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이번에 수고들 했어.”
“아닙니다. 다 부장님이 저희를 이끌어 주셔서……
“아니야. 자네 팀이 아이템도 잘 찾았고 설계도 잘했어. 그리 고 토요일에 출근하고 야근까지 하게 해서 미안해.”
“아닙니다. 저희 때문에 부장님 까지 출근을 하게 하셔서 저희가 더 죄송합니다.”
“무슨 그런 소리를 해? 자네들 이 출근을 하는데 어떻게 나만 집에 있어. 같이 나와서 복사라 도 한 부 도와야지. 어쨌든 수고 들 했어.”
말을 들어보니 부장이 있는 부 서에서 큰일을 진행하다가 틀어 져서 팀원들이 토요일인데도 출 근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부장이 그것을 알고 같 이 출근해서 일을 하고, 수고했 다고 회식을 시켜 준 것이다.
물론 직원들은 회식보다도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 겠지만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강 진이 쟁반을 들고 갔다. 쟁반에 는 국그릇과 가지 튀김이 놓여 있었다.
“국물이 좀 있어야 할 것 같아 서 배춧국하고, 안주 하시라고 가지 튀김 만들었습니다.”
“메뉴에 없는 건데 이런 것도 됩니까?”
“원래 저희 식당이 정해진 메뉴
가 딱히 없습니다.”
“그런데 메뉴판에는?”
부장이 메뉴판을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 혼자 장사를 해서 메뉴가 여러 가지면 손이 바빠져서요. 영업시간에는 메뉴 하나만 하고 있습니다.”
“그럼 메뉴가 딱히 없으면 뭘 파는 겁니까?”
“있는 재료로 손님이 드시고 싶 다는 것을 만듭니다.”
“우와!”
말을 하던 강진은 남자 직원 한 명의 탄성에 고개를 돌렸다. 그 는 배춧국을 입에 대고 마시다가 깜짝 놀란 듯했다.
“부장님 드셔 보세요. 국물이 죽여줍니다.”
직원의 말에 부장이 배춧국을 수저로 한 입 떠먹고는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아……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 군.”
“정말 칼칼하고 속이 뜨끈해지 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바삭!
말을 하던 부장과 과장이 순간 들리는 바삭 소리에 고개를 돌렸 다.
여직원 한 명이 가지 튀김을 입 에 넣고 씹었는데 그 소리가 말 그대로 바삭했다.
바삭! 바삭!
가지 튀김을 입에 넣고 씹을 때 마다 바삭거리는 소리가 나며 여
직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자, 다른 사람들도 가지 튀김을 집어 서는 입에 넣었다.
바사사삭!
그리고 들려오는 바삭거리는 소 리…….
“진짜 맛있다.”
“저 가지 튀김 처음 먹어 보는 데 완전 맛있는데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씹을 때마다 육즙 같은 것이 흘 러나오네요. 그게 또 고소하네.”
과장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가지 안에 삼겹살을 잘게 다져 서 넣었습니다.”
“아…… 그래서 육즙이 나오는 군요. 아주 맛있습니다.”
과장의 말에 부장이 웃으며 말 했다.
“배춧국도 그렇고 가지 튀김도 그렇고, 요리가 참 맛있습니다.”
부장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말했다.
“배추는 비타민과 칼슘이 풍부 해서 위장의 소화 기능을 돕습니 다. 그래서 술독을 푸는 해장국 으로 좋습니다.”
“아…… 그럼 저희들 술독 풀라 고 해장국으로 끓여 주신 겁니 까?”
“술 먹고 해장하고, 해장하고 술 먹고…… 이럼 술도 많이 드 시지 않겠습니까? 참고로 저희 식당은 음식값은 주는 대로 받지 만 술값은 다 받습니다.”
“하하하! 술 많이 마시라고 해
장국을 끓여 오신 거군요.”
부장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가 지 튀김을 가리켰다.
“그리고 배춧국처럼 가지 역시 열을 내리고 해독 작용을 하 니…… 술 드시기 좋을 겁니다.”
“젊은 친구가 요리에 대해 잘 아는군.”
말을 하던 부장이 아차 싶었는 지 웃으며 말했다.
“젊은 사장이 말을 재밌게 해서 나도 모르게 말을 놓았습니다.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제가 사과 하지요.”
“아닙니다. 편하게 대해 주시고, 편하게 자주 오시면 저야 감사하 죠.”
“음식이 맛있으면야 오지 말라 고 해도 자주 와야지요.”
부장이 가게 안을 한 번 둘러보 았다.
“그런데 혼자 장사를 하십니 까?”
“네.”
“장사가 잘 안 되는 모양입니 다.”
부장의 말에 과장이 웃었다.
“이렇게 음식이 맛있는데 왜 장 사가 안 되겠어요. 저 같으면 점 심마다 와서 먹겠습니다.”
과장의 말에 부장이 고개를 저 었다.
“자네는 영업을 한다는 사람 이…… 하나만 보고 둘은 보지를 못하는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과장이 의아한 듯 보자 부장이 직원들을 보았다.
“자네들도 잘 들어.”
부장의 말에 직원들이 먹던 음 식들을 놓고 그를 보았다.
“일단 우리는 영업을 하는 사람 들이야. 특히 우리는 물건을 사 서 파는 일을 하지.”
“그렇지요.”
“과장의 말대로 여기 음식들은 맛이 있어. 된장 맛있는 집이 간 장도 고추장도 맛있으니…… 지
금 먹어 본 반찬과 음식들만 봐 도 여기 사장님 음식 솜씨가 아 주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부장 이 홀을 가리켰다.
“그리고 홀의 탁자가 아홉 개, 그럼 손님들이 많을 때에는 서른 명도 넘어. 서른 명이 넘는 손님 들을 상대로 음식을 만들고, 서 빙하고 치우고까지 혼자 할 수 있겠나?”
“그건…… 어렵겠네요.”
“그러니……
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장사가 잘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영업한 지 얼마 안 된 것도 알 수 있지.”
부장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제가 영업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은 어떻게 아십니까?”
“음식점이라는 곳이 맛만 있으 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곳 입니다. 제 식성이 특이하지 않
으니 제 입에 맛있으면 다른 이 들의 입에도 맛있다 할 겁니다. 그런데 손님이 없어 혼자 장사를 한다면 아직 사람들이 이 가게를 모른다는 것일 테고 그럼 영업한 지 얼마 안 된 것도 짐작이 되지 요.”
부장의 설명에 강진이 놀란 듯 그를 보았다.
“마치 탐정 같으시네요.”
“탐정까지는 아니고 영업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물건 사고파는 것에 대한 눈이 조금 생긴 겁니
다. 사장님 음식 솜씨는 좋은 아 이템이니 안 팔릴 일이 없지요. 지금은 힘들어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오다 보면 곧 장사가 잘 될 것입니다.”
“덕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덕담이 아니라 음식이 정말 맛 이 좋습니다.”
웃으며 가지 튀김을 하나 더 집 어 입에 넣는 부장을 보며 강진 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편히 술을 마시도록 말이다.
간단하게 소주 네 병과 맥주 두 병을 먹은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 어났다.
“여기 얼마입니까?”
부장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나 왔다.
“아까 주신 십만 원이면 충분합 니다. 다음에 또 오시고 소문 좀 내 주세요.”
“그렇게 하지요. 그럼 잘 먹고 갑니다.”
웃으며 부장이 직원들과 함께
비틀거리며 가게를 나섰다.
“좋은 손님이네.”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나이 어리다고 반말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이도 많은 손님이고 하니 기 분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 로 당해 보면 기분이 참 좋지 않 다.
하지만 손님한테 화를 내지도 못하니 그저 속으로 부글부글하 고만 있어야 하는데…… 일단 부
장이라는 사람은 꼬박꼬박 존댓 말로 주문도 하고 이야기도 하니 좋은 손님이었다.
“하지만 좋은 상사는 아니겠 네.”
그냥 좋다고 웃던 과장이라는 사람 말고,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던 다른 직원들의 얼굴을 떠올 린 강진이 피식 웃었다.
부장이 출근을 시킨 것은 아니 지만, 어쨌든 주말에 출근을 하 고 회식까지 해야 했으니 말이 다.
어쨌든 그 나쁜 상사 덕에 처음 으로 사람 손님을 받았으니…….
“기분 좋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강진이 흐뭇한 얼굴로 손님들이 먹고 간 자리를 치우기 시작했 다.
다음 날 아침 강진은 식당 앞을
청소하고 있었다.
스윽! 스윽!
쓰레기들을 모아 쓰레기봉투에 넣은 강진이 잠시 거리를 보았 다.
‘호철 형이 죽었네.’
강진은 최호철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호철…… 강진에게는 힘든 시 기에 만난 좋은 사람이었다. 자 주는 보지 못했지만 힘든 시기에 좋은 이야기를 해 줬고, 보육원
을 나와서는 터전을 잡는데도 도 움을 주었다.
아르바이트 자리부터 고시원 계 으두까지…….
그런 최호철이 죽어서 한끼식당 에 손님으로 온 것이다.
“나보다 다섯 살 많으시니 서른 셋…… 젊으신데 어쩌다가.”
최호철을 떠올리며 한숨을 쉰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옛말대로 산 사람은 사는 거고 죽은 사람 은 죽은 것이다.
비록 귀신이 되어 자신의 가게 에 온다고 해도 말이다.
“일단 냉장고 재고부터 정리하 자.”
가게 안에 들어온 강진이 냉장 고와 술을 세고는 필요한 재료들 을 메모지에 적었다. 그리고 신 수용과 신수귀에게 술과 식재를 주문했다.
주문을 끝낸 후, 강진은 종일 요리 연습장을 보고 있었다. 필
요한 요리가 있을 때마다 요리책 을 보느니 차라리 미리 요리 연 습장을 다 읽어 볼 생각이었다.
신기하게도 요리 연습장은 한 번 보면 기억이 되고, 요리를 따 라 할 수 있으니 읽기만 해도 되 는 셈이었다.
스륵!
〈송이 산적
송이버섯을 손가락 크기 정도로 자르거나 찢어 참기름을 바른다.
소고기도 비슷한 크기로 자른 후 송이와 함께…….
송이버섯은 항암에 좋고, 고혈 압과 심장병에 효과가 있다. 또 한 기력을 증진시키고 정신을 맑 게 하니 먹으면 먹을수록 몸을 이롭게 한다.
또한 설사와 변비에도 좋으니 속을 편안하게 한다.〉
‘송이산적 맛있겠네.’
한 번 해 먹어 봐야겠다는 생각
을 하며 종이를 넘길 때, 문 열 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덜컥!
그에 고개를 들어 홀을 보니 네 명의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아는 얼굴 이었다.
어제저녁에 회식을 하러 온 손 님들 중 과장이라 불린 사람이었 다.
“또 오셨네요.”
강진의 말에 과장이 웃으며 말
했다.
“외식하러 왔는데 영업하시나 요?”
“그럼요. 앉으세요.”
강진이 자리를 가리키자 과장이 자리에 앉으며 기분 좋은 얼굴로 말했다.
“에어컨이 무척 시원하고 좋습 니다. 밖은 덥디더운데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시원하네요.”
과장의 말에 문득 강진이 주위 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에어컨도 안 틀었는데 왜 이리 시원하지?’
가게 안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그런데 마치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놓은 것처럼 가게 안은 무 척 시원했다.
그렇다고 날씨가 선선해진 것도 아니다. 청소하러 가게 밖을 나 가면 후덥지근한 것이 숨쉬기도 힘드니 말이다.
‘혹시 귀신들 때문에 시원한가? 하긴 귀신 하면 음기이니…… 그 럼 귀신 에어컨이라고 해야 하
나? 귀신 에어컨이라 도 안 들고 좋네.’
전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