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17살에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 신 후 강진은 친척들의 손에 의 해 보육원에 맡겨졌다.
부모님이 남긴 재산이라고 해 봐야 전셋집 하나였는데…… 그 것도 대출금이 끼어 있던 거라 은행에서 가져가 버리고, 친척들 은 아무 것도 없는 조카를 데려 다 키울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일단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만 보육원에 있으면 데리러 오겠 다는 말을 한 친척들도 있었지 만, 정작 성인이 되는 날엔 아무 도 찾아오지 않았다.
보육원 생활이 나쁜 것도 아니 어서 친척들이 오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 후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아 르바이트를 하며 지금까지 살아 왔다.
그래서 강진은 이 건물을 꼭 자 신의 것으로 삼고 싶었다.
강진은 집을 살피고 있었다. 창 고로 사용하는 것 같은 작은방에 는 선풍기와 잡다한 것들이 있었 다.
그리고 안방에는 작은 침대, 장 롱과 같은 살림살이가 있었다.
방을 보던 강진이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런데 사진 한 장이 없네.”
보통 혼자 사는 집이라도 사진 한 장 걸려 있을 법도 한데, 집
을 살펴도 사진 같은 것은 보이 지 않았다.
“김복래 여사라…… 그런데 나 를 어떻게 알고 건물을 남긴 거 지?”
방을 둘러보던 강진이 서랍들과 장롱을 열어보자, 그 안은 깨끗 이 비워져 있었다.
“유품 정리를 한 건가?”
김복래 여사가 사용하던 가구들 은 있지만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에 집을 여기저기 살피던 강 진이 힐끗 시계를 보았다. 집을 살피다 보니 벌써 두 시였다.
“식당이라……
식당 영업을 할 생각을 하니 갑 갑함이 든 강진이 일단 일층으로 내려왔다.
이 건물을 받으려면 오 년 동안 영업을 해야 하니, 식당이 어떻 게 생겼는지 보려는 것이다.
식당으로 내려온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메뉴판도 없고…… 대체 뭘 파 는 거야?”
보통 식당에 걸려 있는 메뉴판 은 없었다. 그저 식탁과 의자들 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가게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강진 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은 홀과 개방이 되어 있었다.
주방에서 홀이 보이고, 홀에서 도 주방이 보이는 구조였다.
주방이라는 것도 고시원 주방밖 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강진이
다 보니 식당 주방이 생소했다.
“막상 하려니 답답하네.”
식당 운영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고 음식도 해 본 적이 없는 데…… 오 년 동안 식당 운영을 해 보려니 답답했다.
잠시 주방과 가게를 둘러보던 강진이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커다란 식당 냉장고에는 여러 식 자재들이 들어 있었다.
“확실히 김복래 여사님께서 성 격이 깔끔하셨나 보네.”
집을 살폈을 때도 정리가 잘 되 어 있는 것에 그럴 거라 생각을 했는데, 냉장고 안도 보기 좋게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이왕이면 장사도 하고 돈도 벌 면 좋은데……
규칙에 영업을 잘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지만, 이왕이면 돈을 벌면 좋은 일이다.
물론 돈이 없는 자도 쫓아내면 안 되고 음식값도 주는 대로 받 아야 하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돈 많은 동네가 강남이다.
‘그런 곳에 돈도 없이 밥 먹으 러 들어오는 놈들이 있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청소 를 대충 마무리하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뭘 팔아야 하나?”
재료는 넉넉하니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문제는 강진의 음식 솜 씨였다.
자취 경력이 십 년 가까이 되지 만, 고시원에서만 살다 보니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과 계란
프라이 정도뿐이었다.
주방 냉장고 문을 연 강진이 안 을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재료 는 대충 다 있는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뭐 어떻게 되겠지. 고 기도 있고……
중얼거리던 강진이 냉장고 문을 닫고는 주방을 살폈다. 일단 주 방에 뭐가 있는지는 알아야 장사 를 할 것이니 말이다.
“냄비, 프라이팬, 국자……
그릇들을 살피던 강진의 눈에 한쪽에 쌓여 있는 연습장들이 보 였다.
“이건 뭐지?”
연습장을 집어 든 강진이 그것 을 펼쳤다.
〈마늘 볶음밥
재료: 마늘, 식용유, 찬밥
마늘을 잘게 다진 후 식용유에 살짝 볶는다. 마늘 향이 올라오
기 시작하면…….
마늘은 양기가 깃든 음식이라 음기가 많은 자들이 먹으면 따스 함을 느낄 수 있다.〉
연습장을 펼치고 글을 읽을 때 강진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어?’
책의 글씨가 흩어지는 듯하더니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에 강진이 눈을 비볐다.
‘왜 이러지?’
눈을 비비고 다시 연습장을 보 았다. 방금 본 것이 착각인 것처 럼 연습장의 글은 그대로였다.
“내가 정신이 이상해진 모양이 네. 하긴 25억 건물을 유산으로 받았는데 정신이 멀쩡하면 그게 이상한 거지.”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장을 넘 겨 다른 메뉴를 보았다.
〈마늘 돼지고기볶음
재료: 마늘, 돼지고기, 라임
마늘을 잘게 다진 후 식용유 조 금을 넣고 볶는다. 마늘 향이 올 라오면 돼지고기를 볶기 시 작..
라임의 맛이 오랫동안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한 이들의 식감을 돋워 준다.〉
자세하게 그림까지 그려진 레시 피를 본 강진은 또 이상한 현상 을 느꼈다.
다시 글이 흩어지는 것 같이 변 하며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에 다시 눈을 비비고 보니 글 은 여전했다.
“피곤해서 그런가?”
잠시 고개를 흔들어 본 강진이 다른 연습장들을 대충 휘리릭 넘 겼다.
두툼한 연습장에는 모두 요리 레시피들이 적혀 있었다.
“여사님이 만든 요리 노트인가 보네. 이것 보고 하면 되겠어.”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계란 프 라이나 라면 정도인 강진에게는 좋은 레시피였다.
게다가 설명도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에 강진이 마늘과 고기를 꺼 내 요리를 해 보기 시작했다.
처음 해 보는 요리인데도 이상 하게 손이 저절로 가는 느낌이었 다.
‘내가 요리에 재능이 있는 건
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한 번 본 레시피인데도 이상하게 음식 이 잘 만들어졌다.
식칼도 마음대로 움직였다. 그 에 신이 난 강진이 기름에 마늘 을 볶고 마늘 향이 올라오자 거 기에 밥을 넣고는 마저 볶았다.
밥통은 비어 있었지만 다행히 즉석밥이 몇 개 있어서 그것으로 볶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분 안에 마늘 볶음밥
을 만든 강진이 간장을 조금 넣 어 간을 하고는 맛을 보았다.
“맛있네.”
엄청나게 맛있다고 할 수는 없 지만, 맨밥에 마늘만 넣고 한 것 치고는 담백하고 좋았다.
특히 마늘 향이 은은하게 올라 오는 것이 일품이었다. 그에 강 진이 냉장고에서 김치 통을 꺼내 서는 밥 위에 김치를 올렸다.
사각! 사각!
입에 들어간 김치가 아삭하게
씹히며 적절한 신맛이 입안을 촉 촉하게 적셨다.
김치 하나만 올려 먹는데도 너 무 맛이 있었다. 순식간에 마늘 볶음밥을 먹은 강진이 미소를 지 으며 빈 그릇을 보았다.
“레시피 대박.”
강진이 한 거라고는 레시피대로 만든 것뿐인데 이렇게 맛이 있으 니 말이다.
그에 강진이 마늘 돼지고기볶음 을 만들어보았다. 그리고 마늘
돼지고기볶음도 맛이 좋았다.
마늘과 라임이 돼지고기의 기름 진 맛을 상큼하게 만들어 주었 다.
“이렇게만 팔아도 점심 장사 잘 되겠는데.”
마늘 볶음밥에 마늘 돼지고기볶 음을 올려서 팔면 괜찮을 것 같 았다.
음식을 직접 만들고 맛있게 먹 으니 어쩐지 장사가 잘 될 것 같 은 느낌이었다.
배도 부른 강진이 주방을 보다 가 그릇을 싱크대에 올려놓고는 빠르게 설거지를 처리했다.
* * *
저녁 10시에 강진은 영업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음식에 자신감이 붙어서 일찍 장사를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 었다. 어쨌든 팔면 팔수록 다 자 기 돈이 되는 장사이니 말이다.
하지만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일단 고시원에서 짐도 챙겨 와야 하고, 그동안 아르바이트 자리를 챙겨 준 인력 사무소와 작업반장 님들에게 인사도 드려야 하고 말 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바쁘게 다니 다 보니 집에 돌아온 것은 여덟 시였다.
그래서 일단 한숨 자고 10시에 일어나 영업 준비를 하는 것이 다.
“자! 이제 시작해 보자.”
그러고는 강진이 밥솥에 쌀을 씻어 올리고는 재료들을 준비하 기 시작했다.
마늘을 미리 다져 놓고, 고기도 대충 1인분이라 생각되는 만큼 잘라 놓았다.
처음 하는 장사라 일단 오늘 해 본 마늘 볶음밥과 마늘 돼지고기 볶음 두 가지로 나갈 생각이었 다.
재료를 준비하고 청소를 마치고 나자 11시가 다가왔다.
그에 강진이 주방 입구에 의자 를 가져다 놓고 문을 주시했다.
“후우!”
그리고…….
<10:59:59>
<11:00:00>
11시 정각이 되는 것과 함께 문 이 열렸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강진이 몸 을 일으켰다.
문이 열리며 들어온 것은 한복 을 곱게 입은 소녀였다.
‘한복?’
강남에서 한복을 입고 다니는 소녀를 볼 줄은 몰랐다. 그것도 가게를 오픈하고 첫 손님으로 말 이다.
고운 하늘색 한복을 입은 소녀 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강
진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강진의 인사에 소녀가 그를 잠 시 보았다. 그 모습에 강진은 자 기도 모르게 침을 홀릴 뻔했다.
‘복장은 이상해도 아이돌처럼 이쁘네. 역시 강남은 강남이구 나.’
TV에 나오는 아이돌급 미모에 살짝 놀랄 때, 소녀가 말없이 주 방에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소주 가져오게나.”
“네?”
강진의 되물음에 소녀가 그를 보았다.
“못 들었는가? 소주 가져오게 나.”
소녀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 다가 다가갔다.
“손님.”
스윽!
소녀가 자신올 보자 강진이 미 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주민등록증 좀 보여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보기에는 여중생, 많아도 고등 학교 1학년 정도로 보이지만…… 동안일 수도 있으니 일단 주민등 록증 확인을 하려는 것이다.
“주민등록증?”
“워낙 동안이시라 잠시 주민등 록증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습니 다.”
강진의 말에 소녀가 그를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 없네.”
당당한 소녀의 말에 강진이 그 녀를 보다가 웃으며 다시 말했 다.
“주민등록증 안 가져오셨으면 운전면허증이나 다른 신분을 증 명할 것이라도 하나 살짝 보여주 시겠습니까?”
“나는 그런 것 없으니 가서 소 주나 가져오게나.”
“손님, 그런 것이 없다는 말은 발급을 아직 못 받으셨다는 겁니
까?”
“받은 적 없네.”
소녀의 말에 강진의 얼굴에 황 당함이 어렸다.
‘무슨 청소년이 이렇게 당당 해?’
술집에서 술 마시려고 하는 청 소년들은 많이 봤지만…… 이렇 게 당당하게 술을 요구하는 청소 년은 처음이었다.
‘이게 누구 신세 망치려고.’
오늘 첫 영업인데 청소년한테 술을 팔았다가는 영업 정지였다.
‘참자……. 일단 잘 타이르자.’
“손님, 주민등록증이 없으시면 술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어허! 지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것인가. 가서 소주 가져 오게.”
소녀의 말에 강진이 작게 한숨 을 쉬고는 그녀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손님, 소주가 먹고 싶으면 어
느 정도 나이 들게 옷을 차려입 고 오는 성의라도 보이셔야죠. ……이렇게 하고 와서 소주를 달 라고 하면 누가 주겠어.”
강진이 뒤이어 작게 중얼거린 말을 들은 소녀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주겠어? 지금 나에게 하대를 하는 것인가? 네놈이 감히-”
“놈? 감히? 그러는 그쪽은요. 어디 감히 고삐리가 당당하게 들 어와서 소주를 달라고 해.”
강진의 말에 소녀의 얼굴이 굳 어졌다.
“고…… 고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