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강진은 주방에서 한방 약과라 적힌 요리법에 따라 한과를 만들 고 있었다.
한방 약과 요리법대로 감초에 밀가루와 쌀가루를 적당히 섞은 강진이 그것을 체에 걸러 반죽하 고는 모양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문이 열렸다.
덜컥!
문이 열리며 김소희가 안으로 들어왔다. 밖에서 봤던 것과 달 리 김소희는 전에 봤던 모습이었 다.
단아한 한복을 입고 머리를 곱 게 빗은, 예쁜 소녀의 모습 말이 다.
‘검은 어디다 둔 거야?’
검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본 강진 이 말했다.
“약과는 좀 기다리셔야 합니 다.”
“기다리겠네.”
김소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약과를 기름에 튀기기 시 작했다.
촤아악! 촤아악!
비가 오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약과가 튀겨지기 시작하자, 강진 이 홀을 보았다.
홀에서는 김소희가 허리를 세운 채 앉아 있었다.
‘소주부터 갖다 먹을 줄 알았는 데……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약과 가 다 튀겨지자 체에 올린 다음, 미리 만들어 놓은 조청 시럽에 담가 꺼냈다.
힐끗!
시간을 확인한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요리 연습장이 요물이 기는 요물이네.’
막상 해 보니 어렵지는 않았지 만, 어쨌든 한과라는 음식을 이 십 분 만에 만들어 낸 것이다.
웃으며 한과를 그릇에 담은 강 진이 밑반찬과 함께 탁자에 올려 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소주 주게나.”
“알겠습니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냉장고에 서 소주 두 병을 꺼내 탁자에 놓 았다.
소주를 딴 김소희가 말없이 잔 을 채우고는 한잔 들이마셨다.
그리고…….
김소희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는 것을 본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술 참 맛있게 먹네.’
보는 사람이 시원할 정도로 김 소희는 참 술을 맛있고 달게 마 셨다.
‘나이 좀 먹고 죽었으면 미인 소리 들었을 텐데……
김소희도 예쁜 편이기는 하지 만, 아직 어려서 그런지 미인이 라는 표현보다는 귀엽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귀여운 여동생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김소 희를 보았다. 그녀는 말없이 약 과를 먹으며 소주를 마시고 있었 다.
그렇게 한 병을 다 마시고, 어 느새 두 병째의 소주를 딴 김소 희가 마저 소주를 마시고는 몸을 일으켰다.
“잘 먹었네.”
삼십 분도 안 돼서 소주 두 병 을 다 마시고 일어나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주방을 나왔다.
“저……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았다.
“말해 보게.”
“늘 혼자 오시던데……
다른 처녀귀신들은 자기들끼리 패를 이뤄서 오는데, 김소희만 늘 혼자 오는 것이다.
“다른 분들하고 같이 식사하시 는 것이 어떠십니까?”
“나 혼자 오는 것이 불편한가?”
“불편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혼자 오시니 저야 편하고 좋죠. 대신…… 혼자 드시는 것보다 여 럿이서 먹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 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그를 잠시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난……
잠시 뭔가를 말할 듯 입을 우물
거리던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잘 먹었네.”
더는 말을 하지 않고 김소희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강진이 보았 다.
‘외로울 텐데……
조선 시대 귀신이기는 하지 만…… 생긴 것은 여고생 정도밖 에 안 되는 김소희가 늘 혼자 다 니는 것이 안쓰러운 것이다.
* * *
월요일 아침 일찍 강진은 정장 을 차려 입고는 거울에 모습을 비춰 보고 있었다.
“조금 불편한데.”
강진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머리를 긁었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 딱 그 짝 이었다.
하긴 편하다면 이상할 일이었 다. 태어나서 처음 입어보는 정
장이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옷매무새를 보던 강진이 넥타이를 목에 걸고는 당겼다.
지퍼 형식의 싸구려 넥타이를 목에 맨 강진이 목을 비틀었다.
우두둑! 우두둑!
“자! 가자.”
오늘은 강진이 인턴으로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목을 비튼 강진 이 집을 나섰다.
그리고 강진은 가게 앞에 모여
있는 귀신들을 볼 수 있었다.
“다들 들어가세요.”
그가 가게 문을 열어주자 귀신 들이 하나둘씩 가게 안으로 들어 가기 시작했다.
가게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귀 신들이 안쓰러워, 아침에 가게를 열고 귀신들을 안으로 들인 것이 다.
“오늘부터 인턴이면 저녁에나 오는 건가?”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회사 가면 귀신들 보여도 아는 척하지 마. 미친놈 취급당할 거 야.”
“그럴 생각이야.”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말했다.
“귀찮게 하는 귀신 있으면 나 불러라.”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네.”
그동안 자주 봐서 좀 익숙해지 기는 했는데도…… 여전히 최호 철의 모습은 무서웠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 기다리고 있 을게.”
마치 마누라 같은 말을 하는 배 용수를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시 고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귀신이 출근 배웅을 다 해 주 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최대 한 빠르게 태광무역이 있는 빌딩 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끼식당에서 오 분 정도 거리 에 위치한 빌딩에 선 강진이 건 물을 올려다보았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빌딩을 보며 옷차림을 다시 정리 한 강진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 다.
건물 안은 아직 한산했다. 지금
시간이 여덟 시니, 아직 본격적 인 출근 시간이 아닌 것이다.
“9층 인사과로 오라고 했는 데……
한쪽 벽에 있는 층별 안내도를 보던 강진이 안내 데스크로 다가 갔다.
“오늘 태광무역 인턴으로 온 이 강진입니다. 안에 들어가려면 어 떻게 해야 합니까?”
강진이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가리켰다. 출입구에는
지하철에서 보는 것 같은 개찰구 가 있고 안으로 들어가려면 출입 증을 대야 했다.
“잠시 기다리세요.”
안내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어 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직원이 강진에게 말했다.
“아직 직원분들 출근 안 하신 것 같은데…… 오늘 몇 시에 약 속이 되어 있으신가요?”
“아홉 시요.”
강진의 말에 직원이 웃으며 시
계를 보았다.
“열심히 하시려는 열의는 알지 만, 직원들도 출근 안 했는데 너 무 일찍 오셨네요.”
“그런가요?”
“빨라야 8시 반은 돼야 직원들 이 출근을 할 겁니다. 여기 앞 커피숍에서 커피라도 한잔하시면 서 기다리세요.”
직원이 손으로 빌딩 한쪽을 가 리켰다. 거기에는 구내 커피숍과 편의점과 같은 편의시설이 자리
하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편의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커피 숍은 비쌀 것 같으니 편의점에서 캔 커피라도 하나 먹으려는 것이 다.
편의점에 들어간 강진이 캔 커 피를 하나 사서는 의자에 앉았 다.
건물 내부가 보이는 편의점 유 리창 앞에 앉은 강진이 캔을 땄 다.
따악!
캔을 딴 강진이 커피를 마시며 유리창 너머의 사람들을 보았다.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던 강진은 옆에서 들리 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옆에는 이제는 단골이라 할 수 있는 장 과장이 그를 보고 있었 다.
“긴가민가했는데 이 사장님이 맞군요.”
“안녕하세요.”
“오늘부터는 같은 회사 동료군 요.”
“잘 봐주세요.”
“물론 잘 봐드려야지요. 이 사 장님 덕에 제 묵은 병을 찾았지 않습니까.”
장 과장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겁니다.”
강진의 말에 장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가장 좋은 건 저희 부서로 오 는 거지만…… 저희 부서는 인턴 을 받지 않으니 같은 회사 내에 있어도 얼굴 보기 어려울 겁니 다.”
“과장님 부서는 인턴 안 받으세 요?”
“해외사업부는 저희 회사에서도 핵심 부서라 인턴을 받지 않습니 다. 전화 한 통도 잘못 받으면 큰 사고가 되거든요.”
“그렇군요.”
“하지만 일하다가 힘들거나 조 언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세 요. 그리고 힘들게 하는 상사 있 으면 대리급까지는 제가 혼을 내 주겠습니다.”
장 과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 던 강진이 힐끗 시간을 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일찍 출근하셨네요?”
“팩스 받을 것이 있어서 일찍 나왔습니다.”
장 과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강진은 그와 함께 편의점 을 나왔다.
강진이 안내 데스크에 가자 직 원이 말했다.
“신분증 주시겠어요?”
직원의 말에 강진이 신분증을 내밀자, 직원이 임시 출입증을 내밀었다.
“9층 인사과에 가서 출입증 받 으시고 신분증 받으러 오세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강진이 임시 출입 증을 받자, 장 과장이 그와 함께 출입구를 통과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9층 가려면 여기 엘리베이터에 타야 합니 다.”
“엘리베이터가 다릅니까?”
“층마다 서면 언제 올라갔다가 언제 내려가겠습니까? 그래서 홀 수와 짝수로 나눠서 운행합니 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장 과장과
강진이 안에 올랐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사람들이 더 올라타더 니 순식간에 가득 찼다.
9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서자 장 과장이 손을 흔들었다.
“힘들면 연락하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9층에 내린 강진 은 여러 부서들의 이름이 적힌 곳을 보다가 인사과라 적힌 곳으 로 들어갔다.
강진이 안으로 들어가자 한 남
자가 다가왔다.
“일찍 왔네요.”
“첫 출근이라……
“일단 여기 앉아 계세요. 다른 인턴들 오면 설명하고 진행할게 요.”
남자가 회의실로 보이는 곳을 가리키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 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자 잠시 후 인턴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서로 인턴인 것을 알기에 사람 들이 작게 인사를 나눴다. 그에 강진도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인사를 나눌 때 문이 열리며 남 자와 여자가 들어왔다. 목에 직 원 신분증을 차고 있어 인턴들이 입을 다물었다.
인턴들이 조용해지자 남자 직원 이 그들을 보며 들고 있던 서류 철을 보았다.
“호명하면 손들어 주세요. 이성 식, 차인호, 고인돌……
호명에 따라 인턴들이 손을 들 었다.
“이강진.”
자신의 호명에 강진이 손을 들 었다. 그 후 몇의 이름을 더 부 르던 직원이 눈을 찡그렸다.
“황석, 황석 씨 없어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직원이 입맛을 다셨다.
“인턴 첫날부터 지각이라……
고개를 저은 직원이 명부에 체 크를 하며 말했다.
“인턴 생활하면서 지각하지 마 세요. 지각만큼 인사 점수에 나 쁜 것도 없습니다.”
무심코 하는 말 같지만 인턴들 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기 일하다가 다른 자 리 생겨서 가시는 분들도 있는 데…… 이 바닥 좁습니다. 외국 계 기업에 들어갈 것 아니면 어
지간하면 인턴은 마치고 옮기세 요.”
경고 같은 주의를 준 남자 직원 이 여자 직원을 보자, 그녀가 들 고온 작은 상자에서 신분증을 꺼내 인턴들에게 나눠주었다.
“신분증 확인들 하세요.”
직원의 말에 인턴들이 자신들의 신분증을 확인했다.
붉은 줄에 달린 신분증을 만지 작거리며 강진이 힐끗 직원을 보 았다.
직원의 목에 걸려 있는 신분증 줄은 파란색이었다.
‘인턴은 붉은색, 정직원은 파란 색인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직 원이 인턴십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인턴이 해야 하는 일과 필요한 사항들을 설명을 해 준 직원이 사람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 회사 인턴십에 대해 들었 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
는 인턴들을 정직원으로 많이 채 용합니다.”
직원의 말에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들도 태광무역의 정 직원 채용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인턴들을 보며 직원이 서 류철을 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배치 부서를 말하겠습니 다. 이성식, 김강호, 국내 영업 1 팀……
직원의 입에서 인턴들이 배치되
어 일을 할 부서들의 이름이 나 왔다. 그리고…….
“수출 대행 2팀 이강진, 최동 해.”
수출 대행이라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출 대행이라…… 재밌겠네.’
박충만에게 들은 업무 중 하나 였다.
〈수출 대행.
수출을 원하는 중소기업을 대신 해 외국 판매처와 수출에 관한 모든 것을 대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