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화
강진은 신수호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강진의 이야기를 들은 신수호가 잠시 있다가 말했다.
[그 말씀은 귀신들을 제외한 사 람들에게는 제대로 된 음식값을 받겠다는 것입니까?]
“손님들 중 한 분이 그렇게 말 씀을 하시더군요. 정해진 가격이 없으니 부담이 된다고요.”
[부담이라…….]
“배고프고 추운 귀신들을 위한 식당이니 그들에게서 돈을 안 받 아도 되지만…… 사람들은 일단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도 장사는 장사니까요.”
[아시겠지만 한끼식당은 돈을 벌기 위한 곳이 아닙니다. 귀신 이든 사람이든 배고픈 자들에게 한끼를 해 주는 곳입니다. 또 사 람들이 돈을 내고 가지 않는다 해도 이강진 씨의 JS 금융 계좌 에는 입금이 됩니다. 그러니 돈 을 안 받는다고는 할 수 없습니
다.]
신수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을 내지 않 아도 상관이 없었다. 돈을 내고 가지 않아도 강진은 배고픈 사람 에게 밥을 주는 선행을 한 것이 라 JS 금융에는 입금이 된다.
선행을 하면 JS 금융에 돈이 들 어오고, 악행을 하면 JS 금융에 서 돈이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문득 뭔가에 생각이 미쳐서는 말했다.
“잠깐만요.”
[왜 그러십니까?]
“변호사시니 아시겠지만…… 사 람들이 다 착한 것만은 아닙니 다. 돈이 없는 사람이야 여기서 공짜로 밥 먹는 것이 죄가 되지 않겠지만, 돈 있고 먹고살 만한 사람이 일부러 돈을 안 내거나 조금 내게 되면 죄를 짓게 되는 것 아닙니까?”
아직까지는 손님들이 착해서 알 아서 돈을 내고 갔지만, 진상이 라 할 수 있는 손님들도 있다.
술집이나 밥집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돈 좀 있어 보이는 사람들 이 트집을 잡으며 돈을 안 내려 고 한 적도 있다.
게다가 한끼식당에는 떡하니 마 음에 들면 돈을 내라고 적혀 있 으니…… 마음에 안 든다고 트집 을 잡고 돈을 안 내려 할 사람들 도 분명 있을 것이다.
말이 없는 핸드폰을 힐끗 본 강 진이 말을 이었다.
“그럼 견물생심이라고…… 제가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내라 했으 니 제가 그들에게 죄를 지으라고 하는 격입니다.”
[일리가 있군요.]
신수호의 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람 손님에게는 주는 대로 돈을 받지 않고 메뉴 가격 을 정하고 싶습니다.”
[여사님께서는…….]
“여사님은 저녁에 귀신들을 상 대로만 장사를 하시지 않았습니 까?”
[그건 그렇습니다.]
“상황이 다르니 영업도 바뀌어 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여사님에게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사님은 돌아가셨…… 아!”
강진이 의아한 듯 말을 하다가
작게 탄성을 토했다.
“저승과도 연락을 하십니까?”
김복래 여사는 JS 금융의 VIP라 고 했다. 그런 분이 귀신으로 이 승을 떠돌지는 않을 것이니 분명 천당이나 극락처럼 좋은 곳에 있 올 것이다.
그런 영혼과 연락을 하려면 저 승에 연락을 해야 할 것이다.
[연락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으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전화를 기다렸다.
“저승에 있는 영혼에게도 연락 을 한다니…… 확실히 내가 이상 한 곳에 발을 들이기는 했구나.”
자신이 이상한 곳에 발을 담갔 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고개를 젓던 강진이 문득 핸드폰 을 보았다.
“저승에 연락을 할 수 있다? 그 럼…… 혹시 엄마, 아빠 소식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강진이 핸드폰 을 뚫어지게 보았다. 빨리 전화 가 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핸드폰이 울렸 다.
“여보세요.”
[여사님께서 그렇게 하라 하셨 습니다.]
“그럼 사람 손님에게는 정해진 가격대로 돈을 받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여사님께서 밥 값은 주변과 비슷하게 하라 하셨 습니다.]
“주변 시세와 비슷하게 하라고 요?”
[음식값을 너무 싸게 하면 주위 음식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하셨습니다. 사람들을 상대로 음 식을 팔 거라면 주위 상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하라 하셨습니다. 또한 돈이 없는 사 람들에게는 똑같이 돈을 받지 말 고 주라 하셨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음식을 주 는 건 저도 괜찮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그 럼…….]
“저기 잠시만요.”
[말씀하십시오.]
“저기…… 혹시 돌아가신 저희 부모님 소식을 알 수 있을까요?”
[…….]
신수호가 답이 없자 강진이 다 시 말했다.
“안 됩니까?”
[저승의 일을 사람이 알아서 좋 을 것은 없습니다.]
“신수호 씨도 많이 알고 있지 않습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 럼 더 궁금하신 것이 있으십니 까?]
더 물어도 답을 해 줄 것 같지 않은 신수호의 목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저희 부모님…… 저승에 계십 니까?”
강진의 물음에 신수호가 잠시 말이 없다가 말했다.
[저승에 계십니다.]
신수호의 답에 강진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최소한 귀신이 되어 이승을 배고프게 떠돌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혹시 JS 금융의 저승 돈…… 부모님에게 이체할 수 있습니 까?”
JS 금융도 은행권이라면 이체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부모 님이 저승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는 몰라도 돈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저승의 추위와 배고픔은 지독하 다 했으니 말이다.
[안 됩니다.]
“지장보살께서는 저에게 돈을 주셨습니다. 저승에서도 돈을 주 고받을 수 있다면 저도 할 수 있 는 것 아닙니까?”
혼령을 승천시켰을 때 지장보살 이 백만 원짜리 수표를 주었다. 그럼 죽은 자 간에도 돈이 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강진 씨는 지장보살이 아닙
니다.]
‘자격이 없다는 건가?’
“후우! 깐깐하군요.”
[죄지은 자가 선한 자들에게 돈 을 갈취하지 못하도록 한 저승의 법도입니다.]
“알겠습니다.”
그것으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한숨을 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생각을 해 봐도 어쩔 도리가 없 다.
아니 생각을 하면 마음이 심란 할 뿐이었다.
“변호사님 말이 맞네. 저승의 일을 사람이 알아서 좋을 일은 없어.”
돌아가신 부모님이 저승에서 고 생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심란할 테고, 잘 지내고 있다 하면 또 보고 싶어 심란할 것이다.
이래저래 심란할 뿐이었다.
그에 강진이 아직 치우지 않은 식탁의 그릇들을 정리하기 시작
했다.
뭐라도 해야 이 심란한 머리가 정리가 될 것 같았다.
심란한 마음을 씻어 내리는 것 처럼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한 강진은 화이트보드를 꺼냈다.
깨끗하게 화이트보드를 지운 강 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글을 적었다.
〈제육덮밥 7천 원.
소주와 맥주는 4천 원입니다.
손님이 없을 때에는 원하시는 메뉴를 만들어 드립니다.
(단 재료가 있고 제가 만들 수 있는 음식에 한합니다. 문의해 주세요.)
메뉴에 없는 음식 가격은 인터 넷 검색 후 그 시세대로 받겠습 니다.
배고픈데 돈이 없으신 분들은 주문 전 말씀해 주십시오.
돈이 없어도 마음 편하게 드시
고 음식값은 다음에 돈 생기시면 그때 주시면 됩니다.
음식은 늘 배부르게 드세요.〉
화이트보드에 빽빽하게 글을 적 은 강진이 내용을 한 번 확인하 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괜찮겠어.’
제육덮밥 말고 다른 메뉴를 적 을 수도 있지만, 강진은 메인을 제육덮밥으로 정했다.
일단 만들기 쉽고 조리 시간도 짧다.
손님이 많을 때는…… 물론 언 제 많아질지는 알 수 없지만, 어 쨌든 많아지면 빨리 낼 수 있는 음식이었다.
강진이 화이트보드를 보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그에 핸드 폰을 본 강진의 얼굴에 반가움이 어렸다.
〈광현 형님〉
강진보다 한 학번 위의 형으로 지금은 학교에서 조교로 있는 최 광현이었다.
1학년 때 학과 MT에서 알게 돼서 친하게 지내는 형이었다. 그리고 여러모로 강진을 챙겨주 는 형이기도 했다.
“형님!”
[우리 강진이 오랜만이다. 잘 지내고 있지?]
“저야 잘 지내고 있죠. 형님은
요?”
[나도 잘 지내고 있지. 그나저 나 요즘 더워도 너무 더운데…… 노가다 힘들지?]
“아…… 저 노가다 그만뒀어 요.”
[학비 벌써 다 모았어?]
“그런 것도 있고 지금은 다른 거 하고 있어요.”
[다른 거? 뭐 하는데?]
“음식 장사하고 있어요.”
[음식점 아르바이트 하나 보구 나.]
강진이 직접 음식 장사를 할 거 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 최광현 이 웃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지금 같이 더운 날 노가다 하면 쓰러진다.]
“덥기는 엄청 덥더군요.”
[학과 사무실에 앉아 있는 나도 문 하나 나서면 숨 막혀 죽을 것 같은데 너는 오죽했겠냐.]
이어서 잡담을 좀 하던 강진이
말했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아! 다른 건 아니고 너 학교 좀 와.]
“학교요?”
[너 아르바이트 시간 몇 시부터 몇 시야?]
“아침부터 하기는 하는데…… 무슨 일이신데요?”
[그게…… 아니야, 직접 보고 이야기하자. 언제 올 수 있냐?
어지간하면 오늘이나 내일 봤으 면 좋겠는데. 아르바이트 몇 시 에 끝나? 늦게 끝나면 형이 그쪽 으로 갈게.]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이는 최광 현의 목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럼 지금 갈까요?”
[지금? 너 아르바이트는 어떻게 하고?]
“손님도 없어요. 저녁 11시 전 까지만 돌아오면 돼요.”
[그럼 무리 안 되면 와.]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오기나 해. 형이 괜한 일로 너 오라고 하겠냐? 빨리 와라잉.]
“알았어요. 지금 가면…… 한 시간이면 도착할 겁니다.”
[알았어. 형이 음료수 차갑게 해 놓고 기다린다.]
그걸로 전화를 끝낸 강진이 무 슨 일인가 싶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가게 불을 끄고는 이층으로 올라가 옷 을 갈아입고는 내려왔다.
* * *
신림에 위치한 서신대에 도착한 강진은 심리학과 사무실로 향했 다.
톡톡톡!
문을 두들기고 안으로 들어갔
다. 방학 중이라 사무실 안에는 조교 둘이 전부였다.
“내 새끼 왔구나.”
최광현이 손을 드는 것에 강진 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형이 부르니 왔습니다.”
“그래, 잘 왔어.”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옆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 조교 형에게 도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그래.”
친분이 깊지 않기에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강진이 최광현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강진의 말에 최광현이 힐끗 조 교를 보고는 말했다.
“나 담배 한 대 피우고 온다.”
최광현의 말에 조교가 혀를 찼 다.
“야! 그냥 말해. 저놈 힘든 건
나도 아는데 뭐라고 하겠냐?”
“그러냐?”
“그래.”
조교의 말에 최광현이 웃으며 엄지를 세웠다.
“넌 좋은 놈이다.”
“이야기해, 내가 담배 피우고 올 테니까.”
“쌩유!”
“퍽유다.”
조교가 담배를 들고 나가자 최
광현이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에 강진이 옆에 앉았다.
그에 최광현이 뒤에 있는 냉장 고에서 음료수를 두 개 꺼내왔 다.
최광현이 주는 음료를 받은 강 진이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철진 형 말하는 것 보니까. 저한테 뭔 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데?”
“눈치는 빨라.”
“눈치가 바로 심리학 기초 아니
겠어요.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이 에요?”
강진의 물음에 최광현이 웃었 다.
“너 인턴 할래?”
“ 인턴요?”
“월급 140만 원에 인턴 경력도 생긴다. 9월부터 12월까지야. 어 때? 대박 아니냐?”
인턴 월급으로 140이면 최상급 은 아니더라도 상급은 된다.
“수업은요?”
“취업으로 학점 인정해 준다. 어때 할래?”
“근데 그거 지원하는 사람 많을 텐데…… 제 스펙으로 되겠어 요?”
하늘의 별 따기이기는 하지만, 인턴으로 들어가서 정직원으로 취업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많은 대학생들이 인턴에 지원을 하는데, 인턴도 스펙을 보고 뽑는다.
그리고 강진의 스펙은 그리 좋 지 않았다. 아르바이트하면서 학 비를 마련하고 학교를 다니던 강 진이니 좋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안 되지.”
최광현의 말에 강진이 눈을 찡 그렸다.
‘이 형이 장난하는 것도 아니 고……
강진이 눈을 찡그려도 최광현은 실실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