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화
강진은 배용수, 최호철과 술잔 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한 시까지 시간이 그리 남지 않 았으니 페이스를 올리는 것이다.
쪼르륵! 쪼르륵!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바 로 귀신들의 모습이었다.
“운암정에 있을 때 내가 나이는
어렸어도 수석 숙수 바로 밑에 있는 보조였어요. 오 년만 더 살 았으면 수석 숙수도 내 자리였는 데..
“내가 이 주먹으로 깡패 수십하 고 붙었었지. 그때는 배에 칼을 맞아도 죽지 않을 것 같았다니 까.”
“내 손으로 살린 사람만 수백인 데…… 죽고 보니 귀신이네. 이 게 말이 돼? 천당에 보내 주지는 못할망정 말이야! 이런 제기랄!”
눈앞에 있는 배용수와 최호철은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고 있었다.
보니 배용수는 운암정이라는 유 명한 한식당 요리사였고, 최호철 은 경찰이었다.
그리고 최호철과 같이 온 중년 남자 귀신은 의사였다. 그것도 한방과 양방 둘 모두 면허를 딴 실력 있는 의사였다.
‘살아 있을 때 이야기는 물어보 지 말라고 하더니…… 자기들이 알아서 다 떠벌리는구만.’
특히 배용수는 자기가 직접 주 의를 줬으면서도, 계속 자기 살 아 있을 때의 일을 말하고 있었 다.
“전에 북한에서 높은 사람 왔을 때도 김치 전골은 내가 직접 만 들었다니까.”
자신의 활약상을 말하는 배용수 를 보던 강진이 주위를 보았다.
같은 탁자에 앉은 자들 외에도 다른 좌석에 있는 귀신들도 쉬지 않고 떠들어대고 있었는데, 그들 도 자신들이 살았을 때의 이야기
를 하고 있었다.
“내가 설계한 아파트가 수십 개 야.”
“군대에 있을 때……
“내가 안 가 본 나라가 없다니 까.”
직업도 각양각색인 듯 귀신들은 자신들이 활약했던 생전 이야기 를 떠들어대며 술을 마시고 있었 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문득 고 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대화가 아닌 것 같은 데?’
대화라는 건 말이 가면 오는 것 이 있어야 한다.
“아침에 밥을 먹었는데 속이 안
좋네.”
“뭐 먹었는데?”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들은 지금 말을 할 뿐 상대의 말
에 호응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할 말만을 할 뿐 상 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 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던 강 진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나 들으라고 하는 건가?’
그에 강진이 슬쩍 배용수와 다 른 귀신들을 보았다. 귀신들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힐끗힐끗 자 신을 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나
안 듣나 엿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강진과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피했다.
일부러 너 들으라고 하는 이야 기는 아니라는 듯 말이다.
‘진짜 나 들으라고 하는 건가? 왜?’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배 용수가 몸을 일으켰다.
“자! 이제 1시 1분 전입니다.”
배용수의 말에 귀신들이 시계를 보고는 아쉽다는 듯 서둘러 음식
과 소주를 마시고는 일어났다.
“잘 먹고 갑니다.”
귀신들이 하나둘씩 식당을 나서 는 것을 보며 최호철이 강진을 보았다.
“장사하다가 난동 피우는 놈들 있으면 형 이름 크게 외쳐. 내가 박살을 내줄 테니까.”
“형 이름요?”
“희망 보육원 출신이면 내 동생 이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 못 하 는 미안한 동생한테 그 정도는
해 줘야……
화아악!
강진의 눈에 말을 하던 최호철 의 모습이 흩어지듯 사라지는 것 이 보였다.
새벽 1시가 되어 영업시간이 끝 나자 현신이 풀리고 귀신으로 돌 아간 것이다.
최호철이 사라지는 것에 강진이 주위를 보다가 말했다.
“듣는지 모르겠지만…… 늘 고 다웠어요. 제가 도울 일이 있으
면 언제든 말하세요.”
강진의 말에 술잔이 스륵 하고 옆으로 살짝 움직였다. 현신이 풀렸지만 아직 자리에 있었던 모 양이었다.
‘귀신이 물건도 움직일 수 있나 보네. 영화라고 다 틀린 것은 아 닌가 보네.’
영화에서 귀신들이 물건을 움직 이는 것을 본 적이 있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귀신들이 먹 고 간 자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덜컥!
술병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던 강진의 귀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딱 한 잔만 더 하고 가자.”
“그렇지 않아도 저도 술이 조금 모자란다 싶었습니다.”
“하하하! 역시 장 과장하고 나 하고 생각이 잘 통한다는 말이 야.”
시끌시끌한 소리에 강진이 의아 한 듯 고개를 돌렸다.
‘응? 영업시간 지났는데?’
영업시간에만 귀신이 현신할 수 있다. 그런데 귀신들이 더 들어 온 것이다.
그에 싱크대에 그릇들을 내려놓 은 강진이 홀을 보았다. 홀에는 남자 여섯과 여자 둘이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부장님, 손님 하나 없 는 것이 영업 끝난 것 같은데요?
제가 좋은 곳 아는데 옮기시죠•”
“무슨 자리까지 옮겨.... 저기
요!”
부르는 소리에 강진이 일단 손 을 닦고는 홀로 나갔다.
“아직 장사 하죠?”
“장사 안 해도 아쉬워서 술 한 잔 더 하고 가려는 거니까. 장사 조금 더 합시다.”
부장이라 불린 중년의 남자가 웃으며 지갑을 꺼내더니 오만 원 짜리 두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일단 이것 받고……
“부장님, 법카로 하시지.”
“됐어. 이건 법카가 아니라 내 가 사는 거야.”
“감사히 먹겠습니다.”
부장의 말에 연신 고개를 숙이 는 과장과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던 강진이 돈을 보았다.
‘진짜 돈이네?’
“저기…… 사람이시죠?”
“하하하! 젊은 친구가 말 재밌 게 합니다. 그럼 사람이지 우리 가 귀신이겠습니까?”
술이 잔뜩 취한 것처럼 보이는 데도 부장이라는 사람은 말을 예 의 바르게 했다.
편의점이나 음식점에서 아르바 이트할 때 보면 가끔 나이 좀 있 다고 반말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 는데, 그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어디 보자.”
웃으며 부장이 메뉴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한쪽에 걸려 있는 화이트보드를 보고는 웃었다.
“음식값은 주는 대로 받는다? 하하하! 메뉴판 재밌네.”
그러고는 부장이 강진을 보았 다.
“메뉴가 제육덮밥 하나네요? 다 른 건 안 됩니까?”
부장의 말에 강진이 화이트보드 를 보았다. 어제 써 놓은 것을 오늘 고치지 않아서 메뉴가 그거
하나였다.
“제육볶음도 되고 고추 돼지고 기볶음도 됩니다.”
“그럼 일단 그것 두 개 주시고 소주하고 맥주 좀 주십시오.”
부장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귀 신이 아닌 사람이 들어와서 놀라 기는 했지만, 현금을 미리 주고 앉은 손님이다. 그것도 첫 번째 사람 손님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강진이 소주병과 맥주를 꺼내 탁자에 놓고는 일단 밑반찬들을 꺼냈다.
‘일단 이거라도 좀 내놓자.’
밑반찬들을 그릇에 조금씩 덜은 강진이 그것을 손님들 상에 내놓 았다.
“일단 이거라도 드시고 계세 요.”
“식당이라 그런가 안주로 반찬 이 나오네. 고맙습니다.”
부장의 말에 작게 고개를 숙인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 고는 제육과 고기를 불판에 올리 고는 빠르게 볶기 시작했다.
“여기 반찬 맛있네.”
“우리 마누라가 한 반찬보다 맛 있습니다.”
“세희 씨는 어때?”
“김치 진짜 맛있어요. 시골 할 머니 집에서 먹는 맛이에요.”
“반찬이 이 정도면 음식은 더 맛있겠는데.”
“역시 부장님이 고르신 가게답 습니다.”
“하하하! 내가 걷는데 딱 봐도 가게가 허름한 것이 오래된 맛집 같더라고.”
“그러게 말입니다. 강남에 이렇 게 허름한 가게가 있을 줄 알았 겠습니까.”
주방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를 들으며 강진이 피식 웃었다.
‘저 과장이라는 분도 열심히 사 시네.’
아부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만…… 직장 생활을 하려면 저것 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빠르게 제육 과 고추 돼지고기볶음을 만든 강 진이 그릇에 담아서는 식탁으로 가져갔다.
“여기 있습니다.”
제육과 고추 돼지고기볶음이 나 오자 부장이 그것을 한 점 집어 먹고는 소리쳤다.
“와! 어서 먹어봐. 진짜 맛있
어!”
부장의 말에 과장이 냉큼 젓가 락을 들어서는 제육을 집어먹고 는 깜짝 놀란 듯 말했다.
“진짜 맛있네요.”
두 사람이 쿵짝을 맞추는 것에 다른 직원들이 기대감이 어린 눈 으로 고기를 집어먹었다.
그들도 반찬을 먹은 후라 음식 에 대한 기대감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요리를 먹고 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와! 노원에 연탄 제육 진짜 잘 하는 맛집 있는데, 거기보다 더 맛있는 것 같은데요.”
“고추 돼지고기볶음도 진짜 맛 있어요.”
젊은 남자의 말에 부장이 웃었 다.
“좋은 안주에 술이 빠질 수 없 지.”
부장이 소주잔을 들자 다른 직 원들도 술잔과 물잔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본 강진이 슬쩍 자리
를 비켜 주고는 홀을 보았다.
‘우리 가게 첫 사람 손님인 데…… 요리 몇 개 내드리자. 근 처 회사 사람들인 모양인데, 입 소문이라도 나면 사람 손님도 좀 찾아오겠지.’
잠시 홀을 보던 강진이 요리 연 습장을 펼쳤다.
스스슥!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던 강진이 두 가지 메뉴를 찾아서는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