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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43화 (43/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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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해가 가게를 나가는 것을 보던 강진이 그릇들을 치우기 시 작했다.

그릇들을 치우는 사이 배용수와 오순영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친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왜 데리고 왔어?”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그릇들을 주방으로 옮겼다.

“식당에 손님 데리고 오는 것도 이상해?”

“나가는 것 보니 표정이 이상하 던데?”

“많이 이상했어?”

“심각한 정도는 아니고, 생각이 많아 보였어.”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그릇들을 설거지하고는 오순영을 보았다.

“재료 확인하셨어요?”

강진의 말에 오순영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식재료 거래처가 아주 좋더 군.”

“거기서 오는 식재료 좋죠.”

“아주 좋아. 내 가게도 식재료 하나만큼은 좋은 것만을 골라 썼 는데, 여기 들어오는 것이 더 좋 은 것 같아.”

오순영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 였다.

아직 만지지는 못했지만 식재료

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에 대 한 이야기를 신수용과 나눠서 기 분이 좋은 듯했다.

그런 오순영을 보며 웃어 준 강 진이 냉장고를 열었다. 그러고는 오늘 선지해장국을 위해 들어온 재료들을 살폈다.

“꽤 많네요.”

시뻘건 선지, 소 내장, 거기에 선지해장국에 들어가는 채소들까 지 영업용 냉장고 밑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건 내일 다 팔아야 해.”

“몇 인분이나 만드실 건데요?”

“60 인분.”

“60인분이라…… 다 팔 수 있을 까요?”

“자네가 얼마나 연락을 많이 했 느냐에 달렸지.”

“저 여기 장사한 지 며칠 되지 도 않았어요.”

“어쨌든 내일 다 팔아야 해.”

“남으면 내일모레 팔아도 되지 않아요?”

“음식 장사하는 사람이 무슨 그 런 말을 해? 장같이 오래 묵어야 맛이 좋은 음식도 있지만, 조리 한 음식은 그날 만들어서 그날 팔아야 해. 그러니까 아는 사람 들한테 연락 돌려.”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잠시 있 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이 근처 에 아는 사람들이라고는 태광무 역 사람들뿐이었다.

“여보세요.”

[이 사장님.]

“잘 지내시죠?”

[이틀 전에 가서 밥 먹을 때 제 가 못 지내는 것 같았습니까?]

오성실 부장의 농 섞인 말에 강 진이 웃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 내일 점심에 선지해장국 하신다면서요?]

“들으셨어요?”

[임 과장이 문자 보냈더군요.

내일 점심에 이 사장 가게에서 선지해장국 하는데, 같이 한 그 릇 하자고.]

“그럼 오시는 거죠?”

[가야죠. 말 들으니 열 시간 넘 게 만들어야 하는 귀한 음식이라 고 하던데…… 놓치면 저만 손해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소문 좀 내 주세요. 조금 만들 수 있 는 음식이 아니라서 60인분이나 만들 건데…… 내일 못 팔면 난 감하네요.”

[못 팔면 그 다음 날 팔면 되지 않습니까?]

“저를 어떻게 보시고 그런 말씀 을 하세요.”

[네?]

“김치나 장 같은 음식이야 오래 둬도 되지만, 조리한 음식은 당 일 만들어서 당일 다 팔아야 합 니다.”

[아…… 훌륭한 생각입니다.]

“그럼 내일 꼭 와 주시기 바랍 니다.”

[강매도 이런 강매가 없군요.]

“맛있는 음식으로 보답하겠습니 다.”

[기대가 큽니다. 이 사장 음식 솜씨에 열 시간을 공들인 음식이 라니 말입니다.]

“그리고 친구분들 중에 선지해 장국 좋아하시는 분들한테도 소 개 좀 해 주세요. 음식 남으면 정말 난감합니다.”

[하하하! 정말 대단한 음식을 만들 생각이신가 보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신 정말 맛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요.”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핸 드폰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에 오순영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 다.

“전화 더 안 해?”

“음식 파는 거면 학교 친구들한 테라도 연락할 텐데…… 이건 여 사님 아드님 가게를 망하게 하는

거라 이 근처에 연고가 있는 사 람이어야 합니다.”

가게를 망하게 하려면 이 근처 에서 거기를 갈 만한 사람들을 빨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 이 사장 이 머리가 좋네.”

푸근한 얼굴의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 죠?”

“재료 손질은 저녁에 내가 해

놓을 테니까, 자네는 새벽에 사 골 끓는 거나 잘 살펴. 그리고 내가 하라는 대로 손질한 재료들 넣으면 완성이야.”

“의외로 제가 할 건 그리 없네 요.”

“사골 끓일 때는 자네가 할 일 이 참 많을 거야. 그러니 일찍 자. 밤새도록 불 옆을 지켜야 할 테니까.”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화구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일찍 문을 닫죠.”

그러고는 강진이 가게 문을 닫 고는 불을 껐다. 오순영의 말대 로 열 시간 넘게 사골을 끓이려 면 일찍 자 두는 것이 좋았다.

부글부글!

사골이 끓어오르는 화구로 인해

주방은 습하고 더웠다.

‘음기 어쩌고저쩌고 해도 확실 히 열에는 장사가 없네.’

귀신들로 북적이는 식당이라 이 정도지, 만약 일반 식당에서 이 렇게 불을 켜고 물을 끓였다면 사우나 저리 가라 할 열기였다.

그 열기에 강진이 슬쩍 홀로 나 왔다.

“후하!”

홀에 나오자 그제야 조금 살 것 같았다. 열기로 끓어오르는 주방 과 달리, 귀신들로 북적거리는

홀은 그나마 선선했다.

“사골 끓이는 거야?”

최호철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지해장국 끓이려고요.”

“오! 선지해장국 나도 좋아하는 데.”

“그래요?”

“그럼, 야근하고 아침에 선지해 장국에 소주 한잔하고 자면 그게 보약이지.”

입맛이 도는 듯 주방을 보던 최 호철이 물었다.

“얼마나 걸려?”

“오늘은 못 드시고 내일 저녁에 나 드실 수 있겠네요.”

“내일? 무슨 선지해장국 하나 끓이는데 하루가 걸려?”

최호철이 의아해하자 주방에서 고무장갑을 낀 오순영이 고개를 내밀었다.

“선지해장국이 무슨 뚝딱하고 나오는 줄 알아?”

“가게 가면 뚝딱하고 나오던데 요?”

“그거야 밤새도록 정성을 들여 서 손님상에 바로 내서 그렇지.”

“그런가요?”

“그럼 당연하지. 사골 끓여야지, 내장 손질해야지. 얼마나 할 일 이 많은데.”

“그럼 내일 저녁을 기대하겠습 니다.”

“그래, 기대해.”

그러고는 다시 오순영이 고개를 숙이다가 강진을 보았다.

“뭐 하고 있어? 와서 봐야지.”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오순영은 커다란 고무 대야에 소 내장들을 넣고는 빨래를 하듯 이 비비고 있었다.

촤아악! 촤아악!

오순영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소 내장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쥐어짜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걸 몇 번이나 해야 돼요?”

“냄새가 안 날 때까지.”

말을 하며 오순영이 물을 틀어 소 내장들을 헹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물을 모두 버리고는 밀 가루를 크게 퍼서는 그대로 부었 다.

거기에 굵은소금도 다시 부은 오순영이 열심히 소 내장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소금하고 밀가루가 엄청 들어

가네요.”

“음식 장사하는 사람이 재료 아 끼면 안 돼. 아! 그리고 몸도 아 끼면 안 돼. 좋은 음식은 좋은 재료와 정성이 만들어 내는 거니 까.”

“가게에 쓰여 있는 글이네요.”

옛날해장국집 벽에 쓰여 있는 글을 떠올린 강진의 말에 오순영 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주워들은 말이야.”

“여사님이 생각한 말이 아니고

요?”

“초등학교도 안 나온 내가 그렇 게 멋진 말을 어떻게 생각했겠 어? 그냥 오다가다 알게 된 손님 이 해장국 먹고 나한테 해 준 말 이야.”

“그랬어요?”

잠시 손을 멈춘 오순영이 잠시 생각을 하는 것처럼 허공을 보다 가 말했다.

“해장국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 하고는 이렇게 말을 하더라

고……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만 들어져서인지 맛이 아주 깊고 따 뜻하다고.”

“멋진 신사분이시네요.”

“그렇지. 그래서 적어 놨다가, 가게 벽에 써 놓은 거야.”

웃으며 말을 하는 오순영을 보 던 강진이 고무장갑을 끼었다.

“좀 쉬세요. 제가 할게요.”

“그래 어디 해 봐.”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대야 앞

에 자리하고는 잠시 눈을 감았 다.

‘선지해장국……

이미 요리 연습장을 통해 알고 있는 음식법이다. 강진이 떠올리 는 것은 그중 소 내장 손질에 관 한 내용이었다.

〈소 내장은 특유의 냄새가 있 다. 소 내장 냄새를 제거할 때는 밀가루와 굵은소금으로…….>

내장 손질에 관한 것을 떠올린 강진이 주먹을 살짝 쥐었다가 대 야로 손을 집어넣었다.

촤아악! 촤아악!

강진의 손이 리드미컬하게 움직 이며 내장을 문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오순영이 의아한 듯 강진을 보았다.

“내장 손질해 본 적 있나?”

“처음 해 봅니다.”

“아주 잘하는데?”

“여기가 귀신들 식당이잖아요. 그래서 어지간한 요리들은 저절 로 익히게 되네요.”

“그 정도 손질을 하려면 6개월 은 배워야 하는데…… 편하네.”

“조금 그렇기는 하죠.”

촤아악! 촤아악!

말을 하며 연신 손을 움직인 강 진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물을 틀 어 내장을 씻고는 다시 밀가루와 소금을 넣었다.

그렇게 서너 번을 더 한 강진이

내장을 들어 냄새를 맡았다.

냄새가 안 나는 것을 확인한 강 진이 오순영을 보았다.

“된 것 같은데요?”

강진의 말에 오순영도 내장의 색과 냄새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살았을 때 만났으면 월급 많이 줬을 텐데.”

“ 월급요?”

“내 직원들 중에서도 이렇게 깔

끔하게 손질하는 애들이 없어.”

내장을 이리저리 만지는 오순영 의 얼굴은 해맑았다.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다시 이렇게 내장들을 만지게 될 줄은 몰랐거든.”

웃으며 내장을 손으로 만지던 오순영이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오순영이 가위를 가져다가 내장들을 다시 손질했 다.

내장에 붙은 기름이나 안 좋은 부위들을 일일이 다 제거하는 것 이다.

그에 강진도 가위를 가져다가 내장들을 손질했다. 내장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가위를 잡으 니 알아서 손이 움직였다.

스륵! 스륵!

가위로 내장에 있는 기름들을 제거하는 강진의 모습에 오순영 이 미소를 지었다.

“잘하네.”

“고맙습니다.”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둘은 어느새 내장들을 모두 손질 했다.

“뚜껑 열어.”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화구에 끓고 있는 커다란 냄비 뚜껑을 열었다.

화아악!

뚜껑을 열자 하얀 김과 함께 약 초 냄새들이 났다. 초벌로 끓일 때 잡내를 잡아 줄 한약재가 들

어 있는 것이다.

물통에 내장을 넣고 뚜껑을 덮 자, 오순영이 시간을 보았다.

“벌써 12시가 지났네.”

“이제 거의 다 된 것 아닙니 까?”

“큰 건 다 했지…… 이제 양념 을 만들 거야. 내가 양념하고 재 료들 준비해 놓으면 내일……

잠시 시간을 가늠하던 오순영이 말했다.

“9시까지 사골 끓이고…… 10시 부터 사골에 양념하고 내장 넣고 팔팔 끓여.”

오순영이 해 주는 설명을 적으 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하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오순영이 그가 적 은 것을 힐끗 보고는 웃었다.

“뭘 다 적었어?”

“네? 아……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고는 메모지를 내려놓았다. 새벽 1시에 오순영의 몸이 사라지기는 하지만 현신만 풀리는 것일 뿐 옆에 있는다.

그러니 오순영이 직접 음식을 만들지 못해도 옆에서 하나하나 알려 줄 수는 있는 것이다.

부글부글!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선지해장 국을 보며 강진이 옆에 있는 오 순영을 보았다.

“다 된 거죠?”

피곤함이 가득한 강진의 얼굴을 보며 오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흐.

오순영의 말에 강진이 불을 살 짝 줄였다. 그러고는 찬물로 얼 굴을 간단하게 씻었다.

“후우!”

‘피곤하네.’

총 11시간 동안 잠도 못 자고 선지해장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완성이 된 것이다.

국그릇에 선지해장국을 뜬 강진 이 겉절이를 들고는 식탁으로 나 왔다.

“먹어 봐. 이게 진짜니까.”

오순영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앉는 것을 보며 강진이 숟가락으 로 국물을 떠서는 입에 넣었다.

“크으윽!”

칼칼하면서 진한 육수가 목을 타고 흘러가는 것에 작은 신음을 토한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강진의 모습에 오순영이 미소를 지었다.

“어때?”

마치 시험을 보고 점수를 물어 보는 소녀 같은 느낌이었다. 그 런 오순영을 보며 강진이 숟가락 으로 국물을 떠먹으며 말했다.

“아드님 가게 망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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