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5화 (15/1,050)

14화

“더 없죠?”

사내가 홀을 향해 소리쳤지만 들려오는 것은 먹는 소리뿐이었 다.

“맛있다!”

“이게 얼마 만에 먹는 밥이야?”

사람들, 아니 귀신들이 음식을 환장하고 먹는 것을 보며 사내도 서둘러 자신이 먹을 김치찌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촤아악! 촤아악!

프라이팬에 김치를 넣고는 빠르 게 손을 움직여 볶던 사내가 설 탕을 한 숟가락 넣고는 그 안에 김치 국물을 부었다.

촤아악!

김치 국물이 끓으며 냄새가 나 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물을 마 저 넣고는 끓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물이 끓어오르자 그 안 에 참치를 급히 넣었다. 빠르게

김치찌개를 만들던 사내가 힐끗 시간을 보았다.

<12:40>

아직 시간이 있음에 사내가 고 추와 파를 몇 개 잘라 집어넣었 다.

그렇게 김치찌개를 마무리한 사 내가 옆을 보았다.

강진은 멍하니 그를 보고 있었

다.

“왜요?”

“음식…… 참 빨리 하시네요.”

강진의 말대로 사내는 30분 안 에 메뉴 14개를 만들었다. 그리 고 그동안 강진이 만든 것은 딱 2인분이었다.

“한식당에서 십 년을 넘게 요리 를 만들었어요.”

“원래 요리사셨어요?”

엄마도 나한테 요리 몇 가지

배웠어요.”

“엄마?”

“김복래 여사님요.”

“아……

고개를 끄덕이는 강진을 보며 사내가 홀로 나가서는 소주를 가 져왔다.

그러고는 잔을 가져다가 소주를 따라서는 한 잔 마시고는 강진에 게도 내밀었다.

쪼르륵!

소주를 따라준 사내가 김치찌개 를 떠먹었다.

“크악! 좋다. 역시 김치찌개는 소주를 먹고 먹어야 도fl. 칼칼한 맛이 식도부터 위장까지 긁어 준 다니까요.”

웃으며 김치찌개를 먹던 사내가 강진을 보았다.

“잔 주셔야죠.”

사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소주를 마시고는 잔을 건넸다.

“크악! 좋다.”

다시 소주를 마시는 사내를 보 던 강진이 김치찌개를 보았다.

“그런데 왜 찌개를 프라이팬에 끓이신 겁니까?”

“프라이팬에 꼭 볶음이나 구이 만 하라는 법은 없죠.”

김치와 참치를 숟가락에 크게 떠서 입에 넣은 사내가 말했다.

“김치찌개는 오래 끓여야 제맛 인데, 시간이 없으니 넓은 프라 이팬에 해서 조리 시간을 단축

한 겁니다.”

“아…… 그럼 처음에 김치를 볶 던 건?”

“그것도 시간을 단축하려고 한 겁니다. 저도 소주 한잔하려면 빨리 해야 하니까요.”

사내의 말에 강진이 숟가락으로 김치찌개를 떠먹었다.

그리고 강진의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떠올랐다.

‘맛있다.’

김치찌개는 맛이 좋았다.

“맛있네요.”

“이건 뭐 그냥 먹을 만한 수준 이죠.”

“이렇게 맛있는데요?”

“정성과 시간이 들어간 만큼 맛 있어지는 것이 음식입니다. 이렇 게 뚝딱 대충 만든 건 그냥저냥 먹을 만한 수준이죠.”

“그럼 이것보다 더 맛있게도 하 실 수 있으세요?”

“재료하고 시간만 있다면야…… 혀가 깜짝 놀라 입 밖으로 마중 을 나올 정도로 맛있게 할 수 있 죠.”

웃으며 김치찌개와 소주를 빠르 게 먹고 마시는 사내를 보던 강 진이 물었다.

“그런데…… 귀신들은 다 소주 를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여기 오신 분들 다 소주를 드시던데.”

“저희가 귀신이라 추워서 그럴 겁니다.”

“추워요?”

“귀신은 늘 춥고 배고픕니다. 그래서 다들 여기로 오는 거죠. 여기 오면 사람처럼 밥을 먹고,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술을 먹 을 수 있으니까.”

조금은 씁쓸해하는 사내의 모습 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입을 열 었다.

“저기…… 성함이?”

“아!”

숟가락을 내려놓은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배용수입니다.”

“이강진입니다.”

서로 인사를 나눈 배용수가 다 시 소주를 들어 마시고는 잔을 내밀었다.

“나이 서로 비슷해 보이는데 편 하게 말 놓죠. 앞으로 자주 볼 것이고……

배용수가 홀에 있는 귀신들을 보았다.

“영업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제 가 도울 일도 많을 것 같고.”

“도와주시 겠습니까?”

“귀신 된 것도 서러운데 먹고 싶은 거라도 먹어야죠. 그리고 저도 좀 먹고.”

“감사합니다.”

강진으로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 하는 음식 장사라 부담이 됐었다.

언제까지 메뉴 하나만 내놓기도 그렇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귀신이라도 도와주겠다고 하면 감사할 뿐이었다.

“그러니 우리 말 놓자.”

“나이는 비슷해 보여도 실제 나 이는 아닐 텐데……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귀신 나이 따져서 뭐 해? 서로 편한 것이 좋은 거지.”

당당하게 귀신이라고 말하는 배 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럼 그러자.”

사실 조금 두려움도 많이 가셨 다. 처녀귀신들이나 여기 남자 귀신들이나 밥 먹고 술 먹는 걸 보면 귀신이라고 생각되지 않고 그냥 일반 사람 같았다.

그렇다 보니 이제 귀신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많이 사라 졌다.

‘내가 적응력이 좋은 건가?’

하긴 생각을 해 보면 아르바이 트를 많이 해서 그런지, 새로운

일이나 사람에 대한 친화력은 좀 있던 것 같았다.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 은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하니 말이다.

그런 강진을 보며 배용수가 힐 끗 홀을 보았다.

“아저씨, 뭐 먹을 거예요!”

배용수의 외침에 강진이 홀을 보니 새로운 귀신 둘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힐끗 시계를 보니

12시 45분…….

귀신들도 시간을 보고는 빨리 말했다.

“빨리 나오는 걸로 줘!”

귀신의 말에 배용수가 소리쳤 다.

“나 먹던 김치찌개 같이 먹을래 요? 지금 만들어도 소주 먹을 시 간도 부족해요!”

“그럼 우리야 좋지.”

“그쪽 주인 없는 식탁 치우세

요.”

배용수의 말에 들어온 귀신 둘 이 한쪽에 귀신들이 먹고 간 자 리를 치웠다.

그에 배용수가 먹던 김치찌개를 불에 올려 다시 끓이고는 냉장고 에서 계란을 꺼냈다.

지금 가장 빨리 만들 수 있는 건 계란 프라이뿐이었다. 그래야 이거라도 먹고 한 시 전까지 갈 테니 말이다.

“김치찌개 가지고 나가. 이거

만들고 같이 소주나 한잔하자.”

계란 프라이를 만들며 대뜸 반 말을 하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 이 말했다.

“그…… 내가 해도 되는데.”

“됐어. 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홀에서 식탁을 치우는 귀신과 아직도 먹 고 있던 다른 귀신들을 보다가, 호흡을 크게 하고는 김치찌개를 들고 홀로 나왔다.

‘잘도 먹네.’

귀신들은 정신없이 소주와 안주

들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에는 밥을 마시는 것처럼 입에

쑤셔 넣는 이들도 있었다.

‘귀신이 배가 고프기는 많이 고 픈가 보구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자리 를 잡은 귀신 둘에게 김치찌개를 내려놓았다.

“기다리시면 배용수 귀…… 아 니 배용수 씨가 계란 프라이 해 서 올 겁니다.”

“고맙소. 그쪽도 여기 앉아서 한잔합시다.”

어느새 소주병을 가져다 까서는 잔을 채우던 귀신이 잔을 내밀자 강진이 그것을 받았다.

그러고는 잔에 소주를 채워주는 귀신을 보았다.

귀신은 무척 건장한 체격을 가 진 스포츠머리를 한 사내였다.

사내를 본 강진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런데 얼굴이 낯이 익네?’

어디서 봤나 싶어 잠시 사내를 보던 강진이 놀란 눈으로 입을 열었다.

“호철 형?”

강진의 부름에 사내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나 알아?”

“형, 저 강진이에요! 이강진.”

“이강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 는 사내, 최호철의 모습에 강진

이 다시 말을 했다.

“희망 보육원 이강진요! 형 명 절 때마다 와서 보고 갔잖아요.”

최호철은 희망 보육원의 선배 원생이었다. 강진이 18살에 들어 왔을 때, 최호철은 이미 사회인 이었는데 명절 때마다 선물들을 사서 보육원에 왔었다.

그리고 강진에게 좋은 이야기도 해 주고, 사회에 나왔을 때 기반 을 잡을 수 있게 도움도 준 좋은 형이었다.

그런데 그 형이 지금 한끼식당 손님으로 온 것이다.

“아..”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그를 보 다가 혀를 차고는 따라 놓은 소 주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잔을 내밀었다. 강진 이 잔을 받자 최호철이 소주를 따라 주었다.

쪼르륵!

“보육원 동생인 것 같은데…… 미안하다.”

“네?”

“귀신 되면 생전 기억들이 잘 생각이 안 나.”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잔에 담 긴 소주를 마셨다.

“그런데 형 어쩌……

탁!

계란 프라이가 담긴 그릇을 강 하게 탁자에 놓은 배용수가 웃으 며 강진을 보았다.

“살아 있을 때 이야기는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 하는 겁니다.”

“네?”

강진이 그를 보자 배용수가 소 주잔에 소주를 따라서는 마셨다.

“한이 없으면 귀신이 되지 않습 니다. 그리고 그 한을 살아 있는 인간이 들어서 좋을 것은 없습니 다. 그러니……

배용수가 웃으며 자리에 앉았 다.

“술이나 먹고 배나 채웁시다.”

웃으며 배용수가 먼저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는 김치찌개를 먹 기 시작하자 강진이 최호철을 보 았다.

그 시선에 최호철이 웃었다.

“기억에는 없지만…… 그래도 형이라 불러주는 동생을 보니 좋 네. 1시까지 시간도 없으니 이야 기는 내일 하고, 오늘은 술이나 먹자.”

최호철이 소주병을 들어 마시자 강진이 그것을 보다가 고개를 끄 덕였다.

그 말대로 한시까지는 몇 분 남 지 않았고, 배용수의 말대로도 산 자가 죽은 자의 한을 들어서 좋을 것이 없다.

‘이지선도 그것에 대한 주의를 주었으니…… 확실히 들어서 좋 을 이야기는 아닌 거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잔에 담긴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