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강진은 신수용, 신수귀와 커피 를 한 잔 마시고 있었다. 일요일 날 영업하고 사용한 식재와 술을 채우러 둘이 아침 일찍 온 것이 다.
“일요일은 쉬는 날인데, 일요일 에도 장사를 하셨습니까?”
신수용이 한쪽에 쌓여 있는 식 재들을 보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하고 보니 일요일이더군요.”
“하긴 일하다 보면 그럴 수 있 죠. 저도 가끔은 오늘이 일요일 인지 월요일인지 헷갈릴 때가 있 습니다.”
신수용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어제는 일요일이라 영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그 런데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영업을 한 것이다.
그 덕에 어제 과장 가족 손님도
받았고 말이다.
“어떻게, 가게 일이나 손님들은 적응 좀 되십니까?”
신수용의 말에 강진이 가게를 보다가 말했다.
“지내보니 귀신들도 사람하고 별다를 것이 없더군요.”
며칠 하다 보니 이제는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다. 아니 이제는 그냥 말 많은 손님 들일 뿐이었다.
“그럼요. 귀신도 알고 보면 사
람이 죽어서 생긴 존재들이니 사 람과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이 있습 니다.”
“물어보세요.”
“밖엔 날씨가 더운데…… 여기 는 왜 이렇게 시원하죠? 에어컨 도 안 트는데? 아니 에어컨도 없 는데?”
“그거야 귀신들 덕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짐작하고 계셨습니까?”
“이곳의 특이한 점은 귀신 손님 들이니…… 그럴 거라 생각을 했 습니다. 그리고 귀신하면 으스스 아니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신수용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귀신 나온다는 곳에 가면 서늘하기는 하죠.”
그런 신수용을 보던 강진이 입 을 열었다.
“그리고 하나 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저기…… 여러분들은…… 사람 입니까?”
귀신들이 오는 식당의 일을 돕 는 신수호 형제들의 정체가 궁금 했다.
강진의 물음에 신수용이 웃었 다.
“저희야 물론 사람입니다.”
“아! 사람이세요?”
“사람처럼 안 보이십니까?”
“사람처럼 보이지만…… 여기 오는 손님들도 사람처럼 보이기 는 하죠.”
강진의 말에 신수용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사람이 맞습니다.”
“그럼 사람인데 여기 일은 어떻 게?”
“이 사장님도 사람인데 여기 일 하고 계시잖아요.”
“그건…… 그렇죠.”
강진의 답에 신수용이 말을 했 다.
“저와 형제들은 고아입니다.”
“ 고아요?”
“어머니가 어릴 때 데려다가 길 러주셔서 여기서 자랐습니다. 그 리고 어머니가 일하실 때는 처녀 귀신들이 저희를 돌봤습니다. 그 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귀신들과 접하게 된 겁니다.”
“그렇군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수용 이 가게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 말고도 사람이면서 저승 쪽 일을 하는 이들이 꽤 있습니 다.”
“저 말고도 있습니까?”
“세상에 유일한 것은 없습니다. 저와 거래를 하는 식당이 전주와 홍천에 있으니 나중에 한 번 가 보세요. 요즘은 교통이 좋아서 당일치기로 갔다 오기도 편할 겁 니다.”
“귀신들한테 밥 주는 식당이 여 기 말고도 더 있습니까?”
“서울에만 귀신이 있겠습니까? 한국에만 해도 일곱 개 정도 영 업 중입니다.”
신수용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귀신에게 식 사를 파는 식당이 더 있다는 것 도 놀랐지만, 한국에 그런 곳이 일곱 개나 있다니…….
“식당이 일곱 개?”
놀란 눈으로 중얼거리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일하면서부터 매일매일이 놀람의 연속이네요.”
“앞으로도 꽤 생길 겁니다.”
말을 하던 신수용이 문득 강진 을 보았다.
“아직은 귀신 안 보이시죠?”
“영업시간에는 늘 보죠.”
“영업시간 말고 평상시에는 아 직 안 보이시나 보군요.”
신수용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어? 혹시 영업시간 외에도 귀 신을 보게 되는 겁니까?”
강진의 물음에 신수용이 가게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귀신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음 기가 많고 해서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이렇게 시원합니다. 그 말은 이곳이 음기로 가득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곳에 있다 보 면 몸에 그 기운이 쌓이고…… 그러다 보면 가게 밖에서도 귀신 을 보게 될 겁니다.”
“기운이라면?”
“음기, 혹은 귀기라고 해야겠 죠.”
“혹시 그 기운이라는 것 몸에 나쁘거나 한 것은 아닙니까? 이 름만 들어서는 사람한테 딱히 좋 은 것 같지는 않은데?”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여름 에는 더위 안 타고, 겨울에는 추 위 안 타게 될 겁니다.”
“몸에 좋은 겁니까?”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해야겠
군요. 몸에 안 맞는 사람은 정말 안 맞지만 몸에 맞는 사람은 여 기 있는 것만으로 보약을 원 샷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저는?”
“가게 주인이시니 몸에 잘 맞을 겁니다.”
“그렇군요.”
강진의 목소리는 그다지 놀랍거 나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가 보 다 하는 수준이었다.
그에 신수용이 슬며시 말했다.
“귀신을 보게 된다는데 놀랍거 나 겁나지 않으십니까?”
“귀신이야 여기서도 매일 보는 데요.”
“그거야 현신을 한 귀신들이 고…… 밖에서 보는 귀신들은 여 기서 보는 것과 조금 다를 겁니 다.”
“다르다면 어떤 식으로?”
궁금해하는 강진을 보며 신수용 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보시면 알 겁니다. 아! 그리고
너무 무서워하지 마세요.”
“무섭습니까?”
“여기 안에서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기는 할 겁니다. 그리고…… 무서워하는 것 알면 장난치는 놈 들이 있으니, 무서워도 무서운 티만 내지 마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조금 되네요.” 걱정
“그렇게 걱정되시면 여기 는 귀신들한테 도와달라고 다니 하세
요. 그럼 와서 도와줄 겁니다.”
“도와주기도 합니까?”
“자기 밥 주는 사람인데, 모르 면 몰라도 알면 다들 도와주려 할 겁니다. 저도 초반에 장사할 때 여기 밥 먹으러 오던 귀신들 도움 여럿 받았습니다.”
“어떤 도움요?”
“어디 음식점에 어떤 식재가 필 요하다거나 어디 음식점에서 지 금 납품받는 식자재에 불만이 있 다 정도를 알려 줬습니다. 그것 만 알아도 거래 트는 데 도움이 많이 되죠.”
“아••••••
강진이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 덕이자 신수용이 마시던 커피를 마저 먹고는 말했다.
“커피 잘 먹고 갑니다.”
“벌써 가시게요?”
“저희도 장사해야죠. 그럼 수고 하세요.”
신수용이 신수귀를 데리고 가게 를 나서는 것을 보던 강진이 말 했다.
“신수조 씨를 한 번은 봐야 할 텐데.”
“어디 가게 고칠 곳 있습니까?”
“그건 아닌데요. 그래도 인사는 한 번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요.”
신수호 변호사의 형제들 중 유 일하게 안 본 것이 바로 인테리 어 사업을 하는 신수조였다.
강진의 말에 신수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가 워낙 바빠서…… 한 번
밥 먹으러 오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한 번 뵙고 싶다고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신수용이 다시 나가자 강진이 커피잔들을 치웠다. 설거 지를 한 강진이 한쪽에 쌓인 식 재들을 보았다.
식재들에는 강진이 주문을 한 것 외에도 채소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귀신들을 상대로 하는 음식 장
사라도 재료는 신선한 것을 써야 한다며, 신수용이 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채소들을 수거하고 새로 채소들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름에 나는 식재료들도 있었다.
“이게 질경이라고 했지?”
뭔지 모를 녹색의 나물을 보던 강진이 요리 연습장을 꺼내 펼쳤 다.
〈질경이 나물
깨끗한 물에 씻어 뜨거운 물에 삶아줘야 한다. 잎이 질겨 살짝 데치면 안 되고 아주 푹 삶아야 한다.
질경이의 색이 진하게 변하면 먹기 좋게 가위로 자르고 된장과 고추장을…….
나물로 먹어도 좋고, 비빔밥에 넣는 재료로 써도 맛이 좋다.
질경이는 길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물이면서도 몸에는 참 좋 다.
질경이 뿌리를 말려 차처럼 달 여 마시면 항암 효과에 좋다. 또 간장의 기능을 높여주고 기침을 그치게 하며 갖가지 염증과 궤 양, 황달에도 효과가 있으니 자 주 먹으면 먹을수록 몸을 이롭게 한다.〉
“질경이라는 게 이렇게 몸에 좋 은 거야?”
조금 잎이 넓고 큰 시금치 같은 것이 몸에 이렇게 좋나 하는 생 각을 하며 강진이 질경이를 보다
가 주방으로 식재료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식재료들을 냉장고 안에 넣은 강진이 오늘 들어온 나물들로 음 식을 하기 시작했다.
요리 연습장에 적힌 대로 질경 이 나물을 뚝딱 만들어낸 강진이 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담백하면서도 고소했다. 그리고 좀 씁쓸한 맛도 났는데 그게 나 쁘지 않았다.
나물을 반찬 통에 넣은 강진이
다른 식재료를 보았다.
“만드는 김에 몇 개 더 만들 까?”
요즘 강진은 음식을 먹는 재미 를 느끼고 있었다.
전에는 배만 채울 수 있으면 족 했다. 싸고 양 많은 음식, 혹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만든 맛 있는 음식을 먹다 보니 새로운 맛에 눈을 뜨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신수용이 가져다준 식재에서 오이를 꺼냈다. 오이를 보니 엄마가 해 주던 오이 겉절 이가 떠올랐다.
오래 걸리지도 않고, 뚝딱뚝딱 무쳐 주면 그렇게 맛있었는 데…….
“오이무침…… 맛있겠다.”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요리 연 습장을 펼쳐 오이 겉절이를 찾아 서는 곧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