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7화 (7/1,050)

6화

아침 일찍 강진은 빗자루로 가 게 앞을 쓸고 있었다.

스윽! 스윽!

밤에 사람들이 버리고 간 전단 지와 음료수 병으로 가게 앞은 꽤 더러웠다.

“남의 가게 앞이 쓰레기통도 아 니고……

먹다 남은 음료수병 뚜껑을 열

어 남은 음료를 쏟아 낸 강진이 빈 통들을 봉지에 담았다.

그렇게 청소를 마친 강진이 길 을 걷는 사람들을 보았다. 아침 일곱 시도 안 된 시간이지만 사 람들은 바쁘게 길을 가고 있었 다.

‘다들 바쁘게 사는구나.’

강진 역시 바쁘게 살았다. 보육 원을 나온 후 먹고살기 위해 하 루에 다섯 시간을 자 본 적이 없 다.

일학년 학비야 장학금으로 해결 이 됐지만, 당장 나와서 살 집부 터 구하고 생활비까지 벌어야 하 니 말이다.

대학 일학년 신입생 시절…… 친구들은 술 마시고 놀러 가고 여자 만날 때, 강진은 수업 끝나 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했다.

열심히 살은 걸로 하면 강진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다.

바쁘게 걸어가거나 음악을 들으 며 샌드위치를 먹으며 가는 사람

들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 다.

“열심히 가십쇼.”

그들이 가는 길과 방향은 다 달 라도 길 끝에는 똑같은 목적이 있다.

먹고살기 위한 곳…… 그들이 가는 곳 끝에는, 방법은 달라도 먹고살기 위한 장소가 있었다.

사람들을 보던 강진도 가게 안 으로 들어왔다.

텅 빈 가게 안은 깨끗했다. 딱

히 더러워질 이유도 없었다.

어제 들어온 손님은 첫 번째 여 자 손님 하나, 그리고 두 번째 여자 손님 셋이 전부였으니 말이 다.

가게를 둘러 본 강진이 부엌에 서 요리 연습장을 가지고 나왔 다.

“음식 장사이니 음식 연습부터 하자. 그리고…… 진짜 장사를 하자.”

강진은 저녁 열한 시부터 오전

한 시까지만 장사를 할 생각이 없었다.

월세와 재료비 걱정이 없는데 장사를 안 할 이유가 없다. 한 그릇을 팔면 그 한 그릇이 그대 로 이익이 되니 말이다.

다만…….

‘저녁 장사는 돈 안 받고 판다 해도, 아침에도 돈을 안 받고 팔 아야 하나?,

규칙을 지키면 다른 것은 다 상 관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영업

시간을 더 늘리는 것은 상관이 없다.

하지만 다른 시간에도 돈을 주 는 대로 받아야 하나 하는 의문 이 생기는 것이다.

“일단 그건 신 변호사한테 물어 봐서 하기로 하고…… 일단 요리 부터 연습하자.’’

그러고는 강진이 연습장을 펼쳤 다.

연습장을 주르륵! 살핀 강진이 그중 몇 가지 메뉴를 선택했다.

〈김치찌개〉

〈김치 덮밥〉

〈제육덮밥〉

강진이 선택한 메뉴는 이 세 가 지였다. 강진은 자신이 요리 천 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늘 볶음밥과 마늘 돼지고기볶 음이야 워낙 쉬운 음식이라 예외 라 해야 한다.

게다가 직원 한 명 두지 않고 장사를 할 생각이니 혼자서 음식 만들고 서빙까지 해야 한다.

그럼 최대한 빨리 만들어서 나 갈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이 세 가지 다.

김치찌개는 끓여 놓고 마지막에 한 번 더 끓여 나가면 되고, 덮 밥도 밥 위에 올려주기만 하면 된다.

물론 제대로 하는 식당은 주문

이 들어올 때마다 새로 끓이고 볶고 하겠지만, 강진은 거기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메뉴를 정한 강진이 김치찌개 레시피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진은 또 글이 흩어지 는 것 같은 현상을 느꼈다.

‘어?’

어제는 긴장과 피로 때문일 거 라 생각을 했는데 다시 또 글이 흩어지는 것 같은 현상을 느끼자 강진이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글을 보니 글은 멀 쩡했다.

“왜 이러지?”

눈을 잠시 비빈 강진이 제육덮 밥 메뉴를 보았다. 그리고…….

스르륵! 스르륵!

글들이 다시 흩어지는 것 같은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에 강진이 눈에 힘을 바짝 주며 글 을 읽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고, 두 번 째는 아픈가 싶었다. 그리고 지

금은 정말 나한테 문제가 있는지 확인을 하려는 것이다.

글이 흩어지는 것을 보며 강진 은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일단 내가 보기 전에는 흩어지 지 않네.’

글은 강진이 읽고 난 후에 흩어 지며 사라졌다. 즉 보기 전에는 글자를 형성하고 있고, 보고 난 후에야 글이 흩어지며 사라지는 것이다.

제육덮밥 레시피를 모두 읽은

강진의 눈에는 텅 빈 레시피 종 이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 자 빈 종이에는 다시 글자들이 나타나 있었다.

“이거…… 이상하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주위 를 보다가 한쪽 선반에 있는 라 면을 들었다.

“오양라면……

오양라면의 성분 분석표와 조리 순서를 읽어본 강진이 고개를 갸

웃거렸다.

라면의 글자들은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이건 안 그러네?”

그에 강진이 연습장을 펼치고는 눈에 보이는 요리 레시피를 읽었 다.

〈가지 볶음

가지는 표면이 탱탱하고 꼭지가 촉촉하고 꼭지 부위가 날카로운

것이 좋아…….>

그러자 다시 글이 흩어지는 현 상이 나타났다.

‘이거 뭐지?’

현상을 느끼면서도 강진은 일단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가 지볶음 레시피를 모두 읽은 강진 이 잠시 연습장을 보았다.

언제 글이 흩어졌냐는 듯, 연습 장에는 글이 자리를 하고 있었 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턱을 쓰다 듬었다.

“다른 것은 멀쩡한데…… 왜 연 습장을 볼 때만 이러지?”

그런 생각을 잠시 하던 강진이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부 터 점심 장사를 하려면 음식을 한 번이라도 해 봐야 한다.

냉장고에서 김치와 돼지고기를 꺼낸 강진이 곧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타타탓! 타타탓!

도마에서 움직이는 칼에 따라 재료들이 손질이 되기 시작했다.

탓!

강진이 손을 멈췄다.

잠시 재료 손질을 멈춘 채 강진 이 도마에 손질이 되어 있는 재 료들을 보았다.

도마에는 양파와 파, 그리고 마 늘들이 가지런히 썰려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혼자 산 기간이 많다고는 하지

만, 음식을 하기 힘든 고시원에 서 살았던 강진이라 요리 경험은 없다.

그런데 이 칼질…….

정리된 재료들을 보던 강진이 그릇에 그것들을 스윽 밀어 담았 다.

그러고는 강진이 핸드폰을 꺼내 서는 제육볶음 레시피를 찾았다.

요즘 한창 인기 많은 장 선생 레시피를 찾은 강진이 그 내용을 읽어 보았다.

레시피는 간단했다. 강한 불에 고기를 볶다가 소금과 후추로 간 을 하고 고추장과 설탕, 채소를 넣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라이팬 빈 곳에 간장을 넣어 좀 태운 후 비 비면 끝이었다.

레시피를 읽은 강진이 채소들을 도마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칼 을 들었다.

탁! 탁! 탁!

칼은 느리고 어설프게 움직였

다.

“어라‘?”

방금 전까지는 칼 다루는 것이 이렇게 쉬웠나 싶게 리드미컬하 게 움직이던 칼이, 지금은 더디 고 무뎠다.

파도 써는 것이 아니라 으깨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할까? 아 니…… 확실히 으깨져 있기는 했 다.

옆에 따로 빼놓은 재료들과 확 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지금 썬

파는 모양도, 썰린 면도 형편이 없었다.

그에 강진이 칼을 내려놓고는 도마에 있는 파를 보았다. 같은 재료, 같은 도마, 같은 칼이다.

그런데 칼질만 달라진 것이다.

“아니지…… 달라진 것은……

강진이 옆에 있는 요리 연습장 과 핸드폰을 보았다.

“레시피……

연습장과 핸드폰을 보던 강진이

머리를 긁었다.

“에이! 설마……

생각을 해도 말이 되지 않는 일 이었다.

“무슨, 읽기만 해도 요리를 잘 하는 일이 있을 리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강진은 연습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고 는 연습장을 빠르게 살피다가 하 나에 눈이 갔다.

〈궁중 도라지 잡채〉

요리 이름을 본 강진은 이거다 하는 느낌이 왔다. 잡채라는 음 식은 일단 강진이 좋아하는 음식 이었다.

명절날과 생일이면 엄마가 해 주던 잔치 음식이 바로 잡채였으 니 말이다.

거기에 보통 잡채도 아니고, 이 름도 처음 들어보는 궁중 도라지 잡채…… 이름만 들어도 강진이

시도해 볼 만한 음식이 아니었 다.

그래서 선택을 한 것이다. 믿을 수없는 일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이것도 맛있게 만들 면…… 정말 황당한데.”

믿을 수 없는 일을 믿어야 하나 싶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에 강진이 연습장에 적힌 궁중 도라지 잡채 레시피를 읽기 시작 했다.

스르륵! 스르륵!

그리고 강진의 시선에 따라 글 이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에 놀 라지 않고 강진은 글을 계속 보 았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그런 지 레시피는 꽤 길었다.

그 글을 천천히 완독을 한 강진 이 연습장을 덮었다. 의식을 해 서인지 모르겠지만, 꽤 긴 레시 피인데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 다.

받아쓰기를 하라고 하면 당장 글자 하나도 안 틀리고 똑같이 쓸 수 있을 만큼 말이다.

“후우! 미친 짓이지만…… 일단 해 보자.”

생각과 함께 강진이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잡채는 여러 재료가 필요한 요리 라 꺼내야 할 재료들도 많았다.

하지만 강진의 손은 머뭇거림이 없었다. 어디에 어떤 재료가 있 을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재 료들을 꺼내고 씻으며 준비를 마

쳤다.

“확실히…… 이상해.”

정리가 잘 되어 있다고 해도 음 식점 냉장고다. 그 안에 여러 재 료가 많이 들어 있는데 그걸 바 로바로 찾아 꺼내 놓은 것이다.

이것만 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진짜…… 귀신에 홀린 것 같 네.”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일단 재료를 자르고 다듬 기 시작했다.

타타탓! 타타탓!

당근과 양파를 썰고 파를 썰고, 마늘을 썰고, 도라지를 썰고…… 어쨌든 궁중 도라지 잡채라는 말 에 어울리는 여러 재료들을 썰으 며 강진은 확신을 할 수 있었다.

“미쳐 버리겠네.”

자신이 미친 건지, 연습장이 미 친 건지…… 방금 전까지 파를 으깨던 칼질이 리드미컬하게 움 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왜 이러지 싶을 정

도로, 손질을 한 재료들을 가지 런히 정리까지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빌어서 대 신 요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 강진이 귀신에 홀린 것 같 은 기분을 느끼며 잡채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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