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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38화 (38/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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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귀신들이 먹을 계란말이 를 멋들어진 손놀림으로 말며 배 용수가 투덜거렸다.

“야! 언제까지 마늘 잡고 있을 거야?”

귀신들은 늘 한 번에 몰려오니, 주문도 한 번에 몰려들어온다. 그래서 11시에 영업을 시작할 때 가 가장 바쁘다.

그런데 강진이 어묵탕에 들어갈 마늘만 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 도 요리 연습장에 있는 어묵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의 실력으로 만들겠다고 말이다.

툭! 툭!

마늘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조 각을 내며 강진이 말했다.

“……연습만이 살 길이다.”

“연습? 무슨 소리야? 요리 연습 장 보고 하면 뚝딱이잖아.”

“고추 된장범벅.”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그건 너무 쉬워서 없던 거고.”

말 그대로 고추 된장범벅은 고 추를 잘라 된장에 넣고 버무리기 만 하면 된다.

물론 다른 재료가 조금 들어가 기는 하지만 말이다. 딱히 요리 라고 할 것은 없었다.

“쉽든 안 쉽든, 요리 연습장이 만능은 아니라는 거지. 없는 요 리는..

강진이 마늘을 잡고는 칼을 움 직였다.

툭! 툭! 툭!

마늘을 자르는 것이 아닌, 토막 을 내는 듯한 칼질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너도 참 칼질 안 는다.”

“그래서 연습하잖아. 그리 고…… 능력 있는 직원 있잖아.”

“너 나 일당 올려줘야 돼!”

“JS 금융한테 말해. 나도 네 월

급 어떻게 빠져나가는 줄 모르니 까.”

“쳇! 그놈들은 불편해.”

“너 빚 엄청난가 보다?”

“몰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문득 그 를 보았다.

“너 나쁜 놈이었어?”

“무슨 소리야?”

“JS 금융에 돈이 많으면 착한 사람, 돈이 없으면 나쁜 사람이

잖아. 그런데 너는 빚쟁이고.”

말을 하던 강진이 웃었다.

“너 정말 나쁜 놈이었나 보구 나.”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었다.

“그렇게 따지면 나쁜 놈일 수도 있겠네. 여기 있는 귀신들 다 JS 금융에 빚이 있으니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홀에 있 는 귀신들을 보았다.

‘하긴, 강두치가 왔을 때 여기 귀신들 다 도망가려 했었지?’

계란말이를 그릇에 담은 배용수 가 소리쳤다.

“계란말이 됐어요!”

배용수의 외침에 귀신 한 명이 일어나 계란말이를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보며 배용수가 말했다.

“나도 처음 귀신 됐을 때는 잔 고가 꽤 있었어.”

“그래?”

“빚쟁이라고 다 나쁜 놈은 아니 야. 귀신 생활을 하다 보니 잔고 는 바닥나고 빚이 쌓일 뿐이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농담이었어.”

“ 알아.”

고개를 저은 배용수가 한쪽에 재어 놓은 불고기를 가져다가 프 라이팬에 올렸다.

촤아악!

촤아악!

불고기를 볶으며 배용수가 말했 다.

“살아 있을 때 좋은 일을 하면 JS 금융에 돈이 생기고, 나쁜 일 을 하면 돈이 나가는 것은 알 지?”

“그래서 요즘 착하게 살려고 노 력하는 중이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인 관념이 강한 것은 아니지만…… JS 금융을 알게 되니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 말 그대 로 수치로 착한 일이 표시가 되 니 말이다.

“그리고 잔고가 바닥이 나면 마 이너스 통장이 돼. 그런 놈들 은…… 지옥 가겠지?”

“가겠지?”

모르냐는 듯한 강진의 말에 배 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저승에 가 봤어야 거기가 어떻 게 돌아가는 줄 알지. 나라고 저

승 가 봤겠어? 안 가 봤으니 여 기 귀신으로 있는 거지.”

“그렇네.”

“어쨌든 귀신도 똑같아.”

“착한 일 하면 돈 벌고, 나쁜 일 하면 돈 나가고?”

“그렇지. 근데 귀신이 되면 착 한 일을 할 만한 것이 없어. 사 람의 눈에 보이든 말든 해야 착 한 일을 할 것 아냐?”

“하긴. 귀신한테 아르바이트 시

켜 줄 곳이 어디 있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배용수가 말했다.

“그런데 나쁜 짓은 사람들 눈에 안 보여도 할 수가 있거든.”

“어떻게? 너희 사람들 몸 못 건 들잖아?”

“방법이야 여러 가지지. 여탕에 가서 앉아 있어도 돈 깎인다.”

“너 여탕도 들어갔어?”

“어떻게 보면 투명인간 아니 냐.”

투명인간이라는 말에 강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남자들이 투명인 간이 되면 하고 싶은 일 중 하나 가 바로 여탕에 들어가는 것일 테니 말이다.

“생각해 보니 웃긴다. 귀신 돼 서 한다는 것이 여탕 들어가는 거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들 어갔다는 말은 아니야.”

“그러시겠지.”

피식 웃으며 강진이 그를 힐끗

보았다.

“그래서 돈은 못 벌고 돈만 쓴 다는 거네.”

“귀신 써 주는 일자리가 몇이나 되겠어.”

“그럼 나한테 더 잘해야겠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었다. 그러고는 프라이팬을 크게 흔들어서는 불고기를 그릇에 담 았다.

“불고기요!”

배용수의 외침에 기다리던 귀신 이 일어나 와서는 그릇을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물 었다.

“그런데 빚은 어떻게 되는 거 야? 저승을 가야 갚든지 말든지 할 텐데?”

“몸으로 때워야지.”

“몸으로?”

“마이너스가 어느 정도 되면 그 때부터 JS 금융 애들이 잡으러

다녀.”

“JS 금융에서?”

“거기 잡혀가면…… 으으윽!”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 배 용수를 보며 강진이 물었다.

“어떤데?”

“줄 서야 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줄을 서?”

의아한 눈으로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줄을 선다니?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일을 당 할 것처럼 심각한 얼굴로 줄을 선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 다.

황당해하는 강진을 보며 배용수 가 고개를 저었다.

“너…… 은행 가 본 적 있지?”

“있지.”

“대기 인원이 엄청 많은 곳이 야. 그런데 번호표도 없고 그냥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해.”

“……짜증나겠네.”

“그렇지. 게다가 창구는 여러 곳인데…… 서류 접수는 오직 한 명이 해.”

“왜? 창구가 여럿이면 여럿이 해야 줄이 빨리 줄어들 텐데?”

“그래서 더 짜증이 나는 거지. 그리고 그럴 거면 왜 창구를 여 럿 둔 건지도 모르겠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짜증나게 하려고 한 것 같은 데?”

“그렇다면 제대로 하기는 했네. 비어 있는 창구를 볼 때마다 짜 중이 나거든.”

‘그럴 테지.’

창구가 하나라면 하나만 보면 되지만, 창구가 여럿이라면 그쪽 에도 신경이 가게 된다.

안 올 줄은 알지만, 사람이 와 서 이 줄을 줄여 주지 않나 하는 기대감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기대감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JS 금융도 못됐네.’

강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한숨을 쉰 배용수가 말을 이었 다.

“그리고 꼭 서류를 두세 번 다 시 해 와야 돼.”

“서류 작성을 잘못해서?”

“그렇잖아. 은행이든 동사무소 든, 서류를 가지고 가면 꼭 뭔가 하나가 부족하단 말이야. 그럼

다시 작성해서 처음부터 다시 줄 을 서야 해.”

“거기서 다시 작성할 수는 없 어?”

“없어. 틀리면 뒤로 다시 가서 줄을 서야 해.”

“끔찍하네.”

“물론 끔찍하지. 하지만 서류가 탈락을 하면 더 심각해.”

“탈락하면 어떻게 되는데?”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잠시

있다가 한숨을 쉬었다.

“소멸.”

“소멸?”

“죽음은 끝이 아니야. 새로운 시작이지. 하지만...... 소멸은 말 그대로 소멸이야. 끝인 거지.”

“무섭겠네.”

“그래서 우리가 JS 금융 사람들 을 피해 다니는 거야. 줄을 서는 것도 끔찍하지만…… 혹시라도 서류에서 탈락하면 소멸이니까.”

말을 하던 배용수가 입맛을 다 셨다. 말을 하다 보니 신세가 처 량한 것이다.

그에 배용수가 도마 위를 보았 다. 도마 위에는 강진이 조각을 낸 마늘이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보던 배용수가 물었다.

“요리 정말 배울 거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JS 금융 이야기는 더 하기 싫 은 모양이네. 하긴…… 용수한테

는 가장 심각한 이야기일 테니.’

배용수의 마음을 짐작한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밝게 말했 다.

“이왕 음식 장사하는데, 제대로 배워서 해 보려고.”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잠시 그 를 보다가 칼을 대신 잡았다. 그 러고는 칼을 빠르게 움직여 마늘 을 자르고 재료들을 손질했다.

“장사하는 음식을 가지고 연습 을 하면 안 돼.”

“연습을 해야 실력이 늘지.”

“네가 먹을 음식이면 상관없어. 하지만 이건 손님들에게 나가는 거야. 비록 그것이 사람이 아니 라 귀신이라고 해도 말이야. 요 리사는 손님에게 늘 최선의 재료 로 최고의 요리를 내야 해.”

“최선의 재료로 최고의 요리?”

“최고의 재료로 음식을 하면 좋 겠지만, 늘 최고의 재료를 쓸 수 는 없어. 최고가 아니라면 그중 최선의 재료를 선택해서 내가 만 들 수 있는 최고의 요리를 만들

어야 해.”

“멋진데.”

“우리 숙수님이 늘 하던 말이 셔. 최고의 재료가 없으면, 최선 의 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 라.”

“멋진 분이시네.”

“멋지고 무서운 분이셨지.”

말을 하던 배용수가 어묵을 냄 비에 넣었다. 그것을 보며 강진 이 물었다.

“아직 살아 계셔?”

“정정하시지. 아마 백 살은 넘 게 사실 것 같아.”

어묵탕을 보던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다.

“요리를 할 생각이라면 늘 최고 의 요리를 해야 해.”

“알았어.”

“내일부터 칼질부터 가르쳐 줄 게.”

“칼질?’’

“너는 운이 좋은 거야. 나는 일 년 동안 설거지만 했어. 칼은 언 감생심이었지.”

그러고는 배용수가 어묵탕을 그 릇째 들고는 주방을 나왔다.

“소주 먹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소주잔을 들고는 배용수가 앉은 자리에 가 서 앉았다.

어묵탕은 배용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하던 음식이었으니 말이다.

* * *

오늘도 열심히 복사를 하고 심 부름을 하며 강진은 점심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들 점심 먹으러 가지.”

임호진의 말에 직원들이 하던 일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 다.

“오늘은 뭘 먹나?”

임호진의 말에 최미나가 빠르게

말했다.

“이강진 씨 가게 가서 먹으면 되죠. 맛도 있고 가깝고.”

“그래요.”

여직원들의 말에 임호진이 고개 를 저었다.

“이강진 씨도 점심에는 편히 먹 고 쉬어야지. 우리야 가서 먹기 만 하면 되지만, 이강진 씨는 요 리하고 뒷정리까지 해야 하잖 아.”

임호진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니고 돈 받 고 파는 것이니 별 상관이 없었 다.

하지만 임호진의 생각은 달랐 다.

“퇴근하고 난 후에 가서 먹는 것은 상관없지만…… 이강진 씨 도 점심시간은 편히 먹게 해 줍 시다.”

그러고는 임호진이 최미나를 보

았다.

“해장국 어때?”

임호진의 말에 최미나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선지해장국이라면 저희는 따로 가서 먹고 오겠습니다.”

아가씨들에게 점심부터 선지해 장국은 무리한 메뉴였다. 혹시라 도 선지가 이빨 사이에 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최미나가 눈을 찡그리며 하는 말에 임호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

덕였다.

“그렇게 해요.”

최미나가 김혜인을 데리고 자리 에서 일어나 먼저 나가자, 임호 진이 다른 남자 직원들을 보았 다.

“자네들은?”

“좋습니다.”

임호진이 직원들을 데리고 사무 실을 나섰다.

사무실을 나온 직원들은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는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줄이 많네요.”

해장국집 앞에 늘어서 있는 줄 에 강진이 시계를 보자 이상섭이 말했다.

“근처에 회사들이 많으니 일찍 나오지 않으면 늘 이렇습니다. 게다가 맛집입니다.”

“부럽네요.”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그를 돌 아보았다.

“그런데 왜 강진 씨 가게는 장 사가 안 되죠?”

이상섭의 말에 임호진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게…… 왜 장사가 안 될까 요? 음식도 맛있고 손님들 비위 도 잘 맞출 텐데?”

말을 하던 임호진이 급히 말을 이었다.

“눈치가 좋다는 거지 기분 나쁘 라고 한 말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웃으며 고개를 저은 강진이 길 게 늘어선 줄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장사는 과장님 말씀대 로, 음식이 맛있으면 언젠가 잘 되겠죠.”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줄어드 는 줄을 따라 가게로 들어서던 강진이 카운터 쪽을 보았다.

카운터에 할머니 한 명이 서 있 었다.

‘귀신이네.’

전이라면 깜짝 놀라 고개를 숙 일 일이지만 강진은 그런가 보다 하고 빈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무섭게 죽은 것도 아니고, 조금 뿌옇게 보이는 것 빼면 보통 할 머니라 무서울 것도 없으니 말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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