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화
강진은 임상옥과, 연구실에 나 온 학생들과 맥주를 먹고 있었 다.
연구실에는 임상옥과 최광현 그 리고 방학에도 나와 있는 연구실 학생 둘이 전부였다.
연구실에 있는 간이침대에 앉은 채 임상옥은 오징어 입을 까고 있었다.
툭! 툭!
마른 오징어 입을 까는 것은 불 편했다. 그리고 까고 난 후 남는 것은 작은 오징어 입이니 고생에 비해 남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은근 까는 재미가 있는 듯 임상옥은 오징어 입을 까서는 내려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징어 입을 최광현 과 다른 학생들이 하나씩 집어 먹고 있었다.
오징어 입을 까던 임상옥이 맥 주를 한 모금 먹고는 입을 열었 다.
“문제.”
갑자기 나온 문제라는 말에 학 생들이 그를 보았다.
가끔씩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문제를 내는 임상옥 이라 학생들은 익숙했다.
“강진이가 인턴을 가면 누가 그 를 가장 싫어할까?”
맥주를 마시며 학생을 보는 임 상옥의 시선에 최광현이 슬쩍 입 을 열었다.
“같은 인턴들입니다.”
“정답. 이유는?”
“회사에서 인턴을 뽑을 때, 인 턴들에게 관리자들이 하는 말이 일 잘하고 평가 좋으면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인턴 중에 한두 명 정도는 정직 원으로 뽑기도 합니다. 그러니 인턴들은 같은 인턴이지만 서로 가 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최광현이 강진 을 보았다.
“그리고 강진이 같은 경우는 무 역과 관련이 없는 심리학과 인턴
입니다. 무역회사 인턴이니 무역 학과나 경영학과 학생들일 테니 그들 입장에서는 인턴 중에서도 공통의 적이 생긴 셈입니다.”
최광현의 말에 임상옥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놀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공부를 하기는 하는구 나.”
“대학원 과정 밟고 있는데, 이 정도는 알아야죠.”
최광현의 말에 임상옥이 강진을
보았다.
“가면 재밌을 거다.”
“재미보다는 힘들 것 같은데 요.”
“심리학이란 사람들 속에서 부 대껴야 느는 거다.”
임상옥이 간이침대에 놓여 있는 심리학 책을 집었다.
“이런 책 수십 권을 봐도 입만 번지르르해질 뿐이야.”
“그거 교수님이 쓰신 책인데
요.”
최광현의 말에 임상옥이 혀를 작게 차고는 말했다.
“내 직업이 심리학 교수야. 그 러니 입이 번지르르해야 돼.”
당당하게 말을 한 임상옥이 강 진을 보았다.
“일 열심히 해. 네가 잘하면 후 배들 취업 길 하나 더 열리는 거 니까.”
“인턴으로 정직원 되기 어렵다 는데요?”
“그러니 잘하라는 거지.”
“그…… 야근하라고 하면 어떻 게 하죠?”
“수당 챙겨 준다고 하면 하고, 안 챙겨 준다고 하면 하지 마.”
“하지 마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열정 페이 어쩌고다. 열정적으로 일을 하려면 열정을 바칠 만큼 돈을 줘야 하는 거다. 돈도 안 주고 열정만 보이라는 회사는 내가 싫 어. 돈 주면서 일 시키는 시간만
열심히 해.”
임상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시간을 힐끗 보고는 말했 다.
“저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 습니다.”
“그렇게 해.”
강진이 일어나자 최광현이 손을 들었다.
“형이 조만간 네 가게 한 번 갈 게.”
“그러세요.”
강진이 임상옥에게 고개를 숙였 다.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가고, 내일쯤에 회사에서 연락 갈 거다.”
임상옥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다시 숙이고는 문을 열고 나갔 다.
그런 강진을 보던 임상옥이 다 시 오징어 입을 까기 시작했다. 멍하니 오징어 입을 까고 있자니
강진의 말대로 머릿속이 비워지 는 느낌이었다.
‘집에 갈 때 오징어 입이나 좀 사가야겠군.’
심리학을 해서인지 사람을 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분석을 하 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늘 머리가 무겁 고 피곤한 느낌이었는데 이 짓을 하고 있으니 좀 가벼워지는 듯했 다.
* * *
강진은 귀신들과 술을 먹고 있 었다.
‘요즘 매일 술을 먹네.’
귀신들은 자기들만 먹으면 되는 데도 꼭 와서 한 잔씩 하라는 말 을 한다.
앞으로 귀신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면 그들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할 듯해, 같이 자리를 하다 보니 이렇게 술자리가 되어 버리
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이빨을 뽑아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 어주랴! 내가 지금은 좀 순둥해 도 그때는 좀 살벌했지.”
“미국에 갔을 때였나? 한국은 자동차 사고가 나면 번호를 교환 하잖아. 그런데 거기서는 총을 꺼내는 거야.”
여전히 귀신들은 자신들의 이야 기만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저 일방통행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귀신들 사이에서 강진은 배용수, 최호철과 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도 역시나 자신들 이야 기만을 하고 있었다.
“우리 숙수님 김치가 진짜 맛있 는데. 먹고 싶다! 운암정 김치!”
“소매치기 조직을 잡느라 내가 지하철에서 열흘 동안 잠복했다 는 것 아니냐.”
그런 두 사람을 보던 강진이 입
을 열었다.
“혹시 무역 쪽 일에 대해 아는 귀신이 있나요?”
강진의 말에 가게 안이 순간 조 용해졌다. 귀신들은 자기들 이야 기만 하지만 강진의 말에는 반응 을 했다.
그리고 강진이 묻는 것에는 아 는 대로 답을 해 주었다.
“무여 9”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무역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 하게 됐어.”
“그럼 여기 가게는 어떻게 하 고?”
“여기야 저녁 11시부터 새벽 1 시까지만 열잖아. 인턴 일 하고 퇴근하면 여기 열어야지.”
“인턴이면 굳이 무역 쪽에 대해 몰라도 되지 않나? 운암정 초보 요리사들은 일 년 동안 요리는 손도 못 대고 청소하고 재료 손 질만 하는데.”
“그래도 무역에 대해 어느 정도 는 알고 가야 하지 않겠어?”
강진의 말에 귀신 한 명이 다가 왔다. 배가 불룩 나온 중년인이 었다.
“무역이라면 바로 나지.”
중년인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무역에 대해 좀 아세요?”
“그럼! 내가 강 인터내셔널 창 립 멤버인데.”
“그러세요?’’
당연히 강 인터내셔널이 무슨 회사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강진 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귀신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럼 그 이야기 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알아 서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었다.
“자! 그럼 무역이 뭐냐……
중년인이 탁자에 있는 술잔 두 개를 앞에 놓고는 소주를 따랐
다.
쪼르륵! 쪼르륵!
두 개의 잔에는 술이 서로 다르 게 따라졌다. 한 잔에는 넘칠 정 도로 가득, 그리고 다른 한 잔에 는 바닥에만 겨우 깔릴 정도였 다.
“물건이란 많으면 가격이 떨어 지고, 적으면 가격이 오르게 되 어 있어. 그럼 무역은 여기 많은 물건을 적은 곳에 가져다 파는 거지.”
중년인이 가득 찬 잔의 술을 작 은 술이 있는 잔에 부었다.
쪼르륵!
그렇게 절반 정도 부은 잔을 내 려놓자 두 개의 잔의 술이 같아 졌다.
그러고는 중년인이 한 잔을 강 진에게 주고는 한 잔을 자신이 들었다.
“많은 곳에서 물건을 싸게 사 서, 적은 곳에 물건을 비싸지 않 게 파는 것! 이것이 무역이다.”
“싸게 사서 비싸지 않게 파는 거요?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 이 아니고요?”
“이 사장이 좋은 질문을 했어.”
“그렇습니까?”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은 작은 장사치들이 하는 거고. 우 리 같이 큰 사업가들은 싸게 사 서 비싸지 않게 파는 거야. 장사 란 한 번 하고 말 것이 아니니 까.”
“그렇군요.”
“무역은 이것만 기억하면 돼.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물건이 간다, 싸게 사서 비싸지 않게 파 는 것. 이게 무역의 핵심!”
핵심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중 년인을 보며 강진이 물었다.
“그건 알겠는데…… 실제 사용 할 수 있는 팁은 없습니까?”
중년인이 한 말은 너무 포괄적 이었다.
“아이템 선정을 잘해야 해.”
“아이템요?”
“우리나라엔 자동차들이 많은 데, 그렇다고 그게 싸?”
“아니죠.”
“그것처럼 많다고 다 싼 것은 아니야. 그리고 적다고 다 비싼 것도 아니지. 귀해서 적을 수도 있지만, 안 써서 안 만들어 적을 수도 있거든. 즉 물건이 적은데 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물건 을 가져다 팔아야 하는 거야. 무 역은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사람 들이 쓸 수 있도록 연결을 해 주 는 거다.”
“그런 아이템이 뭐가 있을까 요?”
“내가 아는 아이템은 이미 아이 템이 아니지.”
“왜요?”
“내가 살아 있을 때는 폴더폰이 최신이었어. 설마 한국 중고 폴 더폰을 인도에 가져다 팔 생각은 아니지?”
“아……
중년인의 말은 즉 자신이 알던 아이템들은 지금 시대 아이템과
맞지 않다는 말이었다.
“저기 성함이?”
“나 충만, 박충만.”
“앞으로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 도 되지요?”
“그렇게 해.”
그러고는 박충만이 슬며시 의자 를 가져다 앉고는 말을 하기 시 작했다.
“내가 예전에 태국에서……
다시 박충만이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다시 귀신들 도 제각기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 기 시작했다.
다시 시끌시끌해지는 가게를 보 며 강진이 일어나 탁자들을 보았 다.
“음식 더 필요하신 분?”
강진의 말에 귀신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나 계란 프라이.”
“네.”
귀신의 주문에 강진이 주문으로 가서는 프라이팬에 불을 올렸다.
촤아악!
계란 프라이를 열 개 정도 한 강진이 그릇에 올렸다.
“계란 프라이 드실 분!”
강진의 말에 계란 프라이를 주 문한 귀신 외에도 몇이 손을 들 었다.
그에 그들 그릇에 계란들을 올 린 강진이 몇 개를 가지고 배용 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
다.
“계란 프라이……
말을 하던 강진이 문을 보았다.
덜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 것 이다. 문 앞에는 네 명의 사람, 아니 귀신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상대가 귀신이라는 것 을 강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귀신처럼 보이니 말이다.
희끄무레한 것이 조금은 반투명 해 보였다.
덜컥!
자기도 모르게 계란 프라이가 있는 접시를 탁자에 떨어뜨린 강 진이 입을 벌렸다.
‘귀신이다.’
사람같이 보이는 귀신들에 적응 을 하고 나니 이제는 진짜 귀신 같이 보이는 귀신들이 나타난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