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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10화 (10/1,050)

9화

멍하니 주저앉은 채 강진은 손 에 쥐어진 수표와 식탁을 번갈아 보았다.

식탁 위에는 반찬과 서비스로 준 제육덮밥이 그대로 있었다. 즉…… 눈앞에 아이가 있다가 그 대로 사라진 것이 현실이라는 소 리였다.

놀란 눈으로 수표와 식탁을 번 갈아 보던 강진이 벌떡 일어났

다.

“그래, 여기 이상하다 했어! 그 래, 뭐야! 이거 뭐야!”

고함을 지른 강진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신수호의 번호 를 빠르게 찾은 강진이 버튼을 누르려 했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 린 강진의 눈에 하얀 슈트를 입 은 신수호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 이 보였다.

“저기요!”

강진이 급히 소리를 지르며 다 가오자 신수호가 그를 보다가 식 탁으로 다가가 앉았다.

“앉으시죠.”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일단 자 리에 앉으며 수표를 식탁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이거…… 이거…… 갑자기 애 가 사라지더니 이게 떨어졌어 요.”

약간 횡설수설하는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고개를 숙여 수표를 보 았다.

잠시 수표를 보던 신수호가 강 진을 향해 그것을 밀었다.

“JS 금융에서 현금으로 환전, 혹은 입금을 해 줄 겁니다.”

“아니! 제가 묻는 건 그게 아니 잖아요!”

“참고로 이건 다른 시중 은행에 서는 받지 않습니다. 꼭 JS 금융 에서만 환전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제 말은……

말을 하던 강진이 잠시 숨을 골 랐다. 그러고는 잠시 있다가 입 을 열었다.

“변호사시니 제가 알아듣게 설 명해 주세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강진이 수표를 들어 보이자 신 수호가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 다.

“며칠 적응을 하시고 난 후에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생각 보다 적응을 잘하셨군요.”

“무슨 이야기요?”

“어떤 것이 궁금하십니까?”

“대체 여기 어떤 곳입니까? 어 떻게 된 게 오는 손님들도 다 이 상하고…… 자기가 귀신이라 고……

잠시 말을 멈췄던 강진이 침을 삼켰다. 말을 하다 보니…… 귀 신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이면 모 든 것이 다 말이 되는 것 같았 다.

귀신 붙은 요리 연습장.

귀신 붙은 손님.

귀신 붙은 꼬마.

그런 생각이 든 강진이 신수호 를 보며 말을 끝냈다.

“……하던데……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손님들이 귀신처럼 보였습 니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귀 신은 아닌 겁니까?”

“이 안에서는 아닙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긴, 지금 세상에 귀신이라니 말이 안 되는……

말을 하던 강진이 문득 신수호 를 보았다.

“이…… 안에서는 아니다? 그 럼…… 밖에서는?”

“어제 온 사람…… 아니 존재들 과 방금 승천을 한 아이는 귀신 이 맞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멍 하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 세상에 귀신이 어디 에 있다고 그런 말을 하세요? 무 섭게…… 농담하지 마세요!”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그를 지 그시 보았다. 그리고 그 표정은 절대 농담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럼…… 진짜 귀신?”

“가게 밖에서는 귀신이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면 귀신이 아닙니 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귀 신이면 귀신이지, 가게 안에 들 어왔다고 사람이라도 된다는 겁 니까?”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고, 현 신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의아함과 놀람을 담은 강진을

보며 신수호가 입을 열었다.

“이곳은 귀신이 사람처럼 밥을 먹는 곳입니다.”

“사람처럼?”

“자정 전후…… 저녁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이 두 시간 동안 귀신들은 이곳에서 사람으로 현 신을 할 수 있고, 사람처럼 음식 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한끼식당 은 산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죽 은 이들을 위한 식당입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멍하니

그를 보다가 급히 고개를 저었 다.

“그럼 방금 들어왔던 아이도 귀 신이라는 말인데…… 지금 여섯 시도 안 됐어요.”

강진의 말에 신수호가 식탁에 놓인 제육볶음을 보았다.

“그리움을 맡고 온 귀신입니 다.”

“그리움?”

“귀신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 식 취향이 있습니다. 어제 온 처

녀귀신들 같은 경우는 마늘과 고 추를 좋아하고……

“처녀귀신?”

“어제 온 손님들 말입니다.”

신수호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는 말에 강진은 몸에 소름이 돋았다.

‘처녀•••••• 귀신••••••

꿀꺽!

목울대가 움직이며 침이 크게 삼켜지는 것을 느끼며 강진이 입

을 열었다.

“그…… 어제 온 여자들이 모 두.. 바

“처녀귀신입니다.”

쫘아악!

강진은 머리털이 모두 솟구치는 듯했다.

어제 자신이 미쳤냐고 소리쳤던 여자뿐만 아니라…… 술잔을 나 눈 여자들도 귀신, 그것도 처녀 귀신인 것이다.

부들부들!

몸을 떨어대는 강진의 모습에 신수호가 입을 열었다.

“일단 설명부터 드리겠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몸을 떨 며 그를 보았다.

“정식 영업시간은 저녁 11시부 터 새벽 1시까지입니다. 하지만 가끔 음식 냄새에 취해 들어오는 귀들이 있습니다.”

“음식 냄새?”

“사람은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늘 음식을 먹습니다. 음식은 인 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그 안에는 살아 있을 때의 그리움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는 냄새에 담긴 그리움에 끌려 들어온 것입 니다.”

스윽!

신수호가 탁자에 남아 있는 제 육볶음을 보았다.

“아이는 엄마가 해 주던 제육볶 음의 그리움에 끌려 온 것입니 다.”

“그럼 그 귀신……

말을 하던 강진이 한숨을 쉬었 다. 어느새 귀신들이 온다는 것 을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이 황당 했다.

하지만 눈앞에 이렇게 증거가 있지 않은가.

수표를 잠시 보던 강진이 몸을 일으켰다.

“잠시만요.”

그러고는 강진이 부엌에 들어가 싱크대 물을 틀어서는 그대로 머

리를 들이밀었다.

촤아악! 촤아악!

차가운 냉수가 머리를 식히는 것을 느끼며 강진이 마치 머리를 감는 것처럼 머리를 문질렀다.

촤아악! 촤아악!

물이 튀기며 옷이 젖었지만 강 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 히려 차가운 물에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머리를 이리저리 문지른 강진이 마지막으로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푸화하학!

그렇게 샤워를 하듯이 세수를 한 강진이 물을 잠그고는 옷으로 대충 물기를 닦으며 나왔다.

그 모습에 신수호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머리의 물기를 닦은 강진이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잠시 있던 강진이 입 을 열었다.

일단 제가 들은 것 종합해 보

면…… 여기는 귀신 들린 식당이 라는 거네요.”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귀신 들린 식 당을 오 년 동안 운영해야 이 건 물을 가질 수 있고.”

신수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잠 시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귀신이 저를 죽일…… 수도 있 습니까?”

강진의 물음에 신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 오는 귀신들은 강진 씨 를 보호하면 보호하지, 나쁜 짓 을 하지 않습니다.”

“보호? 저를 지켜준다는 것입니 까?”

“개들도 밥 주는 사람이 해를 당하면 짖는 법입니다.”

귀신과 개를 비교하는 것이 비 유로는 맞지 않아 보였지만, 강 진은 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 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음식 냄새 맡고 오는 귀신들은 시간에 상관없이 들어올 수 있는 겁니까?”

소년 귀신은 영업시간이 아닌데 도 들어왔으니 말이다.

“냄새를 맡았다고 아무나 들어 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까 도 이야기했지만 이강진 씨가 만 드는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 야 올 수 있습니다.”

“그리움이라……

-엄마가 해 주던 맛이에요.

아이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 올린 강진이 잠시 있다가 말했 다.

“그 애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승천했으니 저승의 법도에 따 라 판결을 받게 됩니다.”

“판결요?”

“극락이나 지옥을 가거나, 아니 면 환생을 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어린 아이도 지옥에 갑

니까?”

“죄 있는 자는 지옥, 없는 자는 환생, 착한 일을 한 이는 극락. 저승의 법도에는 나이의 많고 적 음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탁자 위에 있는 수표를 가 리켰다.

“이건 뭡니까?”

“보시는 대로 JS 금융의 수표입 니다.”

“혹시 으가 저승의 약자입니

까?”

“맞습니다.”

JS 금융…… 쉽게 말하면 저승 은행이다.

“저승에도 은행이 있습니까?”

“이승의 은행과 다르기는 하지 만 저승에도 은행은 있습니다.”

“어떤 곳입니까?”

“설명하기 기니…… 그건 강두 치에게 물어보십시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여기는 사람 손님은 안 옵니까?”

강진의 물음에 신수호가 가게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가게에 들어오는 것은 귀신이 지만, 가게가 위치해 있는 곳은 이승입니다. 사람도 당연히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천장을 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신수호를 보

았다.

“결론은 제가 오 년 동안 귀신 손님을 받아야 한다는 거군요.”

말은 길지만 결론은 그것이었 다.

“지금이라도 내키지 않으시면 말씀하십시오. 건물은 안 되더라 도 졸업하시는 동안 생활비와 학 비는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강진이 선선히 하겠다고 할 줄 은 생각 못 한 듯 신수호가 그를 보았다.

“하시겠습니까?”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이 오는 식당이지만 5년만 버티면 25억짜리 건물이 생긴다. 1년에 5억이다.

버티면 된다.

‘귀신이면 뭐…… 무서운 것 빼 면 아무것도 없지.’

생각과 함께 강진이 주먹을 움 켜쥐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움켜쥔 주먹은 떨리고 있었다.

귀신은 무서운 것 빼면 아무것 도 없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귀신은 무서운 것 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서운 귀신에게 앞 으로 오 년 간 음식을 팔아야 하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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