 있 다.
게다가 바로 앞에는 횡단보도까 지 있으니 사람들이 길 건너기 전에 한 번은 이곳에 설 테고 말 이다.
건물을 멍하니 보던 강진이 물 었다.
“여기 시세는 어떻게 됩니까?”
“대략 25억 정도 합니다.”
“25•••••• 억?”
억 소리가 나는 금액에 강진의 얼굴이 밝아졌다.
‘대박…… 나에게 이런 행운이!’
환하게 웃으며 건물을 보는 강 진에게 신수호가 말했다.
“들어가시죠.”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손에 들린 열쇠를 보았다. 그리 고 굳게 닫혀 있는 일층 문을 열 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충은 식당이었다.
“일층은 식당이고 이층은 주거 공간입니다.”
신수호가 식당을 보여주고는 식 당 한쪽에 있는 계단을 보여주었 다.
“이곳을 통해 이층으로 올라갈 수 있고, 밖에 있는 출입구를 통 해서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 층으로 올라가시죠.”
신수호가 강진을 데리고 식당 한쪽에 있는 계단을 통해 이충으
로 올라갔다.
이층에는 가정집이 있었다. 조 금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괜찮았 다.
‘방 세 개에 주방 하나. 좋네.’
낡은 가구들이기는 해도 팔 년 동안 산 고시원에 비할 바가 아 니었다.
고시원에 비하면 이곳은 궁궐이 었다. 일단 두 다리를 쫘악 펴고 잘 수 있는 자신의 집이니 말이 다.
강진이 집을 구경하는 동안 신 수호가 거실에 있는 탁자에 서류 들을 내려놓았다.
“집 다 보셨으면 이리 오시죠.”
강진이 탁자 앞에 앉자 신수호 가 서류를 꺼내 놓으며 말했다.
“김복래 여사님께서 이강진 씨 에게 남긴 유산은 논현동에 위치 한 이층 건물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 강 진이 신수호를 보았다.
“명의 이전 같은 것도 변호사님 이 해 주시는 겁니까?”
“제가 해 드립니다. 하지만..
정식 명의 이전은 오 년 후입니 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오 년 후? 무슨 말이죠? 유산 을 받았으면 제 것 아닙니까?”
“이강진 씨의 것이 맞습니다. 다만…… 김복래 여사님께서 유 산 상속에 대한 한 가지 조건을
달았습니다.”
“조건?”
“오 년 동안 일층에 있는 식당 을 운영해야 합니다.”
“식당 운영?”
“그렇습니다. 김복래 여사님께 서는 이강진 씨가 오 년 동안 식 당을 운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명의 이전은 오 년 후에 제가 처 리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요리도 잘 하지 못하는 자신이 무슨 식당을 운영한단 말인가?
“그리고 이건 운영할 때 지키셔 야 할 사항입니다.”
변호사가 종이를 하나 내밀자 강진이 급히 그것을 보았다.
〈식당 운영 규칙
1.저녁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는 식당 문을 열어야 한다.
2.쉬는 날은 매주 일요일이다.
3.돈이 없는 자가 와도 쫓아내 지 않는다.
4.음식 가격은 손님이 주는 대 로 받는다.〉
변호사가 내민 종이를 본 강진 이 멍하니 있다가 그를 보았다.
“저기…… 이게 뭡니까?”
“식당 영업 규칙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말을 하던 강진이 잠시 변호사
를 보았다.
‘변호사가 헛짓할 이유는 없는 데……
이게 장난인가 싶다가도 변호사 가 왜 자신에게 이런 장난을 치 나 싶은 것이다.
그러고는 강진이 물었다.
“정말 이게 영업 규칙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규칙을 어기면 건물은 사회 복지 단체에 기부됩 니다.”
“기부?”
“네.”
변호사의 답에 멍하니 그를 보 던 강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자 세를 바로 하고는 종이를 들었 다.
“무슨 식당을 저녁 11시부터 새 벽 1시까지 운영합니까? 술집도 아니고 이래서 무슨 장사를 해 요? 그리고 3번, 4번은…… 무슨 음식을 손님이 주는 대로 받고, 돈이 없어도 쫓아내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음식점이에요, 무료
급식소지.”
“하기 싫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 다.”
“안 해도 됩니까?”
“사회 복지 단체에 기부를 하면 됩니다.”
변호사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렸다.
‘내가 미쳤어? 25억짜리 건물을 기부를 하게.’
잠시 있던 강진이 한숨을 쉬고
는 입을 열었다.
“이 규칙만 지키면 됩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 년 후에 는 명의 이전되는 거죠?”
“네.”
“그리고 이 규칙대로라면 장사 를 잘할 수 없다는 것은 아시죠? 그리고…… 저 요리도 할 줄 몰 라요.”
요리라고 해 봐야 고시원에서
라면이나 간단한 볶음밥을 해 먹 은 것이 전부다.
“규칙에는 장사를 잘하라는 내 용은 없습니다. 적혀 있는 대로 저녁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 주 6일 영업을 하시면 됩니다.”
“더 해도 되고요?”
“규칙만 지켜 주시면 다른 어떤 것도 강진 씨의 마음입니다.”
스윽!
변호사가 서류를 몇 장 꺼내 내 려놓았다.
“사인하시면 유산을 상속받게 됩니다.”
변호사의 말에 강진이 서류 내 용을 보았다. 유산 상속에 대한 법적 내용과 함께 식당 영업에 대한 조건이 적혀 있었다.
〈식당 영업이 잘 되는지는 변호 사 신수호(神獸虎)의 감찰을 받 는다.
영업 규칙을 3회 어길 시 신수 호는 이강진의 유산 상속권을 박
탈할 수 있다.〉
“상속권 박탈?”
“3회 이상 규칙을 어길 시에는 유산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습니 다.”
“아니……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닙니 까? 제가 사고를 당해서 누워 있 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유산을 박탈한다는 것은 문제 있 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저 아직
학생이에요.”
“매주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아 도 됩니다. 그리고 특별한 사정 이 있으면 저에게 연락하십시오. 대신 가게를 열 사람을 보내 드 리겠습니다.”
“하지만 저 학교 다니려면 아르 바이트도 해야 하는데……
“이강진 씨의 학비는 전액 저희 회사에서 지급합니다.”
“학비도? 그것도 유산에 포함이 된 겁니까?”
“유산은 아닙니다.”
“그럼 왜 학비를?”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 고, 일단 서류를 마저 읽으십시 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다시 서 류를 마저 읽었다.
김복래라는, 누군지도 모르는 멀고 먼 친척 할머니가 그에게 이 건물을 상속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기분 좋은 얼굴로 계약서 를 마저 읽은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하루에 두 시간 영업…… 일단 오 년만 버티자, 오 년이면 이 건물이 내 거야.’
자신이 평생 일을 해도 벌기 어 려운, 아니 못 벌 것이 확실한 거금이다.
그 돈이라면 못 할 것이 없었 다.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서류 두 장에 사인을 했다.
스스슥!
가볍고 명쾌하게 서류에 사인을
하던 강진이 순간 고개를 갸웃거 렸다.
서류에 사인을 마치는 것과 함 께 묘한 기운을 느낀 것이다.
“응?”
이상한 느낌에 강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신경 쓰지 않 고 신수호는 계약서를 한 부는 자신의 가방에 넣고, 한 부는 밀 었다.
“잘 보관하십시오.”
강진이 계약서를 주머니에 넣자
신수호가 명함을 몇 개 꺼내 내 밀었다.
“그리고 이건 영업하실 때 필요 한 가게들입니다.”
〈동해 식자재
사장 신수용〉
〈북악 주류
사장 신수귀〉
〈남문 인테리어
사장 신수조〉
강진이 명함들을 받자 신수호가 말했다.
“필요한 물건들을 말하면 여기 에서 물건들을 대줍니다. 그리고 가게에서 사용하는 물품 대금은 가게가 자리를 잡을 오 년 동안 무료입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오 년 동안 무료? 다 공짜라는 말입니까?”
“가게에서 사용하는 물품들에 한해서 입니다.”
“그런데 왜 공짜로 물건을 대 주시는 겁니까?”
강진의 물음에 신수호가 입을 열었다.
“우리 남매는 김복래 여사님께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분께 서는 이강진 씨가 가게를 운영하 는데 많이 도와달라 하셨습니다.
학비 지원 역시 그에 따른 것입 니다.”
“이 사장님들이 모두 변호사님 형제들이세요?”
“네.”
간단하게 답을 하는 신수호의 모습에 강진이 다시 명함을 보았 다.
‘하긴 이름이 비슷하기는 하네.’
“더 물으실 것 있습니까?”
“여기 원래 일하는 직원은 없습
니까?”
원래 일하던 직원이 있으면 편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다.
“직원은 없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하긴, 장사를 이따위로 하는데 직원 쓸 형편은 아니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그럼 영업은 언제부터 해야 합 니까?”
“오늘부터 입니다.”
“오늘? 오늘요?”
“계약은 이루어졌습니다.”
신수호가 계약서를 들어 보이자 강진이 급히 말했다.
“아니 저도 이사를 하고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필요한데…… 바 로 영업을 하라고 하면……
“저는 계약서 내용대로 할 뿐입
니다.”
“그럼 오늘은 사람 보내주세요. 오늘은 제가……
“이건 특별한 사정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신수호가 열쇠 들을 내려놓았다.
“오늘부터 오 년입니다. 그 럼..
신수호가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서 일어나자 강진이 그를 따라 일어났다.
그러다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제가 영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어떻게 확인하시는 겁 니까? 혹시 감시라도 하는 겁니 까?”
강진의 물음에 신수호가 그를 보았다.
“영업을 안 하시면 제가 알아서 연락을 할 것입니다.”
스윽!
그러고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둣 신수호가 문을 열고 사라졌다.
신수호가 가자 잠시 그 뒷모습 을 보던 강진이 계약서를 꺼내 보았다.
“어쨌든……
스윽!
강진이 집을 둘러보았다.
“오 년 동안은 여기가 내 집이 다.”
오 년 후에 이 집을 팔든 뭘 하 든, 일단 오 년 동안은 월세 걱 정 없는 자신의 집이 생긴 것이 다.
그것만으로도 강진에게는 최고 의 로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