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화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최미나 대리가 다가왔다.
“강진 씨.”
“네?”
“저녁에 영업하죠?”
“해야죠.”
“그럼 예약 좀 하려고요.”
“손님 없어서 그냥 오셔도 자리
있는데?”
“그래도 음식 미리 예약하면 가 서 딱 먹을 수 있잖아요.”
“그건 그렇죠. 그럼 뭐 드실 건 데요?”
“여자 셋 갈 건데요. 찹스테이 크처럼 예쁘고 맛있는 것 있어 요?”
최미나의 말에 강진이 요리 연 습장을 떠올렸다.
“몇 개 있기는 한데…… 어느 나라 음식 좋아하세요?”
“어느 나라 음식 할 수 있는데 요?”
“양식도 되고 한식도 되고…… 중식하고 일식도 됩니다.”
강진의 입에서 동서양 요리가 나오자 최미나가 놀란 눈으로 그 를 보았다.
“강진 씨 요리 진짜 잘하는구 나.”
“식당 주인이니까요. 그래서 어 디로 해 드려요?”
“분위기 내기는 양식이 예쁘겠
죠?”
남자들이야 음식 모양보다 맛과 양을 중시하지만 확실히 여자라 그런지 예쁜 것을 원하는 모양이 었다.
“그럼 양식으로…… 그라탕하고 스테이크 음…… 시금치 수프로 마무리해 드릴게요.”
“코스로 해 주려고요?”
“분위기 내신다면 단품보다는 여럿이 낫지 않을까 해서요. 아 니면 단품으로 해 드릴까요?”
“음…… 아니에요. 그리고 혹시 머랭 튀김 할 수 있어요?”
“머랭 튀김요?”
“인터넷에서 봤는데 맛있어 보 이더라고요.”
강진이 머릿속으로 머랭 튀김을 떠올렸다.
‘요리 연습장에서 봤던 것 같은 데……
기억을 더듬자 머랭 튀김이 떠 올랐다.
“그럼 머랭 튀김도 할게요.”
“고마워요. 그럼 그렇게 해서 2 인분만 해 주세요.”
2인분이라는 말에 강진이 의아 한 듯 그녀를 보았다.
“세 분이 오신다면서요?”
“예쁘고 맛있는 걸로 안주가 되 나요.”
“안주? 술도 따로 드시게요?”
“남자들만 모여서 술 먹나요.”
싱긋 웃은 최미나가 말을 이었
다.
“매운 닭발하고 육개장 될까 요?”
“육개장요?”
“우리 애들이 매운 닭발하고 육 개장을 좋아해요. 특히 건더기 많은 육개장요. 거기에 소주 먹 으면 끝이죠.”
최미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쁜 음식 먹다가…… 마지막 은 닭발하고 육개장으로 가?’
잠시 최미나를 보던 강진이 닭 발과 육개장 조리법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물었다.
“뼈 있는? 없는?”
“뼈 없는 닭발은 사도죠. 당연 히 뼈 있어야죠.”
“그럼 몇 시에 오실 거예요?”
“퇴근하고 애들하고 커피 한 잔 먹고 6시 반까지 갈게요.”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최미나가 자신의 자리
로 돌아가자 강진이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
퇴근을 한 강진은 최미나가 말 을 한 음식들을 준비하기 시작했 다.
손님에게는 최고의 음식을 내야 한다는 배용수의 말대로, 강진은 요리 연습장의 레시피대로 음식 을 준비했다.
시간이 걸리는 육개장부터 강진 은 준비를 했다. 일단 고기를 먼
저 삶고 찢고 해야 하니 말이다.
고기를 올린 강진이 이번에는 머랭 튀김에 쓸 재료들을 손질했 다.
머랭 튀김은 계란 흰자를 계속 휘저어 하얀 거품 같은 머랭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머랭에 재료를 넣어 튀기면 되었다. 맛도 있을뿐더러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식감을 가 지고 있었다.
머랭에 들어갈 재료들을 손질을
한 강진이 이번에는 그라탕에 들 어갈 재료들을 손질했다.
그라탕은 잡탕 그라탕이었다. 이건 김복래 여사가 냉장고를 정 리할 때 사용하던 조리법이었다.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나온 재료 들을 한 번에 넣어서 먹는 그런 조리법이었다.
그라탕이라고 하지만 쉽게 생각 을 한다면 국물 없는 계란찜하고 비슷했다.
그래서 강진도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 중 쓰고 남은 것들을 모 아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먹지 못할 것은 없었다. 다만 재료가 다양하게 들어갈 뿐 이었다.
요리 준비를 하는 강진의 옆에 서 배용수가 말했다.
“요리 어떻게 내갈 거야?”
“육개장 빼고 다른 요리들은 하 는데 20분 정도 걸리니, 6시 10 분부터 하면 되지 않겠어?”
“한 번에 다 하게?”
“ "응."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틀렸다는
듯 손가락을 저었다.
“땡.”
“왜?’’
“음식을 한 번에 다 내는 것은
틀렸어.”
“왜? 연습장에 있는 요리라 동
시에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라탕, 머랭 튀김, 스테이크,
시금치 수프. 네 가지기는 하지
만 이미 재료 준비를 다 했으니 시작만 하면 된다.
음식점이라 화구도 여러 개이니 바쁘기는 해도 하면 요리 네 개 를 한 번에 하는 것이 어렵지 않 다.
게다가 요리 연습장에 있는 요 리라 숙련도도 좋다. 어려운 것 이 아니었다.
“동시에 하면 할 수 있겠지. 하 지만 한식은 한 번에 음식들을 다 늘어놓고 먹지만, 양식은 달 라.”
“그래?”
“간단하게 말하면 식전 요리, 본 식사, 디저트 이렇게 세 단계 로 나뉘지.”
“그냥 한 번에
“그냥 먹어도 지만…… 지금 번에 먹으면 안
먹으면 안 돼?”
되기는 하지. 하 이 메뉴들은 한 돼.”
“왜?”
“음식은 온도라는 것이 있어.
너 차가운 육개장 먹고 싶어?”
“육개장 차가우면 기름 뜨잖 아.”
싫다는 말이다.
“따뜻한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이 따뜻하면 더 이 상 아이스크림이 아니지 않나?”
“그렇지. 어쨌든 음식은 그에 맞는 온도라는 것이 있어. 따뜻 한 음식은 따뜻하게, 차가운 음 식은 차갑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재료들을 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일단 머랭 튀김하고 그라탕 같 이 주고, 그다음에 스테이크. 마 지막에 시금치 수프 내면 되겠 어. 음식 먹는데 10분 정도씩 잡 고, 머랭 튀김 다 먹을 때쯤 다 음 음식 들어가게 해.”
배용수의 설명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간을 보았다.
‘아직 시간 있네.’
지금 6시이니 10분 있다가 슬 슬 하면 될 것 같았다. 시간을
계산하던 강진이 문득 배용수를 보았다.
“혹시 선지해장국집 할머니 귀 신에 대해 알아?”
“선지해장국?”
“저기 골목에 있는 옛날해장국 집.”
“아! 오순영 여사님.”
배용수가 아는 듯 고개를 끄덕 이자 강진이 물었다.
“아나 보네?”
“잘 알지. 우리 숙수님하고 친 하셨거든.”
“너희 숙수님하고?”
“우리 숙수님이 가끔 직원들 데 리고 가서 한 그릇씩 사 줬어. 그리고 우리 숙수님이 발이 무척 넓어. 한국의 음식 명인이라는 분들 식당에는 모두 한 번씩 가 서 먹어보고 친분을 쌓으셨으니 까.”
말을 하던 배용수가 입맛을 다 셨다. 그 모습에 강진이 눈을 찡 그렸다.
이제 많이 익숙해지기는 했지 만…… 익숙해졌다고 해도 배용 수의 모습은 무시무시하다.
얼굴 전체에서 피를 질질 흘리 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런 모습으로 입맛을 다시니…… 사 람 한둘은 잡아먹은 듯한 몰골이 었다.
그래서 살짝 무섭기도 했다.
그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찡그 린 것이다. 그나마 익숙해졌으니 그 정도였지, 아니었다면 비명이 라도 질렀을 것이다.
“야, 왜 무섭게 입맛을 다시고 그래.”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강진이 농담처럼 말을 걸자 배용수가 입 가를 손으로 닦았다.
하지만 여전히 입가에 흐르는 피는 그대로였다.
“거기 해장국 진짜 맛있는 데…… 먹고 싶다.”
“여기 레시피에도 해장국 있던 데, 해 줄까?”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기는 하
지만 주말에 날 잡고 하면 어렵 지는 않을 것이다.
“김복래 여사님 음식 레시피도 대단하기는 하지만…… 해장국은 오순영 여사님이 최고야. 그 깊 은 맛은 우리 숙수님도 따라가기 어렵다고 하셨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물었다.
“그 할머니 귀신인 건 알아?”
“알지. 몇 번 만난 적도 있는 걸.”
그러다가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
다.
“그런데 왜 물어?”
“가게에서 손님들이 음식 남긴 것 보면서 계속 어떻게 하지, 어 떻게 하지 하고 걱정을 하시더라 고.”
“하긴 선지해장국 못 먹는 사람 빼고, 먹을 줄 아는 사람이면 그 집 해장국을 남길 수는 없지. 배 가 불러도 남기기에는 너무 맛있 거든.”
고개를 끄덕이던 배용수가 말을
이었다.
“거기 막내아들이 물려받았는데 할머니 방법대로 안 만드는 모양 이야.”
“그래?”
“육수를 납품받아서 쓰는 모양 이야.”
“육수를?”
강진이 놀라 배용수를 보았다. 국물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육수다.
간단한 어묵탕을 만들 때도 육 수를 먼저 만든다.
그런데 한국 제일의 해장국집이 라는 곳에서 육수를 받아다 쓴 다?
“왜?”
“사골 끓이는데 정성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냐. 불 조절해야지, 기름 뜨면 떠야지. 계속 옆에 지 키고 서 있어야 해. 거기에 가스 값도 들어가지.”
“가스 값이 많이 들어가?”
“당연히 많이 들어가지. 그 정 도 집이면 하루 종일 사골을 끓 일 텐데…… 아마 한 달에 돈 이 천만 원은 우습게 나올 걸.”
“이천만 원? 무슨 그렇게 많이 나와?”
강진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 리 장사가 잘 돼도 그렇지 무슨 가스 값이 이천만 원이 나오나 싶은 것이다.
일 년이면 이억 사천이고…… 그 돈이면…….
‘뭘 해야 하지?’
너무 큰돈이라 강진이 감도 잡 지 못할 때, 배용수가 말했다.
“그것도 적게 잡은 거야.”
“ 진짜?”
“그럼! 나 일하던 운암정은 한 달에 삼천만 원이 기본이었어.”
“엄청 많이 나오네.”
‘가스 값이 그 정도면 매상은 대체 얼마라는 거야?’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배용
수가 말했다.
“그런데 공장에서 육수를 떼어 오면 간단하잖아. 만들어서 쓰는 것보다 사서 쓰는 것이 비용의 반도 안 들걸.”
“거기에 인력도 안 들고?”
“그렇지.”
“그래서 맛이 변했구만.”
“먹어 보지는 못했지만…… 육 수를 그따위로 쓰니 맛이 변할 수밖에.”
“할머니 불쌍하네.”
“불쌍한 귀신이 어디 한둘이냐? 그래도 그 할머니는 귀신 중에 상귀신이야.”
“귀신이면 귀신이지. 상귀신은 또 뭐야?”
“JS 금융 지점장이 직접 카드를 준 VVIP란 말이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놀라 그 를 보았다.
“VVIP?"
“전에 왔던 채영호가 VIP였잖 아. 근데 오순영 여사님은 VVIP 야.”
“대단한…… 거지?”
“당연하지. 지점장이 귀신한테 직접 카드 주러 왔다는 건 나도 처음 들어.”
“착한 일 많이 하셨나 보네.”
“JS 금융 VVIP면 말 다 한 거 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 분도 귀신이 되는구나.”
“나라고 나쁜 짓 많이 해서 귀 신이 됐겠어? 그놈의 한 때문이 지.”
말을 하던 배용수의 얼굴이 굳 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강진 의 몸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그렇지 않아도 무섭게 생긴 놈 이 인상까지 쓰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웠다.
“젠장! 한이 뭔지나 알면 한이
라도 풀지. 빌어먹을!”
배용수의 욕설에 강진은 왜 그 가 인상을 썼는지 알았다.
귀신들은 귀신이 되고 싶어서 귀신이 된 것이 아니다. 한…… 그 한 때문에 귀신이 됐다.
하지만 귀신들은 자신의 한이 뭔지 몰라 한을 풀지 못하고 떠 도는 것이다.
욕설을 뱉던 배용수가 주방을 나갔다.
“어디 가?”
“답답해.”
말과 함께 그대로 가게 밖으로 나가는 배용수를 보던 강진이 한 숨을 쉬었다.
“승천을 도와주고 싶어도, 네 한이 뭔지 모르니 도와줄 수가 없네. 차라리 오순영 할머니처럼 한이 뭔지 티라도 나면 좋은 데……
다른 귀신들과 달리 오순영의 한은 딱 보였다. 그녀가 하는 행 동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가게 음식이 바로 그녀의 한인
것이다.
작게 고개를 저은 강진이 시간 을 보고는 계란을 꺼내 그라탕과 머랭을 만들기 시작했다.
촤아악! 촤아악!
뜨거운 기름 위에서 머랭이 튀 겨지고 있었다. 국자로 기름을 떠서 머랭 위에 부으며 강진은 노릇노릇한 갈색이 되기를 기다 렸다.
머랭이 갈색으로 익어가자 강진 이 그것을 그릇에 옮겨 담았다.
덜컥!
머랭 튀김을 그릇에 담은 강진 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홀을 보 았다.
홀에는 최미나와 여자 둘이 들 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