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42화 (42/1,050)

41화

옛날해장국은 아직도 영업을 하 고 있었다. 식사 때가 아니라서 다행히 줄은 없었다.

그에 안으로 들어간 강진이 카 운터에 앉아 핸드폰을 하는 사람 을 보았다.

이십 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싶 은 직원이었다.

‘손자인가?’

가게 카운터는 보통 주인이 맡 는다. 돈이 오고가는 일이라 가 족이 아닌 직원에게는 맡기지 않 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를 본다면 아마도 손자나 될 것이다.

“포장 좀 하고 싶은데요.”

“2인분부터 포장됩니다.”

핸드폰에서 시선도 떼지 않는 직원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그럼 선지해장국 2인분 주세 요.”

“이모! 선지해장국 2인분 포장

요.”

그러고는 다시 핸드폰을 보는 직원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 였다.

‘손자인가 보네.’

직원이라면 카운터에 앉아 대놓 고 핸드폰이나 하고 있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그에 강진이 가게를 둘러보았 다.

가게 안은 한산했다. 몇몇 테이

블에 사람들이 앉아 선지해장국 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한산하네.’

강진이 가게를 돌아볼 때, 아줌 마 한 명이 비닐에 싸인 선지해 장국을 가져왔다.

“만 사천 원입니다.”

직원의 말에 강진이 카드를 꺼 내 계산하고는 봉지를 받아 한끼 식당으로 돌아왔다.

한끼식당 안에서는 여전히 귀신 들이 술을 먹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안으로 들어가던 강진의 얼 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오순영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셨지?”

강진이 가게를 둘러볼 때, 주방 에서 배용수가 소리쳤다.

“겉절이 가져가세요!”

배용수의 말에 귀신들이 다가와 겉절이를 가져갔다. 그에 강진이 주방으로 향했다.

“여사님은?’’

“여기 안에 계셔.”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얼굴로 주방에 들어갔다. 주방에 서는 오순영이 음식을 만들고 있 었다.

“여사님, 여기서 뭐 하세요?”

“용수 씨 혼자 고생하는 것 같 아서요.”

오순영의 말에 배용수가 강진에 게 손짓했다.

“겉절이 좀 먹어 봐. 진짜 맛있 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볼에 담 겨 있는 겉절이를 집어 입에 넣 었다.

그러고는 얼굴에 미소가 어렸 다.

“매우면서도 달달하네요. 맛있 어요.”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미소를 지었다.

“입에 맞는다고 하니 좋네요.”

“진짜 맛있어요.”

“좀 달지 않아요?”

“아뇨. 단맛이 일품인데요.”

보통 겉절이는 좀 새콤달콤하게 먹는 맛이 있는데, 오순영의 것 은 단맛이 조금 더 있었다.

물론 엄청 달다는 수준은 아니 었다. 그저 조금 단맛이 더 있다 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것이 또 일품이었다.

매운맛을 단맛이 감싸 준다고 할까? 아주 맛이 좋았다.

‘요리 연습장 겉절이도 맛있지 만 이것도 또 맛있네.’

만약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둘 중 뭐가 맛있냐고 하면 강진 은 콧방귀를 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은 맛있을 뿐이다. 둘 다 맛있는데 뭘 고르겠는가?

입맛을 다시며 겉절이를 먹던 강진이 자기도 모르게 밥통을 보 았다.

‘겉절이에 따뜻한 밥 한 숟가락, 찬물에 말아서 또 한 숟가락……

아! 둘 다 맛있겠다.’

둘 다 우열을 가릴 수 없게 맛 있기에 강진은 둘 다를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그에 강진이 밥통에서 밥을 뜰 때, 오순영이 봉지를 보았다.

“해장국인가요?”

강진이 주기를 기다렸는데, 그 가 밥을 뜨니 먼저 말을 건 것이 다.

“아!”

그러고는 강진이 배용수에게 해 장국을 내밀었다.

“이거 따뜻하게 해서 드려.”

“알았어.”

배용수가 봉지를 받아 냄비에 해장국을 쏟았다.

촤아악!

해장국이 냄비에 차자 배용수가 불을 켰다.

화르륵!

불을 켜니 잠시 후 국이 끓어올

랐다. 먼 길을 온 것도 아니라서 아직 따뜻했던 해장국이라 바로 끓어오르는 것이다.

배용수가 해장국을 그릇에 담고 는 봉지 안에 같이 있던 반찬들 도 꺼내서 접시에 담았다.

겉절이와 무를 크게 썰어 만든 섞박지였다.

“가서 식사하시죠.”

그의 말에 오순영이 잠시 그릇 을 보다가 홀로 나왔다. 그에 강 진도 밥과 오순영이 만든 겉절이

를 들고는 그녀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혼자 드시면 심심하실 테니, 같이 드시죠.”

“그렇게 해요.”

작게 고개를 끄덕인 오순영이 앞에 놓인 해장국과 밑반찬들을 보았다.

조금 긴장이 어린 듯한 오순영 의 시선을 보며 강진이 말없이 밥을 뜨고는 겉절이를 올려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역시…… 맛있다.’

긴장을 한 오순영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을 하기는 좀 그렇지 만, 확실히 맛이 있었다.

그렇게 밥을 절반쯤 먹은 강진 이 이번에는 물을 말았다. 물을 말아 다시 겉절이에 밥을 먹은 강진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맛있다.’

따뜻한 밥에 먹는 것도 꿀이었 지만, 찬물에 만 밥에 먹는 겉절

이도 꿀이었다.

“맛있어요?”

미소를 짓던 강진은 오순영의 물음에 그녀를 보았다. 오순영은 아직 한 숟가락도 하지 않고 있 었다.

“정말 맛있습니다. 겉절이만으 로도 한 그릇 뚝딱……

말을 하던 강진이 밥그릇을 보 았다.

“이미 했네요.”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숟가 락을 들었다.

그러고는 잠시 선지해장국을 보 다가 숟가락을 움직였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은 오순영이 잠시 있다가 선지와 내장을 젓가락으 로 집어 입에 넣었다.

잠시 입을 오물거리며 그 맛을 보던 오순영이 섞박지와 겉절이 도 입에 넣었다.

오순영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해 장국집에서 반찬으로 넣어 준 것

을 말이다.

음식을 오물거리는 오순영의 모 습에 강진은 긴장이 되었다.

‘입에 안 맞으시겠지?’

당연히 입에 안 맞을 것이다. 아니 마음에 안 들 것이다. 그래 서 긴장이 되는 것이다.

귀신이기는 하지만 너무 크게 실망을 할까 봐 말이다.

그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오 순영을 보았다.

“그…… 괜찮으세요?”

강진의 물음에 오순영이 잠시 있다가 숟가락으로 선지해장국을 크게 떠서는 입에 넣었다.

그렇게 선지해장국을 먹는 오순 영의 얼굴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싸우는 것 같았다.

우적! 우적!

잔뜩 인상을 쓴 채 선지해장국 을 입에 넣고 씹어대는 오순영의 모습에 강진이 슬며시 일어나 냉

장고에서 소주와 맥주를 한 병씩 들고는 그 앞에 놓았다.

소주와 맥주 둘 중 뭘 좋아할지 몰라 둘 다 가져온 것이다.

탁!

소주와 맥주가 놓이자 오순영이 강진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좋네요. 글라스 하나…… 아니 두 개 가져다주시겠어요?”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글라스 두 개를 가져왔다. 글라스를 가 져오자 오순영이 맥주병을 따서

는 한 잔을 따랐다.

“맥주를 좋아하시…… 응?”

말을 하던 강진의 얼굴에 의아 함이 어렸다. 오순영이 소주 뚜 껑을 연 것이다.

드륵!

뚜껑을 연 오순영이 맥주병 위 에 소주병을 그대로 뒤집었다.

꿀렁! 꿀렁!

맥주병 안으로 소주가 쏟아져 들어갔다. 소주와 맥주가 섞이는

것을 보며 강진의 얼굴에 황당함 이 어렸다.

‘이건…… 무슨…… 묘기 대행 진도 아니고.’

맥주병 위에 뒤집어진 소주병에 서 소주가 쏟아지는데도 마개 사 이로 전혀 새지 않았다.

대신 맥주와 소주가 섞이고 있 을 뿐이었다. 그리고 소주가 반 쯤 흘러내렸을 때, 오순영이 소 주병을 그대로 세웠다.

촤아악!

현란한 손목 스냅을 이용해 소 주를 아주 조금만 흘리며 바로 세운 오순영이 강진의 앞에 미리 따라 놓은 맥주를 가리켰다.

“마시세요.”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오순영은 엄지로 맥주병 주둥이를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둥이 밑으로 거품 이 가득한 것이 엄지를 치우면 거품이 그대로 터져 나올 것 같 았다.

그에 강진이 일단 따라 놓은 맥 주를 마셨다.

꿀꺽! 꿀꺽!

빠르게 맥주를 원 샷하고 내려 놓자 오순영이 잔 두 개를 모으 고는 맥주병을 손목 스냅을 이용 해 탁 하고 한 번 흔들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잔에 대고는 엄지를 살짝 비틀었다.

촤아아악! 촤아악!

콜라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가 뚜껑을 연 것처럼 하얀 거품이

그대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촤아악! 촤아악!

순식간에 하얀 거품을 머금은 황금빛 폭탄주 두 잔이 만들어졌 다.

‘우와!’

강진이 속으로 감탄을 할 때 옆 테이블에서 그것을 본 귀신들의 입에서도 감탄성이 나왔다.

“와!”

“엄청나네.”

귀신들의 감탄성을 들으며 오순 영이 다시 맥주병 입구를 엄지로 막았다.

그러고는 한 잔을 들어서는 그 대로 입에 가져다댔다.

꿀꺽! 꿀꺽!

보는 사람이 시원할 정도로 단 숨에 폭탄주를 마신 오순영이 다 시 맥주병을 탓 하고 흔들었다.

그러자 다시 거품이 솟구치는 것과 함께 오순영이 자신의 잔에 폭탄주를 따랐다.

그러고는 강진을 보았다.

“마셔 봐요. 부드러울 거예요.”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잠시 멍 하니 그녀를 보았다. 생긴 것은 아주 곱게 늙으신 할머니가 이런 현란한 폭탄주를 제조하다니

전혀 어울리지가 않았다.

잠시 멍하니 오순영을 보던 강 진이 일단 폭탄주를 입에 가져다 댔다.

입에 대는 순간 부드러운 거품

이 입술에 닿았고, 입안에 부드 러운 맥주가 흘러 들어왔다.

부드럽게 목 안으로 들어가는 폭탄주의 맛에 강진이 미소를 지 었다.

“크악! 좋네요.”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웃으며 남은 폭탄주를 그의 잔에 따라주 었다.

탓탓탓!

병 뒷부분을 손으로 쳐 병 안에 남아 있는 거품 한 방울까지 털

어낸 오순영이 병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오순영이 자신이 채운 잔을 들었다. 그에 강진도 잔을 들었다.

가볍게 잔을 부딪친 오순영이 원 샷을 하자 강진도 따라 한 번 에 잔을 비웠다.

“크윽! 좋네요.”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젊었을 적에 제가 술을 좀 말 았어요.”

“할머니가 이렇게 폭탄주를 잘 드실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게다가 그 스냅…… 대단하신데 요.”

“해장국집은 술하고 뗄 수가 없 어요. 술 취한 사람들이 오고, 혹 은 술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오 고.. 그렇다 보니 폭탄주를 마

는 것도 많이 보고 배우기도 많 이 배웠어요. 혹시 보기 흉한가 요?”

“흉하기는요. 한 수 배우고 싶 을 뿐입니다.”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미소를 지으며 빈 병을 가리켰다.

“그럼 가르칠 재료가 있어야겠 네요.”

“냉큼 가져오겠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술을 가져오 자, 최호철이 다가왔다.

“할머니.”

“왜요?”

“버릇없다 하실지 모르겠지 만…… 할머니가 말아주시는 폭

탄주 한 잔 먹고 싶습니다.”

최호철의 말에 오순영이 웃으며 다른 귀신들을 보았다.

“여러분들도 마시고 싶나요?”

“네!”

“마시고 싶습니다.”

귀신들의 답에 오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랜만에 실력 한 번 보 일까요.”

웃으며 오순영이 한복 소매를

걷어 올렸다.

스윽! 스윽!

오순영이 맥주병을 탁자 위에 줄을 세우고는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고는 숟가락을 움직였다.

펑! 펑! 펑! 펑!

오순영의 숟가락이 움직일 때마 다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병뚜껑이 천장으로 솟구쳤다.

“우와!”

“할머니 대박!”

귀신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을 들으며 오순영이 맥주를 들어 한 잔씩을 따라 내고는 그 위에 소 주병을 뒤집어 올렸다.

탓탓!

맥주병과 소주병을 하나로 합친 오순영이 그것을 흔들고는 사람 들을 보았다.

“잔 내미세요.”

오순영의 말에 귀신들이 급히 잔을 내밀자, 오순영이 그들의

잔에 폭탄주를 뿜어주었다.

촤아악! 촤아악!

오순영의 손에서 뿜어지는 폭탄 주에 귀신들이 환히 웃으며 잔을 받았다.

“아! 달다!”

“할머니 맥주가 엄청 부드럽네 요!”

“목 넘김이 엄청 부드럽네!”

귀신들이 환히 웃으며 폭탄주를 꿀떡꿀떡 마시기 시작하자 오순

영도 기분이 좋은지 연신 폭탄주 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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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악! 촤아악!

오순영의 손에서 뿜어지는 폭탄 주의 향연에 귀신들이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오순영도 기분 좋게 폭탄주를 말고 마시며 홍을 돋웠다.

“이 총각귀신은 뭘 이렇게 빌빌 대?”

“술술 마시니 술술 취하네요.”

최호철이 웃으며 폭탄주를 크게 들이키자 오순영이 웃으며 다시 술을 말아주었다.

촤아악! 촤아악!

오순영의 손에서 하얀 폭탄주 거품이 잔으로 쏟아졌다. 따르는 것이 아니라 쏘아지는 폭탄주에 최호철이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많이 먹어.”

그러고는 오순영이 자신의 잔에 도 폭탄주를 쏘아내고는 입에 털 어 넣었다.

오순영이 귀신들과 술을 마는 것을 보며 강진도 그것을 흉내 내 보았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맥주병 위에 소주를 세워 꽂으면 술이 너무 많이 샜다.

게다가 소주가 맥주병 안으로 들어가면서 거품도 생기고, 그 거품이 병들 사이에서 흘러나왔 다.

그래서 지금 탁자 위에는 넘친 술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쉽지 않죠?”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사님 하시는 것을 보는 것과 는 다르네요. 여사님은 그냥 편 하게 만드시는데.”

“나도 이 기술, 술 몇 짝 쏟고 배운 거예요. 하루아침에 보고 배워 버리면 내가 버린 술이 아 깝지.”

웃으며 오순영이 강진이 들고 있는 병을 들고는 폭탄주를 말았 다.

몇 방울 흘리는 것 빼고 다시 하나가는 되는 맥주병과 소주병 을 보며 강진이 감탄을 했다.

“이 정도면 해장국 명인이 아니 라 폭탄주 명인이시네요.”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미소를 지었다.

“해장국 파는 것만큼 폭탄주도 많이 말았으니까요.”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해장국 장사면 술과 떨어 질 수가 없지.’

오순영이 말을 한 대로 해장국 은 술을 먹은 놈이 오거나, 술을 먹으러 오는 놈들이 먹으러 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그녀에게 술은 익숙한 것이다.

“그리고 말 편하게 해 주세요. 손주뻘인데 계속 존대를 해 주시

니 제가 불편하네요.”

“그럼…… 그럴까?”

싱긋 웃은 오순영이 살짝 달아 오른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 러고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좋은 가게야.”

“저희 가게 음식이 맛있기는 하 죠.”

“음식점이야 당연히 맛이 있어 야지. 내가 좋은 가게라고 한 건…… 손님하고 주인이 친해서 좋은 가게라고 한 거야.”

“제가 좀 친하기는 하죠.’’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입을 열 었다.

“내가…… 식당을 오십 년 정도 했나?”

“엄청 오래 하셨네요.”

“스물다섯 살 때 남편이 죽었 어. 애는 줄줄이 있고 친척들도 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손 벌리기 도 힘들고…… 그러다가 국밥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어.”

“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지금 생각해도 고생 참 많이 했어. 수레에 국밥 싣고 가서 여 기 가서 팔고, 저기 가서 팔 고…… 그러다가 다른 국밥집 아 줌마들하고 엄청 싸웠어. 왜 자 기 가게 근처에서 장사하냐고.”

“밥그릇 싸움만큼 치열한 것도 없죠.”

“맞아. 싸우다가 수레 엎어지고 국밥 다 쏟고 그거 울면서 담 고……

말을 하던 오순영이 한숨을 쉬 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말

없이 선지해장국을 보았다.

선지해장국은 절반 정도 남아 있었다.

“내가 울면서 만든 국밥인 데…… 내가 다 먹기 힘드네.”

오순영의 한숨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산 사람은 살고, 죽은 분들 은…… 갈 길 가셔야죠.”

“그래야 하는데…… 이놈의 자 식! 지 공부시키고 먹여 살린 것 이 이 국밥인데, 어떻게 이 국밥

을 이따위로 할 수가 있어!”

순간 버럭 고함을 지르며 오순 영이 국밥 그릇을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던질 듯한 오순영의 모습에 강진이 급히 말했다.

“음식 버리면 죄받습니다.”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순간 손 을 멈췄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 며 숟가락을 들어서는 남은 국밥 을 먹기 시작했다.

“드시기 싫으면 드시지 않아도 되는데요.”

“버리면 죄받는다면서?”

“그거야 그렇지만……

“살았을 때도 먹을 것 안 버렸 는데, 죽어서 음식 버리기는 더 싫어.”

그러고는 오순영이 국밥을 우걱 우걱 먹기 시작했다. 인상을 잔 뜩 쓰며 국밥을 먹는 오순영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첫인상하고는 진짜 많이 다르 시네.’

첫인상은 푸근한 할머니였는데,

지금은 전혀 달랐다. 게다가 폭 탄주도 엄청 잘 말고 마시기도 잘 마시고 말이다.

강진의 시선을 느꼈는지 오순영 이 웃었다.

“내가 너무 걸걸해서 당황했 나?”

“조금요.”

“여자 혼자 아이 셋 키우는 것 이 어디 쉬운 줄 알아? 게다가 해장국집에는 늘 술 먹고 온 놈, 술 먹으러 오는 놈들로 늘 술 냄

새가 진동을 하는 곳이야. 그런 놈들 상대로 여자 혼자 장사하는 데 거칠어질 수밖에.”

“그러시군요.”

“나이 먹고 기반 잡히고 나서 좀 순해지기는 했지만…… 젊었 을 때는 술꾼들도 내 앞에서는 주정을 못 부렸어. 국밥 그릇에 이마 깨진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 어.”

말을 하는 오순영을 보던 강진 의 얼굴에 순간 당황스러움이 어 렸다.

‘어?’

새하얀 머리카락이 뿌리부터 조 금씩 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모양과 옷이 변했다.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길 게 늘어뜨리고, 조금 많이 촌스 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어?”

순식간에 눈앞에 있던 할머니는 사라지고 촌스럽지만 젊은 아가 씨가 앉아 있었다.

“우와!”

강진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 떡 일어났다. 그 모습에 오순영 이 이상하다는 듯 그를 보았다.

“왜 그래?”

얼굴만 변한 것이 아니라 목소 리와 말투도 조금 변했다. 할머 니 모습일 때는 조금 푸근하고 편한 목소리였는데, 지금은 좀 걸걸했다.

“모습이…… 변하셨어요.”

“모습이?”

의아해하는 오순영을 보며 강진

이 핸드폰을 꺼내 그녀를 찍었 다.

찰칵!

“여기요.”

강진이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자 오순영이 놀란 눈으로 사진을 보 았다.

“나네?”

“여사님이세요?”

“나 젊었을 때네. 어머! 죽으니 까 젊어지네.”

오순영이 놀란 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지다가 손을 보았다.

“어머! 피부 팽팽한 것 봐.”

오순영이 놀람과 흐뭇함이 가득 한 눈으로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보는 것에 강진이 놀란 눈으로 다른 귀신들을 보았다.

강진의 눈에는 이게 어떻게 된 거냐는 의미가 가득했다. 하지만 다른 귀신들도 놀란 눈으로 오순 영을 보고 있었다.

“저게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몰라.”

“귀신이 갑자기 저렇게 젊어져 도 되는 거야?”

귀신들 역시 오순영이 갑자기 젊어진 것에 놀란 눈을 하고 있 었다.

‘귀신들도 모르는 현상인가 보 네.’

다들 모르는 현상임을 안 강진 이 오순영을 보았다.

오순영은 일어나서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좋으신가 보네요.”

“좋지.”

웃으며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보던 오순영이 강진을 보았다.

“부탁을 하나 해도 될까?”

“말씀하세요.”

“내 가게……

잠시 말을 멈췄던 오순영이 강 진의 눈을 보았다.

“망하게 해 줘.”

갑작스러운 오순영의 말에 강진 이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 다.

“네‘?”

“내 가게 망하게 해 줘. 부탁이 야.”

“그……

잠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오 순영을 보던 강진이 물었다.

“여사님 가게를 망하게 해 달라 고요?”

“ "응."

“여사님이 평생을 힘들게 일해 서 일군 가게시잖아요.”

“그래서 망했으면 해.”

“왜요?”

“내가 만든 가게는……

오순영이 강진을 보다가 주위에 있는 귀신들을 보았다. 어느새 귀신들은 놀란 눈을 접고 술을 마시고 웃거나 이야기를 하고 있 었다.

“이런 가게였어. 음식을 먹으며 웃고 마시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지금도 사람들 와서 먹고 마시 고 웃던데요.”

“술 마신 놈들은 늘 웃어. 아니 면 울던지.”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네요.”

“지금 가게는 내 가게가 아니 야.”

“그래도 아들분이 하시잖아요.”

“가게가 망해도 먹고 살 정도로 재산은 남겼어. 내가 원하는 건 내 새끼들 공부시키고 결혼시키 게 해 준 고마운 해장국, 그리고 그 해장국을 잊지 않고 찾아주시 는 손님들한테 욕을 먹지 않는 거야.”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욕을 먹지 않게 망하게 하겠다 라……

“욕먹을 바에는 없어지는 것이 나아.”

“그럼 어떻게 망하게 해요?”

강진의 물음에 오순영이 웃으며 말했다.

“음식점 망하게 하는 것이 뭐 어렵나?”

“어렵죠. 거기 엄청 크던데.”

“음식점이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니야. 손님이 많이 오고 만족 하는 가게가 좋은 가게지. 그리 고 지금 내 가게는 손님이 만족

하는 가게가 아니니…… 좋은 가 게는 아니지.”

오순영의 말에 그녀를 보던 강 진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망하게 해요?”

“쉬워.”

오순영이 가게를 둘러보더니 강 진을 보았다.

“정말 맛있는 밥집과 그냥 맛있 는 밥집이 있으면 자네는 어디로 가겠나?”

“그야 정말 맛있는 밥집이죠.”

강진의 답에 오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맛있는 해장국을 만들면 내 가게는 망할 거야.”

“저보고 해장국을 만들라고요?”

“내가 옆에서 가르쳐 줄게. 그 리고……

오순영이 강진의 눈을 바라보았 다.

“제발 내 가게를 망하게 해

줘.”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자기 가게 망하게 해 달라는 부탁을 귀신한테 받을 줄은 생각 을 못 했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오순 영을 보았다.

“괜찮겠어요?”

“뭐가?”

“그래도.. 여사님 아들이 하

는 가게잖아요.”

강진의 말에 오순영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리고…….

스르륵! 스르륵!

오순영의 복장과 모습이 다시 변했다. 다시 방금 전까지 이십 대 중반에서 후반 정도로 보였다 면 지금은 처음 가게에 들어올 때의 모습이었다.

‘깜짝이야.’

다시 봐도 놀라운 모습이라 강 진이 속으로 놀랄 때, 오순영이

한숨을 쉬었다.

“엄마 정 못 받고 자란 애 라…… 내가 너무 오냐오냐해서 키웠어.”

“그때는 먹고살기 힘든 때셨잖 아요.”

“그랬지. 그래서 먹고살려고 바 둥거리느라…… 막내한테는 신경 을 못 썼어. 그러다 보니 나중에 는 너무 오냐오냐 키웠고. 그게 후회돼. 사랑하는 만큼 더 강하 고 정직하게 키웠어야 했는데.”

한숨을 쉬는 오순영은 자신의 모습이 변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오순영을 보며 강진이 말 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 지만 제가 인턴을 하고 있어 서…… 아! 인턴은……

“회사원들 상대로 밥집을 하는 데 인턴이 뭔지 모를까?”

“어쨌든 제가 인턴이라 주말에 만 해장국을 팔아야 할 것 같습

니다. 사골 끓이는데 열 시간씩 걸리는데, 평일에는 할 엄두가 나지를 않네요.”

“주말에만 하면 되지.”

“주말에만 해서 가게 망하게 할 수 있을까요?”

주말에 거기 손님들을 빨아 온 다고 해도 평일에는 손님들이 그 곳으로 몰릴 것이다.

“걱정하지 마. 선지해장국 좋아 하는 사람치고 내가 만든 해장국 먹고 다른 집에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한 번 오면 두 번 오 고, 두 번 오면 다른 집 걸 못 먹게 되지.”

자신감 넘치는 오순영의 말에 잠시 그녀를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아드님 가게 망할 때까지 잘 가르쳐 주 십시오.”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미소를 지었다.

“꼭 망하게 하자고.”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자식 가게 망하기를 비는 귀신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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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금요일 퇴근 시간이 다가올 때 강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 고 그것을 직원들은 이상하게 생 각하지 않았다.

강진이 인턴으로 들어온 지 5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다 섯 시만 되면 바로 정시 퇴근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것이 있었 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진이 임

호진에게 다가간 것이다.

강진이 다가오는 것에 임호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과장님.”

“무슨 할 말이 있나요?”

임호진의 물음에 강진이 말했 다.

“선지해장국 있잖습니까.”

“선지해장국?”

“저번에 선지해장국 드셨잖아 요.”

“아…… 그런데 왜요?”

의아한 듯 임호진이 보자 강진 이 말을 이었다.

“그때 실망하시는 것 보고, 제 가 주말에 선지해장국을 맛있게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선지해장국을요?”

“네.”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안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주말에 만들려고 합니

다.”

“흠…… 그런데요?”

“앞으로 주말 동안 선지해장국 을 만들려고 하는데…… 아시다 시피 저희 가게에 손님들이 많이 오지 않잖아요.”

“그게 참…… 신기하고도 이상 한 일이죠.”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 진이 말을 했다.

“선지해장국이라는 것이 1인분, 2인분만 딱 만들기가 어렵습니

다. 사골도 끓이고 선지와 천엽 과 다른 내장들도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아마 만들면 최소한 30인분은 넘어야 할 것 같은 데……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무슨 말 인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아! 손님들을 좀 모아 달라는 겁니까?”

“전에 보니 이 근처 회사 직원 분들이 선지해장국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래 서 제가 과장님과 여러 회사분들

의 추억을 위해 노력 한 번 해 보려 합니다.”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그를 보 다가 웃었다.

“정직원에 정말 욕심 없는 것 맞아요?”

“네?”

“이강진 씨가 한 말이 아니었으 면…… 나한테 선지해장국으로 아부한다고 생각을 했을 겁니 다.”

임호진의 말에 최동해가 순간

강진 쪽을 보았다. 임호진은 다 른 직원들에게는 강진이 정직원 이 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리 고, 평소 하는 일도 잡무 쪽으로 돌리게 했다.

하지만 최동해에게는 굳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은 것 이다.

‘정직원이 될 생각이 없어?’

최동해가 강진을 볼 때,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정직원에 관심은 없지만, 앞으

로 제 단골이 되실 손님분들에게 는 관심이 많습니다.”

“호! 회사 인맥으로 단골을 미 리 만들어 놓겠다는 건가?”

“생각보다 입소문이 안 나네 요.”

강진이 작게 웃자 임호진이 고 개를 끄덕였다.

“맛있는 것 먹으니 나야 나쁠 것이 없지. 좋아요. 선지해장국 좋아하는 친구들한테 전화 한 번 씩 해 놓죠.”

임호진의 말에 고개를 숙인 강 진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며 미 소를 지었다.

‘하대라…… 기분 좋네.’

임호진은 딱히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방금 말을 하다가 몇 번 말을 놓았다.

물론 다시 올리기는 했지만, 좋 은 변화였다. 말 그대로 임호진 에게 자신이 편해진 것이다.

“그럼 저는 퇴근하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 아니 내일이겠군 요. 어쨌든 내일 봅시다. 그리고 최동해 씨도 이만 퇴근해요.”

임호진의 말에 최동해가 직원들 을 한 번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 났다.

남아 있겠다고 해도 퇴근하라고 하니 말이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최동해가 강진의 뒤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이강진 씨!”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던 강진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 개를 돌렸다.

“같이 가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멈춰서는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오자 다시 엘리베이터로 걸 음을 옮겼다.

말없이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나온 강진이 최동해를 보 았다.

“선지해장국 좋아해요?”

“네? 네.”

“그럼 내일 점심에 우리 가게 와요. 동기 특가로 천 원에 모시 겠습니다.”

“천 원요?”

“네.”

“그…… 가격이 애매하네요?”

동기 특가든 뭐든, 기왕 선심 쓸 거면 공짜로 주는 것이 낫지 천 원을 왜 받나 싶은 것이다.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공짜로 드려도 되지만…… 공 짜로 뭔가를 받으면 나중에 후회 합니다.”

“후회요?”

“그런 것이 있어요.”

돈이 있는 사람이 물건을 공으 로 가져가고 쓰면 JS 금융의 잔 고가 줄어든다.

하지만 천 원이라는 가격을 내 고 먹으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주인이 정한 가격을 내는 것이니

말이다.

“그럼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말을 하며 강진이 걸음을 옮길 때, 최동해가 그를 불렀다.

“이강진 씨.”

최동해의 부름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 네?”

강진의 시선에 최동해가 잠시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직원이 될 생각이 없습니

까?”

“네.”

바로 답하는 강진의 모습에 최 동해가 멍하니 그를 보다가 말했 다.

“그럼 왜 인턴을 한 겁니까?”

“돈 벌려고요.”

“돈?”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인턴으로 무슨 돈을 벌어요?”

“월급 나오잖아요.”

“그게 얼마나 된다고?”

“나한테는 큰돈이어서요.”

“그…… 가게 있으시잖아요. 말 들으니까, 이십억 넘는다고 하던 데?”

“그거하고 이거는 다르죠.”

‘그리고 지금은 내 것도 아니 고.’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최 동해가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

다.

“인턴 경쟁률이 얼마나 높은 줄 알아요?”

“높겠죠.”

“우리 과에서 여기 지원한 애들 이 오십 명이 넘어요. 그리고 그 중 저만 통과했어요.”

“흠……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잠시 최동해를 보던 강진이 입 을 열었다.

“그래서요?”

“정직원이 될 생각도 없는데 인 턴에 지원한 건 문제 아닙니까?”

“왜요?”

“인턴이 되고자 하는 다른 사람 의 기회를 뺏은 거니까요.”

“일단…… 걸으면서 이야기하 죠. 집에는 가야 하니까.”

강진이 집 쪽으로 걷자 최동해

가 그 옆에 붙어 걸었다.

“첫째, 제가 하는 인턴십은 우 리 과에 배정된 것을 받아왔을 뿐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지 않았습니다.”

“그 과에도 인턴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겠죠.”

“그것 역시 저와는 관련 없습니 다. 우리 교수님에게 들어온 인 턴십 자리였고, 교수님이 저를 추천했습니다. 내가 교수님한테 뇌물을 줬거나 친분이 깊어 사적 으로 제가 들어왔다면 기회를 빼

앗았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죠. 하지만 나는 뇌물도 준 적이 없 고, 사적으로 친분도 깊지 않습 니다. 그냥 교수님이 맡고 있는 담당 학생들 중 한 명일 뿐입니 다.”

잠시 말을 멈춘 강진이 최동해 를 슬쩍 보았다.

“그리고 인턴십 기회를 받아 온 것은 교수님이고, 그것을 나에게 준 것도 교수님이니  최동해 씨가 투덜거릴 사람은 내가 아니 고 우리 교수님이겠네요. 어떻게,

번호라도 드릴까요?”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눈을 찡 그렸다.

그런 최동해를 보며 강진이 걸 으며 말을 했다.

“내가 싫죠?”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최동해가 놀 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 시선 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밥 먹고 갈래요?”

“네?”

“나도 어차피 밥 먹어야 하니 까. 들어와서 같이 먹고 가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도 착한 가게를 가리키며 강진이 문 을 열고 들어갔다.

“왔어?”

강진이 들어오는 것에 의자에 앉아 있던 배용수가 반가운 얼굴 로 그를 보았다.

가게 안에는 배용수와 오순영이 의자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지 말고 TV나 보고 있으라고 켜 놓고 간 것이다.

그에 강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 이며 뒤를 보았다.

“들어오세요.”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잠시 망 설이다가 가게로 들어왔다.

가게 안에 들어온 최동해가 살 짝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귀신이 있다 보니 그 기운에 떨릴 것이다. 그런 최동

해를 보며 강진이 배용수와 오순 영에게 살짝 눈짓을 주었다.

그에 배용수가 오순영 여사와 함께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귀신 이 있고 없고 가게 안의 기운이 달라지니 말이다.

둘이 나가자 강진이 자리를 가 리켰다.

“전에 고기 좋아한다고 했죠?”

“네? 네.”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냉장고를 열어서는 제육볶음을 꺼냈다. 강

진이 제육볶음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언제 어느 때고 바로 낼 수 있는 메뉴라 냉장고에 늘 제 육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게다가 양념에 재워 놓으면 쉽 게 상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촤아악! 촤아악!

제육을 볶으며 강진이 냉장고에 서 밑반찬을 꺼내 담아서는 탁자 로 가져다 놓았다.

제육볶음까지 가져다 놓은 강진 이 탁자에 그것을 올리고는 최동

해를 보았다.

“일단 먹죠.”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잠시 머 뭇거리다가 숟가락을 들어서는 밥과 반찬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곧 최동 해는 큼직하게 밥을 먹고, 고기 도 한 번에 몇 점씩 집어 입에 넣었다. 그것을 보며 강진도 밥 을 먹었다.

얼마 후 밥을 다 먹은 강진이 야관문차를 따라 놓았다.

야관문차를 사이에 두고 강진이 말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참 많이 했 어요.”

“나도 아르바이트는 했습니다.”

“몇 주? 아니면 몇 달?”

“충전소에서 두 달 했습니다.”

“나는 19살 때부터 아르바이트 를 했어요. 방학 동안에는 하루 에 두 탕씩 하고, 학기 중에는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고…… 늘 했죠.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면 세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최동해가 자신을 보고 있자 강 진이 말을 이었다.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 나한테 관심 없는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 어떤 아르바이트를 가도 이런 사람들을 꼭 만나게 돼요. 편의점처럼 혼자 하는 아르바이 트에도 이런 사람을 만나게 돼 요.”

“혼자 하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 들을 만나게 됩니까?”

“교대 근무자도 있고 사장님도 있잖아요.”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최동해 를 보았다.

“미움 받는 것이 기분 좋은 것 은 아니지만, 미움 받는 것에 대 해서도 익숙해요. 아르바이트하 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만큼,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으니까요.”

잠시 말을 멈춘 강진이 최동해 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사실 최동해 씨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해도 딱히 신경 쓰 지 않아요. 사실 오래 볼 사이도 아니고 길어야 석 달이잖아요.”

강진의 말이 좀 냉정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사실이었다.

“그런데 내가 왜 최동해 씨한테 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아 요?”

“모르겠습니다.”

“왜 나를 미워해서 쓸데없는 심 력을 사용합니까? 게다가 나는

정직원이 될 생각도 없으니 당신 의 경쟁자가 될 것도 아닌데…… 지금 최동해 씨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인턴 생활 잘 버텨서 정직원 이 될 기회를 얻는 것 아닙니 까?”

“그건......"

최동해가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뭐라 할 말이 없 었다.

그런 최동해를 보며 강진이 입 을 열었다.

“과에서 인턴에 지원한 것이 오 십 명이라고 했죠?”

“네.”

“그 오십 명이 잡지 못한 기회 를 최동해 씨가 잡았습니다. 그 럼 그 기회 잘 잡으세요. 자기 인생에서 잠시 스쳐가는 사람 싫 어하는데 쓰지 말고요.”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강진 씨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죠?”

최동해의 물음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아르바이 트하는 동기 이 자..

앞으로 내 가게 단골 1순위라고 생각합니다.”

“ 단골?”

“맛없어요?”

강진이 최동해가 먹은 그릇들을 가리키자, 최동해가 고개를 저었 다.

“맛있습니다.

“육천 원이면 먹을 만하겠죠?”

“네.”

최동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 실히 이 정도 식단에 맛이면 칠 천 원이나 팔천 원이라도 먹을 만하다.

육천 원이면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게다가 한 끼식당은 메뉴에 없는 음식도 손 님이 원하면 만들어 주니 만약 최동해가 정직원이 된다면 단골 이 될 것 같았다.

“단골…… 될 것 같네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육천 원입니다.”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황당한 얼굴 로 변했다.

“이강진 씨가 먹고 가라면서 요?”

“원래 식당 주인들은 지나가는 손님한테 먹고 가라고 합니다. 그럼 그 식당 주인들이 손님한테

돈을 안 받을까요?”

“그건…… 휴우!”

작게 고개를 저은 최동해가 육 천 원을 꺼내 내밀자 강진이 그 것을 기분 좋게 받았다.

“돈을 안 받아도 되지만, 다 이 게 최동해 씨를 위한 일입니다.”

“그건 또 무슨 일입니까?”

“나중에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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