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물었다.
“그럼…… 돈이 많으면 죄를 감 면받을 일도 없는 것 아닙니까?”
저승에서 돈이 많다는 것은 살 아 있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했다 는 것이니 죄를 짓지도 않았을 것이다.
“착한 사람이라도 털어서 죄 없 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르고 지은 죄도 다 평가하는 것이 바로 저승입니다.”
“그럼 지장이라는 분은 생전에 엄청나게 좋은 일만 하셨나 보군 요.”
“생전에도 많이 하셨고, 죽은 후에도 많이 하시지요. 그래서 계속 돈을 벌고 계속 부자가 돼 서 저승계의 삼별 그룹이라 보시 면 됩니다.”
“엄청난 분이군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수표를
흔들었다.
“그러니 이렇게 백만 원짜리 수 표를 척! 하고 주는 것이 아니겠 습니까? 다른 분들은 이렇게 많 이 안 주십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수표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이 돈은 그 JS 금융 제 계좌에 들어가는 겁니까?”
“그래도 되고, 이승 돈으로 환 전을 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어 떻게 해 드릴까요? 입금? 아니면
환전?”
강두치의 물음에 강진이 수표를 보다가 슬며시 물었다.
“JS 금융 계좌에 돈이 많으면 죽어서 좋게 살 수 있는 겁니 까?”
“물론입니다. 저승에 가면 돈 쓸 일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잘 곳부터 먹을 것까지 다 돈입니 다. 그래서 죽어서 돈이 없으면 참 서럽지요.”
“그럼 제 계좌에는 돈이 얼마나
있습니까?”
“물어보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 만 죄송하지만 살아 계시는 동안 에는 잔액 확인을 할 수 없습니 다.”
“죽어야 확인이 가능하다는 거 군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두치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한끼식당을 운영하고 계시니 잔고는 늘 넉넉하실 겁니 다. 여기 일이 불편하기는 해도
여기 운영하는 분들은 늘 JS 금 융 VIP셨거든요.”
‘하긴…… 공짜로 사람들 밥을 먹여 주는데, JS 금융에서라도 돈이 쌓여야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물었 다.
“그럼 잔고에 있는 돈도 죽어야 쓸 수 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필요하시면 잔 고에 있는 만큼 이승 돈으로 현 금화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승 돈도 저금할 수 있 습니까?”
“그건 안 됩니다. 오직 저승 돈 을 이승 돈으로만 바꿀 수 있습 니다. 그리고 저승 돈을 현금화 하는 것은 주천하는 내용은 아닙 니다. 저승의 밤은 무척 춥고, 배 고픔은 목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처절합니다.”
“한국의 겨울도 돈 없으면 춥 고, 돈 없으면 배고프죠.”
“저승의 추위와 배고픔은 이승 의 것과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당장 인출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가능한지만 알고 싶었습니다.”
“그럼 이 수표는 입금할까요?”
“그렇게 해 주세요.”
백만 원이 큰돈이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강진에게 필요한 돈은 아니었다.
학비는 신수호가 내 주기로 했 고, 여기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전기세와 수도세 같은 것을 빼고 는 생활비가 들지 않는다.
게다가 통장에 사백만 원가량 들어 있으니 아껴 쓰면 수입 없 이도 일 년은 버틸 수 있다.
그러니 당장 돈 백만 원을 현금 화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없어지는 돈도 아니 라면 그냥 넣어 두면 될 일이었 다.
다만…….
“이자도 있습니까?”
“이자?”
“은행이라면 당연히 이자도 있 어야죠.”
강진의 말에 잠시 멍하니 있던 강두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 다.
“물론 있습니다. 특히 저희 JS 금융은 이자율이 무척 좋습니 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다가 문득 한쪽에 놓인 팥죽 그릇을 보았다.
식당에 있던 팥죽 그릇들은 어 느새 모두 비워져 있었다. 그 시 선을 봤는지 강두치가 웃었다.
“귀신은 팥을 싫어한다 하지 요.”
자신이 왜 팥죽을 만들었는지 짐작을 한 듯한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조금 무서운 마음이 있어서.”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아는 것과는 다르게 귀신들은 가 리는 음식이 없습니다.”
“싫어하는 음식이 없어요?”
“뱀파이어가 마늘을 싫어한다는 이야기 아십니까?”
“영화로도 많이 나오잖아요?”
강진의 답에 강두치가 웃었다.
“제가 아는 뱀파이어가 있는데 그 친구는 한국에 오면 마늘 잔 뜩 들어간 백숙만 그렇게 먹고 갑니다.”
“뱀파이어가…… 진짜로 있습니 까?”
“처녀귀신도 있는데 서양 귀신 이라고 없겠습니까?”
웃으며 말을 한 강두치가 팥죽 을 보다가 말했다.
“사람들은 팥죽으로 귀신들을 쫓으려 하는데…… 사실 팥죽은 귀신들이 좋아합니다. 대신 팥죽 을 뿌려두면 귀신들은 대접을 받 았다고 생각해서 그 집에 해를 가하지 않을 뿐입니다.”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대접을 하는 거군요.”
“귀신이 싫어한다고 알려진 음 식들은 대체적으로 귀신들이 좋 아하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왜 이야기는 싫어한다 고 알려진 거죠?”
“인간의 치기입니다. 귀신을 대 접한다고 하면 왠지 지는 것 같 은데, 쫓는다고 생각하면 이기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귀신 이 팥죽을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퍼진 겁니다.”
“좀 황당하네요.”
“이 세상에 한 발 디디신 것입 니다. 앞으로 더 많은 황당한 일 이 생길 것입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저는 음식부터 더 내야겠 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강두치가 웃으며 자리에 갈 때, 강진이 문득 그를 보았다.
“은행에서 다니는 분이 설마 공 짜로 드시지는 않겠죠?”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웃었다.
“걱정하지 말고 내오십시오. 저 희가 이래 보여도 돈 관리하는 JS 금융 사람들인데, 설마하니 돈도 없이 음식을 먹겠습니까?”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몸을 돌 려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에 들어온 강진이 프라이팬에 메밀 반죽을 올리고는 힐끗 홀을 보았 다.
홀 안에서 술과 음식을 먹고 있 는 JS 금융, 아니 저승은행 직원 들을 보던 강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그냥 나는 사람이고 귀신이고 그냥 음식이나 팔자. 돈 안 받고 팔면 저승 가서 쓰면 되고, 돈 받으면 여기서 쓰면 되 니 그냥 음식이나 만들자.’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프라이 팬을 흔들어 전이 붙지 않게 하 고는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두치는 그 말대로 밥 값으로 육십만 원을 내고 갔다. 여섯 명이 먹은 밥값으로는 많은 것 같지만…… 강두치가 말을 한 대로 여섯 명이 육십 명이 먹을 음식과 술을 먹었으니, 어떻게 보면 원가만 내고 간 것과 마찬 가지였다.
그러니 음식값으로 육십만 원도 많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 * *
아침 일찍 일어난 강진은 가게 입구를 청소하고는 냉장고를 열 었다.
어제 JS 금융 사람들이 닥치는 대로 먹고 가서 냉장고도 많이 비워져 있었다.
“귀신이라 그런가…… 많이도 먹네.”
비워진 냉장고를 보던 강진이 필요한 재료들을 적기 위해 메모 지를 찾았다.
‘일단 돼지고기를 어제 다 먹었 고……
동해 식자재에 주문할 식자재들 을 적으려던 강진의 눈에 메모지 에 적혀 있는 숫자들이 보였다.
<7, 14, 17, 23, 41, 42.〉
숫자를 본 강진의 눈이 반짝였 다.
“그래…… 로또!”
-그게 뭔데?
-뭐기는요. 로또 번호지. 그럼
나는 밥값 한 거예요.
이혜선이라는 귀신이 밥값이라 고 알려 준 로또 번호였다. 적을 때야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라고 하면서 적었는 데…….
지금 보니 정말 귀신 씻나락 까 먹는 소리가 아닌가. 강진이 급
히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 다.
“토요일이잖아?”
그에 강진이 급히 가게를 나왔 다. 그러고는 어딘가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래! 귀신도 밥 먹은 값은 해 야지. 암! 그렇고말고.”
횡단보도가 있는 곳에 있는 로 또 판매점으로 간 강진이 로또 용지를 꺼내서는 빠르게 마킹을 하고는 주인에게 오천 원을 내밀
었다.
“여기요.”
강진이 내민 로또 종이를 힐끗 본 주인이 웃으며 기계에 종이를 넣었다.
“다섯 게임을 다 같은 번호로 하셨네요.”
“좋은 꿈을 꿔서요.”
강진의 말에 주인이 기계에서 나오는 로또를 꺼내 이마에 댔 다.
“부자 되세요. 여기 있습니다.”
주인이 기도를 한다고 될 일은 아니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일은 아니었다.
“고맙습니다.”
강진이 로또를 받아 가자, 주인 이 그 뒷모습을 보다가 로또 용 지에 적힌 번호를 다른 용지에 적어서는 한 게임을 뽑았다.
가끔씩 좋은 꿈 꿨다고 로또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
은 아니지만, 주인도 그런 사람 들이 오면 그들이 뽑은 번호로 자신도 한 게임 더 뽑았다.
되면 좋고, 아니면 뭐 아닌 것 이니 말이다.
주인이 로또를 다시 뽑은 것을 알지 못하는 강진은 기대감에 찬 눈으로 종이를 보았다.
<7, 14, 17, 23, 41, 42.>
<7, 14, 17, 23, 41, 42,>
같은 번호로 다섯 게임이 되어 있는 로또를 보며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일등이 다섯 번이면…… 대체 당첨금이 얼마나 되는 거야?’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강진이 가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