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물건은 좋지만…… 그 두 사람 은 믿기 어렵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왜요?”
“ 이상섭……
강진이 그를 보며 뭐라 불러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자 이상 섭이 말했다.
“씨라고 하세요.”
“이상섭 씨도 뭔가 그들한테 불 편한 것을 느끼신 것 아닙니까?”
“내가요?”
무슨 말이냐는 듯 보는 이상섭 을 보며 강진이 말을 했다.
“아까 상대측과 대화를 나눌 때 이상섭 씨의 눈썹과 이마 사이가 살짝 경직되는 것이, 불편해하시 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눈썹 사 이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
“심리학입니까?”
“제가 이상섭 씨를 보고 느낀 것은 심리학이 아니더라도 눈치 만 있으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상섭 씨도 저 두 사람 이 믿기 어렵다는 것을 눈치로 느끼신 것 같습니다.”
이상섭이 잠시 눈썹 사이를 주 무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꺼림칙한 느낌이 들기는 했습니다.”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그 두 사
람이 앉아 있던 곳을 보았다.
“일단 물건 이야기를 할 때는, 이야기를 한 분의 얼굴은 편안했 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 말대로 식칼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편해 보이면 그런 겁니까?”
“네. 그리고 그 외에 몇 가지 시그널이 더 보였습니다.”
강진이 식칼을 들었다.
“상대는 식칼의 날을 볼 수 있 도록 했습니다. 확실히 식칼에
대한 자신감이 있습니다. 하지 만…… 수출에 대한 것을 이야기 할 때와, 이상섭 씨가 확인을 해 야 한다고 할 때는 극도의 스트 레스 반응을 보였습니다.”
“스트레스 반응?”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일어나서 는 아까 상대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커피잔을 자신의 자리 로 옮기고는 옆으로 슬쩍 치웠 다.
“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커피잔을 옆으로 치우고 이야기 를 했습니다. 이상섭 씨와 자신 사이의 벽을 치운 겁니다.”
“커피잔이 벽입니까?”
“심리적인 표현입니다. 상대와 나 사이에 뭔가를 놓음으로써 안 정을 느끼는 겁니다. 어쨌든 수 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커피 잔을 옮겼습니다.”
스륵!
커피잔을 이상섭과 자신 사이에
놓인 강진이 말했다.
“커피잔으로 심리적인 벽을 쌓 은 겁니다.”
“커피잔 하나로 그렇게까지 생 각하는 것은……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으며 목에 손을 가져갔다. 그 리고 넥타이를 슬쩍 잡아당겼다 가 손을 밑으로 내렸다.
그러고는 다시 손을 들어 커피 잔을 쥐었다.
“상대가 보인 반응입니다.”
“그것도 시그널입니까?”
“작은 반응이기는 하지만 모두 스트레스가 쌓이면 생기는 시그 널입니다. 일종의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한 시그널과도 같습니 다.”
“흐.. ”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슬쩍 자 신의 넥타이에 손을 대다가 자신 의 손을 보았다.
‘생각을 할 시간이라……
그런 이상섭을 보며 강진이 말
을 이었다.
“제가 무역 쪽 일은 잘 모르지 만…… 일이란 것이 사람과 사람 이 하는 것이니, 저 같으면 이런 시그널을 보내는 사람과는 일을 안 하겠습니다.”
* * *
이상섭은 임호진 과장 앞에 식 칼을 놓고는 미팅 때 있었던 일 을 이야기했다.
이상섭이 하는 말을 들은 임호 진이 강진을 힐끗 보았다.
“이강진 씨.”
임호진의 부름에 강진이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심리학적으로 믿지 못할 사람 이라는 건가요?”
“믿지 못할 사람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는 믿을 수 없는 사람입 니다.”
“그 상황이라……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잠시 있 다가 이상섭을 보았다.
“얼마짜리지?”
“십억입니다.”
“십억이라……
잠시 생각을 하던 임호진이 강 진을 지긋이 보다가 말했다.
“가 보세요.”
강진이 자리로 가자 임호진이 이상섭을 보았다.
“자네 생각은 어때?”
“제가 보기에도 미팅한 사람 느 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사업 미팅이니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긴장하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고 할까요?”
“심리학적으로?”
“그건 아니고 눈치로요.”
“눈치라……
임호진이 식칼 세트를 잠시 보 다가 말했다.
“일단 캔슬은 하지 말고 살펴 봐.”
“살펴봅니까?”
십억짜리 사업이기는 하지만 회 사 입장에서는 큰 사업이 아니 다.
게다가 십억이라고 해도 수수료 로 받는 것은 최대 10퍼센트, 일 억 정도다. 발품 파는 것은 똑같 으니 큰 거래가 아니라면 캔슬하 고 다른 아이템을 구해도 될 일 이었다.
의아해하는 이상섭을 힐끗 본 임호진이 말했다.
“느낌이 안 좋다고 캔슬하 면…… 이 회사 어떻게 되겠어?”
임호진이 식칼 세트를 들어 보 였다.
“십억이면 작은 회사 입장에서 는 사운을 건 일이야. 확인 좀 해 보고 진행할지 말지 결정하자 고.”
“알겠습니다.”
이상섭이 식칼 세트를 들고 가
려 하자 임호진이 손을 들었다.
“칼은 좋다고?”
“네.”
“우리 마누라나 하나 가져다줘 야겠네.”
임호진의 말에 이상섭이 식칼을 놓고는 바닥에 놓은 쇼핑백을 들 었다.
쇼핑백을 든 이상섭이 강진과 최동해를 손짓해 데리고 나갔다.
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강진의 물음에 이상섭이 임호진 과 나눈 대화를 말해 주었다.
“그럼 캔슬이 아닙니까?”
“과장님 말대로 작은 회사에서 십억이면 큰돈입니다. 느낌만 믿 고 거절하기는…… 수십 개의 일 자리가 달렸으니 확인을 좀 더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이야기를 나누던 이상섭이 한쪽 에 있는 사무실의 문을 가리켰 다.
〈수출 대행 2팀〉
수출 대행 2팀이라 쓰인 문을 보며 이상섭이 말했다.
“여기는 우리 팀에서 사용하는 창고입니다.”
이상섭이 창고를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안 진열대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었고, 진열대에
들어가지 못한 물건들은 바닥에 쌓여 있었다.
식칼 세트를 진열대 위에 대충 올린 이상섭이 최동해와 강진을 보았다.
“저희 팀에서 수출 대행하는 아 이템들입니다. 시간 날 때마다 들어와서 서류 속 아이템을 확인 하고 살피세요.”
이상섭의 말에 최동해와 강진이 창고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 * *
오후 다섯 시가 되자 강진이 슬 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직원들은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일 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최동해를 보 았다.
“퇴근 안 해요?”
“다른 분들이 일어나야 가죠.”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이상섭에
게 다가갔다.
“저희 퇴근해도 될까요?”
“퇴근?”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조금 황 당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퇴근해요.”
“내일 뵙겠습니다.”
강진이 다른 직원들에게도 고개 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최동해를 보았다.
그 모습에 최동해도 슬며시 가 방을 챙겨 일어나자 강진이 그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강진이 사무실을 나서자 직원들 이 일제히 그쪽을 보았다.
“우리 인턴 세네.”
임호진의 중얼거림에 이상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네요. 저는 신입 때 화장실 도 눈치 보고 갔는데……
이상섭의 말에 임호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이강진 씨는 무역과가 아니라 서 일 배우는데 시간이 좀 걸리 겠어.”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 익히는 것이 빠릅니다.”
“그래?”
“입사하기 전에 무역 공부를 좀 하고 온 모양입니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용어도 좀 알더군요. 게 다가 심리학과라 그런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서 하더군 요.”
“최동해 씨는?”
“그게......"
말을 잇지 않는 이상섭의 말에 임호진이 그를 보았다.
“왜 문제 있어?”
“사람이 좀 소심한 것 같습니 다. 말도 잘 못하고……
이상섭의 말에 임호진이 최동해 를 떠올렸다.
‘좋은 인상은 아니지.’
“첫날이라 좀 주눅 들어서일 수
도 있지. 어쨌든 잘 알려줘.”
“알겠습니다.”
이상섭의 답에 임호진이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다시 서류를 보 기 시작했다.
* * *
강진과 최동해는 출근 이튿날부 터 본격적으로 인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상사들 생각에는 하루면 회사 업무 파악에 충분하다 생각을 하 는 듯 둘째 날부터는 바로 업무 가 부여되었다.
업무라고 해도 별다른 것은 없 었다. 심부름, 심부름, 심부름이 었다.
“이강진 씨 이거 열 부만 복사 해 주세요.”
“이강진 씨 11층 올라가면 해외 사업부 1팀 있어요. 거기 가 서……
“이강진 씨..
이강진 씨로 시작이 되는 여러 심부름들을 해내야 했다.
복사를 하고 업무 준비를 돕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갔 다.
“자! 밥 먹고 와서 합시다.”
임호진 과장의 말에 직원들이 몸을 일으켰다.
“이강진 씨하고 최동해 씨도 오
늘부터는 같이 먹어요.”
“네.”
어제는 임호진 과장이 두 사람 만 따로 가서 먹고 오라고 했었 다.
인턴끼리 편하게 점심 먹고 오 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래서 둘 이 가까운 밥집에서 밥을 먹었는 데…… 그리 편하지는 않았었다.
최동해가 말수도 적고 내성적이 라 강진 혼자 말을 하고 가끔 대 답을 듣는 정도라서 말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뭐 먹나?”
임호진이 사무실을 나가며 하는 말에 이상섭이 한숨을 쉬었다.
“우리 회사가 다 좋기는 한데 구내식당이 없는 것이 좀 그렇 죠.”
“제 친구 회사 구내식당은 그렇 게 맛있다는데……
“구내식당만 있고 맛있어도 직 장인들 걱정이 많이 줄 텐데요. 점심에 뭐 먹느냐 고민하는 것도 일이잖아요.”
직원들의 말을 들으며 강진과 최동해는 말없이 그 뒤를 따랐 다.
어차피 뭐를 먹을지 결정은 저 들이 할 테고 자신들은 가서 먹 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밥값은 누가 내는 거지?’
해외사업 2팀을 보면 오성실 부 장이 내는 것 같았는데…… 직장 인 월급이 빤한데 늘 상사가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사 주면 먹고, 아니면 각자 내 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일단 상사들 의 뒤를 따라갈 때, 여직원 한 명이 손뼉을 치더니 말했다.
“회사 근처에 맛집 하나 생겼다 는데 거기 가실래요?”
“맛집‘?”
“가격도 싸고 음식도 맛있대 요.”
“ 가깝나?”
“제가 주말에 가려고 거리 확인 했는데 5분 거리에요.”
“그럼 그쪽으로 가지.”
임 과장의 말에 여직원이 앞장 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직원이 앞장을 서자 다른 직 원들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 고…… 강진은 곧 황당함을 느꼈 다.
여직원이 앞장서서 간 곳은 바 로 한끼식당이었다.
“문이 닫혔는데?”
“여기가 맛집 맞아?”
“무슨 맛집이 점심시간에 문을 닫아?”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것에 여직 원이 의아한 듯 가게를 보았다.
“이상하네.”
여직원이 가게 문을 흔들다가 문틈을 들여다보았다. 그 모습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여기 가게는 어떻게 아셨어 요?”
“인터넷요.”
여직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앞으로 나왔다.
“들어들 오세요.”
말과 함께 강진이 열쇠로 가게 문을 열자 여직원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어‘?”
“여기 제 가게예요. 들어들 오 세요.”
강진이 먼저 가게 문을 열고 안
으로 들어가자 의아한 듯 그를 보던 직원들도 그 뒤를 따라 들 어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강진은 귀 신들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눈짓을 했다.
‘나가들 있어요.’
강진이 작게 입모양으로 말을 하자 귀신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서는 들어오는 사람들을 피해 밖 으로 나갔다.
귀신들이 있으면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 소름 같은 것을 느끼기 에 밖으로 내보낸 것이다.
배용수만이 주방으로 들어가 있 는 것을 확인한 강진이 직원들을 돌아보았다.
“앉으세요.”
강진의 말에 직원들이 하나둘씩 식탁에 앉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