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강진은 주방에 깔려 있는 반찬 통들을 보았다.
콩나물무침, 가지볶음, 우렁 된 장, 겉절이.. 등등 여러 반찬
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모두 연 습장에 적혀 있는 레시피를 보고 만든 것들이었다.
요리를 할까도 해 봤지만, 만들 어서 다 먹지 못할 것 같아서 반 찬들을 만들어 본 것이다.
어차피 요리 연습장이 진짜인지 확인을 하기 위한 연습이니 말이 다.
게다가 반찬은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라도 먹을 수 있고, 손님 들에게 내놓을 수도 있으니 말이 다.
그리고…….
강진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책을 보고 만든 음식들은 모두 맛이 있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인터넷에
있는 레시피를 찾아 만들어 봤었 다.
맛이 없었다. 콩나물무침은 간 단한 음식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보고 만든 콩나물무침은 맛이 없 었다.
즉 요리 연습장에 있는 레시피 를 보고 만들면 맛이 있고, 같은 요리라도 다른 레시피를 보면 맛 이 없었다.
“내가 미친 것은 아니야. 그 냥.. o] 책이 미친 거야.”
연습장을 보던 강진은 이 현실 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 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어렵 게 생각하면 어렵지만, 쉽게 생 각하면 쉬운 일이었다.
“음식 장사를 하는데 요리를 잘 하게 해 주는 책이 있으면 좋은 거지. 나쁜 것이 뭐가 있어? 게 다가…… 내가 훔친 것도 아니고 유산으로 받은 거잖아.”
유산으로 받은 건물 안에 있는 것이니 강진 자신의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반찬 통들을 정리하고는 시계를 보았 다.
<01:43>
“벌써 두 시 되어가네.”
점심부터 장사를 하려고 했는 데, 반찬 만드는 데 재미를 느껴 서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것이다.
시간을 보자 배고픔을 느낀 강 진이 밥통을 열었다. 점심 장사 를 하려고 밥도 미리 해 놓은 것 이다.
물론 정신이 없어서 정작 점심 장사할 시간을 놓치기는 했지만 말이다.
밥을 담은 강진이 반찬들을 그 릇에 조금씩 담아서는 홀에 나가 앉았다.
“맛있다.”
콩나물무침을 집어 입에 넣으며 감탄을 한 강진이 밥을 입에 넣 었다.
밥도 고슬고슬하게 아주 잘 되 었다.
자신이 만든 밥과 반찬으로 점 심을 맛있게 해결한 강진이 주방 을 정리했다.
반찬들을 냉장고에 채워 넣은 그가 가게를 둘러보다가 무슨 생 각이 들었는지 몸을 일으켰다.
“일단 메뉴판은 있어야겠어.”
그에 강진이 가게 문을 닫고는 밖으로 나왔다.
가게를 나온 그는 주변에 있는 ‘다있소’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 고, 은행에서 천 원과 오천 원짜 리를 환전해서 가게로 돌아왔다.
식판 위에 산 물건들을 올려놓 은 강진이 화이트보드에 글을 적 었다.
〈제육덮밥
드시고 마음에 드시면 돈을 내
세요.
내고 싶은 가격대로 카운터 상 자에 넣으시면 됩니다.
진심입니다.
단 소주와 맥주는 4천 원입니 다.〉
메뉴는 간단하게 딱 한 개만 만 들었다. 처음 하는 장사에 무리 를 하기보다는 어떻게 돌아가는 지만 알려고 말이다.
그리고 가격 문제도 일단은 이 렇게 해 놨다. 손님이 주는 대로 받으라고 했으니 이런 식으로 일 단 적어 보는 것이다.
“설마하니 다 공짜로 먹으러 들 어오지는 않겠지.”
그리고 몇 그릇이라도 돈을 받 으면 그게 다 이익이다.
그에 강진이 ‘다있소’에서 사온 아크릴 상자를 카운터 위에 올려 놓았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아크릴
상자를 보던 강진이 오천 원과 만 원짜리를 몇 장 그 안에 집어 넣었다.
길거리 구걸을 하는 사람들도 구걸을 하기 전에 돈을 넣고 시 작한다.
천 원부터 백 원까지 넣어 두는 데, 사람들은 그 구걸통 안에 든 돈을 보고 기준을 잡는다.
백 원에서 천 원까지 넣어도 되 는구나, 하는 기준을 말이다.
거기에 사람들은 처음이라는 것
에 주저함을 가진다. 하지만 구 걸통 안에 돈이 있으면 자기가 처음이 아니니 부담 없이 돈을 넣는 것이다.
물론 남을 도울 수 있는 선함을 가졌다는 기본 조건이 있으면 말 이다.
그래서 강진도 상자 안에 오천 원과 만 원을 넣은 것이다.
마음대로 돈을 내라고 해도 오 천 원짜리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음식값의 기준을 오천 원으로 잡 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걸 여기서 써먹 네.’
심리학을 배우기는 하지만 딱히 써먹어 본 적은 없는데 이렇게 써먹어 보는 것이다.
어쨌든 강진은 아크릴 상자에 손을 넣어 돈들이 바닥에 깔리지 않고 서도록 배치를 했다.
그래야 사람들의 눈에 통 안의 돈들이 잘 보일 테니 말이다.
눈에 잘 보이게 통을 배치한 강 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저녁 장사를 하려면 제육에 양 념을 해 놔야 했다.
오후 다섯 시, 강진은 가게 앞 에 화이트보드를 하나 걸었다.
내용은 같았다. 제육덮밥을 팔 고 있으니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내라고 말이다.
장사를 하는 줄 알아야 사람들
이 들어올 테니 말이다. 화이트 보드를 잘 보이도록 설치를 해 놓은 강진이 문득 주위를 둘러보 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기 왜 안 들어오지?”
가게 안에 불도 켜져 있고 간판 도 있으니, 사람들이 모르고 들 어오는 사람들이 한둘은 있을 법 도 한데…… 하루 종일 가게 안 에 있어도 한 명도 들어오지 않 았다.
그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던
강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벽 쪽 식탁에 반찬통들을 꺼내 놓은 강진이 그 뒤에 다른 화이 트보드를 기대어 놓았다.
〈반찬은 셀프입니다.
드실 수 있는 만큼 더 드세요.〉
밑반찬은 김치, 겉절이, 어묵, 계란말이를 준비했다. 자잘한 반 찬은 빼고 사람들이 젓가락이 갈
만한 것들만을 준비했다.
거기에 제육볶음도 양념에 잘 재워져 있다. 이제 필요한 건…….
“손님만 오면 되네.”
그에 강진이 주방 입구에 등을 기댄 채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 렇게 이십 분쯤 지났을까?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음식 냄새를 좀 풍겨 야겠어.”
그냥 손님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음식 냄새를 풍기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에 강진이 냄새가 나갈 수 있 도록 식당 문을 열어놓고는 프라 이팬 두 개를 불에 올렸다.
프라이팬이 달궈지기 시작하자 강진이 기름을 두르고는 그대로 고기를 올렸다.
촤아악! 촤아악!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라간 고기 가 맛있는 소리를 내며 익어가기
시작했다.
촤아악! 촤아악!
냄새가 퍼지도록 프라이팬을 이 리저리 흔들던 강진의 귀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덜컥!
‘나이스!’
“어서 오세……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열 살이 나 됐을까 싶은 아이였다. 혼자 들어온 아이가 텅 빈 가게 안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아무도 없는 것에 ‘들어가도 되 나? 장사 안 하나? 맛이 없나?’ 하는 복잡한 감정을 순간 느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어서 오세요.”
외침과 함께 강진이 불을 끄고 는 서둘러 홀로 나왔다. 꼬마라 고 해도 손님이다.
강진이 냉장고에서 물통과 컵을
빈 식탁 앞에 놓았다.
“여기 앉으세요.”
나이는 어려도 손님은 손님, 어 젯밤처럼 돈도 없이 싸가지 없는 손님이 아닌 이상 존대는 기본이 다.
강진의 말에 아이가 잠시 머뭇 거리다가 마음을 정한 듯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한쪽에 걸려 있는 화 이트보드를 보고는 말했다.
“제육덮밥 주세요.”
“알겠습니다. 고기 제가 많이 넣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아이가 물을 마시 는 것을 보며 강진이 제육을 마 저 볶았다.
촤아악! 촤아악!
프라이팬을 흔들며 제육을 볶던 강진이 쟁반에 밥을 담다가 홀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밥 많이 드세요?”
“네.”
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 진이 밥을 조금 더 많이 담아서 는 그 위에 제육볶음을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김을 솔솔 뿌린 강진이 그릇을 들고 나왔다.
그릇과 반찬들을 식탁에 올려놓 은 강진이 말했다.
“반찬 모자라시면 저기서 더 가 져다 드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아이가 젓가락으로 제 육을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맛있어요.”
“고맙습니다.”
웃으며 강진이 한쪽으로 가서는 아이가 밥을 편히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일단 개시는 했고……
강진이 문을 주시했다. 문을 주 시하며 다음 손님이 오기를 기다 리던 강진이 슬쩍 아이를 보았 다.
아이는 어느새 제육을 다 먹고, 반찬으로 내놓은 계란말이에 밥 을 먹고 있었다.
‘고기만 골라 먹었네.’
그에 강진이 주방에서 만들던 제육볶음을 더 만들어서는 한 그 릇을 더 가져다 식탁에 올려놓았 다.
“이건 서비스.”
강진이 놓은 제육볶음을 한 젓 가락 크게 떠서 입에 넣고 씹던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주르륵!
“어? 왜 울어?”
강진이 놀라 존대도 잊고 급히 티슈를 꺼내 내밀었다.
“엄마가 해 주던 맛이에요.”
아이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 셨다.
‘엄마가 없는 건가?’
보통 맛있는 것을 먹었다고 해 서, 엄마가 해 주던 맛이라고 울 지는 않는다. 매일 먹는 음식이
니 말이다.
엄마가 해 준 맛에 우는 것 은…… 더 이상 엄마의 맛을 볼 수 없는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강진도 이해하는 마음이었다.
그에 강진이 아이를 보다가 어 깨를 두들겼다.
“형은 계속 여기 있으니까. 언 제든지 먹고 싶으면 와.”
“이제 엄마 보러 가야 돼요.”
엄마를 보러 간다는 말에 강진 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 엄마?”
“형 덕에 제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았어요.”
해맑게 웃던 아이가 의자를 밀 며 일어나서는 강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형, 감사합니다.”
얘가 왜 나한테 감사하다고 그 러나 싶어 의아해하던 강진의 얼 굴이 순간 굳어졌다.
아이가 빛과 함께 사라지기 시 작한 것이다.
화아악!
아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아 니라, 빛이 흘러나오는 것과 함 께 그냥 사라져 버렸다.
“헉!”
깜짝 놀란 강진이 그대로 주저 앉았다.
“뭐야?”
놀란 눈으로 아이가 있던 곳을
보던 강진의 눈에 종이 한 장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스르륵!
종이가 그대로 강진의 손 위에 떨어졌다.
흠칫!
손 위로 떨어지는 종이에 강진 이 시선을 밑으로 향했다.
지급자: JS 금융
1,000,000원 (금백만원정)
이 수표 금액을 소지인에게 지 급하여 주십시오.
발행인: 지장〉
밥 먹던 소년은 사라지고 JS 수 표라는 것이 떨어진 이 상황
“이건…… 대체 뭐야?”
강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