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3화 (13/1,050)

12화

그날 밤 강진은 핸드폰으로 로 또 방송을 보고 있었다.

[자, 이번 주 로또 번호를 추첨 하겠습니다.]

“자! 그래! 시작하자! 시작해!”

강진이 기대감에 찬 눈으로 핸 드폰에서 나오는 아나운서의 목 소리를 들으며 로또를 보았다.

[첫 번째 번호가 나옵니다. 41

번!]

[두 번째 번호가 나옵니다. 23 번!]

로또에 적힌 번호와 용지에 적 힌 번호를 번갈아 보던 강진의 얼굴에 흥분이 어렸다.

시작과 함께 두 번호가 맞고 있 었다. 하지만 다음 번호를 부르 는 순간 강진의 얼굴은 굳어졌 다.

[세 번째 번호가 나옵니다. 18 번!]

‘틀렸다?’

세 번째 번호가 자신이 산 것과 달랐다. 그리고 뒤를 이어 나온 번호도, 그리고 또 그 뒤를 이은 번호도…….

[…… 마지막 행운의 번호! 7 번!]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화면 하 단에 로또 번호가 주르륵 떠올랐 다.

<7, 18, 23, 26, 41, 44.>

화면에 떠 있는 번호를 보던 강 진이 손에 쥐어진 로또를 보았 다.

<7, 14, 17, 23, 41, 42,>

손에 쥐어진 로또를 보던 강진 이 입술을 깨물었다. 여자 귀신 이 불러 준 번호 중에 맞은 것은 세 개였다.

꽝은 아니다. 세 개가 맞았으니 오등, 오천 원에는 당첨된 것이 다. 하지만…… 강진이 생각한 것은 일등이었다.

“이게 사람을 가지고 놀아?”

처녀귀신에게 속았다는 것을 안 강진이 로또를 주머니에 넣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것들…… 오기만 해 봐.”

속으로 이빨을 갈며 강진이 냉 장고에서 고추와 마늘을 잔뜩 꺼 냈다.

음식 냄새를 맡고 귀신들이 온 다고 했다. 그리고 처녀귀신들은 고추와 마늘을 좋아한다고 했으 니

그러고는 강진이 요리 연습장을 꺼내 펼쳤다.

“이것들, 매운맛을 보여주마.”

연습장을 빠르게 넘기며 요리들 을 보던 강진이 두 가지 메뉴를 선택했다.

〈고추 돼지고기볶음〉

〈마늘 플레이크〉

마늘 플레이크는 간단하게 마늘 을 얇게 자른 후 저온 기름에 튀 겨내는 것이고, 고추 돼지고기볶 음은 고추기름으로 만드는 것이 었다.

〈생고추나 고춧가루를 먹는 것 은 고추기름을 먹는 것만 못하 다. 고추기름은 영양이 있고 위 를 튼튼히 할 뿐만 아니라 각종

요리에 넣어 먹으면 향기롭고 맛 이 있다.〉

고추기름을 내는 방법에 적힌 내용을 읽은 강진이 고개를 끄덕 였다.

요리 연습장에는 요리를 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몸 어디에 좋다 는 것까지 설명이 되어 있었다.

어쨌든 그 내용대로 프라이팬에 기름을 부은 강진이 불을 켰다. 그러고는 적당히 온도가 올라가

자 고추와 고춧가루를 넣고 고추 기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덜컥!

“오빠 우리 왔어요.”

“오늘 냄새 좋네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자 들의 모습에 강진이 그들을 지긋 이 보았다.

이미 식탁 위에는 강진이 만든 고추 돼지고기볶음과 마늘 플레 이크가 놓여 있었다.

“우와! 우리 올 줄 알고 미리 준비를 했어요?”

웃으며 강진이 차려 놓은 식탁 에 앉는 여자들을 보며 강진이 그 앞에 앉았다.

탁!

그러고는 강진이 로또를 내려놓 자 이혜선이 의아한 듯 종이를 보았다.

“로또네?”

“네가 불러 준 번호다.”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로또를 보다가 웃었다.

“정말 산 거야?”

“정말 산 거야? 야! 네가 밥값 이라고 불러 줬잖아.”

강진의 말에 이혜선이 웃었다.

“그냥 아무거나 불러 준 거지.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그런 걸 알아? 그리고 점쟁이도 로또

번호를 알면 자기가 사지, 남을 알려 주겠어?”

웃으며 이혜선이 종이를 보다가 내려놓았다.

“그래서 당첨은 됐어?”

“오등 됐더라.”

“오등? 오등이면 오천 원, 다섯 게임이니 곱하기 오. 그럼 이만 오천 원이네. 그럼 내 말대로 밥 값은 한 거네.”

웃으며 이혜선이 강진을 보았 다.

“그럼 뭐가 문제야? 꽝 불러 준 것도 아니고 오등 로또 알려 준 건데?”

“일등이 아니잖아.”

“욕심도 많네. 무슨 밥값으로 몇십억을 받으려고 해?”

“그건••••••

강진이 말을 하지 못했다. 생각 을 해 보면…… 이혜선 말대로 밥 한 끼에 몇십억 대가를 바라 는 것도 도둑놈 심보다.

그것이 아무리 귀신이라고 해도

말이다.

한숨을 쉰 강진이 입맛을 다시 며 로또 종이를 쥐었다.

‘오천 원 주고 이만 오천 원이 면…… 에잉!’

이익이라 생각이 되면서도 실망 이 크니 아쉬움도 컸다.

그에 입맛을 다시던 강진이 문 득 이혜선 일행을 보았다. 열이 받아서 미처 생각을 못했는 데…….

‘처녀귀신이…… 셋.’

꿀꺽!

지금 처녀귀신 셋과 마주 앉아 있는 것이다.

“그…… 그럼 먹어.”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진 의 모습에 이혜선이 웃으며 말했 다.

“막내야, 가서 소주 가져와.”

“네 언니.”

조명희가 일어나 냉장고에서 소 주를 가져오자 강한나가 강진을

향해 말했다.

“오빠 잘 먹을게요.”

“그…… 그래.”

강진의 답에 강한나가 이혜선을 보았다.

“그런데 언니 대단하다. 그냥 불렀는데 로또 번호를 세 개나 맞췄어요?”

“그러게 나도 신기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 조카들 꿈에라 도 들어갔다 오는 건데……

“언니 꿈에도 들어갈 수 있어 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몇 백 년 묵은 것도 아닌데 무슨 수 로 꿈에 들어가니.”

웃으며 고개를 젓는 이혜선이 소주를 따라 안주와 함께 술을 먹기 시작했다.

강진은 주방에서 홀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무슨 귀신이 저래? 로또 당첨 자들이 죽은 할아버지가 숫자 불

러 주고 갔다고 하던 말도 다 뻥 이구만.’

이혜선도 무슨 신기가 있어서 불러 준 것이 아니라 그냥 되는 대로 찍어 불러 준 것이었다.

힐끗 강진이 홀을 보았다.

처녀귀신 셋은 소주를 가져다 놓고 안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 누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그냥 평범한 데……

처음에는 화가 났고, 방금 전에

는 무서웠다. 그리고 지금은 저 것들이 무슨 귀신인가 하는 한심 함이 들었다.

즉 두려운 감정이 조금은 사라 졌다. 잠시 귀신들을 보던 강진 의 귀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 다.

덜컥!

‘웅?’

고개를 돌리니 문 안으로 들어 오는 여자 손님 넷이 보였다.

언니!”

이혜선이 손을 들자 들어오던 여자 중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 다.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안 보이시던데?”

“여름이기도 해서 산속에 들어 가 수양을 하고 왔다.”

“여행도 다니고, 언니 참 대단 하세요.”

“내가 너희 같은 지박령과 같지 는 않지.”

말과 함께 여자가 의자를 가져 다가 탁자에 놓자 그녀와 함께 온 여자들이 옆에 있는 탁자를 들어 붙였다.

그리고 그런 여자들을 강진이 주방에 숨어 보고 있었다.

‘쟤들은 누구지? 저것들도 처녀 귀신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의 머릿 속에 강두치가 한 말이 떠올랐 다.

-귀신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

식 취향이 있습니다. 어제 온 처 녀귀신들 같은 경우는 마늘과 고 추를 좋아하고…….

‘아차! 처녀귀신들이 마늘과 고 추를 좋아한다고 했지.’

생각해 보면 이혜선, 저것들을 부르려고 마늘과 고추가 잔뜩 들 어간 음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귀신들은 음식 냄새를 맡고 온다 했으니…… 이혜선 외 에도 다른 처녀귀신들도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딱 봐도 이혜선보다 훨 씬 세 보이는 처녀귀신으로 말이 다.

“오빠! 여기 안주 더 주세요.”

이혜선의 외침에 강진이 침을 삼키고는 짐짓 소리쳤다.

“기다려!”

짐짓 난 쫄지 않았다는 것을 보 여주기 위해 크게 반말로 외친 강진이 다시 슬쩍 홀의 눈치를 살폈다.

이혜선 일행은 그렇다 쳐도, 새

로운 여자들이 반말에 기분이라 도 상했으면 어쩌나 싶어서 말이 다.

강진의 외침에 언니라 불린 여 자가 슬쩍 주방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인사라도 나누도록 잠시 나와 보시게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강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홀로 나왔다.

강진이 나오자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전 주인과는 언니 동생 하던 사이였네.”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 자는 이혜선보다 어려 보였다. 그러니 김복래 여사와 언니 동생 할 나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 지만 귀신이니…….

“한끼식당을 맡게 된 이강진입 니다.”

“전주에서 온 이지선이네.”

스윽!

이지선이 같이 온 여인들을 보

자 그녀들이 일어나 강진에게 이 름을 말하고 작게 고개를 숙였 다.

말을 들으니 이지선의 부하 격 인 처녀귀신들인 모양이었다.

그들과도 인사를 마친 강진에게 이지선이 몸을 일으켰다.

“큰언니가 오시는구나.”

이지선의 말에 이혜선 일행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는 급히 옷차림을 살피는 것에 강진이 의아한 눈으로 그들을 보

았다.

‘큰언니?’

강진이 의아해할 때, 이지선이 입구에 가서 섰다. 그리고 그 뒤 를 서열 순으로 처녀귀신들이 서 기 시작했다.

‘무슨 처녀귀신 보스라도 들어 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니 무서운 기분 이 든 강진이 슬며시 주방으로 걸음을 옮길 때 문이 열렸다.

덜컥!

문을 열리는 소리에 강진의 고 개가 돌아갔다. 무서운 생각도 들지만 처녀귀신 보스가 누구인 가 궁금하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강진의 눈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자가 보였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는 한복 을 입은 채 들어오고 있었다. 나 이는 서른 정도 되어 보일까 싶 고 한복은 단아했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았다.

‘어? 첫날 온 애 아냐?’

입고 있는 한복도 다르고, 얼굴 도 조금 달라 보였지만…… 그 아이와 비슷해 보였다.

한복도 첫날 입고 온 것과 비슷 해 보이고 또 일단 분위기도 비 슷했다.

스윽! 스윽!

부드럽게 걸음을 옮기며 빈자리 에 앉은 여자가 입을 열었다.

“소주 가져오게나.”

여자의 말에 강진은 확신이 들 었다. 첫날 왔던 여자애도 같은 말을 했었으니 말이다.

‘첫날 걔다.’

그리고…… 강진은 한 가지 더 알 수 있었다. 여자애는 강진의 말대로 성의를 보이고 있었다.

-화장을 하고 올 거면 옷이라 도 좀 갈아입고 오지 그랬냐? 너 는 아까부터 왜 이리 성의가 없 냐?

자신의 말에 따라, 옷이며 화장

을 나이 들어 보이게 하는 성의 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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